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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도심 속의 두메산골을 거닐다 '
(부암동 능금마을, 백사실계곡, 북악산 북쪽 자락)


▲  부암동 능금마을(뒷골마을)

▲  은덕사에서 바라본 부암동

▲  평창동 소나무


 

여름 제국의 무더위 갑질이 극성이던 8월의 첫 무렵, 일행들과 북악산(백악산) 북쪽 자락
을 찾았다.
북악산 북쪽 자락(부암동, 평창동 지역)에는 나의 오랜 즐겨찾기 명소인 백석동천(白石洞
天, 백사실계곡)을 비롯해 능금마을(뒷골마을), 평창동(平倉洞) 소나무 등의 명소가 깃들
여져 있는데 여름 제국의 핍박도 피할 겸, 간만에 그들을 복습할 생각으로 북악산의 품을
찾은 것이다.

세검정초교 정류장에서 홍제천(弘濟川)을 건너 백석동천의 북쪽 관문인 현통사(玄通寺)와
백사폭포로 접근했다. 그곳을 지나면 백사골(백사실)의 속살로 들어서게 되는데 백사폭포
와 계곡 곳곳에 자리를 피고 피서 삼매에 빠진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띈다.
숲속에 진하게 묻힌 백석동천 중심부에 이르면 이곳의 상징인 별서(別墅)터가 있고, 그곳
을 지나 은행나무와 소나무숲을 지나면 백석동천 바위글씨가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여기
서 동쪽 산길로 들어서면 잘생긴 반석과 바위들이 늘어선 백사골 상류가 나타난다.

백석동천은 백사골, 백사실, 백사실계곡 등으로 널리 불리고 있는데, 정식 이름은 백사실
(백사실계곡)으로 백사골은 백사실계곡을 줄여 표현한 이름이다. 백석동천은 백사골의 엄
연한 일부로 백사폭포에서 백석동천 바위글씨와 백사골 상류 외나무다리 직전까지를 주로
일컫는다.


 

♠  백사골 상류 (능금마을로 가는 산길)

▲  백석동천의 남쪽 끝을 잡고 있는 외나무다리

백사골 상류의 너른 반석을 지나면 2012년에 지어진 외나무다리가 깊은 산골의 고적하고도 정
겨운 풍경을 자아낸다. 길쭉한 통나무 2개를 엮어서 놓은 것으로 겨우 1명이 지나다닐 정도로
좁은데 만약 이런 다리에서 원수를 만난다면 어찌해야 될까? 다리 길이도 짧고, 다리 밑 수심
도 매우 얕으며, 다리 곁에 계곡을 건널 수 있는 여울이 있어서 굳이 다리를 두고 싸울 필요
는 없을 것이다.


▲  가까이서 바라본 외나무다리

사람도 많고, 차량도 많고, 빌딩도 많고, 돌아다니는 돈도 많고, 그저 복잡하고 각박하게 보
이는 서울 도심 지척에 이런 다리가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신기할 따름이다. 백사골은 그 존
재 자체로도 예사롭지 않지만 캐면 캘수록 보물이 더 나올 것 같은 마르지 않는 샘이나 신세
계 같다.
백사폭포에서 시작된 백석동천은 이 외나무다리에서 사실상 끝이 나며 백사골은 능금마을 안
쪽까지 이어진다.


▲  백사골 상류의 평화로운 풍경
푸른 옷을 걸친 큰 나무가 하늘이 두려웠는지 아니면 겸손함 때문인지
곧게 자라나지 않고 허리를 푹 숙이고 있다.

▲  백사골 냇물이 잠시 쉬어가는 조그만 못

백사골에는 푸른 이끼 옷을 입은 바위들이 참 많다. 이끼가 마음 놓고 자라고 있다는 것은 여
기가 그만큼 깨끗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무성한 이끼를 만나는
것은 정말 힘들지, 백사골의 이런 청정함과 순수함이 앞으로도 영원했으면 좋겠다.


