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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양동 벽제관터
덕양구 고양동은 인구 100만을 지닌 고양시의 동북쪽 변두리 동네로 거의 읍내 같은 모습이다. (고양
군 시절에는 고양군 벽제읍의 중심지였음) 하지만 조선 후기까지 이곳은 고양 고을의 어엿한 중심지
로 관청과 향교, 객사, 벽제관을 지니고 있었으며, (지금은 향교만 남아있음) 서울에서 파주, 개성, 평
양, 의주, 요동으로 가는 길목으로 교통 수요가 상당했다.
벽제관은 1476년 11월에 세워진 것으로 조선과 명나라 주씨왕권, 청나라 만주족(여진족) 정권을 오
가는 사신들이 머물던 국립 객관이다. 명나라와 청나라 사신은 여기서 하룻밤 쉬고 다음날 정중히 예
를 갖추어 서울로 들어갔는데, 반대로 명과 청으로 파견되는 조선 사신들도 여기서 하루를 머물고 북
쪽에 해음령을 넘었다. 그 시절 서울에서 파주, 개성으로 가는 코스는 한양도성 서대문~무악재~구파
발~삼송동~대자동~고양동 벽제관~해음령~광탄~파주 고을(파주읍)~문산~임진강~장단~개성이었다.
원래 벽제관은 대자동 대자3거리에 있었으나 1625년 고양 고을의 중심지를 현재 고양동으로 이전하
면서 같이 이곳에 들어왔다.
왕년에는 삼문과 객관을 지니고 있었으며, 6.25 때 파괴되어 삼문만 겨우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삼
문도 1960년대에 결국 무너지면서 결국 황량한 옛터로 남게 되었다.
벽제관터에는 객관, 삼문터 등이 있으며,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유적 주위로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
보다 낮은 철책을 둘러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2. 주춧돌만 앙상하게 남은 삼문터
벽제관터는 잡초만 무성한 황량함 그 자체이다. 잡초들 사이로 건물을 받치던 주춧돌과 기단, 돌계단
등의 흔적이 아련히 남아있다.


3. 벽제관 객관터
푸르게 자란 잡초들이 황량한 벽제관터를 따스하게 덮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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