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사진 답사기

태백 도심에 자리한 상큼한 연못 공원, 낙동강의 근원지로 유명한 태백 황지연못 (황지공원)

도봉산고양이 2025. 8. 15. 03:00

 

1. 태백 황지(황지연못)

잃어버린 땅을 제외한 이 땅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도시, 고원의 도시이자 무더운 여

름 제국도 슬슬 눈치를 보며 피해간다는 태백 도심 황지동에 황지란 유명한 연못이 있다.

황지는 상지와 중지, 하지 등 3개의 못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지에는 깊이가 아리송한 수굴이 있

고, 그 수굴에서 매일 5,000톤 정도의 수분이 꾸준히 나온다고 한다. 상지에서 나온 물은 중지, 하지

를 거쳐 황지천으로 나가며, 이 황지천이 봉화 땅에서 낙동강으로 간판을 바꾼다. 즉 황지는 낙동강

의 최상류 근원지이다.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 등 조선시대 문헌에도 황지가 낙동강의 근원임이

나오며, 20세기 중반 이후, 연못을 손질하고 못 주변에 공원을 만들어 황지공원으로 삼았다.

황지와 황지공원은 태백의 대표 명소의 일원이자 태백 도심의 상큼한 공간으로 꽤 바쁘게 살고 있는

데, 여름에는 한강 낙동강 발원지 축제, 가을에는 황지 전설의 주인공인 황부자 며느리 축제가 열린

다. 그리고 2017년에는 황지에서 황지천으로 넘어가는 물길을 복원 재현했다.

 

황지란 이름은 황씨의 연못을 뜻하는데, 이곳에는 재미난 전설이 한 토막 있으니 내용은 대략 이렇다.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에 태백 황지동에는 황씨 성을 가진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인품이

매우 인색했고 지역 사람들에게도 아주 까칠하게 굴었다고 하는데, 어느 날 노승이 그런 것도 몰랐는

지 찾아와 시주를 청했다. 이에 황씨는 그냥 보내기는 뭐했는지 거름을 노승 바가지에 듬뿍 담아주었

다.

마침 그 광경을 본 황씨의 며느리가 너무 미안하여 시아비 몰래 쌀을 담아 그에게 주면서 사과했다. 이

에 노승은 고마움을 표하면서 '이 집은 운이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계속 있으면 안됩니다. 그

러니 뒤를 돌아보지 말고 나를 따라 오시오' 그랬다.

며느리는 마침 어린 아들을 업고 있었는데, 노승의 말이 예사로운 뜻은 아닌 것 같아서 일단 따라 나섰

다. 어느 정도 가자 뒷통수 너머에서 벼락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이에 노승은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고 했으나 호기심과 집에 대한 걱정이 태백산만큼 커진 며느리는 그만 뒤를 돌

아보고 말았다.

그랬더니 황씨 집은 물에 잠겨 사라진 것이다. 그 광경을 본 며느리는 너무 놀라서 그대로 돌로 굳었

으니 그가 구사리(미인폭포 동쪽에 있는 동네)에 있는 돌미륵이라고 한다.

 

황지의 상지는 황씨 집의 마당이었고, 가운데 중지는 방앗간 자리, 하지는 변소 자리였다고 하며, 황

씨는 물난리에 죽지 않고 큰 이무기로 변신해 황지에 살았다고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다.

 

2. 푸른 물빛을 드러낸 황지 (황지 중지)

황지를 이루는 3개의 못은 수분 보호를 위해 접근이 통제되어 있다. 물빛이 너무 요염하여 한여름에

는 정말 풍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다행히 하지 남쪽 물줄기를 개방하여 발 담구기와 물 풍덩

이 가능하다.

 

3. 황지 상지와 중지 사이에 걸린 돌다리

 

4. 황지 상지

이곳이 황지의 중심이 되는 상지이다. 상지에는 깊이가 아리송한 수굴이 있는데, 그 수굴이 어렴풋이

보인다. 거기서 매일 5,000톤의 수분이 나오는데, 가뭄 때도 그 정도의 물이 나온다고 한다.

 

5. 황지 하지와 돌다리

하지 돌다리 너머의 물줄기가 속세에 개방되어 있다. 그래서 발담구기와 물 풍덩이 가능하다. (어린이

를 동반한 가족 나들이객들에게 아주 좋은 곳임)

 

6. 황지 전설의 주인공인 며느리상

황지 전설은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그 내용은 괜히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하여 대략 이런 사연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때 황지 지역에 황씨 성을 가진 부자나 세력가가 살고 있었는데, 지역 사람들에게 꽤 야박하게

굴어 인심이 완전 꽝이었다. 그런데 그 며느리는 심성이 좋아서 몰래 지역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그러

다가 황씨 집안이 무슨 이유에서 쫄딱 망했고, 지역 사람들은 황씨 집안에 대한 분풀이로 그의 집을 부

시고 연못을 팠을 것이다. (조선 때는 역적의 집이나 부정한 집을 때려부셔 연못을 파는 경우가 많았음)

며느리는 어린 자식을 데리고 부근 구사리로 넘어가 살았는데, 여전히 선행을 많이 베풀자 지역 사람들

이 그를 미륵이나 아주 선한 존재로 추앙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황씨 집을 부시고 만든 연못을

황씨 성을 따서 황지가 되었고, 그것이 장차 이곳의 지명이 되었다. 지금은 태백시 황지동으로 있지만

태백이 삼척 그늘에 있었을 때는 삼척군 황지읍이었다. (태백시는 삼척시 관할의 황지읍, 장성읍, 철암

읍이 통합되어 생겨남)

 

7. 북쪽에서 바라본 푸른 물감의 황지 상지와 그 너머로 보이는 돌다리

황지는 이번이 3~4번째 인연으로 사진에 담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물급 폰카로 대충 여러 장을

담았으나 잘 나온 것은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