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라산 존자암 종무소종무소는 정면 7칸, 측면 1칸의 길쭉한 맞배지붕 집이다. 종무소 뒤로 법당인 대웅전(대웅보전)이 있고, 그 뒤로 국성재가 있으며, 경내에서 가장 구석이자 하늘과 가까운 곳에 이곳의 보물로 현무암 피부를 지닌 늙은 세존사리탑이 있다. 2. 종무소 옆에 수습된 건물터 주춧돌존자암터에서는 5개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그 폐허 위에 종무소, 대웅전, 국성재를 세워 17세기 이후에 사라진 존자암을 다시 일으켜 세웠으며, 대웅전과 종무소 옆으로 옛 건물의 주춧돌이 수습되어 있다. 3. 존자암 대웅전(대웅보전)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이곳의 법당이다. 4. 잔디가 입혀진 대웅전 서쪽 공터 5. 한라산 존자암을 뒤로 하며 (종무소 앞 현무암 계단) 6. 한라산 존자암과 조..
1. 옛 존자암터 (존자암 경내)한라산 서쪽 자락이자 볼음오름 남쪽 산골 1,130~1,140m 고지에 숨겨진 존자암은 제주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절이다. 창건 시기와 절의 내력에 대해서는 한라산 산신도 물음표를 던질 정도로 전하는 것이 없으나 경내 뒷쪽에 늙은 부도탑이 있고, 조선 때 이곳과 관련된 여러 기록이 있어서 고려 때 창건되어 16~17세기에 망한 것으로 여겨진다.존자암 왕년 시절에는 나라의 지원을 받던 비보 사찰이기도 했으며(고려 때), 조선 떄는 제주도 3개 고을(제주목, 대정현, 정의현) 수령이 모여 국성재를 지내기도 했다. 17세기 이후 사라진 것을 1993년과 1994년에 발굴조사를 벌여 건물터 5곳과 배수시설, 청자 조각, 백자 조각, 분청사기 조각, 청동신중상 등을 건졌다...
1. 한라산 존자암 (존자암 종무소)한라산 서쪽 자락이자 볼래(불래)오름 남쪽 자락 1,130~1,140m 고지에 존자암이란 조그만 암자가 숨겨져 있다. 한라산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주 감쪽 같이 들어앉은 산중암자로 절의 이름인 '존자'는 석가여래의 열성제자인 16나한, 나반존자를 뜻한다고 한다. 이곳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한라산 산신도 모르는 실정이다. 다만 경내에 늙은 사리탑이 있고 절과 관련된 조선시대 기록이 다수 있어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하여 제주도 불교의 숨겨진 발원지로 추정하기도 한다. 1507년 홍유손이 작성한 '존자암개구유인문'에는 '제주에서 고씨, 양씨, 부씨 세 성이 처음 일어날 때 창건된 고찰이자 비보소(고려 때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던 국가 공인 사찰로 조정..
1. 한라산 영실매표소 주차장 (존자암입구)제주도의 대표 지붕이자 잃어버린 땅을 제외한 이 땅에서 가장 높은 뫼인 한라산, 그 높고 높은 한라산 서쪽 자락에 볼래오름(불래오름, 1,375m)이란 오름이 있고, 그 남쪽 자락 1,130~1,140m 고지에 나를 이곳으로 부른 존자암이란 조그만 산중암자가 숨겨져 있다.존자암의 '존자'는 16나한이나 나반존자(독성)를 일겉는데, 이곳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한라산 산신도 모르는 실정이나 적어도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존자암은 제주도에 가면 꼭 가보고 싶던 곳으로 오랜 세월 목말라했다가 어느 해 12월 끝 무렵에 비로소 인연을 지었다. 한라산에 개방된 코스(성판악, 관음사, 영실, 돈내코 등)들은 탐방 제한이 있으나 유독 존자암 코스는 비록 코스는 무지..
1. 사계리 들판에서 바라본 산방산의 위엄 산방산은 395m의 뫼로 그 유명한 산방굴사를 품고 있는 화산 출신의 바위 뫼이다. 사계리에서는 어 디서든 산방산이 장엄하게 바라보이는데, 저곳은 아직까지 미답처로 남아있다. 2. 사계리 들녘에서 바라본 단산(바굼미오름) 단산은 해발 158.1m의 낮은 뫼로 대정향교 뒷쪽에 자리한다. 화산 출신의 오름으로 산은 작지만 경 사가 다소 있고 벼랑이 많아서 오르기가 약간 힘들다고 한다. 3. 사계리 들녘길 (남쪽 방향) 4. 두툼한 모습의 산방산 산방산 서남쪽 사계리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산 자체가 거대한 요새처럼 단단하게 보이는데, 산 전체 가 국가 천연기념물의 지위를 누리고 있어서 산방산주차장~산방굴사 구간만 통행이 가능하다. 5. 사계항 대정읍 사계리에 자리한 ..
