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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여객사

옛 부여박물관 남쪽에는 부여객사와 동헌, 내동헌 건물이 있다. 이들 객사와 동헌은 옛 부여 고을의

관청 건물로 1910년 이후 왜정이 관청 상당수를 부셔버리고 객사와 동헌, 내동헌만 남겼다. 게다가

부여박물관을 개설하고 객사와 동헌이 있는 곳을 박물관 앞뜨락으로 삼으면서 박물관 유물을 전시

하는 진열관으로 부려먹었는데, 그 과정에서 건물 내부가 다소 변형되었다.

 

부여객사는 1869년에 지은 것으로 부풍관이란 이름을 지니고 있다. 객사는 조정에서 나온 관리의

숙박 편의를 제공하고 제왕에게 매달 2번씩 망궐례를 행하던 건물로 정당과 좌우 익실로 이루어져

있다. 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처마에는 봉황머리와 연꽃봉오리를 조각했으

며, 제왕을 상징하는 궐패(전패)를 봉안해 망궐례를 지냈다. 그리고 좌우 익실에는 온돌방과 마루를

두어 조정이나 다른 고을에서 온 관리들의 숙소로 삼았다. 좌우 익실로 인해 건물이 동서로 길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여박물관이 금성산 서쪽 자락으로 이전된 이후에도 계속 이곳을 지키고 있으며, 객사와 동헌 남

쪽에 있던 건물들을 싹 밀어버리면서 앞쪽이 확 트여졌다. 이들 공간에서는 유적들이 많이 발견되

어 '부여관북리유적'이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나라 역사계를 장악하고 있는 식민사관

쓰레기들이 이곳을 사비시대 백제 궁궐이라 개소리를 늘어놓으며 조작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여기

서는 건물터와 창고터, 구덩이터 등이 나왔는데, 상당수가 창고터와 구덩이터이다. 게다가 이 땅에

서 흔히 발견되고 있는 늙은 유적(건물터, 도시터, 마을터 등)이며, 궁궐로 볼 수 있는 흔적은 부실

한 실정이다.

백제의 궁궐 규모는 역사 기록도 없고, 유적도 확인된 것이 없으며, 백제의 도읍 위치도 애매해 파

악하기 힘드나 적어도 조선 궁궐보다는 컸을 것이다. 백제는 그만큼 큰 나라였다. 백제는 기본적으

로 지금의 산동반도와 강소성, 안휘성를 깔고 있었으며, 왜열도와 중원대륙의 강남, 동남아, 그리고

한반도 남부를 부속 영토로 거느렸다.

 

2. 동쪽에서 바라본 부여동헌

부여동헌은 마치 날개를 활짝 편 모습으로 부여 읍내가 있는 남쪽을 굽어보고 있다.

 

3. 부여동헌

부여객사 동쪽에는 옛 부여 고을의 동헌이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1869년에 새

로 지었는데, 1985년에 크게 수리했으며, 부여객사와 함께 부여박물관 진열실로 부려먹음을 당했다.

건물의 왼쪽 3칸은 대청으로 판벽을 치고 문을 달았으며, 오른쪽 2칸은 온돌방을 두고 앞쪽에 툇마루

를 놓았다. ‘초연당(超然堂)’이란 현판이 걸려있어 초연당이라 불렸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제민헌이란

별칭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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