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제국의 추위 갑질이 극성이던 1월의 한복판에 포항 오어사를 찾았다.
이번 나들이
는 2박3일 일정으로 삼척(三陟)에서 동해바다를 따라 포항(浦項)까지 벌였는데, 첫날에
는 울진(蔚珍)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 후배와 삼척의 여러 명소를 둘러보고 그의 부구
(울진군 북면 중심지) 숙소에서 고기와 곡차로 간만에 회포를 풀며 1박을 머물렀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망양정(望洋亭)과 월송정(越松亭) 등 울진의 대표급 명소를 둘러보
고 후포항에서 저녁으로 물회정식을 섭취했다. (울진 망양정, 월송정 ☞
글 보러가기)
저녁을 먹고 후배는 그의 서식지가 있는 북쪽으로, 나는 후포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
고 남쪽으로 유행가의 가사처럼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을 하려고 했지. 하지만 그는
많이 아쉬웠는지 남쪽으로 더 달려 영덕읍에 있는 영덕역까지 나를 태워주고 그의 제자
리로 돌아갔다.
영덕역은 2018년에 개통된 동해선 철도역으로 여기서 부전(釜田)으로 가는 ITX-마음 열
차를 타고 남쪽으로 20여 분을 달려 포항의 관문인 포항역에
도착했다.
포항 땅은 거의 7년 만에 방문으로 오랜 세월 목말라했던 오어사를 미답처(未踏處)에서
지우고자 찾은 것인데, 포항시청 부근 이동(梨洞)에 있는 찜질방에서 하루를 머물며 목
욕과 찜질로 여독에 지친 몸을 푹 끓이고 삶고 달구고 식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포항시내버스로 오천읍(烏川邑)으로 이동하여 오천환승센터에서 두
발을 내렸다. 여기서 오어사로 가는 포항마을버스 오천1번(오천환승센터↔오어사, 하루
7회 운행)을 타야 되는데, 다행히 시간이 맞아서 20분울 대기하니 오천1번이 반갑게 나
타나 활짝 입을 연다.
손님 3~4명을 머금은 오천1번은 서남쪽으로 10분을 달려
오어지 동쪽 밑에 자리한 오어
사 종점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오어사까지 1.2km 걸어가야 된다.
▲ 오어사 동쪽에 넓게 펼쳐진 오어지(吾魚池, 오어호)
♠ 오어사(吾魚寺) 입문
▲ 오어사 일주문(一柱門)
오어사 종점에서 오어사로 인도하는 오어로를 10분 정도 오르면 맞배지붕 일주문이 활짝 마중
을 나온다. 오르막길이긴 하나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 오르면 평지길이 절까지
펼쳐져 별로 힘든 것은 없다.
일주문에는 '운제산 오어사' 현판이 걸려있어 이곳의 정체를 알려주고 있는데,
길 옆에는 오
어지가 은빛물결을 출렁이며 오어사까지 동행을 해준다.
▲ 오어지 옆구리를 따라 펼쳐진 오어로
겨울에 잠긴 저 길의 끝에 나를 이곳으로 부른 오어사가 있다.
▲ 오어지 출렁다리(원효교)
오어사 주차장에 이르니 오어지 서쪽 부분에 늘씬하게 몸을 걸친 출렁다리가 나의 침침한 망
막을 사로잡는다. 그는 '오어지
출렁다리'로 오어사가 원효대사(元曉大師)와 인연이 깊은 곳
임을 강조하고자 '원효교'란 별칭도 지니고 있다.
오어사 수식용으로 지어진 그는 전체 길이 118.8m, 폭 2m, 주탑 높이 15.05m, 주탑 사이의 길
이 82.4m로 다리 동/서에 세워진 주탑 4기에는 잉어와 용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오어사의 설
화를 반영한 것으로 오어지의 물고기(잉어)가 상류로 올라가 용으로 승천한다는 이른바 등용
문(登龍門)의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그 연유로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입신출세(立身出世)
를 기원하는 뜻까지 넣었다고 하니 의미만큼은 정말로 착하다.
