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궁화동산 김상헌집터 표석무궁화의 즐거운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무궁화동산 내에는 김상헌 집터를 알리는 서울시 스타일의 문화유산 표석이 있다.청음 김상헌(1570~1652)은 안동김씨 출신으로 그의 기와집이 있던 궁정동과 여기서 가까운 청풍계는 안동김씨 집안의 세거지였다. 1636년 병자호란 시절 청나라에 대한 항복을 반대했으며, 그 연유로 1640년 청나라 심양으로 볼모로 잡혀가는 신세가 되었다. 김상헌이 살던 집은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사라지고 그의 집을 알리는 표석과 그가 청나라 심양으로 잡혀갔을 때 남긴 시(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를 머금은 표석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 주위를 천하 제일의 꽃이자 이 땅의 국화인 무궁화들이 온갖 미소와 자태, 피부색으로 이곳에 ..
1. 옛 화본역 승강장군위군 산성면의 중심지인 화본리에 자리한 화본역은 중앙선의 일원이었던 철도역이다. 왜정 말기 중앙선(청량리~경주) 개설로 생겨난 역으로 1936년에 짓기 시작해 1938년 2월 1일 완성을 보았는데,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2011년 코레일과 군위군에서 '화본역 그린스테이션 사업'을 추진하여 왜정 말기 화본역의 모습을 그대로 살렸으며, 네티즌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우보역(군위군)과 봉림역(군위군) 등 주변 역들이 인구 감소와 철도 이용객 감소로 문을 닫은 와중에도 화본역은 계속 여객 수송을 담당했으며, 청량리~부전 무궁화호 열차와 동대구~동해 무궁화호 열차, 동해~부전 무궁화호 열차가 정차했다. 하지만 중앙선 고속열차 운행에 따른 직선화와 복..
1. 여수 구 제일은행 여수지점여수 도심 한복판인 중앙동 골목길에는 '여수 구 제일은행 여수지점'이란 이름을 지닌 근대건축물이 있다. 이곳은 중앙로 바로 북쪽 골목(진남관 서남쪽이자 이순신광장 북서쪽)으로 우연한 기회에 그 골목으로 들어섰다가 뜻하지 않게 이 건물을 만나게 되었다. 이 건축물은 고약했던 왜정 말기에 지어진 것으로 처음부터 조선식산은행 여수 지점으로 쓰였다. 보존 상태가 거의 양호한 편으로 장식이 없는 전면의 사각 기둥은 합리주의 건축물의 본보기로 꼽히는데, 내부는 부분 2층 구조이며, 2층 난간과 기둥의 장식은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1945년 이후 한국식산은행 여수 지점으로 바뀌었다가 한국저축은행, 한국산업은행, 제일은행, sc제일은행으로 계속 은행의 역사를 이어갔으나 근래 개인 기업..
1. 구례 봉서리 지석묘군 (봉서리 고인돌군)구례 읍내 남쪽 들녁에는 '봉서리 지석묘군'이라 불리는 늙은 고인돌 무리가 있다. 이들은 봉서리 들녘 복판에 자리한 소나무숲에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모두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고인돌로 12기가 전하고 있다. 고인돌은 한자어로 지석묘, 외래어로는 돌멘이라 부른데, 옛조선(고조선)이 천하에 크게 위엄을 부리던 청동기시대 유물로 우리를 중심으로 한 동이족 활동 범위(한반도, 만주, 연해주, 하북, 산동반도, 중원대륙의 서해안 지역 등)에 많이 분포하고 있어 우리 민족의 특허 유물이나 다름이 없다. 주로 지배층의 무덤으로 보고 있는데, 구례에서도 이렇게 고인돌이 발견되고 있어 옛조선의 그늘에서 구례 지역을 관리하던 세력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곳 고인돌은 가장 큰 ..
1. 궁정동 회화나무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궁정동 무궁화동산 동쪽 도로변(창의문로)에는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된 늙은 회화나무가 있다. 무궁화동산의 동쪽 구석과 창의문로에 늘 일품 그늘을 드리우는 그는 추정 나이 490년(1968년 7월 3일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 나이가 430년), 높이 16m, 둘레 4.2m로 여름 제국의 보우로 한참 녹음에 잠겨 있었다. 나무 너머로 서울 도심의 오랜 북현무인 북악산(백악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청와대 구역에 묶인 칠궁(육상국)의 맞배지붕 정문이 바라보인다. (칠궁은 회화나무 북쪽에 있는 창의문로 건널목을 통해 접근하면 됨) 2. 북쪽에서 바라본 궁정동 회화나무회화나무 주변 도로변은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 지금이야 자유 공간이지만 불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1. 청와대분수대청와대의 서남쪽 끝을 잡고 있는 효자동삼거리 서쪽에는 청와대분수대와 그를 중심으로 한 광장이 상큼하게 자리잡고 있다.청와대사랑채 북쪽에 자리한 이 분수대는 1985년 11월 18일에 마련된 것으로 동그랗게 펼쳐진 푸른 잔디밭에 솟아있는데, 분수대 가운데에 제왕을 상징하는 고운 맵시의 봉황이 날개를 활짝 피며 기지개를 켜고 있고, 그 주변으로 4개의 석상이 적절히 배치되어 높은 기품을 한껏 드러내 보인다. 그들 뒤로는 서울의 변함없는 북현무(北玄武) 북악산(백악산)이 우리나라 정치, 행정의 1번지 청와대를 포근히 감싼다. 2. 허공을 향해 날개짓을 벌이는 봉황과 그를 중심으로 한 청와대분수대청와대와 북악산(백악산)을 든든한 뒷배경으로 삼고 있고 분수대의 풍경이 달달하여 사진 명소로 아주 바..
