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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동 천주교 서울대교구역사관 (사도회관)

서울 천주교 성당의 대표급 존재이자 서울 도심의 주요 명소로 바쁘게 사는 명동성당(명동대성당),

그 성당에 딸린 건물 중 사도회관이란 늙은 근대건축물이 있다. 그는 명동대성당 서북쪽에 자리한

건물로 오랫동안 사도회관이란 이름으로 살았는데, 처음에는 성당 주교들의 숙소와 업무공간인 주

교관이었다.

이 건물은 1890년 뮈텔 대주교(제8대 조선대목구장)가 짓기 시작해 1891년 4월 완성을 보았는데,

교구의 업무 증가와 영업 확장에 따라 1927년 바로 옆에 준5층 규모의 주교관을 추가로 지었다. 그

때부터 처음에 지어진 주교관은 '사도회관'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이후 성신대학 의학부, 가톨릭 출판사, 교구 사무처와 관리국 등으로 살아가다가 2017년 4월부터 천

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으로 쓰고자 내부를 손질해 2018년 6월부터 역사관 겸 박물관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는 명동대성당과 서울 지역 천주교의 역사와 유물을 머금고 있으며, 내부 유물은 사진 촬

영이 부분적으로 가능하나 블로그나 까페 등에 올리는 것은 제한하고 있다. (역사관 상황에 따라 촬영

통제를 할 수 있음)

 

2. 붉은 피부의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

붉은 피부를 지닌 준 3층 규모의 서양식 벽돌 건물로 바로 옆에 준 5층짜리 주교관과 이어져 있다.

 

3.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사도회관)과 그에 딸린 5층 규모의 주교관(오른쪽 건물)

 

4. 서쪽에서 바라본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 (사도회관)

 

5. 준5층 규모의 주교관

사도회관과 키다리 신식 건물 사이에 끼어있어 조금은 답답한 모습이다.

 

6. 사도회관(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과 주교관 앞에 누워있는 건물터

늙은 건물터가 유리막 안에 들어있다. 이곳 건물터는 동서로 긴 'ㅡ' 구조의 평면 형태로 장대석으로

조성된 기단 위에 정면 3.5칸, 측면 1.5칸 규모로 지어졌다. 내부에서는 중앙 2칸에 걸쳐서 온돌방을

구성했으며, 그 동측 반칸에 아궁이를 두어 부엌으로 삼았고, 서측 1칸은 북측에 함실아궁이를 둔 온

돌방이다.

구들시설은 기와편과 잡석, 벽돌 등으로 고래둑 및 고막이를 만들어 4줄 고래로 조성했으며, 고래 끝

단에는 개자리를 깊게 닦고 연도를 통해 굴뚝으로 연결했다. 그리고 중앙 2칸의 온돌방 남측 전면 퇴

칸에는 툇마루를 두었으며, 그 앞에는 반 정도 남은 맷돌이 있다.

이 건물터는 명동성당과 관련이 없는 조선 때 집으로 사도회관 주변 손질 과정에서 발견되어 이렇게

노출을 시켰다.

 

7. 브뤼기에르 주교 묘비

건물터 옆에 자리한 이 작은 묘비는 초대 조선교구장을 지낸 브뤼기에르 주교의 묘비이다. 하지만 그

의 진짜 묘비는 아니며, 오리지날 비석은 중원대륙에 있다.

브뤼기에르는 1835년 만주족(여진족) 청나라에서 사망했는데, 그해 양력 10월 20일에 무덤과 비석을

마련했다. 허나 그 비석은 문화대학살과 다름이 없던 문화대혁명 시절에 크게 고통을 받았으며, 그때

협동조합의 성돌 신세가 되었다.

2006년 개포동본당 신자들이 중원대륙에 있던 묘비와 같은 모습과 크기의 모조품 비석을 만들어 이

곳에 세웠다.

 

8. 준5층짜리 사교관에 새겨진 '1927'

1927년에 세워진 건물임을 알려준다.

 

9. 건물터에서 바라본 사도회관(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

 

10. 건물터에서 바라본 주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