용과 관련된 오어사의 지세는 남에서 북으로 회룡(回龍)의 형국을 하고 있는 호미지맥에 해당
되며 이런 지형에 큰 명당이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오어사 자리가 바로 그것에 해당된다고
한
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운제산 동쪽 자락과 오어지둘레길(7km), 원효암으로 이어지는데, 출렁다리
이전에는 오어사 경내에서 계곡에 놓인 다리로 건너편으로 건넜으나 출렁다리의 등장으로 호
수 건너편 접근성이 한결 편해졌다. 또한 오어사 주변의 볼거리도 하나 늘어 여로를 한층 살
찌워준다.
그리고 오어지 주위로는 7km의 오어지둘레길이 닦여져 있는데, 오어사~대골 구간이
2km, 오어사~안항사입구는 3.6km이다.
▲ 북쪽(자장암 입구)에서 바라본 오어지 출렁다리(원효교)
다리 주탑에 용과 잉어가 문신처럼 깃들여져 있어 다리를 건너는 이들의
번영과 출세를 기원하고 있다.
▲ 오어사 경내로 인도하는 기와문
▲ 사물(범종, 목어, 법고, 운판)을
머금은 팔작지붕 범종각
운제산(雲梯山, 478m) 동쪽 산골에 포근히 깃든 오어사는 포항 북부에 자리한 보경사(寶鏡寺)
와 함께 포항 지역의 대표적인 고찰(古刹)로 신라 진평왕(眞平王) 시절에 자장율사(慈藏律師)
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처음 이름은 항사사(恒沙寺)로 항하수(恒河水)의 모래알처럼 많은 이들이 속세를 벗어났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 하며, <오어사 주변 지역을 항사리(恒沙里)라 부름>
7세기에는 원효대사
와 의상대사(義湘大師). 혜공선사(惠空禪師)가 이곳에서 수도했다. 특히 원효와 혜공은 이곳
을 좋아하여 오래 머물렀다고 하는데, 그들은 선문답을 즐기며 서로의 실력을 견주면서 가깝
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계곡을 거닐다가 난데없이 물고기를 잡아먹고 바위에
엉덩이를 까고
볼일을 보았다.
그랬더니 뱃속에 들어갔던 물고기가 살아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 중 하나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다른 하나는 아래로 내려갔다고 한다. 하여 그들은 서로의 물고기라 우겼고, 혜공은
'그대가 싼 똥은 내가 잡아먹은 물고기일 것이오!'
희롱했다. 그로 인해 절 이름이 '나는
물
고기'를 뜻하는 오어사로 갈렸다고 한다.
과연 그들이 물고기를 잡아먹고 그 물고기가 살아났는지는 운제산 산신도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이나 그만큼 그들의 명성이 높았음을 비유해서 알려주는 것 같으며, 오어사의 창건과 원
효와 혜공의 물고기 이야기, 오어사로 이름이 갈리는 내용 등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있
다. 물론 삼국유사에 나오는 오어사가 과연 이곳인지는 결코 장담할 수 없다. 신라 때 유물과
흔적은 남아있는 것이 없으며, 창건 이후 18세기까지 13세기에 조성된 동종을 제외하면 적당
한 사적도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효는 오어사 주변에 원효암을 짓고 자장암을 손질하여 이들을 관리했는데, 두 암자가
계곡
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고 자장암은 높은 벼랑에 붙어 있어 왕래가 불편했다.
그래서
신통력으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오갔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산 이름이 구름사다리를
뜻하는 '
운제산'이 되었다고 한다.
<신라 2대 제왕인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의 왕후로
운제(雲梯)부인이 있는데, 그를
봉안한
성모단(聖母壇)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음>
▲ 말라버린 석조와 목도리를 두룬 동자상
겨울 제국의 심술로 운제산이 베푼 물은 사라지고 하얀 밑바닥을 앙상하게
드러내고 있다. 물통을 든 동자상은 붉은 목도리를 걸치며 겨울의
추위 갑질을 묵묵히 견딘다.
오어사로 이름이 갈린 이후 조선 중기까지 적당한 사적(事蹟)은 전하지 않으나
고려시대 동종
이 전하고 있어 고려 때도 그런데로 법등(法燈)을 유지했음을 알려준다. 1741년 대웅전을 중
수하고 1765년에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을 조성했으며, 18~19세기에 많은 경전과 서적을 간행
했다. 그리고 이후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른다.
