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대문로한옥상가남대문(숭례문)에서 남대문로를 따라 동쪽(한국은행앞교차로 방향)으로 조금 가면 도로 북쪽으로 고색의 기운이 느껴지는 2층 한옥이 있다. 1910년대 이후 남대문(숭례문)에서 남대문로, 종로까지 2층 규모의 한옥상가들이 많이 들어섰는데, 이 한옥은 그 일원이다. 붉은 벽돌벽에 기와지붕을 얹힌 한양(우리나라식과 서양식) 절충식 2층 건물로 그 시절 남대문로 상가 건축의 전형적인 형식과 특징을 잘 보여준다.1층에는 가게를 두고 2층에는 보통 창고나 주거 공간을 두었는데, 2층 외벽에 수직창을 두어 전체적으로 수직성을 강조했다. 창문 위와 밑에는 화강암 창대석을 두어 안정감을 주었으며, 1층 창호는 상부를 아치로 장식하여 앞쪽을 잘 꾸몄다. 남대문로에서 종로까지 많이 있던 2층 한옥상가는 ..
1. 황궁우와 돌계단1899년 황궁우(皇穹宇)가 완성되자 완공 기념으로 태조고황제의 신위를 하늘의 배위로 올리는 배천대제(配天大祭)를 지냈다. 그런 다음 천신지기(天神地祇)와 태조의 위패를 황궁우에 봉안하고 제사는 원구단에서 지내게 된다. 황궁우의 상량문은 윤용선(尹容善)이 지었으며, 서정순(徐正淳)이 글씨를 썼다. 황궁우는 8각으로 쌓은 기단 위에 3층으로 세운 8각형 전각으로 남쪽에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두었다. 1층과 2층은 통층으로 되어 있고 그 중앙에 천신과 태조의 위패를 봉안했으며, 3층에는 각 면마다 3개의 창을 냈다. 건물 주위로 왕릉의 돌난간을 두르고 일정한 간격으로 석대(石臺)를 두어 해태와 비슷한 귀여운 돌짐승을 배치해 건물을 지키도록 했으며, 뜨락 주변으로 돌난간을 둘러 2..
1. 법성진성 북쪽 성곽과 숲길 (동쪽 방향)영광군 법성면의 중심지인 법성포 북쪽 언덕에 법성진성이 둥지를 틀고 있다. 전라도 여러 고을에서 징수한 세곡을 보관하는 법성창과 군사기지인 법성진을 지키고자 중종 시절인 1514년에 만든 성으로 법성진 관할 전라도 28개 고을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쌓았다.성곽 높이는 최대 8척 7촌(약 4m), 둘레 3,062척(약 1.5km) 규모로 나중에 1,688척(약 800m) 규모로 축소되었다. 정유재란 때 왜군에게 점령되었다가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 이후에 탈환했으며, 이때 전라도의 서해바다를 장악하여 왜군의 서해 진출을 완전히 막았다. 1872년에 제작된 '법성진지도'을 통해 성내에 동헌, 객사 등의 관아와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고약한 ..
1. 원구단(환구단) 황궁우시청 서울광장 동쪽 건너 언덕에는 대한제국의 천단인 원구단(환구단)이 있다. 원구단은 제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으로 원단, 황단, 천단 등의 별칭을 지니고 있는데, 동아시아의 오랜 주인이었던 옛조선과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금, 고려 등 우리 왕조들이 필수로 지녔던 국가 제단이다.우리 역사의 흑역사인 조선 때도 원구단 제도가 있었으나 세조가 폐지한 이후, 400년 이상 보유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897년 고종이 황제위에 오르면서 다시금 원구단을 지니게 되었다. 원구단 자리에는 태종의 딸인 경정공주와 조대림 내외가 살던 남별궁이 있었다. 이후 남별궁은 명나라와 청나라 사신의 편의시설로 쓰였으며, 1897년 제국의 예법에 따라 남별궁을 밀어버리고 원구단을 크게 장만..
1. 예빈시터 표석남대문(숭례문) 북쪽 도로변에 예빈시터를 알리는 검은 피부의 표석이 누워있다. 예빈시는 조선 관청의 일원으로 외국 사신을 접대하거나 왕실(황실)과 국가의 주요 행사. 의례에 소요되는 음식 마련을 담당했다.조선 초에 의정부(현재 세종로) 남쪽에 설치되었다가 남대문 북쪽(표석이 있는 곳)으로 이전되었으며, 1776년 남별궁 내로 이전되었다. 그러다가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되었다.
1. 남산골한옥마을 돌담길 2.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3, 관훈동 민씨가옥 4. 남산골공원 정문 5. 청학지 남쪽 부분 6. 천우각 7. 청학지와 연못에 뜬 작은 섬 8. 남산골한옥마을 정문 9.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10. 이승업 가옥 사랑채 뒷쪽 굴뚝 11. 이승업 가옥 안채 앞 뜨락 12. 이승업 가옥 사랑채 13. 주인이 가고 없는 사랑채 방 14. 이승업 가옥 안채의 뒷모습 15. 이승업 가옥 안채 16. 안채 대청 17. 안채 부엌 18.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가옥 19. 김춘영 가옥 대문과 굴뚝, 안채와 연결된 문간채 20. 김춘영 가옥 사랑채와 기와문 21. 김춘영 가옥 안채와 그 너머로 바라보이는 남산서울타워 22. 김춘영 가옥 안채 뜨락 23. 김춘..
