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서쪽 옆구리에 자리한 조선 왕실 사당, 궁정동 칠궁 ⑤ 대빈궁, 이안청, 삼문, 냉천정, 내삼문, 260년 묵은 느티나무
1. 대빈궁
경우궁과 선희궁, 저경궁 사이에 자리한 대빈궁은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인 희빈장씨의 사당
이다. 그 유명한 희빈장씨는 숙종의 왕후인 인현왕후와의 권력 싸움에서 최종 패배하여 결국 1701년
쓰디쓴 사약을 1사발 들이키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가 죽자 숙종은 그의 신위를 정동에 봉안했다.
1722년 경종은 어미를 옥산부대빈으로 추존하고 경행방 교동에 사당을 세워 대빈묘라 했으며, 1870
년 선희궁처럼 육상궁으로 옮겼다가 1887년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1908년 다시 육상궁에
통합되었다.
2. 1열로 나란히 자리한 경우궁(선희궁)과 대빈궁, 저경궁 (오른쪽부터)
4열로 닦여진 장대석 석축 위에 3열로 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사당을 얹혔다. 4열로 된 석축 가운데
인 대빈궁에 돌계단을 내었으며, 3열 석축에는 각 건물마다 가운데 부분에 계단을 내었다.
3. 이안청
덕안궁 옆이자 대빈궁 앞에 자리한 이안청은 신주를 임시로 봉안하던 건물이다. 원래는 각 사당(궁)
마다 이안청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으나 1976년 이후 칠궁 좌우에 길을 닦고 청와대를 넓히는 과정에
서 칠궁이 축소되면서 3개만 남게 되었다. (다른 2개는 육상궁, 연호궁에 있음)
4. 저경궁과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 덕안궁으로 인도하는 삼문
바깥에서 칠궁 사당으로 가려면 총 3개의 삼문을 지나야 되는데, 이곳 삼문은 그 최종 단계의 문이다.
5. 다시 바라본 냉천정
냉천정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시원스런 팔작지붕 집으로 영조가 선희궁에 봉안된 모후 숙빈최씨의
제사를 준비하고 제사 뒷풀이 및 휴식을 취했던 곳이다.
언제 세워졌는지는 북악산(백악산) 산신도 모르는 실정이나 육상궁이 처음 지어진 때에 마련된 것으
로 여겨진다. 영조의 어진을 봉안했던 곳이라 봉안각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순조 이후부터 냉천정으
로 이름이 갈린 것으로 보인다. 그 이름은 동쪽 옆구리에 있는 냉천이란 우물에서 비롯되었다.
집은 서쪽 2칸은 온돌방, 동쪽 1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으며, 칠궁이 비록 속세에 열린 공간이지만 냉
천정 뒤쪽과 냉천만큼은 여전히 통제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그 앞으로만 지나다녀야 된다.
6. 수복방 옆에 높이 자라난 느티나무
칠궁에는 나이 100~200년대의 늙은 나무들이 여럿 존재한다. 그중에서 수복방 옆에 있는 이 느티나
무가 가장 오래된 측에 속하는데, 1768년에 심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선 때는 삼공(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궁궐에 나란히 들어오는 것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궁궐 외
곽에 느티나무를 많이 심었다. 칠궁의 느티나무 역시 그런 의미로 심은 것으로 보이는데, 식재 시기를
보면 영조 때로 그때 이곳에는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의 사당인 육상궁만 있었으며, 이곳은 바깥에
서 육상궁으로 가는 길목이다.
7. 내삼문에서 외삼문으로 이어지는 길
외삼문에서 내삼문까지 2열로 된 돌길이 닦여져 있다. 이 돌길은 제왕 전용으로 보면 된다. 사진상으
로 왼쪽(동쪽) 담장 너머는 칠궁 재실이며, 오른쪽(서쪽)은 칠궁의 영역을 크게 갉아먹은 창의문로이
다.
8. 내삼문의 바깥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