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대구제일교회근대문화유산이 풍부하게 깃든 대구 도심부 남성로에 붉은 피부를 지닌 대구제일교회가 자리해 있다. 대구약령시한의학박물관 바로 이웃에 자리한 이곳은 1933년에 신도들의 돈과 중앙교회의 성금으로 지어진 것으로 적벽돌 2층 예배당 건물이었다. 그러다가 1937년 신도인 이주열에 지원으로 높이 33m의 종탑이 세워져 현재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이 교회는 미국에서 건너온 북장로교 소속으로 그 조직의 일원인 선교사 베어드(William M. Baird)가 영업 확장을 위해 조선에 들어와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1895년 선교본부를 대구로 옮겨 경북 일대 영업애 매진했으며, 1896년부터 1898년까지 현재 대구제일교회 자리에 있던 집 8채를 매입해 교회를 차리니 그것이 대구와 경북 지역 최초의 기..

1. 대구 수성못수성못은 수성구 두산동에 자리한 너른 호수이다. 이곳은 대구의 오랜 대표급 명소이자 상큼한 호수공원으로 이 좋은 곳과 오랫동안 인연이 닿지 않다가 근래 여름에 비로소 인연을 지었다. 하지만 수성못에 이른 시간은 햇님의 퇴근시간을 코앞에 둔 19시때라 수성못을 가볍게 반바퀴만 돌고 아쉽지만 동대구역으로 이동했다. 대구의 대표 호수공원으로 아주 바쁘게 사는 수성못은 1924년 9월에 만들기 시작해 1927년 4월 완성을 보았다. 지금은 수성구 지역이 거의 회색빛 도시로 변해버려 실감은 나지 않겠지만 예전에는 수성들이라 불리는 경작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수성들의 목마름을 해소해주는 농업용수는 주변을 흐르는 신천과 범어천에서 가져왔으며, 물은 늘 충분했다.허나 대구 지역 인구 증가로 인해 용..

1. 달서구 진천동 지석묘군(고인돌군)진천동 입석(선돌)에서 가까운 진천동 주택가 한복판에 고인돌군이 있다. (진천동 입석에서 이들 고인돌군으로 인도하는 이정표가 잘 닦여져 있음) 이들은 2020년 11월 진천동 지역 개발에 따른 발굴조사애서 확인된 진천동 713-13번지 유적과 그 서쪽에 인접해 있는 고인돌소공원 일대를 조사하여 확인한 것으로 옛 조선이 천하에 크게 웅거하던 시절부터 신라 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무덤과 적심 등을 건졌다. 진천동 713-13번지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덮개돌 5기, 돌널무덤 8기, 돌덧널무덤 7기, 돌화살촉 25점, 돌칼 2점, 새부리모양석기 1점, 신라 후기 담장 등 생활유구 13기, 기와편 31점 등의 유물을 건졌다. 그리고 고인돌소공원(진천동 713-..

1. 대구 진천동 입석 (선사유적공원)진천동 주택가 한복판에는 진천동 입석을 품은 선사유적공원이 둥지를 틀고 있다. 입석은 선돌이라 부르는데, ('선돌'을 한자로 표시하면 '입석'임) 옛 조선이 천하에 크게 웅거하던 청동기시대 흔적으로 보고 있다.선돌의 역할에 대해서는 마을 경계용, 원시신앙용 등으로 보고 있으며, 남한과 북한 땅에 많이 전한다. 그 입석 중에 진천동 입석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 땅의 입석 중 처음으로 제사 의식의 흔적이 확인된 존재이다.1997년 처음 발굴조사를 받았는데, 그 시절 진천동 지역은 밭두렁과 논두렁이 펼쳐진 시골이었다. 경작지 한복판에 입석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처음에는 지역 농민들이 인위적으로 세운 돌로 보았다. 허나 조사를 해보니 입석 주위로 네모난 크..

