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석축 위에 자리한 청곡사 나한전 (업경전에서 바라본 모습) 나한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석가여래와 그의 열성제자인 16나한의 공간이다. 조 선 중기 승려로 많은 이적을 남긴 진묵이 이곳 석가여래상을 조성했으며, 이곳에 불을 밝히고 기도를 하면 한가지 소원이 꼭 이루어진다고 하여 기도 수요가 많다. 2. 업경전에서 바라본 칠성각 (오른쪽 건물이 나한전) 칠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조그만 맞배지붕 집으로 가운데는 칠성의 공간인 칠성각, 동쪽은 독 성(나반존자)의 공간인 독성각, 그리고 서쪽은 도선국사와 진감 혜소국사, 상총국사, 일타선사 진영 이 들어있는 진영각으로 쓰인다. 즉 한 지붕 세 가족 형태의 건물이다. 3. 업경전에 봉안된 목조지장보살삼존상 업경전은 명부전, 지장..
1. 청곡사 샘터(수각) 월아산이 베푼 옥계수가 쉼 없이 쏟아져 나와 절과 중생들의 목마름을 늘 해소해준다. 2. 청곡사 할매산신각 청곡사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할매산신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냥 산신각도 아닌 특이하게도 할매산신각을 칭하고 있는데, 이름 그대로 할매산신이 이곳의 주인장으로 절 창건 당시 주지승의 현 몽으로 그를 봉안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런 연유로 청곡사가 있는 진주 땅에는 왕비와 고관대작의 부인, 딸이 많이 태어났다고 하며, 할매 산신상 뒤로 산신 부부의 탱화가 걸려있는데, 천하에서 산신 부부를 봉안한 유일한 절로 산신기도처 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3. 할매산신각의 주인장, 할매산신상과 그 뒤쪽에 나란히 자리한 산신 부부의 탱화 (왼쪽이 할머니 산 신, 오른쪽이 할아버지 산신)..
1. 경모궁터 (옛 지도에 표시된 경모궁터) 대학로 서쪽에는 서울대학교병원과 서울대연건캠퍼스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 병원 냄새가 진동하는 그 너른 현장 북쪽에 고색의 장소가 하나 숨겨져 있으니 그가 함춘원의 일원이었던 경모궁터(경모궁 지)이다. 창경궁은 성종 시절 창덕궁에서 분리되어 생겨난 공간이다. 현재 창경궁은 창경궁로 서쪽에 있는데, 원래는창경궁로를 넘어 대학로까지 넓게 덩치를 걸치고 있었다. 서울대병원이 자리한 창경궁로와 대 학로 사이 언덕에는 창경궁에 딸린 후원(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을 함춘원이라 불렀다. 함춘원이란 이름의 궁궐 정원은 창경궁 동쪽 외에도 경희궁 개양문 남쪽에도 있었는데, 그중 규모와 입지는 창경궁 것이 제일 컸다. 1484년 성종이 창덕궁 동쪽 공간을 떼어 창경궁을 조성했..
1.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 안내센터 (옛 서울시장 공관) 혜화문(동소문) 북쪽이자 한양도성 안쪽 높은 곳에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가 있다. 이곳은 예 전 서울시장이 사용하던 공관으로 왜정 말기인 1941년에 지어진 2층 목조 건물이다. 1959년까지 개인 주택으로 살다가 1959년부터 20년 동안 대법원장 공관으로 쓰였는데, 4.19혁명 재 판의 판결문이 작성된 현장이기도 하다. 1981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시장의 공관으로 쓰였으며, 이 후 버려져 철거까지 논의되다가 보존으로 결정,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 안내센터로 속세에 해방되었다. 1층과 2층은 전시안내센터로 각각 2개와 3개 전시실(제1,2전시실은 1층 / 제3,4,5전시실은 2층)을 지 니고 있으며, 한양도성과 혜화문(동소문), 서울시장..