운제산 그늘에 묻힌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해 나한전과 설선당, 칠성각, 산령각, 성
보박물관 등
10여 동의 건물이 있으며, 자장암과 원효암을 부속암자로 두고 있다. 소장문화유
산으로는 국가 보물인 동종과 지방문화재인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있으며,
원효대
사가 썼다는
삿갓과 조선 후기 승탑들, 조선 후기 서적과 문서들, 목비 등이 전해져 절의
오
랜 내력을 귀띔해준다.
운제산의 부드러운 능선과 주름진 기암절벽, 절 옆구리를 흐르는 오어사계곡, 절 앞에 그림처
럼 펼쳐져 신선한 호수 바람을 선사하는 오어지가 상큼하게 어우러진 경승지로 여기서
비록
산을 넘어가야 되지만 경주(慶州)
땅과도 의외로 가깝다. 경주 경계까지는 4km 정도이고
경주
암곡동 마을까지는 7km이다.
* 오어사 소재지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34(오어로1, ☎ 054-292-2083)
♠
오어사의 보물창고, 성보박물관
▲ 오어사 성보박물관(왼쪽 맞배지붕 집)
오어사 경내로 들어서면 범종각과 성보박물관이 나란히 마중을 한다. 범종각
옆에 자리한 성
보박물관은 맞배지붕을 지닌 작은 기와집으로 거추장스러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면 되
는데, 고려 동종과 원효대사의 삿갓, 조선 후기 서적과 문서, 목비 등
오어사가 자랑하는 보
물들이 담겨져 있으니 꼭 챙겨보기 바란다. (관람시간 9~18시)
▲ 오어사 대웅전 상량문(上樑文)
1741년에 대웅전을 지으면서 작성한 상량문으로 대웅전 건립시기와 화주(化主)인
치철(致哲) 등 건립에
참여한 이들이 기록되어 있다.
▲ 영일(迎日) 운제산 오어사
사적
1774년 승려 화압(花押)이 작성한 오어사의 일기장으로 오어사의 연기설화와
자장, 혜공, 원효, 의상의 이야기를 담아 그들과 이곳의 끈끈한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과
화엄현담회현기(華嚴玄談會玄記)
그 이름도 유명한 묘법연화경은 조선 후기에 간행된 것으로 1688년 경주
천룡사(天龍寺)에서
발행한 경판을 찍어서 인출한 것이다. 그리고 화엄현담회현기는 조선 말에 간행된 것으로 중
원대륙 화엄종(華嚴宗)의 제4대조인 징관(澄觀, 738~839)의 '화엄현답'에 대해서 보서(普瑞)
가 주석을 붙인 것이다. 하여 화엄종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서적으로 평가를 받는다.
▲ 조선 후기에 간행된 범음집(梵音集)과
불경권공요집(佛經勸供要集),
참회문(懺悔文) 등
▲ 서산대사의 운수단(雲水壇)
서산대사(西山大師)가 헌공의식문을 선(禪)의 입장에서 재정리한 것으로
선종(禪宗) 승려들의 필수 기본서로 꼽힌다.
▲ 오어사 의상암등촉계원절목(義湘庵燈燭契員節目)
1811년에 작성된 것으로 오어사 의상암(지금은 없음)에서 신행에 정진하며
영가를 천도하고자 향화를 올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 칠성계원유공비(七星契員有功碑,
왼쪽)와
염불계원유공비(念佛契員有功碑, 오른쪽)
검은 피부를 지닌 이들은 목재로 만든 목비(木碑)로 비신(碑身)은 목재, 아랫도리인 비좌(碑
座)는
돌로 이루어져 있다.
왼쪽의 칠성계원유공비는 오어사 불자와 선비들이 조직한 칠성계(七星契)가 사찰 운영에 공이
있었음을
기리고자 1864년에 세운 것이며, 오른쪽 염불계원유공비는 오어사 승려와 마을 사람
등 150여 명이 염불계(念佛契)를 조직하고 절 재정을 마련했던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1823년
에 세웠다.
