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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한산 지역(한산읍성, 건지산성, 봉서사)


' 서천 한산면 겨울 나들이 '
건지산에서 바라본 천하
▲  건지산에서 바라본 천하 (한산, 부여 양화 지역)
 


천하 만물에게 온갖 희망고문을 주었던 새해가 묵은 해로 전락되면서 새로운 해가 다시금
꿈틀거린다. 이제 그 명줄이 얼마 남지 않은 묵은해의 마지막 답사지를 물색했는데, 올해
는 충남 지역 방문이 뜸했고, 충남의 서남쪽 끝을 잡고 있는 서천군(舒川郡) 지역은 아직
까지 변변한 인연 조차 없어서 그곳을 이번 메뉴로 정했다.

서천군에는 많은 명소가 있으나 그중 옛 볼거리가 많은 한산면(韓山面) 지역이 격하게 당
겼다. 한산은 한산이씨의 본거지로 목은 이색(牧隱 李穡) 묘역과 건지산성, 한산읍성, 봉
서사, 한산향교 등의 늙은 명소를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한산모시가 유명해 매년 6월 한
산모시축제가 열린다. 게다가 경작지도 많고 금강(錦江)이 곁에 흐르고 있어 풍요로운 곳
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아무리 연말이라고 해도 추위는 질색이라 겨울 제국(帝國)의 기운이 조금 느슨한 때를 이
용하여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영등포역에서 장항선 경유 익산(益山)으로 가는 새마을호
열차에 나를 담아 2시간 50분을 달려 서천역에 도착, 다시 한산으로 가는 서천군내버스를
타고 10여 분을 더 달려 한산면 중심지(지현리)에 자리한 한산터미널에 도착했다.


♠  건지산(乾芝山) 입문

▲  지현리3층석탑 - 충남 문화유산자료 128호

시외직행버스는 하나도 없고 군내버스(서천, 부여)만 바퀴를 멈춰 쉬고 있는 한산터미널에서
서 북쪽을 바라보면 산 하나가 크게 아른거릴 것이다. 그가 이번 메뉴인 건지산으로 그의 품
에는 건지산성과 봉서사, 한산향교 등이 깃들여져 있는데, 그중 건지산성과 봉서사를 미답처
(未踏處) 목록에서 흔쾌히 지우기로 했다.

건지산은 해발 170m의 낮은 뫼로 한산 지역의 오랜 지붕이자 진산(鎭山)이다. 한산 고을은 건
지산 품에서 시작되어 지금도 그 자리를 이어가고 있는데, 서쪽과 북쪽, 남쪽에 산지가 좀 있
는 것을 빼면 주변이 거의 평야이다. 게다가 금강도 가까이에 흘러 땅이 비옥하며 바다 또한
가까워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또한 금강 하류를 지키는 요충
지로도 크게 주목을 받아 한산읍성, 건지산성이 산자락에 조성되었다.

건지산 나들이는 산 바로 밑이자 접근성이 좋은 한산면행정복지센터(한산면사무소)에서 시작
했다. 사무소 건물 서쪽에 건지산으로 인도하는 산길이 있는데, 그 길을 오르자마자 전혀 생
각치도 못했던 늙은 존재가 내 발길을 붙잡는다.
건지산으로 향한 나의 시선을 잠시 훔쳐간 그는 지현리3층석탑이다. 시커먼 피부를 드러내며
고색의 향기를 내고 있는 이 탑은 바닥돌과 3층 탑신(塔身), 보주(寶珠) 등의 머리 장식으로
이루어진 205cm의 키 작은 탑이다. 모양새를 봐서는 탑신을 받치는 기단(基壇)이 있었을 것으
로 보이며, 탑신도 원래 5층으로 여겨진다. 허나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기단은 사라지고 탑
도 3층으로 낮아져 마치 만들다가 만 모습 같다.
허나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다고 1층 탑신 남쪽 면에는 아주 고맙게도 8행 66자의 명문(銘
文)이 새겨져 있어 그의 탄생시기와 조성 이유를 알려주고 있다. 고려 초인 991년에 한산 지
역 세력들이 나라의 수호를 담아 세웠다고 쓰여있으며, 오랫동안 한산 지역 관아에 머물러있
다가 현 자리에 안착했다.

