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경기고등학교에 둥지를 튼 시민과 학생의 지식 쉼터 정독도서관(正讀圖書館) 주변
 ▲ 정독도서관으로 거듭난 화동 구 경기고교 - 등록문화재 2호 |
감고당길과 북촌길이 만나는 화동(花洞)에 지식의 마르지 않는 샘인 정독도서관이 자리해 있다. 화동은 화개동(花開洞)의 줄임말로 조선 때 과일과 화초(花草)를 관장하고 궁궐에 조달하던 장 원서(掌苑署)란 관청이 있었다.
정독도서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인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곳으로 1900년 10월 고종의 칙령(勅令)으로 개교한 관립중학교(官立中學校)에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원래는 김옥균과 서재 필(徐載弼)의 집이 나란히 있었으나 갑신정변 이후, 나라에서 몰수했으며, 1900년 관립중학교 부지에 포함되면서 집은 사라졌다. 개교 당시에 건물 정면 삼각지붕 벽면에 태극기를 교차하여 그린 것으로 유명했으며,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가 교편을 잡기도 했다.
1906년 관립한성고등학교로 개편되고 왜정 때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로 바뀌었으며, 본관 뒤쪽 에 있던 을사5적의 하나인 박제순(朴齊純)의 집을 땅을 바꾸는 조건으로 매입해 평탄작업을 벌 여 기존 3,000평에서 11,000여 평으로 크게 확장되었다.
도서관 건물로 쓰이고 있는 옛 경기고 건물은 1938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강남 개발이 한참이던 1976년 청담동(淸潭洞)으로 둥지를 옮겼다. 서울시의 권고라고는 하지만 학교 입장에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곳 땅값이 상당하며, 당시 청담동은 매우 저렴했다. 그 래서 쏠쏠하게 땅값 이득을 챙기고 쿨하게 강남으로 넘어간 것이다. 경기고가 떠나자 서울시에서는 그해 1월 옛 건물과 땅을 사들여 1년 간 손질을 거쳐 1977년 1월 4일 서울시립 정독도서관으로 세상에 내놓았으며, 현재 50여 만 권의 서적과 1만 7천여 점의 비 도서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또한 남쪽 건물을 손질하여 서울교육박물관으로 삼았다.
서울에서 어느 정도 공부 좀 했다는 사람은 꼭 거쳐갈 정도로 역사와 유서가 깊은 서울 제일의 도서관으로 단골이 꽤 많으며, 평일과 휴일 가리지 않고 자리 잡기가 힘들 정도다. 나 역시 여 러 번 이곳에 와 공부를 한답시고 책만 펴놓고 꿈나라를 허우적거린 얇은 추억이 있다. 다른 도서관과 달리 정원이 깔끔하고 아름다우며, 나무가 무성해 굳이 공부나 서적 대출이 아니 더라도 산책이나 나들이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또한 도서관 동쪽에는 한때나마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종친부의 옛 건물이 있었고, 300년 정도 묵은 회화나무와 본관 뒤에 정체가 묘한 오래된 우물과 여러 석물이 있어 소소하게 고색의 볼거리를 선사한다. 북촌이 서울 관광의 성지의 부상하면서 그 한복판에 박힌 이곳 역시 그 후광을 입어 북촌 나들 이에서 필수로 가야되는 명소가 되었다. 그래서 공부나 책 때문에 오는 사람보다 나들이/출사로 온 사람이 더 많을 정도이며, 우리나라 도서관 가운데 유일하게 관광지화가 되었다. 관광객들이 많아 공부가 되겠는가 싶겠지만 고즈넉하고 조용한 북촌의 일부라 도서관 분위기도 차분하여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도서관이니만큼 건물 내부와 열람실에서 고성방 가를 자행하거나 공부/독서를 방해하는 행위는 마땅히 삼가해야 될 것이다.
※ 정독도서관 관람정보 (2013년 5월 기준)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를 나와서 안국동로터리에서 감고당길로 도보 10분 * 시내버스 이용시 안국역(종로경찰서)이나 안국동(조계사)에서 내려서 도보 10분 * 도서관 이용시간 : 평일 9시~22시 / 주말 9시~17시 (1,3주 수요일 휴관) * 서적 대출은 정독도서관 홈페이지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자료실에 신분증을 들고 찾아가면 대 출회원증을 발급해준다. 대출 기간은 2주이며, 1회에 한해 연장 가능하다. * 서적 대출 및 도서관 이용비는 공짜 (서울시 교육청에서 운영함)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 2 (북촌로 5길 48, ☎ 02-2011-5799) * 정독도서관 홈페이지는 아래나 위의 사진을 클릭한다. |
 ▲ 정독도서관 4거리 - 이곳에 북촌관광안내소가 있다.