▲ 원효대사가 썼다고 전하는
의문의 늙은 삿갓
허름하게 생긴 이 삿갓은 오어사에서 크게 내세우는 보물로 무려
원효대사가 썼다고 한다. 만
약 원효의 체취가 담긴 삿갓이 맞다면 천하에서 가장 오래된 삿갓이자 모자(금, 은, 동으로
만든 것은 제외)가 되며, 1,400년 가까이 묵은 존재로 국가 국보나 보물로 삼아도
전혀 손색
이 없는 값비싼 존재가 된다.
하지만 지방문화재는커녕 어떠한 지정문화재로도 지정되지 못한 것을 보면 원효대사의 삿갓설
은 식민사관 쓰레기들이 장악한 역사학계에서도, 속세에서도 그리 인정을 받지 못한 모양이다.
딱 봐도 수백 년은 묵은 늙은 삿갓은 분명해 보이나 그렇다고 신라나 고려까지 갈 것 같지도
않으며, 조선 때 이곳에 있던 승려가 남긴 삿갓을 나중에 원효의 것으로 둔갑시켜 절을 홍보
하는 용도로 사용했을 것이다.
삿갓 옆에는 1,000원 지폐가 수두룩하게 쌓여있는데, 두 귀에 익은 신라 승려가 썼다는
삿갓
이라고 하니까 중생들이 너무 신기하여 소망을 들이밀고 마구 넣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보
다 훨씬 돈이 많은 부자 삿갓이 되었다. 어쨌든 삿갓이 벌어들인 돈이니
절을 위해 쓰지 말고
속세와 중생을 위해 쓰기 바란다. 삿갓 주인도 그것을 원할 것이며, 그것이 절과 불교의 본분
이다.
▲ 오어사 동종(銅鐘) -
국가 보물
시커먼 피부를 지닌
동종은 이곳에 유일한 국가문화유산으로 원효대사 삿갓과 더불어 이곳의
대표 보물로 애지중지되고 있다. 허나 삿갓은 여전히 정체가 아리송하니 동종이 사실상 이곳
에서 가장 늙은 존재이며 진정한 1급 보물이다.
신라 범종의 전통을 잘 계승한 고려 동종으로 덩치가 조금 작은 편인데, 몸체의 위와 아래에
는 횡선 띠를 두르고, 연당초문을 동일하게 새겼으며, ⅓ 정도 되는 곳 위쪽에 사각형의 연곽
을 만들고 그 안에 얕게 돌출된 9개의 연뢰(蓮蕾)를 장식했다. 그리고 종 아랫쪽에는 종을
때
리는 당좌(撞座)를
앞/뒷면에 배치했다.
종 몸통에는 보살 모양의 비천상(飛天像)을 새겼고, 다른 두 면에는 범자(梵字)가 들어간 공
간을 두었는데, 그 안에 아주 고맙게도 종의 조성 시기와 조성 장소, 종을 만든 이들의 정보
가
쓰여있다.
이를 통해 종을 만든 책임자는 동화사(桐華寺) 승려인 순성이며, 주조기술자는 대장 순광(大
匠 順光)으로 1216년에 300근으로 종을 만들어 오어사로 보냈음을 알려준다.
이 소중한
기록
으로 고려 동종의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를 받아 국가 보물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고려 중기부터 오어사에 있던 종이나 고려 말이나 조선 어느 시기에 인재(人災)나 자연재해로
절이 파괴되면서 종도 큰 고통을 받게 되었다. 비록 손상이나 도난은 면했지만 땅속에 생매장
을 당했던 것이다.
한참에 시간이 흐른 1995년 11월 오어지 공사 도중에 겨우 발견되어 다시금 햇살을 보게 되었
는데, 다행히 건강상태는 양호했다. 이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로 옮겨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1997년 7월 오어사로 돌아왔으며, 성보박물관에 들어가 전시 유물로 이렇게 한가로운 여생을
보내고 있다.
예전처럼 타종도 해서 종의 이름값을 해야되겠으나 워낙 늙은 몸이라 그것은
무리이며, 그의
주변에는 중생들이 넣은 1,000원짜리와 동전이 수북하여 그런데로 밥벌이는 하고 있다.
