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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평창동, 부암동 나들이



' 서울 도심 속의 두멧골, 평창동~부암동
늦가을 나들이 '
부암동에서 만난 늦가을 풍경
▲  부암동에서 만난 늦가을 풍경
 



 

늦가을이 하늘 아래 세상을 곱게 어루만지던 11월 첫 무렵, 늦가을 풍경을 즐기고자 도심
속의 두메산골인 평창동(平倉洞)~부암동(付岩洞) 지역을 찾았다.

평창동은 성북동(城北洞), 한남동(漢南洞)과 더불어 서울의 1급 부자 동네로 이 땅의 0.1
%가 산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들의 고래등 저택과 고급빌라들이 즐비하다. 이
곳은 북한산(삼각산)과 북악산(백악산) 사이에 깃든 산골로 경관이 아름답고 녹지 비율이
높으며, 서울 도심과 무척이나 가깝다. 게다가 명당 중에서 아주 최고로 친다는 대부대귀
(大富大貴)의 명당인 교쇄명당의 자리라고 한다.
교쇄명당(交鎖明堂)이란 톱니바퀴가 엉키듯 교차하면서 혈(穴)을 감싸주는 명당으로 북한
산과 북악산이 서로 잘 교차하면서 에워싸는 명당을 말한다. 그래서 돈 꽤나 만지는 것들
과 권력층들이 그 냄새를 킁킁 맡고 몰려들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것이다.

내가 평창동을 찾은 것은 북한산과 북악산의 소중한 살을 난도질하며 들어앉은 졸부의 고
래등 집을 보고자 함이 아니라 그곳에 깃든 오래된 소나무와 백사실계곡(백석동천), 부암
동을 거닐고자 함이다. 이들은 내가 믿고 가는 즐겨찾기 명소들로 백사실계곡과 부암동은
1년에 3~4회 이상은 꼭 찾는다.


▲  북악산(백악산) 북쪽 자락으로 파고드는 평창8길 골목길



 

♠  북악산 북쪽 자락에 숨겨진 늙은 소나무, 평창동 소나무

▲  평창동 소나무 앞 오솔길 (백사실 능선 방향)

평창동 소나무를 찾으려면 화정박물관에서 묘각사(妙覺寺)로 인도하는 '평창8길' 골목길로 들
어서면 된다. 박물관 남쪽 주택가를 지나면 숲에 감싸인 오르막길이 늦가을 정취를 솔솔 불어
대는데, 그 골목길 끝에 외딴 두멧골처럼 자리한 주택들이 보일쯤 해서 오른쪽(서쪽)으로 백
사실(백사골)로 인도하는 오솔길이 살짝 손을 내민다.
둥근 햇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진한 숲에 감싸인 그 오솔길은 평창동에서 백사실을 이어주
는 지름길로 동네 사람들과 아는 사람들만 기웃거리는 도심 속의 숨겨진 숲길이다. 콘크리트
포장도 씌우지 않은 흙길로 길 남쪽에는 밭과 양봉까지 펼쳐져 있어 이곳이 정녕 서울 한복판
인지? 머나먼 지방의 산골인지 고개를 심히 갸우뚱하게 한다. 그런 밭과 평창동 너머로 북한
산(삼각산) 남쪽 줄기가 시샘을 하듯 이곳을 쳐다본다.

그 오솔길을 2분 정도 들어서면 3~4m 높이로 닦인 석축이 비슷한 높이로 길게 이어져 있어 옛
산성(山城)이 아닐까 싶은 기대감을 안긴다. 허나 그 석축은 산성도 아니고 건물터 등의 문화
유적도 아니다.
자세한 사연까지는 모르겠으나 군부대나 체육시설 등을 만들면서 넓게 땅을 다지고 석축을 쌓
은 것으로 지금은 배드민턴장과 쉼터가 있어 동네 주민들의 조촐한 휴식처 역할을 한다. 바로
저 안에 오래된 소나무가 있다.


