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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동성당(명동대성당,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성당)
명동 번화가 동쪽 진고개 언덕에는 명동성당(명동대성당, 명동주교좌성당)이 고즈넉한 모습으로
자리해 있다.
이 성당은 서울 및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당이자 이 땅 최초의 성당 본당이며, 서울 사대문 내에
전하는 성당 중 가장 늙은 존재이다. (약현성당과 원효로성당은 사대문 밖에 있음) 또한 명동의 상
징이자 백미 같은 존재이며, 천주교 외에도 민주화운동과 민중들의 항쟁 장소로도 꽤 바쁘게 살았
다.
이 성당은 1898년에 지어졌다. 이곳은 천주교 신자인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으로 1883년 블랑주교
가 성당을 짓고자 '김가밀로'란 조선인 명의로 이 일대를 구입했다. 하지만 풍수지리에 따른 조선 조
정과의 갈등과 청일전쟁 등 여러 요인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887년에 겨우 공사에 들어갔다.
허나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가 1892년 파리외방전교회의 지원을 받아 1898년 5월 8일 드디어 완
성을 보았다.
성당 건물은 코스트(E.J.G Coste, 고의선) 신부가 설계했으며, 많은 신자들이 무보수로 공사를 돕고
십시일반 공사비를 마련했다. 그렇게 성당 건축에 도움을 준 조선인 신자가 1,000여 명이며, 1898년
5월 29일 성모마리아를 수호성인으로 하여 축성식을 거하게 열었다.
그렇게 태어난 명동성당은 순수 고딕 스타일로 이 땅 최초의 벽돌 성당이다. 평면은 십자형이며, 본
당의 높이는 23m, 탑의 높이 46.7m, 성당 길이 69m, 너비 28m, 연건평은 1,498평방미터에 이른다.
성당 건축에 쓰인 벽돌은 이 땅에서 모두 만들어 충당했는데, 그 모양이 20여 종에 달한다. 붉은색 벽
돌과 전통 재료인 전돌을 응용한 회색 벽돌 등 2가지 색의 벽돌을 썼으며, 내부는 고딕적인 분위기이
나 구조 체계와 공법은 로마네스크 양식에 가깝다.
명동성당은 처음에는 종현성당을 칭했다. 그러다가 왜정 때 명동 지역이 명치정이라 불렸고, 해방 이
후 가운데 '치'를 빼서 명동이 되었는데, 그 이름을 따라 명동성당으로 간판을 바꾸었다.
현재 이곳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이며, 성당 북서쪽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은 명동성당
에 딸린 주교관으로 1890년에 지어졌다.


2. 진고개 정상에 높이 솟은 명동성당의 위엄
명동성당은 진고개 정상에 우뚝 솟아있어 서울 장안 어디서든 거의 그가 보였다. 허나 키다리 건물의
대량 생산으로 인해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3. 밑에서 바라본 명동성당
명동성당은 그 입구만 오지게 지나다녔지 성당 앞까지 접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지역의 유
명 늙은 성당들은 물론 서울 장안에 원효로성당과 약현성당, 성공회성당 등은 모두 성당 앞과 내부까
지 들어갔었는데, 명동성당은 이제서야 그 앞까지 발을 들인 것이다.


4. 명동성당 정면에 있는 정문

5. 굳게 닫힌 명동성당 정문 (성당 내부 사정으로 굳게 닫혀 있었음)

6. 명동성당 옆구리에 있는 장명등 스타일의 석등
명동성당 옆구리에는 특이하게도 석등이 있다. 석등의 모양새를 보니 어디서 업어온 것 같은데, 성당
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들을 왜 이곳에 가져다둔 것인지는 모르겠다. 석등은 보통 광명을 상징하
는데, 이곳 역시 그런 의도로 둔 것은 아닐까?


7. 명동성당의 길쭉한 옆모습

8. 동쪽에서 바라본 명동성당과 종탑

9. 명동성당 옆구리에 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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