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서쪽 옆구리에 자리한 조선 왕실 사당, 궁정동 칠궁 ② 냉천정, 선희궁, 연호궁, 이안청
1. 칠궁 냉천정
육상궁, 연호궁 구역과 선희궁, 경우궁, 덕안궁, 대빈궁, 저경궁 사이에 냉천정이 자리잡고 있다. 정
면 5칸, 측면 2칸의 시원스런 팔작지붕 집으로 영조가 선희궁에 봉안된 모후 숙빈최씨의 제사를 준
비하고 제사 뒷풀이 및 휴식을 취했던 곳이다.
언제 지어졌는지는 북악산(백악산) 산신도 모르는 실정이나 육상궁이 처음 지어진 때에 마련된 것으
로 여겨지며, 영조의 어진을 봉안했던 곳이라 봉안각이라 불리기도 했다. 순조 이후부터 냉천정으로
이름이 갈린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름은 동쪽 옆구리에 있는 냉천이란 우물에서 비롯되었다.
집은 서쪽 2칸은 온돌방, 동쪽 1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으며, 칠궁이 비록 속세에 열린 공간이지만 냉
천정 뒤쪽과 냉천만큼은 여전히 통제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그 앞으로만 지나다녀야 된다.
2. 냉천정 앞에 있는 메마른 자연
자연은 자주빛 연못을 뜻한다. 화강암으로 다진 네모난 작은 연못으로 가로 7.5m, 세로 6.3m, 수심
0.9m의 덩치를 지녔는데, 연못 남쪽 면에 '紫淵' 2자가 새겨져 있다. 영조 때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나
확실하지 않다.
3. 육상궁과 연호궁 삼문 옆에 있는 배수구
육상궁, 연호궁 구역에 고인 수분을 밖으로 배출한다. 주로 비가 많이 내릴 때 크게 몸을 풀며, 그 외
에는 이렇게 메마르고 한가한 모습이다.
4. 육상궁과 연호궁 감실 내부, 신주 사진
5. 연호궁, 육상궁 삼문
저 삼문을 들어서면 연호궁과 육상궁 구역이다. 삼문 앞에는 계단이 높이 자리해 있으며, 좌우로 동그
란 무늬가 점점이 깃든 돌담을 둘렀다.
6. 연호궁, 육상궁과 삼문 사이에 자리한 3칸짜리 맞배지붕 집
제왕과 왕족, 신하들이 연호궁과 육상궁에 제사와 참배 등을 할 때 여기서 예를 표하거나 대기를 했다.
(건물 이름은 모르겠음)
7. 한 지붕 두 가족, 육상궁과 연호궁
육상궁은 영조의 생모이자 숙종의 후궁인 숙빈최씨의 사당이다. 칠궁 자리에 처음부터 있었던 터줏대
감 같은 존재로 영조가 재위에 오른 1724년 경복궁 북쪽인 현재 자리에 생모의 사당을 세울 것을 명령
하여 1725년에 완성을 보았다.
처음에는 숙빈묘라 했으며, 1744년 육상묘로 묘호를 갈았다. 그러다가 1753년 사당의 격을 '廟'에서 '
宮'으로 크게 높였는데, 이때부터 제왕들이 왕후(황후)에 오르지 못한 생모의 사당을 짓는 사묘 제도가
제대로 형식을 갖춘 것으로 여겨진다.
1878년 화재로 쓰러진 것을 다시 세웠으나 1882년 다시 화재를 만나면서 건물은 물론 숙빈최씨의 신
주와 옥책, 은인까지 싹 화마의 덧없는 먹이가 되고 말았다. 다만 이곳에 들어있던 영조의 어진은 송죽
헌으로 피신시켜 화를 면했으며, 1883년에 사당을 재건했다.
육상궁과 같은 집을 쓰고 있는 연호궁은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 왕 진종의 생모인 정빈이씨의 사당이다.
정조는 영조의 명으로 효장세자(진종)의 양자가 되어 영조의 뒤를 이었는데, 즉위 이후 효장세자를 진
종이라 추존하고 1778년에 북부 순화방에 정빈이씨의 사당을 세워 연호궁이라 했다.
연호궁은 1870년 육상궁으로 통합되어 육상궁 내 별묘로 옮겨졌는데, 이후 육상궁과 같은 건물을 쓰게
되었다. 그 이유와 시기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정확한 것은 전하지 않으며, 육상궁에 신세를 지고 있음
에도 연호궁 현판을 내걸고 있다. 그에 비해 이곳의 오랜 주인인 육상궁 현판은 내부에 있는데, 육상궁
이 아닌 육상묘 현판을 내걸었다.
8. 입을 굳게 닫은 선희궁와 연호궁
건물 내부는 통제구역이라 들어갈 수 없으며, 좌우로 이안청 건물이 쌍둥이꼴로 자리해 있는데, 이들
은 신주를 임시로 봉안하던 집들이다.
9. 선희궁과 연호궁 옆 뜨락과 꽃계단, 담장
담장 너머는 청와대 구역이다. 하여 담장보다 높게 철책을 둘러 국가의 예민한 곳을 지킨다. 선희궁과
연호궁 뒤쪽에는 2단으로 된 꽃계단이 닦여져 있는데, 내가 갔을 때는 화초가 별로 없어서 조금은 썰
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