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사진 답사기

제주 한림읍 명월성 (명월성지) ①

도봉산고양이 2025. 4. 27. 05:00

 

1. 명월리 들녘에서 바라본 명월성 (명월성지)

한림읍 명월리의 북쪽 끝 들녘에는 현무암 피부를 지닌 명월성이 있다. 이곳은 평지에 조성된 성으

로 1510년 제주목사 장림이 명월포가 방어에 취약하다 여겨 지역 백성들을 동원해 나무로 다진 목

책에서 비롯되었다.

1592년 제주목사 이경록은 석성으로 업그레이드 시켰는데, 성의 규모는 둘레 1,360m, 높이4.2m

이며, 동문과 서문, 남문 등 3개의 성문을 두었다. 그리고 성내에는 진사 3칸, 객사 3칸, 사령방 2칸

, 공소 2칸, 공수 2칸, 무기고 4칸, 도청 4칸, 진고 4칸, 창대청 3칸, 중화청 2칸, 진졸청 3칸, 창고 4

동(2칸 규모) 등을 두었다.

또한 이곳에는 만호 1명, 치총 4명, 수솔군 82명, 성정군 330명, 유직군 99명, 진리 22명, 서기 30명,

봉수와 연대를 지키는 별장 54명, 봉군 132명이 배치되었으며, 성내에는 용천수가 풍부하게 솟은 샘

(개명물)이 있어서 물 걱정은 하지 않았다.

1764년에 어사 이수봉이 조정에 명월성을 지키는 조방장을 만호(종4품 무관)로 승격시켜줄 것을 건

의하여 이때부터 만호가 다스리는 곳이 되었다. 명월성 만호는 제주도 사람으로 하여금 삼망(관리를

발탁할 때 공정한 인사행정을 위해 3명의 후보자를 제왕에게 추천하는 것)의 단계를 거쳐 뽑도록 했

다.

왜정 때 대부분 파괴된 것을 20세기 중반 이후에 조금씩 복원 재현했다. 하여 지금은 남문(문루, 옹성

, 치)과 남문 주변 성곽 300m 정도만 있다.

(명월성은 '명월성지'라는 이름으로 제주도 지방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음)

 

2. 시커먼 현무암 피부를 지닌 명월성과 그 앞 들녘에 닦여진 같은 피부의 돌담

 

3. 명월성 남문

명월성에는 동/서/남 3개의 성문을 두어 성내와 속세를 이어주었다. 하지만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명월성 성곽과 성문이 거의 사라진 것을 근래 남문과 그 주변 성곽을 일으켜 세웠다. 제주도는 현무

암이 남아도는 곳이라 제주도에 닦여진 읍성, 성곽, 연대(봉수대)는 모두 현무암으로 다졌다.

 

4. 명월성로(한림읍~명월리~월림리)로 서로 끊어진 남문 동쪽 성곽

 

5. 명월성 남문 옹성(바깥쪽)과 남문 서쪽 성곽

 

6. 명월성 남문과 옹성

이곳 남문은 누각식 문루로 누각 아랫도리 가운데에 문을 내고, 좌우를 현무암으로 봉했다. 문 앞에는

옹성이 빙 둘러져 있는데, 이는 성문 수비를 극대화하고자 함이다. 성문 앞에 옹성을 두르는 것은 축

성술의 달인이던 고구려에서 비롯된 방식이다.

 

7. 누각 스타일의 명월성 남문

남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문루이다. 이런 식의 성문은 조선시대 읍성과 산성에서 많이

나타난다.

 

8. 남문 앞에서 바라본 성곽과 옹성 바깥 세상 (동쪽 방향)

 

9. 명월성 남문 안쪽 성곽 (동쪽 방향)

성곽 안쪽은 2중 계단식으로 닦여졌다.

 

10. 명월성 남문 안쪽 성곽 (서쪽 방향)

 

11. 명월성 남문 안쪽(북쪽) 들판과 현무암 돌담길

 

12. 명월성 서쪽 끝에서 바라본 명월성 (남문 주변)

현재 명월성은 남문을 중심으로 300m 남짓 복원 재현되어 있다. 명월성 왕년의 길이가 1,360m라고

하니 그때의 1/4 수준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구간도 장차 복원 재현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개인 사유

지와 경작지를 모두 접수해야 되는 크나큰 난제를 넘어서야 된다. 그게 정말 쉽지가 않지.

 

13. 남문에 올라가서 바라본 남문 동쪽 성곽

명월성 남문과 옹성, 좌우 성곽은 접근이 가능하다. 하지만 성곽 여장이나 난간 등, 안전시설이 없어

서 통행에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성곽길은 좌우가 높이 4m 내외의 벼랑이나 다름이 없다.

 

14. 남문에 올라가서 바라본 남문 서쪽 성곽과 그 너머로 보이는 한림읍내 서부 지역

 

15. 남문에서 바라본 동명리 들판과 한림읍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