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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성 남양성모성지로 들어서다
화성시청이 있는 남양읍내 서쪽 부분에 남양성모성지가 넓게 둥지를 틀고 있다. 남양읍은 화성시
서부 지역의 중심지로 조선 후기까지 수원 고을을 능가하는 남양부(남양도호부)의 중심지로 바쁘
게 살았는데, 세상이 여러 번 엎어지면서 이제는 화성시 그늘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화성시청
을 지니고 있는 읍치고는 규모가 큰 읍으로 화성시 승격 초기에는 '동'을 썼지만(화성시 남양동) 지
역 주민들의 민원으로 '화성시 남양읍 ~~리'로 바뀌었다.
남양은 19세기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던 곳으로 특히 1866년 병인박해 때 많이 처단되었다. 보통
그때 잡힌 신자 중 양반들은 서울이나 공주로 넘겨 거기서 처리했지만 평민층은 주로 남양으로 보
내 남양부사의 재량에 맡겼다. 남양부사는 모진 매질 등으로 그들을 고문하다가 현재 남양성모성지
가 있는 야산으로 끌고가 교수형으로 처단시켰다.
그때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죽었는지는 전하는 것은 없으나 수백 명은 거뜬히 넘는 것으로 보이며,
치명일기와 여러 증언록에는 김필립보, 박마리아 부부, 정필립보, 김홍서 토마 등의 이름만 겨우 전
한다.
남양에 속한 마을 중 '백학'과 '활초리'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았는데, 조선 최초의 신
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에서 공부하다가 열병으로 사망한 최방제가 남양 사람이었으며, 조선 최초
의 영세자인 이승훈의 손자인 이재의가 성장한 곳이 남양 백학 교우촌이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천주교에서 이곳을 접수해 성모성지로 꾸몄는데, 수목이 무성하고 숲길이 달달해
굳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번 들려볼만하다. 하여 화성시의 주요 명소로도 바쁘게 산다. 남양
읍에서 가장 삼삼한 숲을 지닌 곳으로 사계절 풍경이 아름다우며, 누구에게나 흔쾌히 개방되어 있다.
2. 시작부터 무성한 숲을 들이민 남양성모성지 진입부
3. 단출한 모습의 기도공간 (건물 내부에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공간이 있음)
4. 나그네와 순례객을 위한 조그만 샘터
5. 남양성모성지 묵주기도길에 나타난 블라디미르 성모의 이콘 모습을 담은 사진
남양성모성지 서쪽 부분에 있는 묵주기도길의 모습이 마치 블라디미르의 성모(자비의 성모) 이콘과
닮았다고 한다.
6. 1866년 병인박해 때 쓰였다는 크고 견고한 돌덩어리
7. 묵주기도길에 있는 너른 공간
8. 숲에 감싸인 묵주기도길
9. 묵주기도길 끝부분 언덕 정상부
10. 죽은 예수를 껴앉으며 통곡하는 마리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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