 ▲ 서울교육박물관
|
정독도서관 남쪽에 자리한 서울교육박물관(서울교육사료관)은 옛 경기고 건물을 활용한 붉은 벽 돌의 중후한 건물이다. 호랑이가 곶감의 눈치를 보던 옛날부터 가깝게는 내 학창시절의 이르기 까지(1980~90년대) 교육 관련 유물과 서적(내 학창시절 초등학교 교과서와 일기, 학용품, 장난 감, 중/고등학교 명찰, 소풍 관련 디오라마 등) 1만 2천여 점과 디오라마와 교육 현장 등이 재 현되어 있다. 특히 특별전시장에는 우리네 학창시절 학교 앞 구멍가게와 문방구, 1990년대 이전 초등학교 교 실 등이 재현되어 아련한 옛 추억으로 인도한다. 먼 시절도 아니고 바로 내 어린 시절이다. 이 렇게 쓰면 내가 나이가 꽤 많은 것처럼 오인하기 쉽지만 난 아직 30대의 한참을 달리고 있는 중 이다. 또한 교복과 모자, 교련복을 입고 기념 촬영을 하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북촌에 별처럼 널린 박물관 대부분은 야박한 가격의 입장료를 받아 손이 매우 후들거리는데 반 해 이곳은 시립이라 공짜다. 우리나라 교육 박물관의 성지로 이 땅의 30대 이상은 물론 아이를 둔 사람들도 꼭 들려볼만한 유익하고 영양가 높은 곳이다.
* 관람시간 : 9시~18시 (토요일과 일요일은 17시까지) * 1,3째 주 수요일과 법정공휴일은 쉰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2 (☎ 02-736-2859) * 서울교육박물관 홈페이지는 ☞ 이곳을 클릭한다. |
 |
 |
▲ 어린 시절에 절찬리에 쓰던 장난감들 요즘 애들도 저런거 가지고 노는지? |
▲ 초등학교 교과서 나도 저런 교과서로 공부했는데.. |
 |
◀ 김옥균(金玉均) 집터 표석 갑신정변으로 역적으로 몰렸던 김옥균과 홍영식, 어윤중(魚允中), 서광범(徐光範) 등은 1910년 7 월 시호가 내려지면서 역적의 굴레에서 벗어났 다. 이때 김옥균의 연시예식(延諡禮式)이 옛 집 터이던 한성고등학교에서 열렸는데, 김옥균의 부인인 유씨가 옛 집터를 돌려달라고 청원을 했 으나 거절당했다. |
 ▲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宗親府 敬近堂/玉牒堂) - 서울 지방유형문화재 9호
|
정독도서관 동쪽 구역에 고색이 창연한 기와집 2채가 익랑(翼廊)으로 이어져 있는데, 이들은 종 친부 건물인 경근당과 옥첩당이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가 있음)
종친부(宗親府)는 경복궁 건춘문(建春門) 동쪽(옛 국군서울병원)에 있었는데, 조선 역대 제왕( 帝王)의 어보(御寶)와 영정을 보관하고, 제왕 내외의 의복을 관리하며, 왕족들의 관혼상제와 봉 작(封爵), 벼슬 등의 인사문제, 기타 그들과 관련된 업무를 보던 관청이다. 처음에는 제군부(諸 君府)였으나 1433년에 종친부로 이름을 갈았으며, 1864년(고종 1년)에는 종부시(宗簿寺)와 합쳐 지고 1894년 종정부(宗正府)로 개편되었다. 1907년 순종(純宗)의 칙령(勅令)으로 황실과 국가의 주요 문서를 보관하던 규장각(奎章閣)으로 쓰였다가 1910년 이후 왜정은 이곳에 있던 서적들을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으로 옮기고 건물 도 상당수 부셔버리면서 달랑 경근당과 옥첩당만 살아남게 되었다.
