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담사 백담계곡 돌탑들 2. 설악산 백담사의 외경 3. 수렴동계곡 4. 백담사의 외경 5. 백담사 수심교 6. 백담사 만해교육관 7. 백담사 야광나무 8. 백담사 만해당 9. 백담사 화엄실(왼쪽)과 법화실(오른쪽) 10. 백담사 극락전 지장보살상과 지장탱 11. 백담사 극락보전 12. 백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13. 백담사3층석탑 14. 만해기념관에 전시된 영환지략 (전 10권) 15. 만해가 쓴 월남망국사 16.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유물의 하나인 황단삼회장 저고리 복제품 17. 백담사 잠수교 18. 백담계곡 건너에서 바라본 잠수교와 백담사 19. 백담계곡 돌탑의 장대한 물결 20. 돌탑과 자연석이 뒤섞인 계곡 돌밭과 얼어붙은 백담계곡 21. 수렴동계곡 하류 숲길 22. 얼어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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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수 충민사, 석천사 모형도 (충민사 유물전시관) 2. 충민사 숭모문 3. 충민사 외곽 공원 4. 연등동 벅수 모조품 5. 충민사 홍살문 6. 충민사 약수터 7. 충민사 정화사적비 8. 충민사 외삼문 9. 충민사 내삼문 10. 충민사 본전 11. 충민사에 봉안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 12. 충민사에 봉안된 의민공 이억기 영정 13. 충민사에 봉안된 충현공 안홍국 영정 14. 충민사 사적비 15. 옛 충민사의 주춧돌들 16. 충민사 옆 석천사 17. 석천사 석조관세음보살입상 18. 석천사 대웅전 19. 석천사 석조 20. 석천사 동백나무 21. 충민사 유물전시관 22. 충민사 유물전시관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기는 존재들 23. 왼쪽부터 계사일기(1593년), 갑오일기(1594년), 병신일기(15..
1. 화암사 미륵대불 금강산 화암사를 칭하는 화암사 북쪽 높은 곳에는 2014년 10월 25일에 조성된 거대한 미륵대불이 동 대해를 굽어보고 있다. (화암사 경내에서 3~4분 정도 올라가야 됨) 2011년 4월 5일에 통일의 염원을 담아 조성하기 시작하여 2014년 10월에 완성을 보았는데, 화암사의 새로운 명물로 여기서 바라보는 속초와 고성의 산하, 동해바다 조망이 천하일품이다. 2. 화암사 미륵대불에서 바라본 천하 고성군, 속초시의 산하와 동해바다가 훤히 두 망막에 들어온다. 3. 북쪽에서 바라본 미륵대불 파리도 능히 미끄러질 정도로 매끄러운 하얀 피부를 지닌 미륵대불 주변으로 조그만 석불이 깃든 석 벽이 둘러져 있으며, 대불 앞에는 예불 공간이 닦여져 있다. 4. 남쪽에서 바라본 미륵대불의 위엄 5..
1. 화암사 명부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한 저승(명부) 식구들의 공간이다. 2. 똥배가 매력적인 포대화상 사람들의 똥배는 별로지만 유독 포대화상의 똥배는 복을 부른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기가 대단하다. 그 의 축 쳐진 배때기를 문지르며 소망을 들이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뭐라나. 3. 화암사 삼성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산신과 칠성, 독성 등 삼성의 공간이다. 건물 내에는 특이하게 금강산 세존봉과 삼선대 등 금강산의 풍광이 담겨진 그림이 있고, 건물 바깥에는 신선봉과 신선계곡 등의 금강산 벽화가 그려져 있다. 나는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하여 놓치고 말았는데, 화암사에서는 금 강산의 12,000봉 80,009암자 중 남쪽에서 시작되는 첫 봉우리인 ..
1. 화암사 일주문 설악산 성인대 북쪽 자락이자 신선봉(1,212m) 동남쪽 자락 320m 고지에 화암사가 고즈넉하게 둥 지를 틀고 있다. 화암사는 바로 뒷산인 신선봉이나 설악산도 아닌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금강산 화암사'를 칭하고 있 는 것이 이채로운데, 여기서 금강산 중심부까지는 60km가 넘는다. 그에 반해 설악산 정상까지는 12 km 내외이다. 그럼에도 금강산을 가져온 것은 신선봉이 금강산 12,000봉의 최남단 봉우리라는 이유 때문이다. (신선봉을 옛날부터 금강산의 엄연한 일원으로 보고 있는지 아니면 화암사만의 희망사항 인지는 모르겠음, 굳이 영역을 따진다면 설악산 화암사가 적당해 보임) 이 절은 769년 진표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화엄사라 했다고 하는데, 그는 이곳 부근에 서 지..
