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강영당옛 부여박물관 남쪽에 자리한 도강영당은 홍가신(1541~1615)과 미수 허목(1595~1682), 채제공(1720~1799)를 봉안한 사당이다. 원래는 옛 부여 고을의 관아 건물이었으나 1971년에 사당 스타일로 손질하여 그들의 사당으로 삼은 것인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앞쪽 1칸을 개방하여 참배 공간으로 삼고, 뒤쪽은 통칸으로 그들의 영정을 봉안했다.현재 홍가신과 허목의 영정은 수원화성박물관에 가 있으며, 채제공의 영정도 청양군 상익사로 옮겨졌다. 그러다 보니 영당의 역할이 상실되어 빈 집으로 있다. 2. 부여관아 내동헌도강영당 앞에는 부여관아의 내동헌이 있다. 내동헌은 내아의 별칭으로 부여 고을 수령의 생활공간인데,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1971..
1. 비봉산 봉황숲생태공원의곡사 뒤쪽에는 비봉산(142m)이 야트막하게 솟아있다. 비봉산은 '봉황이 날다'는 뜻으로 오랜 세월 진주 시내의 북쪽 지붕이자 상큼한 뒷동산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의곡사 바로 뒤쪽 산자락에는 2018년에 닦여진 봉황숲 생태공원(비봉산 생태공원)이 닦여져 비봉산을 달달하게 수식한다. 비봉산에는 그동안 불법 경작지와 불법시설물이 많아서 산의 경관을 크게 갉아먹고 있었는데, 진주시청에서 이들을 모두 밀어버리고 봉황숲 생태공원과 큰작골 치유의숲, 봉래벼리숲 등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산은 비록 키는 작지만 동서로 넓은 편이며, 산을 넘으면 바로 산골과 시골 풍경이 펼쳐져 시내로 번잡한 남쪽과 완전 다른 모습을 보인다. 2. 비봉산 북쪽에 펼쳐진 첩첩한 산주름 (북쪽 방향, 상봉동..
1. 가림성 느티나무성흥산(260.1m) 남쪽 자락에는 가림성이란 가짜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오래된 산성이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에 닦여진 것으로 여겨지는 산성으로 예전에는 성흥산의 이름을 따서 성흥산성이라 불렸는데, 식민사관 쓰레기들이 이곳을 백제 동성왕 시절에 등장하는 가림성으로 멋대로 비정하는 개짓을 벌여 지금은 가림성이란 엉터리 간판을 내걸고 있다. 성흥산성 남쪽 성곽에는 이곳의 오랜 백미이자 명물인 느티나무가 높이 솟아나 첩첩한 산주름에 묻힌 부여 임천면 지역을 굽어보고 있다. 그의 추정 나이는 최소 400년 이상으로 높이는 22m, 가슴높이 둘레는 5.4m의 큰 덩치를 지녔는데, 높은 곳에 우뚝 자리한 탓에 산 밑에 임천면 중심지(군사리)에서도 바라보인다. 이 나무에는 고려 초기에 활동했던..
1. 부여객사옛 부여박물관 남쪽에는 부여객사와 동헌, 내동헌 건물이 있다. 이들 객사와 동헌은 옛 부여 고을의 관청 건물로 1910년 이후 왜정이 관청 상당수를 부셔버리고 객사와 동헌, 내동헌만 남겼다. 게다가 부여박물관을 개설하고 객사와 동헌이 있는 곳을 박물관 앞뜨락으로 삼으면서 박물관 유물을 전시하는 진열관으로 부려먹었는데, 그 과정에서 건물 내부가 다소 변형되었다. 부여객사는 1869년에 지은 것으로 부풍관이란 이름을 지니고 있다. 객사는 조정에서 나온 관리의 숙박 편의를 제공하고 제왕에게 매달 2번씩 망궐례를 행하던 건물로 정당과 좌우 익실로 이루어져 있다. 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처마에는 봉황머리와 연꽃봉오리를 조각했으며, 제왕을 상징하는 궐패(전패)를 봉안해 망궐례를..
