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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미 금강사 대웅전

경부선 구미역 서남쪽 언덕에는 금강사란 현대사찰이 둥지를 틀고 있다. 보통 구미역(경부선, 대경

선 광역전철)을 찾으면 번화가인 북쪽으로만 오갔을 뿐, 남쪽은 인연이 없었는데, 역 바로 서남쪽에

방문화재 불상을 지닌 금강사가 있다는 풍문을 들었다. 그래서 기회를 보다가 얼마전 인연을 지었

다.

 

금강사는 1952년에 철우선사가 창건했다. 그는 금강산에서 오랫동안 수행을 했는데, 6.25 전에 금강

산에서 수습한 석조석가여래좌상과 금동약사여래입상, 금동관음보살입상을 가지고 구미로 내려와
절을 세웠다. 대한불교 조계종 직지사의 말사이며, 절 이름은 금강산에서 따왔다.

 

이곳은 금오산 금강사를 칭하고 있는데, 금오산은 구미의 대표 지붕으로 금오산의 산주름이 여기까지

내려온다. 즉 이곳이 금오산의 북쪽 끝자락이라 보면 된다. 절 북쪽에는 경부선 철도가 있어서 온갖 열

차의 소음이 수시로 들리며, 서쪽은 원평동 주거지, 동쪽은 구미역 남쪽 광장이다. 그리고 남쪽으로 가

늘게 금오산 산줄기를 붙잡고 있다.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해 조사전과 심우당, 범종각 등 7~8동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

으로는 금강산에서 가져온 석조석가여래좌상과 금동관음보살입상, 금동약사여래입상을 비롯해 소장

전적, 금란가사 등이 있다. 금란가사 같은 경우는 철우선사가 그의 스승인 혜월선사에게 받은 것인데,

혜원은 그의 스승이자 당대 고승인 경허선사에게 받았다고 전한다.

경허는 1898년 봄 가야산 해인사에 머물던 중에 고종의 명으로 추진된 장경간행불사증명(藏經刊行佛

事證明)이 되었는데, 이때 황실 여인(후궁, 상궁, 궁녀 등)들이 경허선사에게 지어준 것으로 여겨진다.

 

2. 대웅전 밑 연화석조

등껍질을 지닌 돌거북이 연화석조에 두 손을 대며 석조에 들어있는 수분을 바라본다. 수분은 그의 입

에서 나온 것으로 석조에는 수분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수분의 수질이 의심스러워 물은 섭취하지 않

았다.

 

3. 대웅전 석가여래삼존상과 그 밑에 작게 자리한 금강산 출신 석조석가여래좌상

대웅전 불단에 앉아있는 우람한 체격의 석가여래상, 그가 금강산에서 넘어온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석

가여래상인줄 알았으나 그가 아니었다. 그들 밑으로 유리막에 감싸인 작은 금동불이 있으니 그가 나

를 이곳으로 부른 금강산 출신 석조석가여래좌상이다.

 

이 조그만 불상은 납석으로 만들어 도금을 입힌 것으로 몸체에 비해 머리가 크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는데 위쪽으로 갈수록 커지며, 목에는 1줄의 선이 있다. 양어깨를 감싼 옷

을 걸치고 있으며, 수인은 설법인(說法印)을 취했다.

이 불상은 철우가 금강산에 머물 때 금강산의 어느 절터에서 발견한 것으로 그와 금동불 2개를 더 챙

겨서 구미로 내려와 금강사에 봉안했다. 석가여래좌상의 뱃속에서는 고맙게도 조성 관련 문서가 나왔

는데, 1701년에 조성되어 금강산 법화원에 처음 봉안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조선 후기 불상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금지된 뫼로 꽁꽁 묶인 금강산에서 넘어온 귀한 불상이다.

예전에는 그가 대웅전 불단의 중심을 차지했으나 근래 우람한 덩치의 금동석가여래삼존상을 새로 장

만하여 그들을 중심에 세웠다.

 

4. 금강사7층석탑

하얀 피부를 지닌 잘생긴 석탑으로 2010년에 조성되었다.

 

5. 구미역과 경부선 철도를 향해 입을 연 금강사 일주문

금강사는 구미역 남쪽 광장 바로 서쪽(구미역에서 서남쪽)에 자리한다. 금오산과 이어진 낮은 언덕에

둥지를 틀고 있는데, 작은 언덕임에도 소나무 등 나무들이 무성해 그런데로 산사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대웅전 석조석가여래좌상은 친견했지만 나머지 2개의 금동보살, 금동불은 인연

이 닿지 않아 친견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다음에 또 오라는 금강사의 주문인가 보다. 하지만 구미역은

가끔씩 가는 곳이고 구미역 바로 옆에 있어서 언제든 재인연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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