1. 대구 계산동성당 (주교좌 계산대성당) 2. 청라언덕 사과나무 3. 선교사 스윗즈주택 4. 서상돈고택 5. 서상돈고택 모형도 6. 서상돈고택 사랑채 7. 서상돈고택 관리사무소 8. 서상돈고택 솟을대문과 벽돌문 9. 대구 계산동성당 (주교좌 계산대성당) 10. 계산동성당 내부 11. 1984년 5월 5일, 로마교황청 주인 요한 바오로2세가 이곳을 다녀간 것을 기리고자 성당에서 달아놓은 동판과 석조 조형물 12. 계산동성당의 옆문들 13. 계산동성당의 뒷모습 14. 계산동성당의 꼬리 부분 15. 성립여학교 2회 졸업식 사진(1913년) 16. 청라언덕 3.1운동계단 17. 청라언덕과 동무생각 노래가 담겨진 표석 18. 선교사 챔니스(Chamness) 주택 19. 챔니스 주택 산책로와 장식물로 놓인 돌확 ..
' 대구 겨울 나들이 ' (팔공산 북지장사, 시인 이상화 고택) ▲ 팔공산1코스 북지장사 가는 길 ▲ 북지장사 지장전 ▲ 이상화 고택 겨울의 차디찬 한복판인 2월의 첫 무렵, 오랜만에 대구(大邱) 땅을 찾았다. 올해도 변 함없이 미답처 지우기에 열을 올리며 어디로 갈까 궁리하던 중, 대구에서 적당한 미답 처가 감지되었다. 바로 팔공산에 있는 북지장사와 근래 무섭게 뜨고 있는 중구의 근대 문화유산들이다. 그래서 북지장사를 먼저 들렸다가 대구 도심으로 나와서 햇님이 떨어 질 때까지 중구의 근대문화유산을 최대한 챙겨보기로 했다. 햇님이 등청하기가 무섭게 서울을 출발,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4시간 가까이를 달려 대구의 대표 관문인 동대구역에 두 발을 내렸다. 사람들로 늘 북새통인 동대구역을 서둘러 벗어나..
1. 남지장사 청련암 남지장사 동쪽에 자리한 청련암은 남지장사의 부속 암자이다. 684년에 양개조사가 왕명으로 남지장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지었다고 전하는데, 관련 유물과 기록이 부실한 실정이다. 임진왜란 시절에 사명대사가 지휘하는 승병들이 훈련장으로 사용했으나 왜군의 공격으로 소실되었으며, 이후 1653년부터 1714년까지 여러 차례 중건했다. 허나 180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08년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경내는 乙 모양의 법당을 중심으로 삼성각과 창고 등 여러 채의 조그만 건물을 지니고 있으며, 법당이 청련암의 전부라 할 수 있는데, 대청과 많은 방을 지니고 있어 법당 및 생활공간의 역할을 했다. 건물 가운데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법당을 두 고 앞뒤로 툇마루를 두었는데, 이는 승려의 생..
1. 녹동서원 향양문(외삼문) 달성군 우록리 산골에 묻힌 녹동서원은 모하당 김충선(1571~1642)을 배향한 서원이다. 김충선은 왜열도 사람으로 왜식 이름은 사야가인데 사야익의 아들로 7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조부는 사야옥국, 증조부는 사야옥이다. 고향은 와카 야마로 혼인하여 부인이 있었다. 전국시대에 이리저리 끌려나디며 싸우다가 풍신수길(도요토미히데요시)에 의해 왜열도가 어느 정도 통일이 되자 전쟁은 끝났구나 싶었으나 왠걸, 쥐약 먹은 풍신수길이 조선과 명을 공격한다고 난리를 쳐 1592년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가토기 요마사) 휘하의 우선봉장으로 출병하게 되었다. 전쟁에 염증이 나고 평소 조선을 동경했던 사야가는 조선 땅에 들어오자마자 휘하 병력 3000명을 이끌고 경상도 병마절 도사인 박진에게..
' 봄맞이 산사 나들이, 대구 팔공산 파계사(把溪寺) ' ▲ 파계사 원통전 * 스마트폰으로 보실 경우 꼭 PC버전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가급적 컴퓨터 모니터나 노트북으로 보시기를 권함) 봄이 천하를 파릇파릇 물들이던 4월 한복판에 그리운 이들을 보고자 부산으로 길을 떠났다. 부산(釜山)으로 가면서 중간에 대구(大邱)에 들렸는데, 어디를 갈까 궁리를 하다가 팔공산 파계사를 찾기로 했다. 이곳은 이미 13년 전에 가본 곳이지만 기억도 흐릿하고, 그때 보는 것과 지금 보는 것도 확연히 틀리며, 그 당시 안가봤던 파계사의 뒷쪽 부분(성전암과 현응 대사 부도)도 살펴볼 겸 해서 그곳으로 길을 잡았다. 대구역 정류장에서 대구시내버스 101번을 타고 북구청, 복현5거리, 불로동, 지묘동을 차례 대로 지나 거의 1시..
' 늦겨울 산사 나들이 ~ 대구 비슬산 용연사(龍淵寺) ' ▲ 용연사 석조계단 겨울 제국(帝國)의 기세가 슬슬 꺾이던 3월 첫무렵에 대구 지역의 오랜 고찰, 용연사를 찾 았다. 서울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4시간 가까이 달려 대구역에 도착, 대구지하철 1호선을 타 고 서쪽 종점인 대곡역에서 내렸다. 여기서 용연사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야 되는데 배차간 격이 참 아름다운 수준이라 조금 걱정은 되었으나 다행히 대기 10분 만에 그곳으로 들어가 는 달성5번 시내버스(대곡역↔용연사↔현풍,유가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옛 지기를 만난 듯, 반가운 표정을 지우며 그 버스를 타고 화원읍, 반송리를 지나 비 슬산 북쪽 골짜리에 자리한 용연사 주차장에 두 발을 내리니 곧바로 용연사 매표소가 흐뭇 한 표정으로 나를 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