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부안 고사포해변(고사포해수욕장, 고사포 남쪽 해변)부안 변산면에 자리한 고사포해변은 길이가 2km에 이르는 긴 해변이다. 송림과 하얀 모래를 지닌 잘생긴 해변으로 해변 중간에 낮은 뫼가 있어서 해변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데, 북쪽 해변은 길이가 0.5~0.6km 정도 된다. (남쪽 해변은 1.3~1.4km 정도)고사포는 풍수지리적으로 '옥녀탄금혈'의 자리라고 하는데, 이는 옥녀가 장고를 치며 거문고를 탄다는 뜻이다. 하여 고사포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으며, 거문고의 중심을 상징하는 곳은 노루목(노래목)이다. 부안 지역의 대표 도보길로 추앙을 받는 변산마실길2코스(송포~성천, 6km)와 서해바다를 따라 길게 닦여진 서해랑길47코스(격포항~변산해변버스정류장, 14.3km)가 이 해변을 지나는데, 이들 ..

1. 고사포해수욕장 송림 (고사포 남쪽 해변)부안 변산면에 자리한 고사포해변은 길이가 2km에 이르는 긴 해변이다. 송림과 하얀 모래를 지닌 해변으로 해변 중간에 낮은 뫼가 있어서 해변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데, 북쪽 해변은 길이가 0.5~0.6km 정도 된다. (남쪽 해변은 1.3~1.4km 정도)고사포는 풍수지리적으로 '옥녀탄금혈'의 자리라고 하는데, 이는 옥녀가 장고를 치며 거문고를 탄다는 뜻이다. 하여 고사포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으며, 거문고의 중심을 상징하는 곳이 노루목(노래목)이다. 부안 지역의 대표 도보길인 변산마실길2코스(송포~성천, 6km)와 서해바다에 길게 닦여진 서해랑길47코스(격포항~변산해변버스정류장, 14.3km)가 이 해변을 지나며, 이들 도보길은 서로 겹친다. 2. 솔내음으..

1. 부안 고사포 북쪽 해변부안 변산면에 자리한 고사포해변은 길이가 2km에 이르는 긴 해변이다. 송림과 하얀 모래를 지닌 잘생긴 해변으로 해변 중간에 낮은 뫼가 있어서 해변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데, 북쪽 해변은 길이가 0.5~0.6km 정도 된다. (남쪽 해변은 1.3~1.4km 정도)고사포는 풍수지리적으로 '옥녀탄금혈'의 자리라고 하는데, 이는 옥녀가 장고를 치며 거문고를 탄다는 뜻이다. 하여 고사포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으며, 거문고의 중심을 상징하는 곳은 노루목(노래목)이다. 부안 지역의 대표 도보길인 변산마실길2코스(송포~성천, 6km)와 서해바다를 따라 길게 닦여진 서해랑길47코스(격포항~변산해변버스정류장, 14.3km)가 이 해변을 지나며, 이들 도보길은 서로 겹친다. 오래간만에 부안 땅을..

1. 한양도성 광희문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2,4,5호선) 동남쪽 광희동에 자리한 광희문은 한양도성 성문의 일원이다. 1396년에 세워진 것으로 문의 이름인 '광희'는 '빛이 멀리까지 사방을 밝힌다'는 좋은 뜻이다.청계천과도 가깝고 남산에서 내려온 물을 배출하는 곳이라 오랫동안 수구문이라 했으며, 서소문(소의문)과 함께 한양도성 내에서 죽은 이의 시신을 성밖으로 배출하는 문으로도 쓰여 시구문이란 우울한 이름도 지니고 있다. 17세기에는 이 성문을 남소문이라 부르기도 했으나 남소문은 남산 국립극장 남쪽에 따로 있었다. (그곳에 남소문터를 알리는 표석이 있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문이 크게 파괴된 것으로 보이며, 특히 도망왕으로 악명이 높은 인조는 이괄의난(1624년)과 병자호란(1636~1637년) 시절에..