1. 화본역 급수탑 (화본역에서 바라본 모습)화본역은 군위군 산성면의 중심지인 화본리에 자리한 옛 중앙선 철도역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24년 12월 말까지 청량리~제천~영주~경주~부전 무궁화호 열차와 동해~철암~영주~동대구 무궁화 열차가 멈추던 곳이었으나 고속열차 운행을 위한 중앙선 직선화와 복선화로 의성~영천 기존 구간이 버려지면서 그 구간에 있던 화본역 역시 강제 폐쇄의 비운을 맞게 되었다. 화본역 남쪽에는 고색이 무지하게 느껴지는 검은 피부의 키와 덩치가 큰 탑이 있어 눈길을 잡아 끄는데, 그가 증기기관차의 목마름을 해소해주던 급수탑이다.급수탑은 많은 철도역에 설치되었던 존재로 이곳 급수탑은 1930년대 말에 마련되었다. 높이 25m, 하단의 지름 5m, 상부 물저장탱크 지름 4m로 문 바깥..
1. 효자동 쌍홍문터효자동 성주빌라 앞에는 쌍홍문터를 알리는 문화유산 표석이 있다. 이곳은 해공 신익희가옥(고택)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쌍홍문은 2개의 붉은색 문을 뜻하는데, 16세기에 이 동네에 살았던 조원(1544~1595)의 두 아들 조희정과 조희철 형제의 효행을 기리고자 선조 임금이 정려문 2개를 세워 주었다. 그 정려문이 바로 쌍홍문이다.효자동이란 이름도 이 쌍홍문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정려문은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사라지고 그들이 있던 자리에 표석을 세워 사라진 그들을 추억하게 했다. 처음에는 돌로 만든 묵직한 표석이 있었으나 2016년 4월 현재의 표석으로 갈았다.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정려문과 효자비, 열녀문 등의 문화유산은 신월동 열녀문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세월의 저편으로 모두 사라..
1. 낙산 한양도성 2. 동망봉 숲길 3. 동망정 4. 동망봉 정상부에 닦여진 운동장 5. 동망봉 정상부 산책로 6. 동망봉 정상부에서 바라본 작은 천하 (창신동, 도심 방향) 7. 동망각 옆 숭인근린공원 산책로 8. 동망각 9. 동망각에 걸린 '동망각' 현판과 '동망봉' 현판 10. 동망각에서 바라본 동쪽 11. 동망봉 한복판의 너른 공간 12. 소나무가 무성한 동망봉 서쪽 자락 13. 자신의 뱃살을 점검하는 곳 14. 동망정 15. 동망봉 숲길 (동망봉 남쪽 자락) 16. 수수하게 지어진 돌탑 (동망봉 동남쪽, 신설동 방향 진입로) 17. 비우당 18. 서울시장 조순이 1995년에 세운 비우당 옛터 비석 19. 비우당 굴뚝과 자지동천 20. 자지동천 바위글씨 21. 자지동천 샘터..
' 동작구의 지붕을 거닐다 ' ▲ 서달산 잣나무숲길 (동작충효길 고구동산길) ▲ 서달산자락길 ▲ 서달산 정상 동작충효길은 서울 동작구의 대표 둘레길이다. 충효(忠孝)란 이름은 동작구에 자리한 국립서울현충원과 사육신묘(死六臣墓)에서 비롯된 것으로 국립서울현충원과 동작구의 여러산(서달산, 까치산, 용마산 등), 공원, 한강을 활용해 7개에 코스를 닦아세상에 내놓으니 그 코스는 대략 이렇다.① 동작충효길 제1코스 고구동산길(3.4km) : 노들역~서달산~현충원 상도출입문② 동작충효길 제2코스 현충원길(3.4k..
1. 중부학당터광화문교차로에서 가까운 더K트윈타워 A동 앞에는 중부학당터를 알리는 서울시 표석과 안내문, 그리고 중부학당의 작은 흔적들이 깃들여져 있다.중부학당은 조선 조정에서 서울 장안에 세운 국립중등교육기관으로 도성 내 오부(북부, 서부, 중부, 동부, 남부)에 학당을 세워 오부학당이라 했다. 허나 북부학당은 계획과 달리 마련하지 못하여 서부와 중부, 동부, 남부 등 사부학당만 운영했으며, 19세기 말에 신식교육 보급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조선은 서울 도성 내를 오부로 구획했음) 여기서는 역사의 저편으로 강제로 퇴장된 중부학당터가 일부 햇살을 보았는데, 삼청동에서 경복궁 동쪽 궁장을 끼고 청계천으로 흘러가던 중학천 동쪽에 자리한 제용감과 사복시, 사포서터가 인접한 것으로 보아 중부학당 건물을 받치던..
1. 내수사터내수동 사직로8길 도로변(경희궁의아침 3단지 앞)에는 내수사터를 알리는 표석이 있다. 내수사는 조선시대때 왕실의 재정을 관리하던 관청으로 궁중에서 필요한 쌀과 옷감, 잡화, 노비 등에 관한 업무를 주로 담당했으며, 내수동이란 지명도 바로 내수사에서 비롯되었다. 조선 초에는 고려 황실에게서 빼앗은 황실 재산과 함경도와 만주, 간도 지역에 있던 이성계 가문의 재산 관리를 주로 담당했다. 그때는 본궁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본궁에 관리를 두어 전곡의 출납사무를 관장하게 했으며, 1430년에 내수별좌를 내수소(內需所)로 개칭, 개편했다.1466년 관제를 개편할 때 격을 높여 내수사라 했으며, 공식기구로서의 직제를 갖추게 되었다. 성종 이후 '군주는 사장(私藏)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유교적 명분론에 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