* 지현리3층석탑 소재지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산2-1


▲  한산읍성(韓山邑城) - 충남 문화유산자료 134호

지현리3층석탑에서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북쪽)으로 확 트인 공간이 나오면서 토성(土城)처럼
생긴 잘빠진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옛 한산 고을을 지켰던 한산읍성이다.
한산읍성은 지현리 마을 남쪽에 조금 남아있는 줄 알고 애당초 신경을 껐으나 그 읍성이 여기
까지 손을 뻗치고 있었다. 하여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지현리3층석탑과 더불어 2개의 늙은 존
재를 보너스로 보게 되어 여로(旅路)가 1.5배 이상 풍족해졌다.

이 읍성은 지현리 마을을 둘러싼 읍성으로 조선 문종(文宗) 시절에 고을 수비를 위해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초기 규모는 둘레 4,070척(약 1,233m), 높이 11척(3m) 정도로 나중에 둘레
1,820m, 높이 1.5~2m로 둘레를 크게 늘리고 높이는 조금 깎았다. 성곽(城郭)에서 약 8m 앞쪽
에 폭 2m 정도의 해자(垓子)가 있었으며, 건지산 자락인 서쪽과 북쪽 성곽은 돌로 쌓았고, 남
쪽 성곽은 흙으로, 동쪽 성곽은 흙과 돌을 섞어서 만들었다. 성 안에는 도랑 1개, 우물 4개가
있었으며, 서쪽 성곽이 동쪽 성곽보다 길다.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으로 성곽이 많이 망가지긴 했으나 남쪽 성곽 일부를 제외하면 그런
데로 남아있으며, 건지산 자락 성곽은 돌은 다 벗겨지고 흙으로 다진 속살만 남아 세월의 무
상함을 보여준다. 그마저 대자연이 씌워놓은 온갖 나무들로 알아보기 힘든 것을 읍성 복원을
위해 성곽 주변을 싹 이발시켜 다시금 햇살을 보게 하였다.


▲  윤곽만 남은 한산읍성과 그 너머로 보이는 청명한 겨울 하늘

▲  건지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숲길 ①
늦가을의 향연을 신나게 펼친 나무들은 겨울 제국의 눈치를 보며 잔뜩 웅크리고
있고, 나무에게 버림받은 나뭇잎은 낙엽이란 우울한 이름이 되어 귀를 접고
누워있다. 그 길을 걷는 인간들도 올해가 다 저물었다는 충격과 나이가
1살 누적된다는 공포에 덩달아 우울해진다.

▲  건지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숲길 ②

▲  건지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숲길 ③

▲  건지산 정상에 자리한 지산정(止山亭)

한산면사무소에서 넉넉잡아 15분 정도 오르면 건지산 정상에 이른다. 산길은 거의 느긋한 수
준으로 정상 전에서 잠깐 흥분을 보일 뿐, 두 다리만 멀쩡하면 누구든 오를 수 있다.

한산면의 지붕인 건지산 정상(170m)에는 6각형 정자인 지산정이 자리해 천하를 굽어본다. 그
는 1990년에 마련된 것으로 그 이름은 건지산에서 비롯되었다. <지산정의 지(止)와 건지산의
지(芝) 한자가 서로 틀리나 근래 건지산의 '지' 한자가 바뀌었음>
서쪽과 남쪽, 북쪽은 산지라 보이는 것은 별로 없으나 대신 동쪽과 동남쪽은 변변한 뫼가 없
는 평야지대라 한산면 지역을 비롯해 화양면과 부여 양화면, 그리고 금강 너머로 전북 익산
, 군산 지역까지 훤히 시야에 들어온다.

▲  지산정 상량문(上樑文)

▲  건지산 정상 느티나무
1970년 10월에 식재된 것으로 이제
50여 년 숙성되었다.


▲  건지정에서 바라본 천하
산 밑에 집들이 무성한 곳은 한산면의 중심지인 지현리이다.
(저 멀리 보이는 산야는 전북 익산 지역)

▲  건지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①
지현리를 비롯한 한산면 일대와 부여 양화면 남부, 익산 웅포면 지역

▲  건지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②
한산면 북부 지역과 부여 양화면, 금강, 익산 웅포면 지역

▲  건지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③
건지산의 남쪽 산줄기 너머로 금강과 익산(웅포면), 군산(나포면) 지역이
시야에 들어온다.