이후 이곳에 국군서울병원(기무사)이 들어서면서 통제구역이 되었다가 1981년 경근당과 옥첩당 이 정독도서관으로 강제로 이전되었으며, 그들의 건강을 위해 주위로 얕은 철책을 둘러 속인들 의 출입을 막고 있다. 또한 우물(서울 지방문화재자료 13호)은 뚜껑이 닫힌 채 종친부터를 지키 고 있다. 2011년 이후 국군병원은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고, 그 자리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2013년 11 월 개관 예정)을 짓고 있다. 그래서 31년 동안 도서관에 얹혀살던 종친부 건물을 2012년 후반에 원자리로 옮겼으며, 도서관의 옛 종친부 자리는 현재 대머리처럼 텅 비어있다. 그래도 제자리로 돌아갔으니 참 다행이 아닐 수 없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되면 우물과 같이 있게 될 종친부 건물을 보게 될 것이다. |
 ▲ 경근당(敬近堂) -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규모가 크다.
 ▲ 옥첩당(玉牒堂) -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
 |
◀ 정독도서관 동쪽에 뿌리를 내린 회화나무 300년 정도 묵은 지긋한 나무로 높이 11m, 둘레 3.6m에 이른다. 이곳을 거처간 건물이나 인물이 한둘이 아니라 정신이 없지만 회화나무만은 그 대로 그 자리를 지키며 이곳에 깃든 이야기 보 따리를 마음껏 풀어준다. 또한 시원한 그늘까지 드리우며 속인들에게 독서를 장려하고자 애쓴다. 서울시 보호수 1-7호 |
 ▲ 도서관 본관과 2관 사이에 있는 오래된 우물돌
|
정독도서관 본관(1관)과 2관 사이에는 조금은 생뚱 맞은 외의의 유물이 하나 있다. 도서관을 찾 은 사람들은 그를 죄다 지나치기 일쑤인데, 그는 정독도서관 내부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인 동그 란 우물돌이다. 우물이 있는 이 자리는 을사오적(乙巳五賊)의 하나로 그 꼬질꼬질한 이름을 떨친 평제 박제순( 平齊 朴齊純, 1858~1916)의 저택이 있었다. 그는 1900년에 집 정원을 손질하다가 뜻밖에 이 우 물돌을 발견했는데, 의외의 유물이 나온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지 시 1수를 짓고 돌 피부에 새겼다. 그때 새긴 24자가 진하게 남아있는데, 그 내용을 풀이하면 '둥근 우물돌이다. 아마도 전조(고려) 때 것 같은데, 샘은 메어져 흔적이 없고, 다만 돌만 우뚝 하구나. 광무(光武) 4년(1900년) 겨울, 평제(박제순)가 적다' 그때도 우물돌의 낀 고색의 때가 짙어보였는지 막연히 고려 때 우물 같다고 그랬는데, 고려까지 갈 것도 없이 조선 초나 중기에 쓰였던 것 같다. 허나 그에 대한 정보는 박제순의 시 외에는 아 무것도 없으니 그저 딱할 따름이다. |
 ▲ 우물 피부에 새겨진 24자의 박제순의 글씨
|
매국노의 글씨가 자신의 피부에 문신처럼 새겨진 것에 꽤 불쾌했던지 우물의 표정이 다소 일그 러져 보인다. 그렇다고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고로 박제순의 손자인 박승유(朴勝裕, 1924~1990)는 친조부와 아버지의 매국노 행위를 수치스 럽게 여겨 20살에 몸담고 있던 왜군에서 탈영, 광복군(光復軍)에 들어가 많은 활약을 했다. 그 공로로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아 집안의 죄업을 조금이나마 씻었으며, 음악 교수 및 성 악가로도 유명했다. |
 |
 |
▲ 정체가 묘연한 네모난 돌덩이 어떤 구조물을 받치고 있던 좌대(座臺)로 여겨진다. |
▲ 디딜방아의 일부로 보이는 확돌 동그랗게 파인 부분에는 겨울의 제국이 내린 얼음이 진을 치고 있다. |
우물돌에서 조금 옆으로 가면 2개의 아리송한 돌덩이가 나온다. 하나는 디딜방아의 일부로 여겨 지는 확돌이며, 다른 하나는 네모난 돌덩이이다. 이들 모두 도서관 일대에서 나온 유물로 앞의 우물돌처럼 정체가 묘연해 은근히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참고로 이곳은 조선 세종(世宗) 때 청 백리(淸白吏)로 명성을 날린 맹사성(孟思誠) 집안의 살던 곳으로 맹씨들이 사는 언덕이라 하여 맹동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