1. 남산예장공원 (조선총독부 관사터)남산제1호터널 북쪽 입구이자 퇴계로2가 교차로 남쪽에는 남산예장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남산의 북쪽 끝을 잡고 있는 이 공원은 원래 도로와 작은 녹지가 있던 곳으로 2021년 공원으로 손질되었다.지금은 도심 속의 작은 오아시스 같은 평화로운 풍경으로 있지만 대한제국 끝 무렵에는 왜정이 설치한 한국통감관저가 있었으며, 왜정 때는 조선총독부 관사가 있었다. 그리고 1961년 5.16 이후에는 이곳 일대에 중앙정보부가 들어섰다.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시절 '남산'은 '중정(중앙정보부)'를 뜻했으며, 1995년 중정이 안기부로 이름을 바꾸고 한강 건너 서초구 내곡동으로 둥지를 옮겼다. 공원에는 조선총독부 관사터와 기억6전시관이 있는데, 이곳을 거쳐간 통감부와 조선총독부 관사,..

1. 예장동 은행나무 (서울시 보호수)남산제1호터널 북쪽 입구이자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터 주변에는 400년 이상 묵은 늙은 나무 2그루(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있다. 이들은 서울소방재난본부와 문학의집서울 입구에서 서울유스호스텔과 남산 북측순환로로 인도하는 퇴계로26가길에 있는데, 지금이야 이곳이 열린 공간으로 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안전기획부, 예전 중앙정보부)에 딸린 통제구역이었다. 이곳 은행나무는 430년(1996년 8월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 나이가 400년) 묵은 것으로 높이 21.5m, 나무둘레 594cm의 큰 덩치를 지녔다. 이렇게 늙은 나무임에도 서울시 보호수로 늦게 지정된 것은 앞서 언급한대로 이곳이 금지구역이었기 때문이다. 2. 예장동 느티나무 ..

1. 옛 중앙정보부장 공관 (현 문학의집 서울)남산제1호터널 북쪽 입구이자 서울소방재난본부 주변에는 그 이름도 후덜덜한 옛 중앙정보부 소속 건물들이 10여 채 산재해 있다. 그중에서 제법 비싸게 생긴 2층 양옥이 중앙정보부장이 생활하던 공관이다. 남산 북쪽 자락에 자리한 이 공관은 1961년에 지어진 것으로 1981년까지 중앙정보부장의 관저로 쓰였다. 연면적 596.39㎡, 건축면적 337.75㎡,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여기서 생활한 중앙정보부장은 김재규와 이후락, 김형욱 등 11명에 이른다.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간판을 바꾸었고, 1995년 서초구 내곡동 대모산 남쪽 자락으로 둥지를 옮겼는데, 그때부터 6년 동안 완전히 방치되는 신세가 된다. 한때 철거 이야기도 나왔으나 서울시에..

1. 명동성당(명동대성당, 명동주교좌성당)의 뒷모습명동 번화가 동쪽인 진고개 언덕에는 명동성당(명동대성당, 명동주교좌성당)이 고즈넉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성당은 서울 및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당이자 이 땅 최초의 성당 본당이며, 서울 사대문 내에 남아있는 성당 중 가장 늙은 존재이다. (약현성당과 원효로성당은 사대문 밖에 있음) 또한 명동의 상징이자 백미같은 존재이며, 천주교 외에도 민주화운동과 민중들의 항쟁 장소로도 바쁘게 살았다. 이 성당은 1898년에 지어졌다. 이곳은 천주교 신자인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으로 1883년 블랑주교가 성당을 짓고자 '김가밀로'란 조선인 명의로 이 일대를 사들였다. 하지만 풍수지리에 따른 조선 조정과의 갈등과 청일전쟁 등 여러 요인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88..

