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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구 진천동 입석 (선사유적공원)

진천동 주택가 한복판에는 진천동 입석을 품은 선사유적공원이 둥지를 틀고 있다. 입석은 선돌이라

부르는데, ('선돌'을 한자로 표시하면 '입석'임) 옛 조선이 천하에 크게 웅거하던 청동기시대 흔적으

로 보고 있다.

선돌의 역할에 대해서는 마을 경계용, 원시신앙용 등으로 보고 있으며, 남한과 북한 땅에 많이 전한

다. 그 입석 중에 진천동 입석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 땅의 입석 중 처음으로 제사

의식의 흔적이 확인된 존재이다.

1997년 처음 발굴조사를 받았는데, 그 시절 진천동 지역은 밭두렁과 논두렁이 펼쳐진 시골이었다.

경작지 한복판에 입석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처음에는 지역 농민들이 인위적으로 세운 돌로 보았다.

허나 조사를 해보니 입석 주위로 네모난 크기의 넓은 기단이 발견되었으며, 돌널무덤과 민무늬토기

조각이 다량으로 나왔다. 이들 기단과 발견 유물을 통해 이곳 입석은 제사를 지냈던 제단으로 파악이

되어 1998년 국가 사적의 큰 지위를 얻게 되었다. 즉 입석은 제사의 대상이며, 기단은 제를 지내거나

입석을 보호하는 공간인 것이다.

입석 피부에는 성혈과 동심원 무늬가 깃들여져 있으며, 입석 주위로 기단이 네모나게 닦여져 있다.

기단은 판석이 7~8단 정도 쌓여 있으며, 이렇게 기단을 갖춘 입석은 이곳이 거의 유일하다.

 

달서구는 진천동 입석 일대를 공원으로 꾸며 선사유적공원이라 했는데, 입석이 선사시대의 일원이라

는 청동기시대 유적이라 선사유적공원을 칭했다. 허나 유적은 선돌과 그에 딸린 기단, 석관묘터가 전

부라 선사유적공원보다는 진천동입석공원, 진천동선돌공원이란 이름이 크게 적당해 보인다.

 

2. 석관묘(돌널무덤) 자리 표석

진천동 입석 북쪽에서는 3기의 석관묘가 발견되었다. 이들 무덤은 청동기시대 것으로 여겨지는데, 장

방형으로 돌널(묘광)을 파고 판석을 세워 벽을 만든 뒤 바닥에 판석을 깔아 시신을 안치하고 그 위에

뚜껑돌을 입혔다.

이곳 무덤에서는 유물이 나오지 않았으나 입석 바로 앞에 자리해 있어 이곳 일대를 다스렸던 군장이

나 지역 세력의 무덤으로 여겨지며, 이들 무덤은 보존을 위해 땅속에 고이 묻고 그 위에 1호 석관묘.

2호 석관묘, 3호 석관묘를 알리는 검은 피부의 표석을 세웠다. 그리고 입석 동쪽에 석관묘(돌널무덤)

의 모형을 만들었다.

 

3. 허공을 향해 비스듬히 서있는 진천동 입석(선돌)

 

4. 입석 동쪽에 재현된 돌널무덤의 속살

무덤 돌널의 크기가 상당히 작다. 그러다 보니 시신을 반듯하게 눕히지 않고 앉은 모습이나 눕히는 식

으로 안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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