1. 저경궁터 (저경궁터 표석과 하마비)시청 서울광장에서 회현동, 남산3호터널로 이어지는 소공로를 가다 보면 한국은행 동쪽 옆구리 그늘에 저경궁터를 알리는 표석과 하마비가 있다. 저경궁(儲慶宮)은 선조의 후궁이자 추존 원종(정원군)의 생모인 인빈김씨의 사당이다. 원래 원종(인조의 부친)이 살던 집으로 인조가 제왕이 되자 송현궁으로 높여졌는데, 원종의 자손들이 살면서 집안에 원종 부부와 인빈김씨의 신위를 봉안하여 제를 지냈다. 1633년 정원군이 원종으로 추존되면서 종묘 영녕전으로 신위가 옮겨졌으며, 인빈김씨는 추존 왕의 생모라 그 신위를 이곳에 계속 유지시켰다.1743년 인빈김씨의 위패를 여천군(驪川君) 이증(李增)의 집으로 옮겼으며, 의창군(義昌君)과 낙선군(樂善君)이 봉안된 사당에 위패를 안치했다. ..
' 한겨울 산사 나들이, 아산 세심사 ' ▲ 세심사 다층탑 겨울 제국의 차디찬 기운이 옷깃을 더욱 여미게 하던 연말 한복판에 친한 후배와 아산 세심사를 찾았다.둥근 햇님이 하늘 높이 걸린 12시에 신도림역(1,2호선)에서 그를 만나 천안으로 가는 1호선 급행전철을 타고 1시간 정도를 달려 평택역에 도착했다. 크게 치솟은 시장기를 잠재우고자 평택역 부근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배불리 섭취하고 평택역 남쪽에 있는 평택시외터미널로 이동하여 아산(牙山)으로 가는 시내버스(아산 500, 501, 510번)를 기다리니 501번(아산고속터미널↔평택시외터미널)이 기지개를 켜며슬금슬금 타는 곳으로 들어온다.501번은 둔포면과 음봉면 사이에서 신양리와 봉재리로 크게 돌아가는 노선이나 그것을 알지..
1. 부용루 앞에 자리한 석불부용루는 팔작지붕 2층 건물로 마라난타사의 법당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앞과 건물 밑도리에는 석불과 부처의 일대기를 다룬 마애상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는데, 부용루 앞에 있는 석불은 얼굴과 머리, 가슴 윗부분, 광배만 표현된 간단한 모습이다. 석불은 서해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 밑에는 '복전함' 3자를 머금은 회색 철통이 자리해 중생들의 호주머니를 애타게 바라본다. 2. 부용루 밑도리에 깃든 마애상들왼쪽은 석가여래가 보리수 밑에서 뼈가 드러날 정도로 한참 선정에 임하고 있는 모습이고, 오른쪽은 석가여래가 시중을 드는 사람과 옷을 바꿔 입고 출가를 결심하는 모습과 궁성을 넘어 출가를 결행하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3. 부용루 밑도리에 깃든 마애상 (항마촉지인으로 마군을 때려잡..
1. 원구단(환구단) 정문시청 서울광장 동쪽 건너편에는 원구단(환구단) 정문인 맞배지붕 삼문이 있다. 원구단은 1897년에 고종이 남별궁터 자리에 세운 것으로 그는 여기서 황제 위에 올라 광무황제를 칭했다.1899년 원구단의 중심 건물인 황궁우가 지어졌으며, 1900년에 동무와 서무가, 그리고 1902년에 석고단을 마련했다. (그밖에 어재실과 향대청이 있었음) 하지만 정문은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하지가 않다. 다만 1900년에 소공로가 닦여지고 1901년에 원구단이 크게 중수된 적이 있어 그때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은 황궁우 서쪽에 있으나 원래는 황궁우 남쪽인 조선호텔 출입구가 있는 소공로 도로변에 있었다. 고약한 왜정은 1913~1914년에 망국의 천단인 원구단을 부셔버리고 그 자리에 총독부 직영..
1. 백제불교최초도래지 기념광장부용루 밑에는 돌로 다진 너른 석단이 있다. 여기서는 기념광장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석단 사방으로 돌계단을 내었으며, 석단 복판에는 불교에서 아주 애지중지하는 보리수가 자라고 있다. 2. 서쪽에서 바라본 기념광장과 부용루, 그리고 마라난타사언덕 정상에 크게 세워진 석불과 그 밑에 자리한 2층 누각 스타일의 부용루가 마라난타사를 이루고 있다. 마라난타사는 백제에 불교를 전한 인도 승려인 마라난타를 기리고자 근래 닦여진 절이다. (이곳이 백제불교 최초도래지라는 근거는 전혀 없음. 그저 식민사관 쓰레기들이 지들 멋대로 정한 소설의 하나일 뿐) 3. 서해바다와 영광대교를 바라보고 선 팔각형 정자 4. 법성포 최초도래지 앞바다와 서해바다 사이에 자리한 영광대교 (서쪽 방향) 5...
1. 백제불교최초도래지 위쪽(마라난타사)으로 인도하는 승강기법성포 서쪽 해변에는 백제불교최초도래지(이하 최초도래지)라 불리는 너른 불교 공간이 있다. 해양대국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384년으로 인도 승려인 마라난타가 들어와 영업을 했다고 한다. 그 마라난타가 백제 땅에 처음 발을 들인 곳이 바로 이곳 법성포라고 하며, 그 연유로 법성포 서쪽 해변에 불교 공간을 닦고 백제불교최초도래지란 그럴싸한 간판을 붙었다.하지만 이곳이 마라난타가 처음 발을 들인 곳이란 증거는 하나도 없다. 게다가 백제의 본토는 전라도와 충청도가 아닌 중원대륙의 산동성과 하남성, 안휘성, 감숙성 지역이다.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은 백제의 22담로의 일원이거나 애당초 백제가 건드리지도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니 마라난타가 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