1. 나주 영산포등대 (나주 영산포 자기수위표)나주 시내의 남부를 이루고 있는 영산포 영산강변에 하얀 피부를 지닌 영산포등대가 있다. 물길을 밝혀주는 등대는 주로 바닷가에 있다 보니 강에 웬 등대인가 싶을 것이다. 하여 자세한 사연을 모르면 장식용으로 세운 등대로 여길 수 있다.허나 이곳 등대는 정말 등대용으로 지어진 것이다. 지금은 실감이 안나겠지만 영산포에서 영산강 하구까지는 강의 폭이 넓었고, 바닷물도 넝실넝실 들어와 내륙과 바다에서 많은 배들이 이곳을 찾았다. 하여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훨씬 이전부터 나주 지역은 큰 시장이자 무역 도시로 바쁘게 살았다. 게다가 주변으로 나주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어 들도 아주 풍요로웠다. 20세기 이후, 왜정은 요충지인 영산포를 접수해 나주평야 쌀을 빼돌리는 수..

1. 명동성당(명동대성당,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성당)명동 번화가 동쪽 진고개 언덕에는 명동성당(명동대성당, 명동주교좌성당)이 고즈넉한 모습으로 자리해 있다. 이 성당은 서울 및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당이자 이 땅 최초의 성당 본당이며, 서울 사대문 내에 전하는 성당 중 가장 늙은 존재이다. (약현성당과 원효로성당은 사대문 밖에 있음) 또한 명동의 상징이자 백미 같은 존재이며, 천주교 외에도 민주화운동과 민중들의 항쟁 장소로도 꽤 바쁘게 살았다. 이 성당은 1898년에 지어졌다. 이곳은 천주교 신자인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으로 1883년 블랑주교가 성당을 짓고자 '김가밀로'란 조선인 명의로 이 일대를 구입했다. 하지만 풍수지리에 따른 조선 조정과의 갈등과 청일전쟁 등 여러 요인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8..

1. 용동 큰우물동인천역(1호선) 남쪽 인현동 시내 속에 용동 큰우물이란 늙은 우물이 있다. 우물이 들어앉은 곳은 법정동명은 인현동이고 행정동명은 동인천동인데, 용동은 우물 바로 남쪽 동네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우물 자리도 용동의 일원이었다. 용동 큰우물은 예전에는 수량이 풍부한 연못이었다. 하여 지역 사람들은 연못 물을 이용해 살았는데, 1883년 이후 지금과 같은 우물로 크게 손질된 것으로 전해진다.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지역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했으며, 상수도 보급 이후에도 수도 사정이 종종 좋지 않을 때 생활용수로 잠깐씩 쓰였다. 허나 이제는 완전히 죽은 우물이 되어 우물 주둥이가 굳게 닫혀져 있다. 우물의 크기는 지름 2.15m, 깊이 10m로 우물 내부는 자연석과 손질된 돌을 둥글게 쌓아 다..

1. 명동 천주교 서울대교구역사관 (사도회관)서울 천주교 성당의 대표급 존재이자 서울 도심의 주요 명소로 바쁘게 사는 명동성당(명동대성당), 그 성당에 딸린 건물 중 사도회관이란 늙은 근대건축물이 있다. 그는 명동대성당 서북쪽에 자리한 건물로 오랫동안 사도회관이란 이름으로 살았는데, 처음에는 성당 주교들의 숙소와 업무공간인 주교관이었다.이 건물은 1890년 뮈텔 대주교(제8대 조선대목구장)가 짓기 시작해 1891년 4월 완성을 보았는데, 교구의 업무 증가와 영업 확장에 따라 1927년 바로 옆에 준5층 규모의 주교관을 추가로 지었다. 그때부터 처음에 지어진 주교관은 '사도회관'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이후 성신대학 의학부, 가톨릭 출판사, 교구 사무처와 관리국 등으로 살아가다가 2017년 4월부터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