▲  온갖 채소와 과일이 숙성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백사골 밭두렁

▲  남쪽에서 본 백사골 밭두렁

백사골 밭두렁은 여러 채소와 과일이 자라나고 있다. 비닐하우스와 밭을 지키는 원두막 같은
것도 있어 마치 산간지방의 깊은 산골로 순간이동을 당한 기분이라 백석동천에서 여러 번 놀
란 가슴을 또 놀라게 만든다.


▲  백사골 산길에서 만난 연분홍 코스모스의 위엄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정처없는 나그네의 마음을 마구 들쑤시는 코스모스들~ 코스모스가 가을
꽃의 상징이다 보니 6~8월에 왠 코스모스가 피나 싶겠지만, 성질 급한 코스모스는 이미 6월부
터 꽃망울을 피운다. 그러니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  완전 시골 둑방길을 거니는 기분 ~ 능금마을 백사골 둑방길

계곡 너머로 2012년에 지어진 커다란 농원용 비닐하우스가 있다. 도심에 있는 잇점을 살려서
요즘 잘나가는 허브 식물이나 과일 농장, 채소 농장, 농사 체험 현장 등으로 꾸리면 괜찮을
듯 싶다. 아무리 도심 속이라고 해도 이곳이 농촌인 것은 변함이 없다.


▲  능금마을에서 백석동천으로 내려가는 둑방길


 

♠  서울 도심 속에 숨겨진 두메산골마을
부암동 능금마을(뒷골마을)


▲  능금마을

부암동(付岩洞) 능금마을(뒷골마을)은 백사골 상류이자 북악산 북쪽 자락에 둥지를 튼 두멧골
이다. 행정구역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으로 주소는 분명 서울 종로구가 맞는데 분위기는
번잡한 도심을 제대로 비웃듯 첩첩한 산주름 속에 박힌 외딴 산골마을이라 그야말로 서울 도
심 속의 산골마을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능금나무가 많아 능금나무골, 능금마을이라 불렸는데, 뒷골마을이란 별칭도
가지고 있다. 이 이름은 북악산(백악산) 뒷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북악산 앞쪽인 청
와대 일대를 앞골이라 불렀다. 예전에는 뒷골마을로 많이 불려 나도 입버릇처럼 그렇게 부르
고 있으나 요즘에는 능금마을로 크게 부르고 있으며, 마을에는 약 10여 가구에 50~60명 정도
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을의 지형은 백사골이 흐르는 북쪽은 내리막이고, 서쪽과 남쪽, 동쪽은 모두 산으로 막혀있
다. 창의문(자하문)에서 넘어오는 유일한 포장길인 남쪽 골목길(백석동2길)은 속세살이처럼
각박한 고개를 넘어야 되는데, 지형이 이렇다보니 시내보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며, 아랫
세상보다는 조금은 춥다.

마을 중앙부에는 창의문으로 나가는 골목길(백석동2길)의 종점이 있다. 그 종점이 마을 사람
들의 차량들이 바퀴를 접고 쉬는 주차장으로 여기서 더 이상 차량은 들어갈 수 없다. 게다가
궁벽한 곳이다보니 쓰레기도 1주에 이틀 정도만 수거하러 온다.
주차장 북쪽에는 슬레이트 지붕 여러 채와 2층짜리 빌라 1동, 비닐하우스가 여럿 있으며, 동
쪽으로 백사골을 따라 여러 가옥과 밭, 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북악산이 베푼 백사골은 마을
을 동쪽에서 북쪽으로 가로지르며 백석동천과 홍제천으로 흘러간다.

시내에서 마을로 들어가려면 백사골을 거치거나 창의문(자하문)에서 북악산 허리에 둘러진 부
암동 산복길(백석동길)을 이용해야 된다. 세검정초교에서 접근할 경우는 마을까지 30여 분 걸
리며, 창의문에서 갈 때는 산복길(백석동길)을 따라 20여 분 걸어야 되는데 중간에 고개를 하
나 넘어야 된다. 차량으로 갈 경우에는 창의문에서 부암동 산복길을 타거나 북악산길로 접근
하면 되며, 그 흔한 대중교통의 혜택도 미치지 않는 시내 속 벽지이다.