♠ 오어사 둘러보기
▲ 오어사 대웅전(大雄殿) - 경북 유형문화유산
경내 한복판에
자리한 대웅전은 이곳의 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이다. 언
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건물은 1741년에 중건된 것이며 안에는 1765년에 조성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대한제국 시절에 제작된 지장탱 등이 들어있다.
▲ 서쪽에서 바라본 대웅전
▲ 대웅전 문짝에 주렁주렁 피어난
수수한 색깔의 꽃창살
▲ 대웅전 지장탱
1900년에 조성된 탱화로 지장보살과 도명존자(道明尊者) 등 명부(저승)
식구들이 그려져 있다.
▲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 경북 유형문화유산
온화한 표정을 지은 금빛 피부의 대웅전 삼불좌상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약사여래(藥師如來)
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나무로 만들어 도금을 입힌 것으로 석가여래상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보이고 있
으며, 좌우 불상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지어 전체적으로 좌우대칭을 이룬다. 그들
뒤로 고
운 색채의 후불탱이 든든하게 걸려있는데, 석가여래가 앉아있는 대좌(臺座)
상면에 조성 관련
명문이 살짝 깃들여져 있어 1765년에 수조각승 상정(尙淨)을 중심으로 5명의 조각승이 조성했
음을 고맙게도 알려주고 있다.
이 불상은 상정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안정적인 비례와 입체감 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
▲ 관음전(觀音殿)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툇마루를 갖추고 있다.
▲ 석조관세음보살상
파리도 능히 미끄러질 정도로 매끄러운
하얀 피부를 지녔다.
▲ 삼성각(三聖閣, 앞쪽)과 산령각(山靈閣, 뒤쪽)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 집으로 칠성(七星)과 독성(獨聖), 용왕(龍王)의 공
간이다. 흔히 칠성과 독성, 산신(山神)이 삼성각의 삼성(三聖)을 이루나 이곳은 바다와
가깝
고 오어지를 옆에 끼고 있어서 산신을 별도의 공간으로 내보내고 특별히 용왕을 섭외해 삼성
의
일원으로 챙기고 있다.
그 뒤쪽에 자리한 산령각은 1칸짜리 맞배지붕 집으로 산신의 전용 공간이다.
▲ 산신 가족의 단란함이 엿보이는
산령각 산신탱
▲ 응진전(應眞殿)
석가여래와 그의 열성제자인 16나한의
거처이다.
▲ 제각각의 표정과 자세를 취한 응진전 16나한상 ▲
석가여래 좌우로 8명의 나한씩, 총 16나한이 담겨져 있다.
▲ 동쪽에서 바라본 경내와 운제산의 주름진 벼랑
▲ 높은 벼랑 위에 들어앉은 자장암(慈藏庵)
오어사 북쪽에 깎아지른듯한 높고 견고한 벼랑이 솟아 있다. 주름선을 진하게 출렁이는 그 벼
랑 윗도리를 살펴보면 기와집 같은 것이 보일 것인데, 그 집이 오어사의 부속암자인 자장암이
되겠다.
오어사보다 해발 100m가 높은 210m 고지에 들어앉은 자장암은 이름 그대로 자장율사가 창건했
다고 전하며, 원효대사가 중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암자는 근래 이루어진
것이라
고색
의 기운은 싹 마른 상태이다.
법당인 2층짜리 설법전(說法殿)을 비롯해 산신각 등 3동 정도의 건물을 지니고 있으며 타일랜
드(태국)에서 받은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세계일화세존진신사리탑을 지니고 있어 오
어사
주변의 차세대 명물로 키우고 있다.
오어사에서 10분 정도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가야 되며, 자장암 북쪽은 오어재로 속세로 내려
가는 포장길이 닦여져 있어 차량 접근도 가능하다. 자장암도 둘러보았으나 사진에 별로 담지
못했고, 그나마 담은 사진도 상태가 별로라 분량상 본글에서는 생략한다.
▲ 오어사 부도군(승탑군)
오어사에서 자장암으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 승탑<僧塔, 부도(浮屠)>의 공간이 있다. 3면에는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작은 기와돌담을 두르고 북쪽은 석축을 쌓아 구획을 닦았는데, 이
런
부도(승탑)의 공간을 흔히 부도군(浮屠群), 부도전(浮屠殿)이라 부른다.
