티스토리 뷰
청와대 서쪽 옆구리에 자리한 조선 왕실 사당, 궁정동 칠궁 ④ 수복방, 내삼문, 냉천정, 덕안궁, 선희궁과 경우궁, 대빈궁, 저경궁
도봉산고양이 2025. 2. 27. 08:00
1. 칠궁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 덕안궁 내부 사진 (감실과 신주)
칠궁을 이루고 있는 7개의 사당(궁)과 부속건물들은 모두 내부 공개를 하지 않는다. 하여 굳게 닫힌
모습으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2. 길쭉한 모습의 수복방
내삼문과 자연(연못) 사이에 자리한 수복방은 7칸짜리 맞배지붕 건물이다. 칠궁을 관리하는 사람의
숙소 및 창고로 1753년에 육상묘(숙빈최씨의 사당)가 육상궁으로 격이 높여지면서 지어진 것으로 여
겨진다.
3. 수복방 옆 내삼문
칠궁 바깥에서 칠궁 사당으로 가려면 3개의 문을 거쳐야 된다. 내삼문은 그 가운데 문으로 삼문 형태
로 이루어져 있는데, 굳이 이 문이 아니더라도 재실 동쪽에 있는 중문을 통해 칠궁 중심부로 들어서
도 된다.
4. 서쪽에서 바라본 냉천정
냉천정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시원스런 팔작지붕 집으로 영조가 선희궁에 봉안된 모후 숙빈최씨의
제사를 준비하고 제사 뒷풀이 및 휴식을 취했던 곳이다.
언제 세워졌는지는 북악산(백악산) 산신도 모르는 실정이나 육상궁이 처음 지어진 때에 마련된 것으
로 여겨진다. 영조의 어진을 봉안했던 곳이라 봉안각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순조 이후부터 냉천정으
로 이름이 갈린 것으로 보인다. 그 이름은 동쪽 옆구리에 있는 냉천이란 우물에서 비롯되었다.
집은 서쪽 2칸은 온돌방, 동쪽 1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으며, 칠궁이 비록 속세에 열린 공간이지만 냉
천정 뒤쪽과 냉천만큼은 여전히 통제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집 앞으로만 지나다녀야 된다.
5. 덕안궁
덕안궁은 칠궁 식구 중 가장 막내로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귀비 엄씨의 사당이다. 엄
씨는 1897년에 영친왕을 출산하여 귀인으로 책봉되었으며, 고종은 경운궁(덕수궁) 내에 그의 거처를
지어 경선궁이라 했다.
1900년에 순빈으로 1901년 순비, 1903년 황귀비, 1910년 순헌귀비로 진봉되었으며, 1911년 그가 세
상을 뜨자 경선궁을 덕안궁이라 개칭했다. 1913년 태평로 현 서울시의회 자리에 그의 사당을 짓고 그
가 살던 집의 이름을 사당 이름으로 삼았으며, 1929년 육상궁으로 이전 통합되었다.
칠궁 식구들은 냉천정을 기준으로 5개는 서쪽, 2개는 동쪽에 모여있는데, 덕안궁은 서쪽으로 서쪽 삼
문을 들어서면 바로 나타나 정면 시야를 가로막는다.
6. 덕안궁 뒷통수에 있는 선희궁과 경우궁
선희궁과 경우궁은 육상궁과 연호궁처럼 같은 지붕과 집을 쓰고 있다. 선희궁은 영조의 후궁이자 그
유명한 사도세자(후에 장조로 추존됨)의 생모로 1764년 세상을 뜨자 1765년 영조가 순화방(신교동)
에 그의 사당을 세우고 의열묘라 했다.
정조는 1788년 묘호를 선희궁으로 바꾸어 특별히 챙겼으며, 1870년 육상궁으로 옮겼다가 1897년 원
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1908년 육상궁으로 통합되어 경우궁과 같은 건물을 쓰고 있다.
선희궁은 육상궁에 통합된 다른 5개의 사당과 달리 사당 건물이 원래 자리에 남아있다. 현재 국립서
울농학교가 선희궁 자리로 학교 뒤쪽에 사당 건물이 있으며, 이 건물은 선희궁터란 이름으로 지방문
화재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
경우궁은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수비박씨, 유비박씨)의 사당이다. 1822년 박씨가
세상을 뜨자 1823년 창경궁 도총부에 사당을 세워 현사궁이라 했으며, 1824년 양덕방 계동(현대사옥
주변)으로 옮겨서 경우궁이라 했다. (신주는 1825년에 봉안됨)
1884년 갑신정변 때 김옥균 등의 개화파 패거리와 고종이 잠시 머물기도 했으며, 1886년 인왕동으로
사당을 이전했다. 그러다가 1908년 육상궁에 통합되었다.
7. 경우궁 현판을 내건 경우궁, 선희궁
선희궁이 더 오래되었으나 현판은 경우궁 것을 내걸었다. 칠궁 사당은 모두 3칸짜리 맞배지붕 집으로
좌/우/후면은 벽으로 완전히 막힌 형태이다.
8. 대빈궁
경우궁과 선희궁, 저경궁 사이에 자리한 대빈궁은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인 희빈장씨의 사당이
다. 그 유명한 희빈장씨는 숙종의 왕후인 인현왕후와의 권력 싸움에서 최종 패배하여 결국 1701년 사
약 1사발 들이키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가 죽자 숙종은 그의 신위를 정동에 봉안했다.
1722년 경종은 어미를 옥산부대빈으로 추존하고 경행방 교동에 사당을 세워 대빈묘라 했으며, 1870
년 선희궁처럼 육상궁으로 옮겨졌다가 1887년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1908년 다시 육상궁
에 통합되었다.
9. 저경궁
저경궁은 칠궁 식구들이 머금은 신주 중에서 가장 늙은 존재로 선조의 후궁이자 추존된 원종(정원군,
인조의 부친)의 생모인 인빈김씨의 사당이다.
1743년 영조는 원종의 집이 있던 송현방에 인빈김씨의 사당을 만들었으며, 이후 종실인 이증의 집으
로 옮겼다가 1755년 다시 원래 자리로 옮겨 저경궁이라 했다. 이후 1870년 경우궁 내 별묘로 옮겨졌
다가 1908년 육상궁으로 통합되었다.
10. 저경궁 옆구리의 막다른 곳
이곳이 칠궁 경내에서 가장 서쪽 끝부분이다. 담장 너머는 창의문로가 자리해 차량들의 소음이 늘 두
귀를 때려는데, 원래 창의문로 주변도 칠궁 영역이었다. 그러던 것을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 칠궁 영
역이 축소되면서 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