마을 사람들은 대체로 농사를 짓거나 시내로 출퇴근을 한다. 서울에서 공기가 1등급으로 맑고
청정한 계곡물이 흐르니 조촐하게 밭농사나 과수원을 하기에 적당하다. 백사골의 깨끗한 물을
먹고 자란 농작물(오이나 배추, 상추 등)은 밭과 비닐하우스에서 주민들의 갖은 정성을 거쳐
시내로 팔려 나간다.

이곳이 인구 1,000만을 지닌 천하 제일의 대도시 서울 도심에 있음에도 개발의 칼질을 굴복시
키며 두메산골로 남을 수 있던 것은 푸른 기와집과 국무총리공관, 수방사 군부대를 비롯한 국
가의 예민한 장소를 품은 북악산 자락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북악산 주변은 개발제한구역
및 군사보호구역으로 상당수 묶여있다. 게다가 인왕산(仁王山)과 더불어 조선시대부터 서울을
지키는 전략적인 곳으로 군부대가 주변에 있으며, 북악산(백악산) 한양도성 능선을 따라 철책
과 초소가 줄지어 있다. 상황이 이러니 천박한 개발의 칼질도 무릎을 끓은 것이다.
북악산 북쪽 자락에 안긴 부암동과 성북동(城北洞)에 키다리 건물이 없는 것도, 녹지 비율이
두드러지게 높은 것도, 전원(田園) 분위기를 물씬 간직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북
악산과 인왕산의 성격이 180도 확 달라지거나 예민한 국가 시설들을 다른 데로 이전하지 않는
이상은 능금마을은 서울 도심 속의 두멧골로 영원히 남을 것이며, 쭉 그리 되기를 염원해 본
다.
물론 마을 사람들이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집 보수나 신축 등은 어느 정도 보장해줘야 될 것
이며, 북악산 나들이나 답사/출사를 이유로 그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동은 삼가해야 될 것이
다. 어차피 도심 속의 두멧골이란 상징성 외에는 명소라 할 만한 것은 없다. 그냥 지방 시골
에 널린 시골마을과 비슷하며 백석동천과 부암동 답사의 후식용으로 삼으면 적당하다.


▲  능금마을 북쪽 구역 (빌라 뒷쪽)

능금마을은 여러 번 와봤지만 딱히 명승지까지는 아니라서 제대로 둘러본 적은 없다. 하여 이
번에 제대로 마을의 속살을 살펴보기로 했다. 숨겨진 속살을 발견하고 보는 재미만큼 쏠쏠한
것은 없다.

주차장에서 빌라가 보이는 북쪽 골목길을 오르면 조금은 낡아보이는 산동네 기와집과 번듯하
게 지은 2층 빌라가 나란히 나타나 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대변하는 듯 하다. 작지만 빌라까지
들어섰고 근래에 새로 몸단장을 한 주택이 여럿 있을 정도면 개발 제한도 어느 정도 풀린 모
양이다.
빌라의 옆구리를 지나면 그나마 포장된 길은 끝나고 흙길로 변신하는데, 마치 백두대간 깊숙
한 곳에 숨겨진 화전민(火田民) 마을에 들어선 기분이며 밭두렁과 수풀이 우거진 그 길의 끝
에는 전원주택처럼 생긴 아담한 집이 있다.

다시 주차장으로 나와서 백사골을 따라 이어진 동쪽 골목길로 들어선다. 이 길도 좁다보니 자
전거나 오토바이 등만 겨우 바퀴를 굴릴 수 있는데, 동쪽 골목길은 세월을 먹은 집들이 여럿
있으며, 밭과 과수원이 제법 펼쳐져 목가적(牧歌的)인 풍경을 연출한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는 전원주택 스타일의 정원 넓은 집이 있다.

동쪽 골목길 중간에는 북악산길로 이어지는 샛길이 있다. 따로 이정표는 없지만 조금은 가파
르게 동쪽으로 이어진 길이 바로 그 길이다.

* 능금마을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 산50~69


▲  경작물이 무성하게 익어가는 동쪽 골목길

▲  백사골과 나란히 한 능금마을 동쪽 골목길
문명의 혜택이 전혀 들어오지 못할 것 같은 이 산골에도 전기와 전화는
모두 들어온다.