이곳에는 7기의 석종형 승탑과 비석 1기가 옹기종기 모여 나란히 촬영에 임하고 있는데, 이들
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다들 세월을 정면으로 타서 피부가 시커멓다. 승탑 1기만 지붕
돌을 지니고 있으며, 다들 키가 작아서 대좌 위에 커다란 대추를 올려놓은 듯 귀엽게
다가온
다.
▲ 서쪽에서 바라본 오어사 부도군(승탑군)의 위엄
♠ 운제산과 원효암
▲ 오어지 출렁다리(원효교) 속에서
오어사를 둘러보고 원효암을 찾고자 오어지 출렁다리를 건넜다. 원효암은 출렁다리나 오어사
계곡에 있는 다리(오어사 경내에서 접근하면 됨)를 건너가면 되는데, 기왕 왔으니 착한 의미
를 넣었다는 출렁다리를
택했다.
출렁다리란 이름 그대로 다리가 조금 꿈틀거리며 여기서 바라보는 오어지의 풍경이 일품이나
아쉽게도 겨울 가뭄으로 물이 ⅓ 이상 말라버렸고 오어지에 크게 물을 대는 오어사계곡도 바
짝 마른 상태라 흙이 가득했다.
▲ 오어지 출렁다리(원효교)에서 바라본 오어사와 푸른 겨울 하늘
▲ 오어지 출렁다리(원효교) 남쪽 숲길
출렁다리를 건너면 오어사계곡 건너편인 운제산 동쪽 자락으로 들어서게 된다. 여기서
오어지
테두리를 따라가는 오어지둘레길(7km)과 운제산 동쪽 봉우리로 오르는 동쪽 능선길로
길이 갈
리는데, 오어사 후식용으로 삼은 원효암을 찾고자 동쪽 능선길로 들어섰다.
▲ 솔내음이 그윽한 운제산 동쪽 능선길
▲ 운제산 동쪽 능선에서 바라본 천하 ①
오어사 북쪽 능선인 오어재 너머로 포항 시내와 포항제철을 비롯해
동해바다까지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 운제산 동쪽 능선에서 바라본 천하 ②
앞 사진보다 더 윗쪽으로 오어재 자락에 작게 보이는 자장암을 위시해
포항 시내와 포항제철, 동해바다가 뚜렷하게 바라보인다.
▲ 원효암 직전 산길
▲ 힘차게 쏟아지는 원효암 샘터
운제산 동쪽 능선길을 거닐다가 저 밑으로 원효암이 딱 시야에 들어왔다. 허나 저곳으로 내려
가는 길이 능선길을 더 타야 나온다고 해서 급한 마음에 질러가는 길을 찾고자 주변을 탐색하
니 다행히 가파른 경사길이 손짓을 보낸다. 나무들이 모두 메마른 한겨울이라 시야 확보도 쉬
워서 그 길을 미끄러지듯 총알처럼 내려가 원효암 밑에 닿았다.
거기서 자세를 가다듬고 원효암으로 인도하는 오르막길과 돌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가니 그 길
의
끝에 원효암(元曉庵)이 활짝 열린 모습으로 마중을 한다.
▲ 원효암 관음전(왼쪽)과 요사채(오른쪽)
오어사의 부속암자인 원효암은 오어사 남쪽 산자락에 푹 묻힌 작은 산중암자로 원효대사가 창
건했다고 전한다. 그는 오어사에 머물면서 좋은 터라는 이곳에 암자를 짓고 수도를 했다고 하
며, 여기서 혜공과 법력을 겨루었다고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설화이다.
창건 이후 20세기까지 어떠한 사적도 전하지를 않아 암자라기 보다는 오어사 승려의 수행공간
으로 쓰인 듯 싶으며, 대한제국 시절 탱화가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현재 암자가 들어
선
것으로 여겨진다.
1954년에 요사채를 지었고, 1984년에 법림이 삼성각을 중건했으며, 1999년 관음전을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조촐한 경내에는 법당인 관음전을 비롯해 3~4동의 건물이 있으며, 19~20세기
초에 제작된 탱화를 여럿 간직하고 있다.
