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대빈궁경우궁과 선희궁, 저경궁 사이에 자리한 대빈궁은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인 희빈장씨의 사당이다. 그 유명한 희빈장씨는 숙종의 왕후인 인현왕후와의 권력 싸움에서 최종 패배하여 결국 1701년 쓰디쓴 사약을 1사발 들이키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가 죽자 숙종은 그의 신위를 정동에 봉안했다.1722년 경종은 어미를 옥산부대빈으로 추존하고 경행방 교동에 사당을 세워 대빈묘라 했으며, 1870년 선희궁처럼 육상궁으로 옮겼다가 1887년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1908년 다시 육상궁에 통합되었다. 2. 1열로 나란히 자리한 경우궁(선희궁)과 대빈궁, 저경궁 (오른쪽부터)4열로 닦여진 장대석 석축 위에 3열로 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사당을 얹혔다. 4열로 된 석축 가운데인 대빈궁에 돌계단을..

1. 칠궁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 덕안궁 내부 사진 (감실과 신주)칠궁을 이루고 있는 7개의 사당(궁)과 부속건물들은 모두 내부 공개를 하지 않는다. 하여 굳게 닫힌 모습으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2. 길쭉한 모습의 수복방내삼문과 자연(연못) 사이에 자리한 수복방은 7칸짜리 맞배지붕 건물이다. 칠궁을 관리하는 사람의 숙소 및 창고로 1753년에 육상묘(숙빈최씨의 사당)가 육상궁으로 격이 높여지면서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3. 수복방 옆 내삼문칠궁 바깥에서 칠궁 사당으로 가려면 3개의 문을 거쳐야 된다. 내삼문은 그 가운데 문으로 삼문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굳이 이 문이 아니더라도 재실 동쪽에 있는 중문을 통해 칠궁 중심부로 들어서도 된다. 4. 서쪽에서 바라본 냉천정냉천정은 정면 5칸..

1. 육상궁과 연호궁육상궁은 영조의 생모이자 숙종의 후궁인 숙빈최씨의 사당이다. 칠궁 자리에 처음부터 있었던 터줏대감 같은 존재로 영조가 재위에 오른 1724년 경복궁 북쪽인 현재 자리에 생모의 사당을 세울 것을 명령하여 1725년에 완성을 보았다.처음에는 숙빈묘라 했으며, 1744년에 육상묘로 묘호를 갈았다. 그러다가 1753년 사당의 격을 '廟'에서 '宮'으로 크게 높였는데, 이때부터 제왕들이 왕후(황후)에 오르지 못한 생모의 사당을 짓는 사묘 제도가 제대로 형식을 갖춘 것으로 여겨진다.1878년 화재로 쓰러진 것을 다시 세웠으나 1882년 다시 화재를 만나면서 건물은 물론 숙빈최씨의 신주와 옥책, 은인까지 싹 화마의 덧없는 먹이가 되고 말았다. 다만 이곳에 들어있던 영조의 어진은 송죽헌으로 피신시켜..

1. 칠궁 냉천정육상궁, 연호궁 구역과 선희궁, 경우궁, 덕안궁, 대빈궁, 저경궁 사이에 냉천정이 자리잡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시원스런 팔작지붕 집으로 영조가 선희궁에 봉안된 모후 숙빈최씨의 제사를 준비하고 제사 뒷풀이 및 휴식을 취했던 곳이다.언제 지어졌는지는 북악산(백악산) 산신도 모르는 실정이나 육상궁이 처음 지어진 때에 마련된 것으로 여겨지며, 영조의 어진을 봉안했던 곳이라 봉안각이라 불리기도 했다. 순조 이후부터 냉천정으로 이름이 갈린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름은 동쪽 옆구리에 있는 냉천이란 우물에서 비롯되었다.집은 서쪽 2칸은 온돌방, 동쪽 1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으며, 칠궁이 비록 속세에 열린 공간이지만 냉천정 뒤쪽과 냉천만큼은 여전히 통제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그 앞으로만 지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