▲  능금마을 동쪽 골목길 밭두렁

▲  경작물이 익어가는 동쪽 골목길


▲  부암동에서 능금마을로 인도하는 각박한 고갯길
길의 경사가 각박해 내려가기는 쉬워도 오르는 건 조금 힘들다. (그래도 두 다리만
멀쩡하면 누구든 오를 수 있음)


 

♠  백사실약수터와 여러 돌탑들

▲  외나무다리 주변에 펼쳐진 하얀 피부의 반석
저 반석을 내려가면 계곡 오른쪽으로 백사실약수터로 인도하는 산길이 나온다.


능금마을을 둘러보고 다시 백석동천으로 내려가 외나무다리를 지나면 윗 사진의 넓은 반석이
나온다. 반석(磐石)을 지나면 바로 계곡 건너로 넘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그곳을 건너면 백사
실약수터를 알리는 조그만 이정표가 조용히 손짓한다.
백석동천(백사실)을 15년 넘게 들락거렸지만 백사실약수터는 한참의 세월이 흐른 이후에야 인
연을 지은 곳이다. 별서터와 바위글씨들, 능금마을이 전부인줄 알고 등잔 밑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탓으로 무슨 일이든 방심은 정말 금물이다.


▲  백사골 돌탑

백사실약수터로 인도하는 산길을 30초 정도 가면 산등성이에 수북하게 쌓인 돌탑이 마중을 한
다. 이곳을 지나던 중생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은 돌탑으로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악신
앙(山岳信仰)의 현장이다.
백석동천 별서터가 지배층의 산물이라면 이 탑은 백성들의 한 줄기 희망과 애환이 만들어낸
산물로 별서터는 터만 남은 채, 성장이 멈추었지만 이 탑은 지금도 지나가는 이들에 의해 조
금씩 성장하고 있다.


▲  정면에서 바라본 돌탑 가족들 (얼핏 보면 3기처럼 보이나 4기임)

▲  옆에서 본 돌탑 가족

백석동천에서 백사실약수터로 오르는 산길에는 돌탑이 유난히도 많다. 앞 돌탑에서 3분 정도
가면 돌탑 4기를 만나게 되는데, (조금 후미진 곳에 있음) 이중 1기는 나머지 3기를 다 합쳐
도 한참이나 모자를 정도로 유별나게 크다. 그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모르겠으나 앞 돌탑과
달리 규칙적인 모습이고 그리 묵은 티가 보이지 않아 근래에 백사실 수식용으로 닦여진 것으
로 보인다.

돌탑을 만들려면 서로 비슷한 덩치로 만들 것이지 하나만 지나치게 크고 나머지는 완전 쥐꼬
리만한 크기라 마치 어미와 꼬마 3형제를 보는 듯 하다. 꼬마 탑도 어엿한 돌탑을 이루는 어
미탑처럼 장차 큰 탑으로 성장하길 기대해본다.


▲  백사실약수터로 오르는 적막한 산길

▲  소나무 산길 (백사실약수터 방향)
길을 가다가 뜬금없이 산신이나 신선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선녀 누님이
갑자기 나타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첩첩한 산주름의 산길이다.

▲  백사실약수터와 북악산길로 인도하는 산길

백사실약수터는 백사골의 거의 유일한 약수터이자 백사골의 오랜 은자(隱者)로 능금마을 뒷쪽
(북쪽)에 숨겨져 있다. 북악산이 속세에 베푼 소중한 샘터로 백사골의 청정한 기운을 머금은
탓인지 수질도 청정하고 맛도 좀 달콤한 기분이다.
벽돌을 다진 약수터 주변은 산뜻하게 정비되어 두 다리를 쉴 수 있는 의자와 간단한 운동시설
이 닦여져 있다. 약수터 뒷쪽에는 나무 기둥 난간이 둘러진 공간이 있는데, 그 안에 여러 식
물이 담겨져 있어 마치 신선의 묘약(妙藥)이나 신선초(神仙草)가 자라는 듯한 기분이다. 그리
고 약수터 동남쪽으로 산길이 나 있는데, 그 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북악산길이 마중을 한다.