▲  석축 윗쪽에 넓게 터를 다진 배드민턴장

▲  평창동 소나무 - 서울시 보호수 1-17호

북악산(백악산) 북쪽 자락에 숨겨진 평창동 소나무는 280년 정도 묵은 늙은 나무이다. 그의
신상이 간단히 적힌 안내문에는 보호수 지정일 기준으로 230년이라 나와있는데, 그가 보호수
로 지정된 것은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인 1968년 7월 3일이다. 그 이후 50여 년이 무심하게
흘렀으니 약 280년(길게 잡으면 290년) 정도로 보면 된다.
무한리필로 쏟아지는 세월을 든든한 양분으로 삼아 높이 13m, 둘레 2.24m의 어엿하고 기품 넘
치는 나무로 성장했는데, 그의 생김새가 속리산(俗離山)에 있는 정2품송(正二品松)과 좀 비슷
하여 그리 낯설지는 않은 모습이다.

서울에서 100~150년 이상 묵은 나무 중, 소나무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은행나무와 느티나
무, 회화나무, 향나무가 대부분을 이룬다. 특히 보호수(保護樹)나 문화재로 지정된 소나무는
서울에서 이곳과 여기서 가까운 석파정(石坡亭) 소나무 정도이며 서울에서 가장 늙은 소나무
라 봐도 무리는 없다.

▲  서쪽에서 바라본 평창동 소나무

▲  오솔길에서 올려다본 소나무

하늘에 대한 경외심 때문일까? 곧게 자라나지 못하고 30~40도 정도 고개를 숙였다. 벼도 익으
면 고개를 숙인다고 이 나무 역시 나이를 먹으면서 그렇게 고개를 꺾은 모양이다. 그만큼 숙
성될수록 겸손을 차리라는 대자연 형님의 심오한 뜻이 담긴 것은 아닐까 싶다. 자연물은 그
뜻을 받들고 잘 지키는데, 동물과 신(神)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자리나 축내며 지구와 자연에
갖은 민폐를 아끼지 않는 인간들은 왜 단순한 그것을 지키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인간은 신
이 아닌 늘 애매한 존재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 평창동 소나무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248-1


▲  서쪽에서 바라본 소나무와 배드민턴장

평창동 소나무와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고 다시 오솔길로 나왔다. 배드민턴장 서쪽 끝이 바로
오솔길과 연결되어 있지만 철책으로 막혀있어 홍길동이 아닌 이상은 넘어가기가 힘들고, 소나
무 남쪽 3~4m 높이의 석축에서 오솔길로 뛰어내리기도 좀 그렇다. 그래서 급하면 돌아가라는
크고 아름다운 진리에 따라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 나갔다.


▲  평창동 소나무 밑 오솔길 (백사실 방향)

▲  평창동 소나무 밑 오솔길 (평창동 화정박물관 방향)

오솔길을 거닐면 백사실 동쪽 능선으로 오르는 산길이 나온다. 벌써부터 누렇게 뜬 낙엽이 주
변에 잔뜩 쌓여 있는데,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단풍도 그리 많이 남지가 않았다. 아직은 늦가
을의 한복판이라 방심하고 있었건만 겨울 제국(帝國)의 보이지 않는 마수는 벌써부터 내 곁에
다가와 밑작업을 하고 있었다.

귀를 접고 쓸쓸히 누운 낙엽을 보니 올해도 이제 다되었구나~! 싶은 우울감이 밀려온다. 늦가
을과 연말에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이 기분, 허나 산바람이 살포시 나를 스치면서 그 우울감
을 조금이나마 털어간다. 오늘은 그저 나들이와 출사에만 열중하라는 듯이...


▲  소나무가 무성한 백사실 동쪽 능선

백사실 동쪽 능선은 북악산길에서 시작되어 백사실약수터, KT기지국, 평창동조망점까지 내려
가듯 이어진다. 백사실의 동쪽 지붕으로 중간중간에 현통사와 백사실(백석동천), 평창동으로
내려가는 산길을 늘어뜨렸으며, 소나무를 비롯한 갖은 나무들이 짙게 우거져 있다.