▲  건지산 정상 북쪽 능선길

▲  건지산 북쪽 능선에서 바라본 한산면 북부 지역과 마산면

▲  건지산 북쪽 능선에서 바라본 한산면 들판과 금강,
그리고 익산 웅포면 지역


♠  건지산성(사적 60호)과 봉서사

▲  건지산성 내성(內城)의 흔적

건지산에는 건지산성(乾芝山城)이란 늙은 산성이 씌워져 있다. 정상 주변에 내성터가 있다고
하여 침침한 눈을 긴장시키며 살펴봤으나 수풀과 흙 속에서 숨바꼭질을 벌이고 있어 쉽게 찾
지는 못했고 정상 북쪽 봉우리(해발 130m)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내성터 윤곽이 나타났다.

건지산성은 정상 부근을 에워싼 내성과 그 서북쪽 경사면에 닦여진 외성(外城) 2중 구조로 되
어있다. 내성은 봉우리를 머금은 테뫼식으로 긴 타원형의 평면 형태를 띄며 흙으로 다졌는데,
규모는 길이 150m, 너비 30m, 둘레 350m 정도로 테뫼식 산성 중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다.
외성은 계곡을 중심으로 2개의 봉우리를 포함한 말안장 형태로 흙 일부를 깎아서 위에 성을
다지는 방식으로 닦여졌다. 동쪽 성벽은 거의 완만한 지형으로 돌과 흙을 섞어서 다졌으며,
둘레는 약 1,300m 정도이다. 성 바깥과 안쪽에 해자가 조성되었으며, 동문터와 서문터, 수구
(水口)터 등이 확인되었고, 성 안에서는 건물터 5개와 조선시대 군창(軍倉)터가 나왔다.

또한 산성 서남쪽 낮은 봉우리에 2개의 조그만 성이 있는데, 이는 건지산성에 딸린 일종의 보
루(堡壘)로 여겨진다. 이런 구조는 백제식 산성에서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또한 봉서사 서쪽
에는 건물터로 보이는 계단 모양의 평지가 있는데 거기서 불탄 쌀과 백제 토기 조각이 나왔다.
하여 이를 근거로 백제 후기 성으로 의심하기도 했으며, 고약한 왜정(倭政)은 이곳을 주류성(
周留城)으로 지들 멋대로 비정하기도 했다. (이곳은 절대로 '주류성'이 아님)
허나 신라 후기나 고려 때 조성되었다는 의견도 크게 나오고 있으며, 해양대국 백제(百濟)의
중심지가 현재 남한 땅이 아닌 산동반도를 비롯한 중원대륙으로 보는 견해도 크게 설득을 얻
고 있다. <대조영(大祚榮)이 세운 발해(원래 이름은 고려)와 신라가 백제 땅을 나눠 가졌다는
기록이 있음> 하여 요즘에는 대놓고 백제 후기 산성이라 하지 않고 애매하게 삼국시대 유적으
로 비껴 설명하고 있다.

산성 북쪽은 험준한 암벽을 활용해 성벽으로 삼았으며, 나머지는 흙으로 쌓았으나 장대한 세
월의 거친 흐름으로 많이 씻겨내려가 정상 북쪽 봉우리와 산 북서쪽에서 산성 흔적이 남아있
다. 그리고 1999년 발굴조사를 통해 테뫼식 산성이 먼저 축성되고 외성(포곡식 산성)이 고려
때 조성된 것으로 밝혀져 고려시대 한산군의 읍성(邑城)으로 여겨지고 있다.


▲  솔내음이 그윽한 건지산 정상 서북쪽 숲길

▲  건지산성 외성터 ①

건지산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내려가면 토성처럼 생긴 두툼한 언덕길이 나온다. 그 길은 외성
터로 서문터까지 이어지는데, 길 좌우로는 누렇게 뜬 잡초가 무성해 황량하기 그지 없으며,
그 주위로 소나무가 짙게 우거져 솔내음을 진하게 선사한다.

건지산은 동쪽과 서쪽이 평야지대로 멀리 금강이 바라보이며, 서해바다와도 가까워 조망이 좋
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 산성을 쌓아 금강 하류를 지키는 방어기지로 삼은 것으로 여겨진다.
충분히 그럴만한 요충지이다.

* 건지산성 소재지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산3 등


▲  건지산성 외성터 ②

▲  건지산성 외성터 ③

▲  건지산성 외성터 ④

▲  건지산성 외성 서문터
야트막한 고갯길 좌우로 외성의 흔적들이 살짝 남아있다.