▲  백사실약수터 인근 바위에 심어진 조촐한 돌탑
이 돌탑도 앞에 돌탑 가족과 마찬가지로 근래에 조성된 것 같다. 그 모습이
산이나 계곡에 널린 일반적인 산악신앙의 돌탑이 아닌 조그만
봉수대(烽燧臺)처럼 보인다.


 

♠  북악산 백사실 동쪽 능선

▲  백사실 동쪽 능선길

백사실 동쪽 능선은 북악산길에서 시작되어 백사실약수터, 은덕사를 지나 북쪽으로 KT기지국,
평창동조망점까지 내려가듯 이어진다. 백사실의 동쪽 지붕으로 중간중간에 현통사와 백사골(
백석동천), 평창동으로 내려가는 산길을 늘어뜨렸으며, 소나무를 비롯한 갖은 나무들이 삼삼
하게 우거져 있다.
백사골에 왔다면 별서터와 계곡만 살피지 말고 백사실약수터와 1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 백사
골 동쪽 능선도 한번 거닐기 바란다.


▲  소나무가 우거진 동쪽 능선에 걸터앉은 은덕사(恩德寺)

백사실 동쪽 능선을 걷다 보면 왼쪽에 건물 하나가 손짓한다. 소나무숲을 병풍으로 삼아 서쪽
을 바라보고 있는 그는 은덕사란 조그만 절로 건물 1동이 전부이다. 그러다보니 하나의 건물
에 법당(法堂)과 요사(寮舍), 종무소의 역할까지 싹 담겨져 있는데, 절집에 흔한 기와집이 아
닌 별장이나 전원주택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법당 앞에는 잔디가 입혀진 뜨락이 있으며, 이곳에서 가꾸는 여러 농작물이 한참 숙성의 과정
을 밟고 있다. 또한 절 앞에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는 꼭 가보도록 하자. 여기서 보는 조망
맛이 그런데로 일품이다.


▲  은덕사 앞 바위에서 굽어본 부암동

은덕사 앞 바위에 올라서면 산주름에 묻힌 부암동 북부와 홍지동이 훤히 시야에 들어온다. 다
만 자하문터널과 하림각이 있는 부암동 남부는 백사실 서쪽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저 너머에 멋드러진 바위를 여럿 품고 있는 산은 서울의 영원한 우백호(右白虎)이자 우리나라
호랑이의 성지(聖地)였던 인왕산으로 나와 비슷한 위치에서 바라보인다. 그리고 바로 밑에 보
이는 기와집들은 백사폭포 위에 자리한 현통사로 백사폭포의 우렁찬 폭포수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두 귀를 멍하게 한다. 은덕사 바위에서 현통사로 바로 내려가는 산길이 있는데, 경사가
다소 각박하므로 조심해야 된다.


▲  솔내음이 진동하는 백사실 동쪽 능선길

▲  평창동 조망점 바위

백사실 동쪽 능선의 북쪽 끝에는 KT기지국이 있다. 그곳에 이르기 전에 오른쪽으로 산길이 하
나 나있는데, 바위가 그 길의 끝을 장식하고 있다. (더 이상 내려가는 길도 없음)
이 바위는 딱히 이름은 없으나 백사골에 있는 안내도에는 단순히 조망점이라고 나온다. 북쪽
을 바라보고 선 이 바위에 올라서면 평창동과 북한산(삼각산) 남쪽 산줄기가 시야에 들어오는
데 본글에서는 평창동이 보이는 곳이란 뜻에서 평창동 조망점이라 칭하도록 하겠다.


▲  평창동 조망점에서 바라본 천하 - 왜 이리 옥의 때가 많은지..?