▲  울퉁불퉁 이어진 백사실 동쪽 능선길

▲  백사실 백석동천 별서터 서쪽 계곡

백사실 동쪽 능선을 조금 올라가면 백석동천으로 인도하는 길이 오른쪽(서쪽)에 나타난다. 그
길을 내려가면 바로 19세기에 조성된 백석동천(白石洞天) 별서유적으로 별서의 안채터와 사랑
채터가 마중을 하며, 이어서 동그란 연못과 6각형 정자터, 백사실계곡(백사골)이 나타난다.
백사실계곡은 북악산(백악산) 북쪽에서 발원하여 도심 속의 두메산골인 능금마을(뒷골마을)과
백사실(백석동천), 현통사, 백사폭포를 거쳐 홍제천(弘濟川)으로 흘러가는 작은 계곡이다. 서
울 도심에 몇 안되는 제대로 남은 자연산 계곡으로 개구리와 맹꽁이, 도룡뇽 식구가 서식하고
있으며, 푸른 이끼가 마음 놓고 뿌리를 내리는 청정한 곳이라 이곳에서만큼은 잠시 서울을 잊
어도 좋다. 서울이 아닌 머나먼 산골이라고 우겨도 손색이 없으니 말이다.
(백석동천 별서터와 백사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는 생략하며 따로 별도의 글을 링크
함 ☞ 관련글 보기)


▲  백석동천 별서터 서쪽에 세워진 오리 솟대 돌탑
예로부터 오리 등의 새는 하늘과 인간 세상을 이어주는 중간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소도(蘇塗)에서 비롯된 솟대 꼭대기에는 오리 모양을 달아두어
하늘과의 연락을 꾀했다.
 

백석동천별서터 계곡 윗쪽 일부는 도롱뇽 등의 수중 생물을 위해 출입을 금하고 있다. 허나
통제의 줄이 느슨하여 들어가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고, 특히 여름에는 피서객들의 칩
입이 빈번해 오히려 도룡뇽이 짐을 싸고 나가야 될 지경이다.
별서터에서 계곡을 피해 백사실 상류로 올라가는 산길이 있는데, 2012년에 주변 산길을 정비
하고 산불방제 장비를 갖춘 구제함과 솟대를 품은 돌탑을 심어 소소하게 볼거리를 선사한다.
솟대 돌탑을 지나면 황금잎 흩날리는 은행나무숲이 반짝 펼쳐지는데, 그 숲을 지나면 갈림길
이 나온다. 여기서 왼쪽(동쪽)으로 가면 백사실 상류와 능금마을, 북악산길로 이어지고, 오른
쪽(남쪽)으로 가면 백석동천 바위글씨와 백사실 남쪽 입구(응선사, 부암동)로 이어진다.


▲  백사실 소나무숲 (백석동천 별서터에서 능금마을, 부암동 방향)
솔내음이 그윽한 소나무 그늘에 의자 등의 쉼터가 닦여져 있다.

▲  백사실 소나무숲 (능금마을과 부암동 방향 갈림길 직전)

▲  백사실 남쪽 입구 산길

백사실(백석동천)에서 백사실 남쪽 입구로 오르는 남쪽 길은 경사가 완만하다. 백석동천 바위
글씨를 지나 느긋하게 이어진 숲길을 오르면 그동안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햇님과 푸른 하
늘이 방긋 모습을 비춘다.
그들과 함께 부암동 주택들도 덩달아 시야에 들어오는데, 남쪽 입구 양쪽에는 고급지게 지어
진 양옥이 위세를 뽐낸다. 부암동도 부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은근히 고급 주택이 많다.


▲  늦가을이 짙게 서린 백사실 남쪽 입구
백사실 안쪽은 늦가을의 농도가 많이 떨어졌지만 이곳은 아직 그 농도가 진하다.



 

♠  도심 속의 전원마을, 부암동

▲  부암동 응선사(應禪寺) - '응선사' 현판을 내건 문이 일주문이다.

백사실 남쪽 입구에는 응선사란 조그만 절이 둥지를 틀고 있다. 그는 20세기 중반 이후에 지
어진 현대 사찰로 대웅전과 일주문(一柱門)으로 쓰이는 기와집이 전부인데, 대웅전은 겉으로
보면 1층 같지만 그 밑에도 공간이 있어 요사(寮舍)와 선방(禪房), 공양간 등으로 쓰이고 있
으며 대웅전 앞에는 불교용품과 전통차를 파는 공간과 쉼터가 있다. (상황에 따라 차 시음도
가능함)

내가 법등(法燈)의 역사도 무지 짧은 응선사를 기웃거린 것은 대웅전에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산신도가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백사실을 드나들던 예전부터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외
부인에게 조금 까칠하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계속 방문을 미루다가 이번에 한번 들려 보았다.


