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한산성 제3남옹성~동문 구간제3남옹성을 지난 남한산성 성곽은 동문까지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일부 구간은 각박한 경사를 보여 은근히 숨을 헐떡이게 하고 도가니까지 아프게 하는데, 다행히 그 구간은 그리 길지 않다. 2. 제3남옹성으로 이어지는 암문 3. 군포터군포는 성을 지키는 초소이다. 남한산성에는 무려 125개의 군포가 설치되어 산성을 꼼꼼하게 지켰는데, 지금은 아쉽게도 모두 터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산성에 설치된 군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기와집으로 집 3면은 토석벽으로 두르고 앞쪽만 활짝 개방시킨 형태이다. 4. 각박한 경사 밑으로 보이는 남한산성 동문 5. 동문(좌익문) 남쪽에 있는 동암문(제11암문)동암문은 남한산성에 설치된 16개 암문의 일원이다. 암문이란 비상용 문으로 보통..
1. 남한산성 제2남옹성~제3남옹성 구간남한산성 남쪽 구간은 남문에서 제1남옹성, 제2남옹성, 제3남옹성을 거쳐 동문으로 이어진다. 남문에서 제1남옹성과 제3남옹성 이후에서 동문 구간은 경사의 패기가 좀 있으나 일단 그곳을 오르면 완만한 성곽길이 오르락 내리락 이어진다. 남한산성이 유명 관광지로 찾는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으나 남쪽 구간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늘 한산한 모습을 보인다. 2. 군포터군포는 성을 지키는 초소 건물이다. 남한산성에는 125개의 군포가 설치되어 산성을 꼼꼼히 지켰는데, 그 많은 군포는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모두 사라지고 다들 터만 남은 실정이다.이곳 군포는 약간 높고 평탄한 대지에 닦여진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기와집이었다. 집 벽은 토석벽으로 닦았으며,..
1. 제1남옹성과 제2남옹성 사이에 자리한 성문 (성문 안쪽)이 성문은 남한산성에서 검단산으로 이어지는 임도 통행을 위해 근래 닦여진 것이다. 산성 안쪽은 이렇게 터널 모습이고, 산성 바깥은 홍예문처럼 해놓았는데, 기존 성곽과 너무 이질적인 모습을 보인다. 2. 검단산으로 이어지는 임도와 그 임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한산성(제1남옹성~제2남옹성 구간) 3. 어색한 홍예문 모습을 보이는 제1남옹성과 제2남옹성 사이 성문 (성문 바깥쪽) 4. 동쪽으로 달려가는 남한산성 남쪽 성곽남한산성은 수도권 유명 관광지이자 답사 및 등산 명소로 무지하게 바쁘게 산다. 하지만 남문~서문~북문, 수어장대 주변, 동문 주변, 산성로터리, 남한산성로에만 사람들이 크게 몰릴 뿐, 그 외에는 한산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이번에..
1. 남한산성에서 검단산(536.4m)을 이어주는 임도남한산성 남문 안쪽에서 검단산을 이어주는 임도이다. 성남 약사사에서 동쪽 산길을 10여 분 오르면 이 임도와 만나는데,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검단산과 남한산성에 딸린 신남성으로 이어지고, 북쪽으로 가면 남한산성 중심부와 제1남옹성으로 빠진다. 나는 여기서 제1남옹성 방향 북쪽 길을 택했다. 2. 남한산성 제1남옹성남한산성 남쪽 성곽(남문~제1/2/3남옹성~동문 구간)에는 3개의 옹성이 닦여져 있다. 옹성은 성문이나 성곽 앞에 둘러진 성곽으로 성문과 성곽 수비력 증대를 위해 설치하는데, 이곳 제1남옹성(제1옹성)은 기존 성곽에서 남쪽으로 160m까지 길게 옹성을 쌓았다. 이 옹성은 1638년에 조성된 것으로 옹성 내부에 장대가 설치되어 남한산성 정상부인..
1. 성보전 바깥에 보관된 기와조각들성보전은 약사사의 보물 창고로 이곳에서 소유하고 있는 문화유산과 오래된 서적, 여러 불상과 보살상, 탱화, 절을 꾸리는데 공헌을 한 승려와 신도의 사진들, 사회에서 받은 여러 상장을 머금고 있다. 절을 세운 석인왕 대종사를 비롯해 절 승려와 신도들이 수집하거나 기증한 것들로 1999년 대웅보전 신축 공사 때 발견된 옛절에 기와조각와 도기, 자기 파편도 있다.약사사 자리에는 이름이 전하지 않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의 흔적으로는 깨진 기와조각와 도기와 자기 파편, 석탑 등이 있으며, 석탑은 발견된 부재를 적당히 이어붙여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 탑은 경내에서 만덕3층석탑이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2. 유리막에 들어있는 옛 절터의 도기, 자기 파편과 여기저기서 수집한..
1. 약사사 적멸보궁 앞 3층석탑남한산 약사사는 남한산 남쪽 자락 270m 고지에 둥지를 튼 현대사찰이다. 남한산 자락이지만 절에서는 남한산 약사사라 하지 않고 '만덕산 약사사'를 칭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이름이 전하지 않는 옛 절터가 있었다.1967년 3월 여래종 승려인 석인왕 대종사가 이곳을 접수해 절을 세워 한흥사라 했는데, 한흥사는 남한산성에 있던 절의 하나로 20세기 이후에 사라졌다. 하여 그 한흥사를 재건한다는 명분으로 그 이름을 가져온 것이다. 그러다가 1968년 약사여래입불상을 봉안하면서 절 이름을 약사사로 갈았다. 1999년 대웅보전을 새로 지었으며, 한국불교 여래종의 본산으로 여래종 종정이 머물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보전과 범종각, 성모전, 적멸보궁, 약왕전 등 10동 정도의 건물을 지..