* 원효암 소재지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166
▲ 2칸짜리 원효암 삼성각
산신과 칠성, 독성의 공간이다.
▲ 원효대사의 진영(眞影)
◀
관음전 신중탱
법당 지킴이 탱화로 여러 호법신들이
한가득 담겨져 있다.
▲ 관음전 관세음보살상과 협시불
원효암의
법당인 관음전은 이름 그대로 관세음보살이 중심 존재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익은
아줌마 얼굴을 지닌 관세음보살 누님 좌우로 특이하게도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훨씬 작
은 아기부처와 비로자나불이 협시불(夾侍佛)로 자리해 있다.
부처(석가여래)와 비로자나불은 불상급으로 관세음보살보다 등급이 높아 보통 석가여래나 비
로자나불, 아미타여래가 중심에 있고 그 협시보살상으로 관세음보살을 두기 마련이나 이곳만
큼은 관세음보살이 중심 존재로 크게 들어앉아 그들을 협시불로 거느리는 위엄을 보인다.
▲ 원효암을 뒤로 하며~~ (석축 위에 들어앉은 원효암)
▲ 원효암 계곡길
원효암에서 오어사로 내려가는 길은 벼랑 사이를 지나는 계곡길이다. 원효암 윗쪽에서 발원하
여 오어사계곡으로 흘러가는 직은 계곡으로 작은 폭포와 담(潭, 못), 바위가 적당하게 펼쳐져
소소하게 절경을 자아낸다.
▲ 누런 낙엽들의 마지막 물놀이 현장
작년 말에 떨어진 낙엽들이 여전히 계곡을 맴돌며 겨울 제국에 시위를 벌인다. 계곡 주변에도
귀를 접고 누운 낙엽들이 가득하여 그들의 시위를 거둔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다고 저들은 다
시
파릇파릇한 나뭇잎이 되지는 못한다.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는 겨울 제국이 저들의 시위에
눈이나 깜빡하겠는가.
계곡은 세상에 미련이 많은 낙엽들을 조용히 밑으로 보내거나 분해시켜주어 저들의 인생을 종
료시켜주는 블랙홀 역할을 한다. 한번 흘러간 것은 어지간해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세상의 무서운 이치이다.
▲ 벼랑길 수준으로 돌변한 원효암계곡길
오어사가 가까워지니 계곡을 따라 순탄하게 이어지던 길이 돌연 벼랑길로 안면을 바꾼다. 진
행 방향(오어사 방향) 왼쪽은 벼랑이 병풍처럼 높이 둘러져 있고, 난간 바깥도 벼랑이며, 길
도 좁아서 통행에 주의가 필요하다.
▲ 오어사계곡 건너편(오어사~원효암 산길)에서 바라본 오어지와
출렁다리(원효교)
▲ 오어사계곡 건너편(오어사~원효암 산길)에서 바라본 오어사
사진 윗쪽 벼랑에 작게 보이는 기와집이 자장암이다.
▲ 오어사와 원효암을 잇는 오어사계곡 다리
다리 건너편이 바로 오어사 경내이다.
▲ 바짝 마른 오어사계곡 (오어사 옆)
겨울 제국의 추위 갑질로 겨울 가뭄까지 극심해
계곡은
황량한
모래벌판 같은 모습이다.
▲ 자장암에서 바라본 오어사(사진 가운데 부분)와 오어사계곡
▲ 오어사를 뒤로 하며 다시 속세로 (오어로)
오어사로 다시 내려와 해발 210m 벼랑에 자리한 자장암을 마지막 메뉴로 둘러보고 오어사 나
들이를 마무리 지었다. 오어사와 부속암자 2곳, 그리고 오어지 출렁다리까지 그날 메뉴를
별
무리 없이 싹 소화하니 마음이 뿌듯하다.
이렇게 보람찬 하루를 만들어준 오어사와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오어사 종점으로 내려가는데
속세로 향하는 발걸음이 왜 이렇게 무거운지 몇번을 돌아봤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있어야
될 곳은 오어사가 아닌 나의 제자리이다.
이렇게 하여 한겨울 포항 오어사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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