1. 대정향교 앞길(향교로) 단산(바굼지오름) 남쪽 자락에 자리한 대정향교는 제주도에 전하는 3개 향교의 일원이다. 향교는 조 선 조정에서 지방 고을에 세운 중등교육기관으로 제주도에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을 설치해 향교를 두었는데, 대정향교는 대정현(대정고을)의 교육을 담당했다. 1420년 대정성 북쪽에 지어진 이래, 여러 차례 자리를 옮겼다가 1653년 현재 위치에 안착했다.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남쪽에 자리해 있고, 그 북쪽에 내삼문을 두었으며, 그 문을 들어서면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나온다. 명륜당은 1835년에 중건된 것으로 초가지 밑의 조각이 특이하며, 장식이 간결하고 단청이 없어 강건 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2. 활짝 열린 대정향교 정문 예전에는 찾는 이가 거의 없었으나 2020년 이후 제..
1. 서쪽에서 바라본 단산(바굼지오름) 옛 대정고을의 남쪽이자 대정향교 뒷쪽에 자리한 단산은 해발 158.1m의 낮은 뫼이다. 지금은 평범 한 뒷동산으로 그렇게 누워있지만 원래는 무시무시한 화산 출신으로 제주도에는 왕년에 360개가 넘 는 크고 작은 화산들이 용암 놀이를 했다고 전한다. 바굼지오름의 예전 이름은 바구미로 바구미는 박쥐의 제주도 방언이다. 산이 박쥐처럼 생겨서 바구 미오름이라 불렸다가 바구니(바굼지의 방언), 바굼지로 이름이 변화했으며, 그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 이 단산이다. 여기서 '단'은 바구니를 뜻한다. 단산사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산은 비록 작지만 벼랑이 많고 경사가 각박해 오르기가 조금 힘들 다고 한다. (나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올라가지 않았음, 단산 왼쪽에 보이는 뫼는 ..
1. 대정읍성(대정성지) 내부 경작지 옛 대정고을의 중심지였던 대정읍성 내부에는 밭두렁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집들 사이로 펼쳐진 밭두렁에는 녹색 기운을 머금은 농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데, 대정고을 시절부터 성내에 경작지를 닦아 고을 식량을 충당했다. 2. 대정우물터 대정읍성 남문터 동북쪽에 자리한 대정우물터는 이곳 읍성의 유일한 우물이다. 두레박으로 물을 떠올 렸다고 해서 '두레물'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그것을 한자식으로 '거수정'이라 했다. 이 우물은 대정고을에 유력한 명관이 추대되면 물이 마른 상태임에도 물이 마구 솟아났다고 하며, 어 리석은 사람이 추대되면 물이 풍부함에도 금방 말라버렸다고 한다. 허나 지금은 상하수도 보급으로 인해 여기서 물을 충당하는 사람은 없는 실정이라 대정고을을 ..
1. 우학산인서실 1930년대 예산 추사고택의 별가로 여겨지는 집에 걸려있던 편액이다. (이곳 편액은 모조품) 2. 모거리 이곳 모거리는 추사 김정희가 기거하던 곳이다. 그는 위리안치(집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유배 형)의 형을 받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집에 꽁 박혀있어야 했는데, 그 시간 동안 여기서 학문과 예술에 몰두했다. 특히 그의 자랑인 추사체가 여기서 태어났는데, 추사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벼루 10개를 구 멍 내고 붓 1,000자루 이상을 닳아 없어지게 했다고 전한다. 3.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의 다담 모습 추사 김정희(1786~1856)와 초의 의순(1786~1866)은 동갑내기 벗이다. 그들은 1815년 처음 만났는 데, 이후 추사는 그에게 걸명시를 보냈고, 종종 글씨를 써서 보내기도..
1.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 (추사유배지) 대정읍성(대정성지) 동문 안쪽에는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 유적이 있다. 추사 김정희는 1840년 억울 한 누명을 쓰고 제주도로 강제 유배되어 1848년까지 머물렀는데, 유배 초기에는 포교 송계순의 집에 서 여러 해 신세를 지다가 추사의 열성 제자로 대정고을의 지주였던 강도순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강도순의 집이 바로 이곳이다. 추사는 이곳에서 지역 유생들과 백성들에게 학문과 서예, 유학을 가르쳐 제주도 지역 학문 발전에 크 게 이바지했으며, 차를 매우 좋아하여 다도로 유명한 초의선사와 평생 우정을 나눴다. (초의선사가 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찾아왔음) 하여 제주도에 차 문화를 도입한 선구자로 추앙을 받는다. 또한 이 곳에서 그 유명한 추사체를 완성시켰으며, 그의..
1. 서귀포 대정읍성(대정성지) 동문 주변 옛 대정고을의 중심지였던 인성리, 안성리, 보성리에는 대정고을 중심부를 포근히 품었던 대정읍성 이 전하고 있다. 조선 초기 제주도를 3개의 고을로 나눠 통치했는데, 제주시내 중심지에 제주목, 서귀포 서부에 대정 현, 서귀포 동부에 정의현을 두어 각각 목사와 현감, 현령을 파견했다. 대정읍성은 바로 대정현의 중 심부였다. 대정읍성은 1418년 대정현감 유신이 지역 백성을 보호하고 왜구 등의 공격에 대비하고자 쌓은 현무 암 성곽으로 성곽 둘레는 1.614m, 높이는 약 5.1m이다. 동문과 서문, 남문 등 3개의 성문을 지니고 있었으며, 문에는 문루를 달았고, 문 앞에는 제주도 스타일의 벅수(돌하르방)를 달아 영 좋지 못한 기 운을 경계했다. 고을 관아와 창고, 군..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