1. 삼성각에서 바라본 의곡사 경내 (바로 앞에 뒷통수를 보인 건물은 대웅전)진주 시내 북쪽에 솟은 비봉산(141.9m) 동쪽 자락에 의곡사란 오래된 절이 둥지를 틀고 있다. 진주 시내에서 무척이나 가까운 이곳은 조계종 소속의 절로 삼국시대 후반인 665년에 혜통이 창건하여 월명사, 또는 숭의사라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를 입증할 기록과 유물은 없는 실정이다.808년에 원측이 중건했고, 1194년에 월명이 중건다고 하며, 1592년 임진왜란 시절에는 승병들을 양성했다. 1593년 진주성이 떨어진 이후에도 진주성과 지척임에도 승병들이 모여들어 왜군을 공격했다고 하며, 끝내 왜군의 공격으로 절이 파괴되고 말았다. 그 시절 절 이름은 관항사였는데, 승병들의 항전을 기리고자 조정에서 의곡사란 이름을 ..
1. 아차산2보루아차산6보루에서 범굴사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소나무가 우거진 봉우리(해발 276.2m)가 있다. 봉우리 주변에는 금줄이 둘러져 있고, 안내문 1개가 나그네들의 관심을 적극 호소하고 있는데, 금줄 너머 봉우리에는 고구려가 심어놓은 아차산2보루가 깃들여져 있다. 구리시 구역인 이곳은 아차산 주능선에서 동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줄기로 봉우리를 활용하여 보루를 다졌는데, 둘레 50m 정도의 조그만 보루이다. 그 보루는 영원한 분해자인 자연과 장대한 세월에 의해 모두 와해되고 돌탑 남쪽에 치로 여겨지는 성벽 3단이 바깥에 노출되어 분해자의 압박을 견디다가 근래 보존을 위해 흙으로 덮어 묻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 금줄을 둘러 사람들의 통행을 막는다.보루터 주변에서 고구려 토기인 몸통긴항아리의 조각들이..
1. 의곡사 일주문진주 시내 북쪽에 솟은 비봉산(141.9m) 동쪽 자락에 의곡사란 절이 둥지를 틀고 있다. 진주 시내에서 무척이나 가까운 의곡사는 조계종 소속의 절로 해인사의 말사로 들어있는데, 665년에 혜통(惠通)이 창건하여 월명사(月明寺), 또는 숭의사(崇義寺)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를 입증할 기록과 유물은 없는 실정이다.808년에 원측(圓測)이 중건했고, 1194년에는 월명(月明)이 중건다고 하며, 1592년 임진왜란 시절에는 여기서 승병들을 양성했다. 1593년 진주성이 넘어간 이후에도 진주성과 지척임에도 승병들이 모여들어 왜군을 공격했다고 하며, 끝내 왜군의 공격으로 절이 파괴되고 말았다. 그 시절 절 이름은 관항사였는데, 승병들의 항전을 기리고자 조정에서 의곡사란 이름을 내렸..
1. 천장산하늘길 임도 2. 천장산하늘길 홍릉수목원 구간 3. 천장산하늘길 북쪽 구간 4. 천장산하늘길 남쪽 기점 (국립산림과학원 기점) 5. 천장산하늘길로 들어서다 (남쪽 기점 북쪽) 6. 홍릉수목원 대나무숲과 카이스트 서울캠퍼스의 인공 벼랑 사이를 지나는 천장산하늘길 7. 홍릉수목원의 푸른 숲을 지나는 천장산하늘길 8. 천장산하늘길에서 바라본 국립산림과학원 홍릉수목원 숲길 9. 천장산하늘길에서 만난 어정 안내문 10. 홍릉수목원의 동쪽 모퉁이를 지나는 천장산하늘길 남쪽 구간 11. 천장산하늘길 남쪽 구간에서 바라본 북쪽 (북한산) 12. 천장산하늘길 임도 남쪽 시작점 13. 천장산하늘길 임도 남쪽 구간 14. 천장산하늘길 임도에서 바라본 북한산(삼각산)과 도봉산 15. 천장산하늘길 임..