1. 금강공원 소나무숲 2. 동래온천 온정개건비 3. 용각의 정문인 온정용문 4. 용각 5. 금강공원 정문 6. 지석영 선생 공덕비 7. 거북바위 8. 금강공원 소나무숲길 9. 독진대아문터 10. 동래금강원 표석 11. 금강공원 연못 12. 금강공원 둘레길 13. 소나무로 가득한 금강공원둘레길 14. 금강공원 북쪽 연못 15. 임진동래의총 외삼문 16. 임진동래의총 외삼문 안쪽에 줄지어 있는 비석들 (동래부사 선정비, 불망비 등) 17. 임진동래의총으로 인도하는 길 (왼쪽 기와집은 금정사) 18. 임진동래의총 내삼문 19. 임진동래의총 충혼각 20. 임진동래의총 21. 임진전망유해지총 비석 22. 금정사 보제루 23. 금정사 경내 (대웅전 주변) 24. 금정사5층석탑 25. 금정사 칠성각 26. 금정사 ..
1. 영평사 구절초동산 영평사는 경내를 비롯한 주변 야산 10만 평방미터에 구절초를 심어 절 전체를 구절초 세상으로 꾸몄 다. 구절초가 절정에 이르는 9월 말~10월 초에는 세종시의 대표 축제로 추앙을 받는 영평사 구절초 축제가 열리며, 이때가 영평사 풍경 중 단연 갑으로 꼽힌다. 2. 영평사 구절초동산에서 바라본 작은 천하 이곳은 구절초동산의 가장 윗쪽으로 경내에서도 조금 거리가 있다. 서쪽 산주름 너머로 세종시 중심 지가 약간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여기서 세종시 중심지까지는 매우 가깝다. 3. 산자락을 가득 메운 구절초의 하얀 물결 (영평사 구절초동산) 4. 구절초 사이를 거닐다 영평사가 구절초 세상이 된 것은 절 주지의 아이디어 때문이다. 그는 꽃을 매우 좋아했는데, 길거리에 핀 구절초에 격하게..
1. 삼성각에서 바라본 아미타대불의 장대한 뒷모습과 구절초축제로 분주한 영평사 경내 (대웅보전 뜨락) 2. 영평사 삼성각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산신과 칠성, 독성 등 삼성이 봉안되어 있다. 1994년 에 지어진 건물로 대웅보전 뒷쪽 산자락에 높이 자리해 있는데, 여기서는 대웅보전을 비롯한 경내 상 당수가 훤히 두 망막에 들어온다. 3. 제법 늙어보이는 견고한 돌덩어리 부도탑처럼 생긴 검은 피부의 돌덩어리가 경내 한쪽 구석에 자리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영평사 자리에는 조선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전하는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절의 유물처럼 보이나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4. 영평사의 자랑, 항아리(장독대)의 무리들 영평사는 절 한쪽에 항아리(장독대)의 공간을 넓게 닦았는..
1. 장군산 영평사 (경내 직전 계곡에 펼쳐진 구절초들) 세종시의 주요 지붕의 하나인 장군산(354.8m) 동쪽 자락에 영평사가 구절초의 향기를 은은히 풍기 며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에는 조선 중기에 창건된 절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으로 그 절에 대한 내력과 유물은 거진 사라진 상태라 장군산 산신도 그곳의 존재를 모르는 실정이다. 1987년 주지 환성이 영평사를 세워 지금에 이르는데, 공주 마곡사의 말사로 6동의 잘 지어진 전통 건 물과 3동의 토굴을 갖추고 있으며, 그런 이유로 전통사찰 제78호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영평사는 근래 지어진 현대 사찰이나 세종시의 주요 명소이자 비암사와 더불어 지역의 대표적인 절로 꼽힌다. 특히 경내와 그 주변으로 하얀 구절초를 가득 심어..
1. 치악산 산주름에 고적하게 깃들여진 보문사 치악산 주능선 중간에 솟은 향로봉(1041m) 서쪽 자락 660m 고지에 보문사가 포근히 깃들여져 있 다. 이곳은 신라 경순왕 시절에 무착이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이를 입증할 기록과 유물은 없는 실정 이며,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 적당한 사적도 전하지 않는다. 다만 경내에 고려 후기 것으로 보이는 청석탑이 전하고 있어 적어도 고려 중기 이후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중창했다고 하며, 그때 관세음보살을 봉안하고 신행결사도량으로 삼아 절 이름을 보문련사라 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이 국형사(아랫고문절)의 위쪽이라 ‘웃고문절’이 란 별칭도 지니고 있었다. 1930년에 강상준이 중건하고, 1971년 주지인 이백련화가 중창하여 지..
1. 겨울에 잠긴 치악산 보문사 국형사에서 고문골길을 따라 30~40분 정도 오르면 해발 660m 고지에 자리한 보문사가 모습을 비춘 다. 치악산 주능선 중간에 솟은 향로봉(1,041m) 서쪽 자락에 외롭게 깃들여진 보문사는 신라 경순왕 시절에 무착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아마도 무착이 국형사와 같이 지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기록과 유물은 없으며,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 적당한 사적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경내에 고려 후기 것으로 보이는 청석탑이 전하고 있어 적어도 고려 중기 이후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중창했다고 하며, 그때 관세음보살을 봉안하고 신행결사도량으로 삼아 절 이름을 보문련사라 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이 국형사(아랫고문절)의 위쪽이라 ‘웃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