▲  문짝이 달린 일주문에서 바라본 응선사 내부 (쉼터와 불교용품 매점)

▲  응선사 대웅전에 걸린 산신도(왼쪽)와 칠성도, 신중도(오른쪽)

▲  응선사 산신도 - 서울 지방문화재자료 14호

산신도는 대웅전 동쪽 벽에 칠성도(七星圖), 신중도(神衆圖)와 나란히 걸려있다. 그들 가운데
자리한 칠성도는 근래에 조성된 것이고, 호법신(護法神)들이 정신 없이 담긴 신중도는 산신도
만큼이나 늙어보여 20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신중도와 산신도는 모두 다른 곳
에서 업어온 것으로 법등의 역사가 짧은 이곳의 소중한 꿀단지이다.

산신도는 1914년 음력 10월 8일에 조성된 것으로 이제 100년이 조금 넘었다. 처음에는 경성부
(서울) 고양군 삼각산 안양암(安養庵)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안양암은 종로구 창신동(
昌信洞)의 안양암으로 짐작된다. (이곳은 '삼각산 안양암'을 칭하고 있음) 그런데 '고양군'이
란 3글자가 마음에 영 걸려 북한산(삼각산) 어딘가에 있던 절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연응 정순(淵凝 淨旬)을 증명으로 하고 양학 효신(養鶴 孝信)이 별좌(別座) 겸 화주(化主)가
되어 조성했는데, 금호 약효(錦湖 若效)와 향암 성엽(香庵 性曄), 연암 경인(蓮庵 敬仁) 등 3
명의 화승이 제작에 참여했다.

그림에는 주인공인 산신 할배를 비롯해 호랑이와 동자 4명, 소나무, 폭포, 산 등이 그려져 있
는데, 붉은 도포를 입은 산신은 금색의 옷잠이 꽂힌 족두리 같은 것을 쓰고 왼손에는 파초선(
芭蕉扇)을 들고 있다. 산신 뒤에는 그의 심부름꾼인 호랑이가 귀여운 모습으로 꼬랑지를 살랑
거리고 있고, 산신 좌우에는 비서인 동자 4명이 복숭아나 공양물 등의 물건을 들고 있다.
그림 밑부분에는 붉은 색으로 된 화기(畵記)가 있어 제작 시기와 제작자, 최초 봉안 장소, 시
주자 명단 등의 정보를 소상히 알려준다. 바로 이 화기를 통해 20세기 초반 산신도의 양식과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화기를 남겨준 제작자의
소소한 배려가 그림의 가치를 높여준 것이다.

그림 제작에 참여한 승려 중 금호 약효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에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
서 활동했던 화승으로 70여 점의 그림이 남아있다. 그는 단아한 불신(佛身)과 섬세한 인물 묘
사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이 산신도에도 그의 스타일이 깃들여져 있었다.

* 응선사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 95-13 (백석동길 227 ☎ 02-396-2476)


▲  부암동의 지붕길, 백석동길(부암동 산복길) - 응선사 남쪽

응선사 앞을 지나는 골목길은 부암동의 지붕길인 '백석동길'이다. 이는 백석동천에서 따온 이
름으로 창의문교차로에서 산모퉁이와 응선사를 거쳐 AW컨벤션센터(하림각) 건너편까지 이어지
는데, 그중 창의문~산모퉁이~응선사 구간을 나는 부암동 산복길이라 부른다.
이 길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길이기도 한데, 부산(釜山)의 산복길보다는 좀 못해도 나름 아
름다운 굴곡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지대가 높아 부암동 일대가 훤히 바라보이며, 그 너머로
인왕산(仁王山)이 가까이에 아른거린다. 비록 산동네긴 해도 서민과 가난이 연상되는 달동네
와는 완전히 차원이 틀리며, 개성이 강한 집들이 많고, 아름다운 뜨락이나 정원을 갖춘 집도
적지 않다.
게다가 길 주변에 숲과 나무도 우거져 있고, 밭도 있으며, 바로 뒤에 북악산(백악산)이 든든
한 후광처럼 자리해 부암동을 보듬고 있어 1폭의 수채화나 풍경화 같은 모습을 자아낸다.