1. 분당 수내동가옥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분당신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분당중앙공원에는 이곳(수내동)에 600년 이상 살았던 한산이씨 집안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수내동가옥과 한산이씨묘역, 한산이씨사당, 한산이씨 비석 등이 그것인데, 그중 수내동 가옥은 여기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던 한산이씨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집이다. 나머지 집들은 분당신도시 개발로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집도 성남시에서 인수하면서 문화유산 관람용 집으로 물러났다. 참고로 이곳은 분당신도시 및 분당구에서 가장 늙은 집이기도 하다. 이 가옥은 19세기에 지어진 초가로 문간채와 안채, 헛간채를 지니고 있다. 대문을 지낸 문간채는 'ㅡ'자형으로 바깥 마당과 이어져 있고, 대문을 중심으로 왼쪽에 외양간과 헛간, 오른쪽에는 하인..
' 운현궁 늦가을 나들이 ' 늦가을이 깊어가던 10월의 끝 무렵, 친한 후배와 내 즐겨찾기의 일원인 북촌(北村)을 찾았다. 늦가을 누님의 상큼한 향기와 북촌의 구수한 향을 따라 여기저기를 유유자적 거닐었고그 과정에서 운현궁에도 잠깐 들렸다. 운현궁은 북촌 식구임에도 크게 마음이 가질 않아서 3~4번 오간 것이 전부이다. 하여 운현궁의 늦가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진지한 복습도 겸해서 억지로 두 발을 운현궁에 들였다. ♠ 운현궁(雲峴宮, 국가 사적) 입문 ▲ 활짝 열린 운현궁 후문(정문) 운현궁에는 4개의 대문이 있었으나 무심한 세월이 모두 잡아가..
1. 아차산4보루 북쪽 치아차산4보루는 용마산과 망우산을 제외한 아차산 보루 식구 중 가장 북쪽에 자리해 있다. 잃어버린 땅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고구려 성곽 유적 중 건물터와 성벽의 구조가 제대로 밝혀진 최초의 현장으로 아차산~용마산~망우산 보루 중 거의 유일하게 성벽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었다.복원 이전 성벽의 최대 잔존 높이는 1.8m로 남벽과 동벽은 잘 다듬은 성돌을 이용한 탓에 그런데로 남아있었다. 허나 북벽과 서벽은 훼손이 심해 남아있는 높이가 0.8m를 넘지 못했으며, 부정형의 석재를 사용하여 조잡하게 축조되었다. 구리시가 아차산4보루에 숨겨진 옛날 이야기를 풀고자 1997년부터 문화재청과 경기도의 도움을 받아 1998년까지 발굴조사를 벌였다. 하여 온돌과 배수로, 저수조 등을 갖춘 건물터를 확..
1. 아차산6보루로 살아가고 있는 언덕아차산3보루(아차산 정상)에서 아차산 주능선(서울둘레길5코스)을 따라 남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동쪽)으로 범굴사로 인도하는 길이 살짝 나온다. 그 길로 들어서면 바로 야트막한 언덕(아차산 주능선 동쪽)이 있는데, 그 언덕에 아차산6보루터가 살포시 깃들여져 있다. 구리시 영역인 아차산6보루는 아직 구체적인 조사를 받지 못한 상태라 자세한 것은 모른다. 다만 아차산과 용마산, 망우산에 널린 보루들처럼 고구려(또는 신라)가 다진 보루는 분명해 보이며, 아차산 보루 식구 중 가장 작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보루 역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아차산일대 보루군'의 일원이며, 여기서 범굴사 쪽으로 내려가면 아차산2보루가 모습을 비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