▲  건지산성 외성 서문터 안쪽

▲  봉서사(鳳棲寺) 입구

서문터에서 동쪽으로 가면 봉서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건지산 북쪽 자락에 둥지를 튼 봉서사
는 조계종(曹溪宗) 소속으로 공주 마곡사(麻谷寺)의 말사(末寺)인데, 창건 시기는 건지산 산
신도 모르는 실정이나 1799년에 간행된 범우고(梵宇攷)에 '봉서암'이 나와있어 적어도 17~18
세기에 법등(法燈)을 켠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기산면 영모리에 있던 영모암(永慕庵)을 1682년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기록도 있으나 영
모암과 봉서사가 나란히 언급된 문헌들이 존재해 서로 같은 절은 아닌 것 같다.

절의 이름은 봉황이 사는 곳이란 아름다운 의미로 대한제국 시절에 한산 출신인 월남 이상재(
月南 李商在)가 여기서 공부를 했으며, 석북 신광수(申光洙), 석초 신응식(申應植)도 여기서
공부를 했을 정도로 지역 공부방으로 유명했다.

조촐한 경내에는 법당(法堂)인 극락전을 비롯해 삼성각, 심검당, 요사채 등 5~6동 정도의 건
물이 있으며, 국가 보물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을 간직하고 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바로 그를 보고자 함이다.

▲  선방(禪房)으로 쓰이는 심검당(尋劍堂)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이다.

▲  봉서사 샘터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온다.


▲  봉서사 극락전(極樂殿)
봉서사의 중심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이다. 저 안에 이곳의
유일한 보물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들어있으니 꼭 살펴보도록 하자.

▲  봉서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 보물 1751호

극락전에 깃든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중심으로 하여 그 좌우로 관
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협시하고 있다. 이들 뱃속에서는 아주 고
맙게도 그들의 정보를 머금은 발원문(發願文)이 나왔는데, 이 문서를 통해 1619년에 수연(守
衍)이 만든 것임이 밝혀졌다. 또한 조성 주체와 시주자 관련 정보도 들어있어 이들의 탄생 이
야기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수연은 17세기 초~중기에 활동했던 조각승으로 1615년 김제 금산사(金山寺)의 독성상을 만들
었고, 1622년에는 서울 지장암에 전하는 목조비로자나불상을 만들었다. 이후 강화 전등사(傳
燈寺) 대웅전의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예산 수덕사(修德寺) 석가여래삼불좌상 등을 다른 조
각승과 함께 만들었다. 봉서사 삼존좌상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초창기 것으로 그의 조각적 경
향을 파악할 수 있다.
이들 삼존불은 다른 불상/보살상에 비해 얼굴이 비대할 정도로 크고 덩치가 큰 편인데, 그것
이 바로 수연의 조각 스타일로 턱이 짧은 큰바위급 얼굴, 두툼한 코와 쩍벌어진 어깨, 넓은
가슴, 긴 허리, 강직한 선 위주로 표현된 도식화(圖式化)된 주름과 왼쪽 어깨와 무릎 밑에 펼
쳐진 독특한 형태의 주름 표현 등을 보이고 있다.

17세기 전반기 수연의 대표 불상이자 조성 관련 기록을 머금은 발원문 발견으로 크게 평가되
어 국가 보물의 지위를 받았다.


▲  온갖 호법신들로 정신이 없는 법당 지킴이, 극락전 신중탱

▲  삼성각(三聖閣)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산신(山神)과 칠성(七星, 치성광여래),
독성(獨聖, 나반존자)의 공간이다.

▲  봉서사 느티나무 - 서천군 보호수 2015-1호

샘터 앞쪽에는 늙은 느티나무 2그루가 하늘 높이 자라나 경내에 경내를 드리우고 있다. 이들
은 500년 이상 묵은 것들로 높이 20m, 나무 둘레는 3m에 이르는데, 봉서사가 17~18세기 정도
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지므로 그 이전부터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이곳에 절은 세운 것은 아
마도 저들의 그늘맛이 달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몰까지는 아직 말미가 있어 건지산 남쪽 자락에 있는 한산향교나 북서쪽에 있는 목은 이색
묘역까지 가볼까 했으나 날씨도 쌀쌀하고 건지산에서 많은 것을 봤더니 머리까지 아파서 여기
서 쿨하게 마무리를 짓고 한산면 중심지(지현리)로 나왔다.

이렇게 하여 서천 연말 나들이는 마무리를 고한다.

* 봉서사 소재지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호암리 산4-2 (건지산길 122, ☎ 041-951-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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