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쪽에서 바라본 대리 석불입상 주변화순읍내 서남쪽에 자리한 화순소방서와 화순공설운동장 사이 공터에 대리 석불입상이라 불리는 늘씬한 석불이 있다. 화순 읍내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을 잠시 붙잡은 대리 석불입상은 높이 3.5m, 너비 90cm, 두께 56cm 사이즈의 화강암 입상으로 거의 돌기둥이나 길쭉한 손 모양의 조각 같은 모습이다. 얼굴 부분은 재밌고 귀여운 표정으로 새기고 중간 도리와 아랫도리는 선각으로 표현했으며, 뒷면은 딱히 조각이 없는 거의 빈 노트 같은 모습이다.석불의 얼굴은 거의 네모나며 머리 부분에 육계나 보관, 그리고 목에 흔하게 그어진 삼도는 없다. 크고 넓직한 코와 부라린 눈, 턱과 어꺠의 구분이 없는 조각은 조선 후기 석장승에서 많이 보인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배 밑..
1. 능가사 대웅전 2. 능가사 천왕문 3. 능가사 목조사천왕상 4. 천왕문 안쪽에 넓게 펼쳐진 능가사 경내 5. 능가사 연못 6. 연못 섬에 세워진 즉심시불(卽心是佛) 비석 7. 능가사 대웅전 8. 대웅전 석가여래삼존불과 후불탱 9. 대웅전 석가여래상 10. 석가여래 옆 아미타불 11. 대웅전 칠성탱 12. 대웅전 감로탱(감로도) 13. 대웅전 옆에서 바라본 팔영산 14. 능가사 응진당 15. 능가사 사적비가 들어있는 맞배지붕 비각 16. 능가사 사적비 17. 연등이 둘러진 미로 18. 연등 미로길 19. 팔영산으로 인도하는 능가사 동쪽 돌담길
1. 호압사에서 바라본 호암산 2. 순흥안씨양도공파 묘역 3. 호암산 호압사 4. 호압사 일주문 5. 호압사 일주문에서 호압사로 인도하는 언덕길 6. 호암산 치유의숲 숲길 7. 콘크리트 석축 위로 모습을 드러낸 호압사 8. 호압사 포대화상 9. 호압사 석조관세음보살상 10. 호압사 느티나무 11. 호압사9층석탑 12. 호압사 연못 13. 호압사 삼성각 14. 호압사 약사전 15. 호압사 석불좌상(약사불) 16. 호압사 샘터 17. 호압사에서 바라본 호암산 18. 호압사분기점에서 바라본 호암산 정상 19. 호암산 북쪽 능선길 20. 호암산 북쪽 능선(금천초교 북쪽)에서 바라본 호암산 21. 호암산 북쪽 능선에서 시흥4동으로 내려가는 산길 22. 순흥안씨 양도공 삼대영원 비석 23. 순흥안씨..
~~~ 한겨울 산사 나들이, 고흥 팔영산 능가사 ~~~ ▲ 능가사 대웅전 겨울 제국의 차디찬 바람이 옷깃을 더욱 여미게 만들던 1월의 끝 무렵, 겨울의 핍박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일행들과 따스한 남쪽 지방으로 훌쩍 길을 떠났다. 아직은 어둑어둑한 이른 아침에 번잡한 서울을 떠나 청주와 금산, 남원, 광양을 두루 거 쳐 여수(麗水)에서 첫 날을 마무리 지었다. 원래 여수는 계획에 없었으나 융통성에 융통 성을 거듭하면서 그곳까지 흔쾌히 발이 닿게 된 것이다. ..
1. 구 진주역차량정비고철도문화공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옛 진주역 자리 북쪽에는 진주역차량정비고란 늙은 근대건축물이 있다. 이곳은 진주역(경전선)이 있던 곳으로 경전선 직선화로 2012년 가좌동(구 진주역에서 남쪽으로 4km 떨어짐)으로 역이 이전되었는데, 옛 자리에는 차량정비고 등 철도시설 일부를 남겨두고 그들을 주제로 한 철도문화공원을 닦아 세상에 내놓았다. 진주역 차량정비고는 1925년 경전선 개통과 함께 지어진 것으로 이름 그대로 열차를 정비하는 공간이다. 정비고 앞뒤로 각각 아치형의 출입구 2개를 만들어 열차가 오갈 수 있게 했으며, 삼각형 그물 모양으로 만든 트러스 구조의 솟을지붕을 만들고 그것을 지탱하는 벽돌 버팀벽(버트레스)을 만들어 장식적인 효과도 배려했다.이 땅에 있는 철도 차량정비고 등..
1. 진해현 관아 동헌창원(마산)에서 배둔, 고성, 통영으로 가는 길목인 진동면 중심지(진동리)에 옛 진해현 관아 유적이 있다. 현재 진해는 창원 동남부 해안 지역(옛 진해시이자 현재 진해구 지역)이지만 원래 진해는 이곳 진동면을 중심으로 했던 고을이다. (왜정 때 진해구 지역으로 지명이 강제 이전됨) 진해현 관아 건물은 1832년에 진해현감 이영모가 세운 것으로 현감이 정무를 보던 동헌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사령청, 안쪽에 객사, 앞쪽에 마방과 형방소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허나 고약한 왜정 시절에 관아 건물 상당수가 파괴되거나 강제 변형되었으며, 지금은 동헌과 그에 딸린 부속건물 1동 정도만 남았다. 그로 인해 관아의 원래 모습과 위치, 배치를 확인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객사 같은 경우는 최근까지 살아..