1. 개화산둘레길 (강서둘레길1코스, 개화산 숲길) 2. 개화산 약사사 석불입상 3. 개화산 미타사 석불입상 4. 약사사로 인도하는 개화산자락길(금낭화로17길) 5. 약사사를 알리는 표석 6. 개화산 약사사 경내 7. 약사사 대웅전에서 바라본 뜨락 8. 약사사 범종각 9. 약사사 삼성각 10. 약사사 감로당 11. 약사사3층석탑 12. 약사사 대웅전 13. 대웅전의 붉은 닫집과 불단을 장식하는 여러 불상과 보살상들 14. 약사사 석불입상 15. 약사사 돌담길 16. 약사사에서 개화산전망대로 이어지는 개화산둘레길 17. 개화산전망대 18. 개화산전망대에 설치된 겸재 정선의 그림 설명문 19. 개화산전망대에서 바라본 방화대교와 난지도, 고양시 화전 지역, 서울 서북부, 북한산(삼 각산), 남산 20. 개화산..
1. 한양도성 혜화문(동소문) 혜화동로터리에서 삼선교(한성대입구)로 넘어가는 혜화동고개(동소문고개) 북쪽 가파른 곳에 혜화 문이 자리잡고 있다. 혜화문은 한양도성 사소문(북소문-창의문, 서소문-소의문, 남소문-광희문, 동소문-혜화문)의 일원으 로 처음에는 홍화문이라 불렸다. 그러다가 1511년 혜화문으로 이름을 갈았으며, 임진왜란 때 문루가 소실되어 사라진 것을 1744년에 다시 지었다. 혜화문은 동소문, 소청문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주변 지역이 새들로 인해 농사 피해가 심하자 이를 막고자 비보풍수의 일환으로 문 천정에 봉황을 그려넣었다. 고약했던 왜정 시절에 서소문, 서대문(돈의문)과 함께 강제 철거되는 비운을 겪게 되는데, 1928년 문 루를 없애고, 1938년에는 남아있던 홍예문을 부셔버리고 그 자..
1. 부산 복천동고분군 모형도 (복천박물관 내) 동래읍성이 있는 마안산 서남쪽 자락에 부산에 대표적인 고분 유적으로 추앙을 받는 복천동고분군 이 누워있다. 6.25 이후 복천동고분군이 숨겨져 있던 언덕까지 판자집이 가득 들어찼는데, 1969년 주택 개량공사 를 벌이던 중 우연히 늙은 무덤이 발견되어 확인에 들어갔다. 이후 여러 번의 시굴 조사와 8차에 걸 친 발굴조사를 통해 1~2세기에서 7세기 초에 해당되는 200여 기의 무덤을 확인했으며, 언덕 정상부 에는 4~5세기 것으로 보이는 딸린덧널을 갖춘 커다란 덧널무덤과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자리해 있다. 여기서 나온 유물은 토기류, 철기류, 장신구류 등 10,000여 점에 이르며, 특히 철제 유물이 많다. 특 히 이 땅에서 단일 유적으로는 가장 많은 철제 ..
1. 영암 열무정과 팽나무(왼쪽의 큰 나무) 영암읍내 한복판에 솟은 작은 동산에 열무정이란 기와집이 있다. 그 옆에는 160년 묵은 팽나무가 높이 자라나 1년 365일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데, 지금은 열무정과 팽나무, 약간의 쉼터 의자, 화장 실이 전부이나 이곳은 호남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정(활을 쏘는 곳)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곳이다. 열무정은 1535년에 창건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8개의 주연이 걸려있는데, 열무정이란 이름은 조정에서 내린 것이라 전한다. 여기서 활을 쏘던 사람들은 1797년 사포계를 조 직했는데, 사포계는 향리들, 지역 주민들과 이곳을 관리했다. 1858년 크게 중수를 벌였는데, 이때 암행어사 성이호가 600냥, 영암군수 이희빈이 300냥을 지원했 고, 영..
