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돈암서원 정회당정회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시원스런 팔작지붕 집이다. '정회'는 유생들의 수행 방법의 하나로 고요함을 몸소 실천하며 수행한다는 뜻인데, 김장생의 부친인 김계휘가 후학을 양성하던 집으로 원래는 이곳이 아닌 대둔산 자락 고운사터에 있었다.1954년 이곳으로 가져와 돈암서원의 몸집을 한층 살찌워주었으며, 건물 가운데 2칸에는 마루방을 두고 우물마루를 깔았다. 2. 양성당양성당은 유생들이 공부를 하던 강당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이다. 중앙 3칸은 전후에 툇마루를 둔 대청이며, 좌우로 온돌방 1칸을 두었다. 1881년 숲말에서 이곳으로 서원을 옮겼을 때 이곳의 중심 강당인 응도당을 가져오지 못하고 양성당을 가져와 중심 강당으로 사용했다. 3. 돈암서원원정비돈암서원 원..

1. 응도당에 걸린 돈암서원 현판의 위엄응도당은 돈암서원의 상징 같은 존재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집이다. 돈암서원에서 가장 큰 건물로 강당 역할을 했는데, 돈암서원의 건물 배치와 규모는 사계 김장생이 쓴 '의례'와 '주자대전'을 고증해 강경에 있는 죽림서원의 법도를 따라 지었다. 건물 내부는 모두 마루를 깔았고, 옆면에는 비바람을 막는 풍판을 달았는데, 풍판 밑에는 눈썹지붕을 두었다. 처마의 암막새 기와에 '숭정육년계유이월일서원'이란 글이 있어 1633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우리나라 서원 건축물에서 가장 큰 건물로 두고두고 추앙을 받고 있다. 그로 인해 서원 건물 중 별도로 국가 보물의 큰 지위를 누리고 있다. (돈암서원은 국가 사적의 지위를 누리고 있음) 2. 확대해서 바라본 돈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