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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남옹성과 제2남옹성 사이에 자리한 성문 (성문 안쪽)
이 성문은 남한산성에서 검단산으로 이어지는 임도 통행을 위해 근래 닦여진 것이다. 산성 안쪽은 이
렇게 터널 모습이고, 산성 바깥은 홍예문처럼 해놓았는데, 기존 성곽과 너무 이질적인 모습을 보인다.
2. 검단산으로 이어지는 임도와 그 임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한산성(제1남옹성~제2남옹성 구간)
3. 어색한 홍예문 모습을 보이는 제1남옹성과 제2남옹성 사이 성문 (성문 바깥쪽)
4. 동쪽으로 달려가는 남한산성 남쪽 성곽
남한산성은 수도권 유명 관광지이자 답사 및 등산 명소로 무지하게 바쁘게 산다. 하지만 남문~서문~
북문, 수어장대 주변, 동문 주변, 산성로터리, 남한산성로에만 사람들이 크게 몰릴 뿐, 그 외에는 한산
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이번에 인연을 지은 남한산성 남쪽 성곽(남문~제1남옹성~제2남옹성~제3남
옹성~동문) 구간은 꽤 한적하여 인지도가 낮은 다른 산성에 올라선 기분이다.
5. 남장대터
재2남옹성 입구에 자리한 남장대는 남한산성에 설치된 5개 장대의 하나이다. 남쪽에 있어서 남장대
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는데, 남한산성에 주둔하던 수어청의 5개 영 중 전영장을 지휘하던 곳이다.
1788년 광주부윤 이태영이 수어장대와 이곳을 2층 규모로 증축하고 '타운루'란 편액을 걸었으며, 19
세기 후반 이후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에 죄다 떠내려가고 남장대를 받치던 주춧돌만 아련히 남아
인생무상을 느끼게 한다.
6. 옹기종기 모인 남장대의 키 작은 주춧돌들 (남장대터)
7. 남장대터 남쪽 제2남옹성치(치성)
치(치성, 성치)는 성곽 방어력을 높이고자 성곽 앞에 돌출시킨 부분으로 고구려(고구리)가 개발한 축
성방식이다. 고구려는 축성술의 달인으로 그들의 축성술은 백제와 신라, 고려, 발해, 금, 조선은 물론
중원대륙 잡국들과 북방민족 나라에도 절찬리에 전파되었다.
남한산성에는 5개의 치(치성)를 두었는데, 이중 남한산성 본성에 4개, 봉암성에 1개가 있다. 제2남옹
성치는 남장대 바로 앞에 지어졌는데, 남한산성은 대체로 성곽이 크게 굴곡지고 경사가 있는 곳에 닦
여져서 치가 그리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남쪽 성곽(남문~제1,2,3남옹성~동문)은 굴곡이 별로 없고
경사가 완만한 곳이 많아서 치를 닦아 방어력 증대를 꾀했다.
8. 남한산성 제2남옹성
제2남옹성치에서 바로 성곽 여장 너머로 제2남옹성이 넓게 자리한다. 옹성은 성문과 성곽 보호를 위
해 그들 앞에 둘러진 성곽으로 남한산성의 옹성은 성 밖으로 길게 옹성을 빼고 접근하는 적을 효과적
으로 공격하게끔, 성벽에 덧대어 닦여진 것이 특징이다. 이것이 남한산성 스타일의 옹성이다.
남한산성에는 5개의 옹성이 있는데, 그중 3개가 남한산성 남쪽 성곽에 있다. 남쪽 성곽이 다른 구간
에 비해 경사가 완만해 방어가 조금 취약하기 때문이다. 하여 그 단점을 보완하고 검단산에 닦여진
신남성이 적에게 넘어가는 경우 거기서 들어오는 적의 공격을 막고자 설치되었다.
이 옹성의 둘레는 318m로 남한산성에 닦여진 옹성 중 가장 규모가 크며, 다른 옹성과 달리 2중으로
되어있다. 옹성 끝에는 포대가 있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는 홍예문이 있으며, 포대는 동/서/남 3방향
으로 설치되어 있다. 본성(제2남옹성치, 남장대)과 연결되는 부분에는 암문을 설치해 서로를 이어주
는데, 만약 이곳 옹성이 적에게 넘어가면 암문을 막고 제2남옹성치에서 맹렬히 공격을 가할 수 있다.
9. 남쪽을 향해 크게 팔을 뻗은 제2남옹성과 그 너머로 바라보이는 검단산의 산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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