1. 부산3.1독립운동기념탑에서 복천동고분군으로 내려가는 숲길 (복천동고분군 방향) 2. 부산3.1독립운동기념탑에서 복천동고분군으로 내려가는 숲길 (부산3.1독립운동기념탑 방향) 3. 영보단비 비리비리한 조선의 끝자락인 1909년, 왜국의 농간으로 조선 조정은 전국의 호적대장을 모두 거두어 들이려고 했다. 조선은 초기에도 전국 명가에 전하고 있던 무수한 역사서를 강제로 압수하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호적대장 압수에 대해 주민들은 조상의 이름이 적힌 호적대장이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 하여 동래 지역 13개면 주민들은 마안산 자락인 이곳(복천박물관 동남쪽)에 호적대장을 모아 불태 우고 그 자리에 단을 쌓아 영모단이라 했다. 1915년 영보단비를 세웠으며, 지역 사람들은 매년 음력 4월 23일..
1. 동래읍성 북장대에서 바라본 천하 (동쪽 방향) 동래구 동부 지역과 장산, 해운대구 서부 지역, 수영구 지역, 금련산, 황령산 등이 두 망막에 들어온다. 북장대는 동래읍성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일품 조망을 자랑한다. 2. 북장대에서 바라본 남쪽 방향 (충렬사 뒷산인 망월산과 금련산, 황령산 등) 3. 북장대에서 바라본 서남쪽 방향 (동래구, 연제구, 부산진구, 백양산, 엄광산 등) 4. 동래읍성 북장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동래읍성에 설치된 3개 장대의 일원으 로 고약했던 왜정 때 사라진 것을 근래 서장대, 남장대와 함께 복원, 재현했다. 5. 북장대에서 부산3.1독립운동기념탑으로 인도하는 숲길 6. 하늘을 가리며 늘씬하게 솟은 숲길 사이로 (부산3..
1. 동래사적공원 소나무 숲길 늘씬한 소나무들이 무성하게 숲을 이루며 아낌없이 솔내음을 베푼다. 이곳은 동래읍성 북문 서북쪽 으로 숲 사이로 숲길이 상큼하고 펼쳐져 있다. 2. 솔내음이 가득한 소나무 숲길 (동래사적공원) 3. 소나무 숲길의 동쪽 끝 (동래읍성 북문 밖) 4. 옹성을 지닌 동래읍성 북문 (서쪽 방향) 5. 깃발이 마중을 하는 동래읍성 북문 동쪽 성곽길 (북장대 방향) 6. 동래읍성 북문~북장대 구간 성곽 북문~북장대 구간 성곽은 중간에 뚝 끊어져 있다. 성곽은 여기서부터 자연에 묻힌 모습으로 한없이 낮아지며, 이곳까지는 아직 복원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7. 북장대로 인도하는 가파른 계단길 8. 동래읍성 북장대 옛 동래고을(동래부)의 중심지였던 동래읍성에는 북장대와 서장대, 동장대 등 ..
1. 동래읍성 서장대 (동래사적공원) 동래읍성 북문에서 서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서장대가 있다. 팔작지붕을 지닌 2층 건물로 근래 복원된 것인데, 1층은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되며, 안에서 수다, 약간의 휴식 정도는 취해도 됨, 단 음식을 먹거나 길게 머무는 행위는 삼가할 것) 2. 서장대 서쪽 성곽길 (동래읍성) 서장대 서쪽 성곽은 근래 복원되어 여장과 성돌 상당수가 엄청난 하얀 피부를 자랑한다. 이 땅의 읍성 가운데 단연 큰 규모를 자랑했으며, 속령인 대마도와 왜열도까지 통제, 단속했던 위엄 돋는 동래부의 중심지였지만 고약한 왜정 시절 읍성의 절반 이상이 파괴되고 마안산과 망월산(충렬사 뒷산) 산지에 있는 성곽만 겨우 남았다. 허나 산지(마안산, 망월산) 성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