1. 봉평동 고인돌 (봉평동고인돌 1호)미륵도의 북쪽 끝을 잡고 있는 봉평동 밭두렁에 늙은 고인돌 2기가 있다. 이곳은 봉평동 주택가 안쪽에 자리한 밭두렁으로 밭두렁 한쪽에 고인돌이 자리해 늦겨울 햇살(이때가 3월 중순이었음)을 즐기고 있는데, 고인돌(지석묘)은 옛조선이 천하에 크게 위엄을 보이던 청동기시대 유물로 지역 세력가의 무덤으로 보고 있다. 지금은 2기만 남아있지만 예전에는 해안가를 따라 고인돌 수십 기가 있었다고 한다. 허나 주거지와 경작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대부분 파괴되어 이들만 겨우 살아남았으며, 이들을 통해 옛조선 시절 이곳에 작은 마을이나 세력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게다가 이들을 알리는 이정표도 부실하여 카카오지도를 이용해 겨우 찾았다. 2. 고인돌 1호의 뒷모습주변에서 커다란 바위를 ..
1. 강진 사당리 푸조나무강진 고려청자가마터 유적(강진 고려청자요지) 동쪽에는 이름도 특이한 오래된 푸조나무가 있다. 푸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큰키나무로 서해바다 쪽에 많이 뿌리를 내렸는데, 곰솔과 팽나무와 함께 소금 기운을 머금은 바닷바람을 막는데 최적화되어 있어 방풍림으로 아주 좋다. 또한 생김새가 팽나무와 비슷해 개팽나무, 곰병나무란 등의 별칭도 지니고 있다. 이곳 푸조나무는 300년 이상 묵은 것으로 높이 18.8m, 가슴높이 둘레 10.5m의 덩치를 지녔다. 6개의 줄기를 지니고 있으며, 인근 가마터(강진 고려청자요지)에서 청자나 백자를 굽던 도공들에게 일품 그늘을 드리웠다. 어느 나무꾼이 함부로 가지를 잘랐다가 급사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마을 사람들이 그를 애지중지하고 있으며, 매년 제사..
1. 서울식물원 호수공원 북쪽 부분서울 및 서울 강서 지역의 새로운 꿀명소로 바쁘게 살고 있는 서울식물원 한복판에는 호수공원(호수원)이 넓게 누워있다.이곳은 2018년 서울식물원 조성으로 생겨난 것으로 원래는 김포평야의 일원을 이루던 논두렁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허나 논두렁 일색이던 마곡동 일대를 싹 뒤엎어 마곡지구를 만들면서 그 평야는 사라졌으며, 회색빛 가득한 마곡지구 가운데에 서울식물원이란 싱그러운 자연생태공원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서울식물원은 온실 식물원만 유료의 공간이고 나머지 노천 공간(호수공원, 습지생태공원, 습지원, 열린숲정원, 마곡문화관)은 무료의 공간이다. 호수공원은 북쪽은 마곡문화관과 양천로, 동쪽은 서울식물원 온실식물원, 남쪽과 서쪽은 마곡지구와 접해있는데, 24시간 열린 곳..
1. 의림사 홍매화창원시에 서쪽 끝자락을 잡고 있는 진북면 인성산(643.8m) 동쪽 산골에 의림사란 산사가 깃들여져 있다. 인성산 자락에 들어있지만 북쪽 멀리 있는 여항산을 가져와 여항산 의림사를 칭하고 있는데, 신라 후기에 위웅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중건했다.조촐한 경내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3층석탑과 모과나무가 있어 고색의 내음을 그런데로 내보이고 있는데, 특히 홍매화의 명성이 자자하여 매화가 한참 몸을 푸는 2월 말~3월 말에 그를 보러 많이들 찾아온다. 나는 의림사 홍매화의 존재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채, 예전부터 갈증이 있던 이곳을 찾은 것으로 절 밑 주차장에 홍매화 2그루가 늦겨울 매화의 향연을 화사하게 펼치며 나를 맞이했다. 2. 도도하게 붉은 입술을 드러낸 ..
1. 봉평동 해평열녀사당 (해평열녀비각)미륵도에 북쪽 끝을 잡고 있는 봉평동 해안에는 해평열녀사당이 있다. 이곳은 통영항을 마주보고 있는 봉평동 해안으로 사당이 통영항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통영의 주요 명소인 통영해저터널 미륵도 기점에서 동쪽으로 400m 떨어진 곳으로 이곳에 얽힌 사연은 대략 이렇다. 조선 정조 시절인 1780년경 봉평동 해평마을에 금슬이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은 어부로 한산도 각수여 부근으로 고기잡이를 갔는데, 그만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했다. 소식을 들은 아내는 크게 통곡하며 남편의 시신이라도 찾고자 한산도 각수여를 찾아 탐색을 벌였는데, 남편의 시신은커녕 유품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여 그는 소복치마를 머리에 두르고 바다에 투신하고 말았다.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
1. 원적산 남쪽 봉우리 정상인천 서구와 부평구 사이에 길쭉하게 솟은 원적산은 해발 196.1m의 뫼이다. 원적산(怨積山)은 '원망이 쌓이다'는 뜻으로 조선 때 운하 건설을 하려고 원통이고개를 들쑤셨지만 계속 돌이 나오면서 아나지고개로 고개를 돌려 그곳을 들쑤셨다. 하지만 그곳 역시 암석들이 많아서 운하 공사가 여의치가 못해 결국 포기했다. 하여 거듭된 공사 실패에 원한과 원망이 오지게 맺혔다고 해서 원적산이란 간판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원적산(元積山)으로 앞글자 한자가 갈렸으며, 근래에는 천마산, 철마산 등이라 불렸으나 다시 원적산으로 돌아왔다. 천마산의 유래에 대해서는 먼 옛날에 산 아래 가정동에 살던 합천이씨 집안에서 아기 장사가 태어났는데, 부모는 후환이 두려워 그 아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