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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지장사 청련암

남지장사 동쪽에 자리한 청련암은 남지장사의 부속 암자이다. 684년에 양개조사가 왕명으로 남지장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지었다고 전하는데, 관련 유물과 기록이 부실한 실정이다.

임진왜란 시절에 사명대사가 지휘하는 승병들이 훈련장으로 사용했으나 왜군의 공격으로 소실되었으며, 이후 1653년부터

1714년까지 여러 차례 중건했다. 허나 180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08년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경내는 乙 모양의 법당을 중심으로 삼성각과 창고 등 여러 채의 조그만 건물을 지니고 있으며, 법당이 청련암의 전부라 할

수 있는데, 대청과 많은 방을 지니고 있어 법당 및 생활공간의 역할을 했다. 건물 가운데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법당을 두

고 앞뒤로 툇마루를 두었는데, 이는 승려의 생활공간인 요사와 법당의 기능을 겸하는 인법당의 법식을 따른 것이다.

 

2. 석축 위에 들어앉은 청련암 (앞에 보이는 건물이 법당)

 

3. 청련암 법당의 서쪽 공간

법당 서쪽 공간은 방과 대청을 여럿 지니고 있고, 건물 밖에는 흙으로 다진 굴뚝과 법당을 따스하게 대펴줄 장작들이 한가

득 널려 있다.

 

4. 법당 가운데 공간

 

5. 청련암의 정문인 삼문

삼문 스타일의 문은 향교나 서원, 궁궐에서 많이 쓰는 것인데 특이하게 절에서 삼문을 지어 정문으로 삼았다.

 

 

6. 남지장사 수목장

남지장사와 청련암 사이에는 남지장사에서 운영하는 수목장이 있다. 수목장은 화장한 유골을 땅에 묻고 그 위에 나무를 심
는 것으로 친자연적인 매력 때문에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생겨나고 있다.

 

7. 청련암에서 우록리로 내려가는 호젓한 숲길 (남지장사 옛길)
청련암에서 남지장사 대신 남쪽 숲길로 내려가도 된다. 이 숲길은 우록리 등밑마을로 질러가는 길로 백록마을회관 쪽으로

가는 신작로가 뚫리기 전에는 우록리에서 이 길을 거쳐 남지장사와 청련암으로 접근했다. 즉 남지장사로 인도하는 옛길인

셈이다.
이 숲길은 이 매우 짙고
이 고우며, 중간에 소나무군락지, 낙엽송군락지, 목니미정자나무, 당산목 등의 상큼한 볼거리
들이
있다. 남지장사와 청련암을 찾을
경우, 우록리 → 등밑마을 → 백록마을회관 → 남지장사 → 청련암 → 남쪽 숲길 → 소
나무군락지
→ 낙엽송군락지 → 목니미정자나무 → 당산목 → 등밑마을 → 우록리 순으로 1바퀴 도는 것을 추천한다.

 

 

8. 빽빽하게 우거진 낙엽송군락지 숲길 (남지장사 옛길)

 

 

9. 목니미 정자나무(서어나무)
목니미 정자나무는 300년 정도 묵은 서어나무(서나무)로 높이 약 30m, 나무둘레 3.3m의 덩치를 지녔다. 옛날에는 우록리에

서 남지장사, 청련암, 백련암으로 인도하는 이정표이자 대문 역할을 했던 존재로 그 연유로 목니미 정자나무란 이름을 지니
게 되었다.
백록마을회관 쪽으로 신작로가 뚫리기 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를 절의 입구로 여겼으며, 석가탄신일과 동짓날에 신

들이 이곳에 다다르면 절에 다 왔다고 여겨 나무에 절과 기도를 하였고, 마을 사람들도 예를 표하며 잠시 쉬어갔다.

 

 

10. 남지장사 옛길에서 만난 진달래들

 

11. 남지장사 옛길을 마저 걷다~~

 

 

12. 등밑마을 당산목

이 나무는 300년 정도 묵은 참나무로 높이는 무려 50m, 나무둘레는 3m에 이른다. 등밑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평화를 기원
하고자
당산제를
지내던 곳으로 약 250년 전부터 매년 정월대보름날에 20가구의 마을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 마을의 안녕
과 농사 풍년
을 바라며 정성스럽게 제를 올렸고, 제사를 지낸 후 음식을 나눠먹으며 얽혀있던 감정을 해소하고 서로 화합
하였다.

당산제 풍습은 약 30년 전까지 전해오다가 1970년대 이후 아쉽게도 사라져 한낱 전설로 흩어졌으며, 그 당산제를 오랫동
안 받고 지켜왔
당산나무만이 그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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