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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석장리 선사유적지 (석장리박물관)
금강 북쪽에 자리한 석장리 유적은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의 1번지이다. 즉 이 땅에서 처음 발견되고 우리 손을 거친 구
석기 유적이
다. 이곳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64년 봄으로 미국인 대학원생 엘버트모어(Albert Mohr)와 그의 부인 샘플(

L.L Sample)이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유적을 발굴하고 금강을 찾아 석장리 강변을 살펴보던 중 무너진 층에서 뗀석기

를 찾았다. 그것이 석장리 유적의 첫 세상 데뷔였다.

그는 연세대학교 사학과 손보기 교수와 그해 5월 21일 석장리를 다시 찾아 쌓임층이 무너진 곳에서 석기를 여럿 찾았고,

발굴허가를 정식으로 얻어 그해 11월 11일 연세대대학원 사학과에서 발굴조사를 시작했다. 하여 1965년부터 1974년까
지 연세대박물관 발굴단에서 10회에 걸쳐 조사를 했으며,
11차와 13차(1990~2010년)는 한국선사문화연구소에서 조사

를 하였다.

 

석장리유적은 잃어버린 땅을 제외한 남한 땅에서 처음 발견되고 우리 손으로 처음으로 조사가 된 구석기 유적이다. (전

리 선사유적지는 나중에 발견됨) 구석기시대 전기, 중기, 후기, 중석기시대 문화층이 나왔고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물도 나와 구석기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이 살았음이 밝혀졌다.

또한 이 땅에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처음으로 구석기 고고학의 뿌리

내리게 했던 현장이기도 하다.

발굴 결과 1지구 81구덩의 28개 쌓임층에서 6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2지구 1구덩의 28쌓임층에서 13개의 문화층이

나왔으며, 구석기시대 후기 집터와 화덕자리, 사람머리카락 등이 나왔다.

발굴 이후, 유적을 정비하여 2006년 9월 26일 석장리박물관을 열었으며, 석장리 유적은 완전 발굴이 아닌 일부만 들춰진

상태이다. 그만큼 유적이 넓다.
또한 유적 조사 때 석장리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그때 발굴에 참여한 10대 중에 역사학과에 들어간 사람

이 많았다. 또한 지금은 유적 북쪽으로 도로가 있어 접근성이 좋으나 그때는 도로 사정이 영 좋지가 못해 배를 타고 들어

와야했다.

 

1. 활짝 열린 석장리박물관 정문
석장리 유적은 공주시외터미널에서 공주 570, 580번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1일 10여회 운행, 방학기간에는 감회 운행)

세종시외고속터미널에서 세종61번을 타고 금암리노인정에서 내려서 금강변 산책로(자전거길)를 따라 2km 정도 걷는 것

도 괜찮다. (세종 61번은 10여 회 운행, 방학기간에는 감회 운행)

 

2. 석장리유적 정문에서 바라본 금강과 강변 풍경

금강 강변도 석장리유적의 일원이다.

 

3. 고요하기 그지 없는 석장리유적(석장리박물관)

이곳을 찾은 때는 12월 말 평일로 비까지 조금 내리고 있었다.

 

4.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사냥 장면

 

5. 재현된 구석기시대 움집과 구석기 사람들의 생활 모습

움집은 신석기시대 때 처음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구석기 후기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석기시대와 신석

기시대를 선사시대라 부르는데 이는 문자가 없던 원시시대를 뜻한다.

 

6. 석장리 유적 발굴현장 사진 (1960년대)

이곳은 금강변이라 비가 많이 와서 금강이 흥분하면 석장리박물관까지 잠길 정도였다. 하여 금강 범람을 막고 유물층을

호하고자 가마니에 모래를 넣어 둑을 쌓는 모습이다.

 

7. 석장리 발굴 시작과 마을사람들 (1960년대)

석장리 유적이 한참 꺼내지던 시절, 석장리 사람들은 나무장사를 하거나 농사를 지었다. 그들은 부업으로 석장리 발굴 조

사를 도왔는데, 수입이 제법 괜찮아서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발굴 조사에 참여했다. 또한 조사에 참여한 10대들이 역사

와 고고학에 자연히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대학교 역사학과에 진학한 이들이 많았다. 석장리 유적은 이 땅의 선사시대 역

사를 새로 쓰기도 했지만 석장리 사람들에게도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준 것이다.

 

8. 발굴 현장의 단체 사진 (1960년대)

석장리 발굴에 참여했던 마을 사람들의 단체 사진이다.

 

9. 발굴현장 단체 사진

윗 사진은 유물층을 보호하고자 둑을 쌓은 후 찍은 마을 사람들의 단체 사진(1970년대). 아래 사진은 1990년대 초에 찍은

사진으로 저중에는 젊은 시절(1960~1970년대)부터 발굴 조사에 참여한 마을 사람들도 있다.

 

10. 옛날 석장리 풍경 (1960년대)

석장리박물관 자리에 있던 마을과 금강 건너에서 바라본 모습

 

11. 여러 움집들이 재현된 석장리 유적

 

 

12. 귀엽게 표시된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

 

13. 석장리박물관
석장리박물관과 유적은 유료의 공간으로 소정의 입장료를 내야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

 

 

14. 구석기 사람들의 취사 장면

 

15. 석기를 떼는 석장리 슬기슬기사람 모형과 구석기시대 석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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