이처럼 이곳이 서울 도심 지척임에도 산골마을 풍경을 진하게 지니고 있는 것은 나라의 예민
한 부분을 많이 품은 북악산 자락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미도 몰라본다는 천박한 개발의 칼
질도 마음 놓고 칼춤을 추지 못한다. 건물을 지어도 다 낮게 지을 수 밖에 없고, 가파른 산자
락이라 집을 지을 공간도 그리 넉넉치 못하다.
허나 요즘 들어 부암동이 관광지로 뜨면서 산복길 주변에 새로 지어진 집이나 리모델링을 하
는 집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상당수 집이 까페나 식당, 미술관 등의 상업 목적임) 다행
히 그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고 예민한 북악산 주변의 특성상 크게 개발될 일은 없지만 그저
돈 욕심으로 일어난 소소한 변화가 계속 이루어지다 보면 그 역시 무시할 수가 없다. 나는 지
금의 산복길 풍경이 너무 좋은데, 지금 선에서 더 이상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부암동 산복길(백석동길) 갈림길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응선사, 동쪽으로 가면 능금마을(뒷골마을)이다. 백사실을
가고자 한다면 어느 길로 가든 크게 상관은 없지만 능금마을 방면이
조금 지름길이다.

▲  잠시 서울을 잊고 산골 마을을 거니는 기분
부암동 산복길 (산모퉁이 부근)

▲  부암동 산복길 (산모퉁이, 은행나무숲 직전)

▲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은행나무 숲길 (백석동1길)

부암동 산복길을 따라 창의문(彰義門, 자하문) 쪽으로 가다보면 정면에 북악산이 보이면서 길
이 크게 선을 그리며 동쪽(왼쪽)으로 구부러진다. 그쯤에 조촐히 우거진 은행나무숲이 있는데
, 숲 옆에 내려가는 숲길이 살짝 손을 내민다. 얼핏 보면 끊어진 길처럼 보이나 저 밑에 보이
는 주택가까지 엄연히 이어진 길로 '백석동1길'이란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능금마을이나 백
사실계곡(백석동천, 백사골), 산모퉁이에서 창의문으로 내려갈 때 산복길(백석동길)로 쭉 가
는 것보다 이 길로 갈아타면 조금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

산복길 길가에 소소하게 우거진 은행나무숲은 황금빛 은행잎을 흩날리며, 늦가을의 향연을 즐
기고 있다. 은행잎은 노란색의 정석을 보여주며 한참 물이 올라 있고, 주변 숲과 어우러져 눈
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절경을 자아낸다. 이것이 진정한 늦가을의 풍경이지. 아직은 은행잎이
많이 붙어있지만 이제 10여 일만 지나면 거의 7~8할 이상은 낙엽으로 추락될 것이다.
늦가을의 커텐을 열었던 은행나무는 죽음 앞에 처절한 아름다움을 불사르며 슬슬 늦가을의 막
을 닫을 준비를 한다.


▲  늦가을이 소리없이 깃든 부암동 산복길 은행나무 숲
숲은 매우 작지만 은행잎의 농도는 넓고 진하다.

▲  밑에서 바라본 은행나무 숲길 (백석동1길)

은행나무숲 남쪽에는 밭이 펼쳐져 있다. 북악산(백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포근히 깃든 부암동
에는 산자락 곳곳에 밭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데, 특히 능금마을(뒷골마을) 같은 곳은 오이
나 상추, 배추, 여러 과일을 심어서 시내에 내다팔고 있다.
서울하면 그저 키다리 빌딩과 번잡한 거리, 수많은 인파와 차량들만 생각하는 대다수의 사람
들에게는 다소 충격과 공포와 같은 풍경이라 적응이 가질 않겠지만 서울 안에도 논과 밭, 과
수원이 제법 많다. 다만 그들이 그릇된 고정관념에 빠져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당장 도심과
가까운 부암동과 평창동, 서촌 서쪽, 성북동만 가도 그런 고정관념에 망치질을 할 수 있다.


▲  늦가을이 그린 한 폭의 수채화
감나무와 밭두렁이 어우러진 부암동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

▲  백석동1길 윗쪽에서 바라본 부암동과 인왕산

▲  늦가을 절정에 잠긴 창의문(자하문) 안쪽 숲길
평창동~부암동 나들이는 창의문에서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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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1년 11월 9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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