1. 남한산 약사사를 찾아서 (약사사로 인도하는 숲길)남한산 남쪽 자락 성남시 구역에는 백련사와 덕운사, 약사사 등 3개의 현대사찰이 있다. 백련사는 양지동 남한산성입구에서 남한산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해 있어서 여러 번 인연이 있으나 덕운사와 약사사는 딱히 갈 기회도, 갈 구실도 없어서 계속 미답처로 버려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약사사에 깃든 지장시왕도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크게 구미가 당겨 그곳을 찾아나섰다. 8호선 남한산성입구역 2번 출구 밖 남한산성입구역 정류장에서 은행동, 양지동으로 가는 서울452, 성남33-1, 성남51, 성남240, 하남30, 성남55, 성남720-1A번 등을 타고 남한산성입구 정류장에서 내려서 20분 정도 올라가야 되는데, 절까지 차량이 마음놓고 바..
1. 신빈김씨묘역 홍살문화성시청 남쪽 산자락에는 세종의 후궁인 신빈김씨의 묘역이 있다. 남양 읍내와 화성시청에서 팔탄으로 넘어가는 시청로 동쪽 언덕에 자리해 있어 찾기는 무지 쉬운데, 묘역 앞에 붉은 피부의 홍살문이 있어 신빈김씨의 묘역을 알려준다. 신빈김씨는 청풍김씨 집안인 첨지중추원사 김원의 딸이다. 일찌감치 궁녀의 길을 걸어서 처음에 내자시에서 일했으며, 13살에 궁궐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세종의 눈에 흔쾌히 들어 후궁이 되었으며, 1427년 계양군을 생산했다. 이후 세종과의 사이에서 무려 6남 2녀를 두면서 세종의 후궁 중 가장 많은 자녀를 생산했다. 하지만 후궁 소생의 한계와 소헌왕후(세종의 왕후) 심씨 소생의 왕자들이 많아서 그의 아들과 딸은 그 시절 흔한 조선 왕족의 일원으로 평범하게 살았다..
1. 남양성모성지대성당(남양성모마리아대성당)남양성모성지 남쪽 언덕에 장대하게 자리한 대성당은 2017년에 짓기 시작해 2023년에 완성을 본 이곳의 야심작이자 상징 같은 건물이다. 마리아보타가 설계한 것을 바탕으로 조성된 것으로 건물 상당수가 주황색 피부를 지니고 있는데, 미사와 예배, 여러 행사들이 여기서 열린다. 2. 동쪽에서 바라본 남양성모성지대성당의 위엄 3. 산듯한 모습의 남양성모성지대성당 앞 산책로 (북쪽 방향) 4. 바로 앞에서 바라본 남양성모성지대성당 5. 남양성모성지 동쪽 숲에서 바라본 대성당과 자연에 묻힌 남양성모성지 6. 남양성모성지 동쪽 숲길남양성모성지는 숲이 매우 삼삼하고 숲길이 매우 고와서 남양읍 지역의 소중한 공원 역할을 한다. 게다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어 천주교 신..
1. 2006년에 세워진 자비로운 예수상왼손으로 주름진 무언가를 잡고 오른손으로 무슨 표시를 보이고 있는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2. 자비로운 예수상 주변 3. 자비로운 예수상 주변 숲길남양성모성지는 숲이 무성하고 숲길 또한 달달하여 굳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거닐만한 곳이다. 이곳은 숲길이 거의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4. 성모마리아상 주변 5. 하얀 피부의 성모마리아상 6. 강제 낙태된 태아들의 묘탑과 그들을 기리는 공간 7. 저 멀리 바라보이는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8. 성모마리아상과 그의 밑도리를 껴앉은 애기상 9.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된 예수상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가 반듯하게 서있지 않고 넘어져 있다.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모르겠음. 10. 남양성모성지대성당(남..
1. 화성 남양성모성지로 들어서다화성시청이 있는 남양읍내 서쪽 부분에 남양성모성지가 넓게 둥지를 틀고 있다. 남양읍은 화성시 서부 지역의 중심지로 조선 후기까지 수원 고을을 능가하는 남양부(남양도호부)의 중심지로 바쁘게 살았는데, 세상이 여러 번 엎어지면서 이제는 화성시 그늘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화성시청을 지니고 있는 읍치고는 규모가 큰 읍으로 화성시 승격 초기에는 '동'을 썼지만(화성시 남양동) 지역 주민들의 민원으로 '화성시 남양읍 ~~리'로 바뀌었다. 남양은 19세기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던 곳으로 특히 1866년 병인박해 때 많이 처단되었다. 보통 그때 잡힌 신자 중 양반들은 서울이나 공주로 넘겨 거기서 처리했지만 평민층은 주로 남양으로 보내 남양부사의 재량에 맡겼다. 남양부사는 모진 매질..
' 남한산성 봄맞이 나들이 ' ▲ 남한산성 ▲ 수어장대 ▲ 남한산성 남문(지화문) 차디찬 겨울이 저물고 봄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던 3월의 끝 무렵, 그 이름도 유명한 남한산성을 찾았다.점심 쯤 도봉동(道峰洞) 집을 나서 지하철로 거의 1시간 반을 이동, 갈아타기도 무려 3번씩이나 하여 남한산성에서 가까운 산성역에서 비로소 어두컴컴한 땅굴에서 벗어났다.산성역(8호선)은 남한산성을 품은 청량산의 서남쪽 끝자락 100m 고지에 자리해 있어 깊이가 제법 된다. 그러다 보니 역을 빠져나오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밖으로 나와서 광주시내버스9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