평창동 조망점에서 훤히 바라보이는 평창동은 성북동(城北洞)과 한남동(漢南洞), 장충동(奬忠
洞)과 더불어 서울의 대표적인 부자 동네이다. 강남이 부자라고는 하지만 이들 동네 앞에서는
감히 이름도 꺼내지 못하는 그들의 후배에 불과하다.
평창동은 북한산과 북악산 사이에 자리한 산악 지대로 나름 명당(明堂) 자리로 명성이 자자하
다. 게다가 경관도 수려하여 해방 이후 돈 꽤나 만지던 이들이 조금씩 들어와 살더니만 이제
는 완전 졸부들의 씁쓸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물론 서민들도 적지 않게 살고 있음)

성북동이 우리나라의 0.1% 부자들이 산다고 하지만 평창동도 그에 못지 않다. 완전 산동네로
차량이 없으면 왕래도 힘든 곳이지만 명당의 기운과 수려한 경승지의 덕을 보고자 졸부들이
가득 밀려와 북한산을 건방지게 압박했다. 그래서 산자락 곳곳에 무식하게 큰 저택과 빌라를
짓고 자연을 훼손하면서 북한산 남쪽 경관은 적지않게 손상되고 말았다. 다행히 평창동 윗쪽
이 북한산국립공원 영역으로 꽁꽁 묶여있어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북한산성 밑까지 졸부
들이 싹 밀어버릴 뻔했다.

조망점에서 보이는 천하는 정말 1폭의 그림이 분명한데, 옥의 티가 너무 많다. 내게 저 장면
을 손질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졸부들의 집을 지우개로 다 지우고 그들로 파괴된 숲과 계곡
을 그려 자연의 모습으로 채색하고 싶다.


 

♠  평창동에 숨겨진 오래된 소나무

▲  평창동 소나무 밑 오솔길 (평창동 방향)

평창동 조망점에서 다시 은덕사 쪽으로 나오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있다. 여기서 직진(남
쪽)하면 백사실 동쪽 능선을 쭉 타게 되고, 오른쪽(서쪽)은 현통사, 왼쪽(동쪽)은 평창동으로
이어진다. 나는 평창동 소나무를 보고자 평창동 방향을 택했다.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2분 정도 내려가면 평탄한 곳이 나타나면서 1차선 크기의 비포장 오솔길
이 펼쳐진다. 이 길은 묘각사 입구까지 이어지는데, 햇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삼삼한 숲속
에 포장도 씌우지 않은 흙길이라 그냥 지나치기 아쉬울 정도로 매우 정겹기만 하다. 그 길 오
른쪽에는 3~4m 높이로 닦인 석축이 길게 이어져 있어 옛 산성(山城)이나 건물터 유적이 아닐
까 싶은 기대감을 안긴다. 허나 그 석축은 산성도 아니고 옛 건물터 등의 문화유적도 아니다.
자세한 사연까지는 모르겠지만 군부대나 체육 시설을 만들면서 넓게 땅을 다지고 석축을 쌓은
것으로 지금은 배드민턴장과 쉼터가 있어 동네 주민들의 조촐한 쉼터 역할을 한다. 바로 저곳
에 오래된 소나무가 깃들여져 있다.


▲  평창동 소나무 밑 오솔길 (백사실 능선, 은덕사 방향)

평창동 소나무를 보고자 석축 서쪽 끝에서 접근을 시도했으나 철책의 위엄 앞에 돌아서고 말
았다. 석축 밑 오솔길을 거닐면 중간에 그 소나무가 보이나 주변 나무들이 시선을 방해해 제
대로 사진에 담을 수가 없다.
석축 윗부분이 사유지라 출입이 통제된 것이라 여겨 살짝 들어갈 길을 찾던 중, 석축 동쪽 끝
에서 그곳으로 인도하는 길이 슬쩍 손을 내민다. 서쪽 끝과 달리 방해물도 없어 그 길을 오르
니 숲에 둘러싸인 제법 너른 터가 나온다. 


▲  석축 윗쪽에 넓게 닦여진 배드민턴장

▲  평창동 소나무 - 서울시 보호수 1-17호

북악산 북쪽 자락에 숨겨진 평창동 소나무는 280년 정도 묵은 늙은 나무이다. 그의 신상이 적
힌 안내문에는 보호수 지정일 기준으로 230년이라고 나와있는데, 그가 보호수로 지정된 것은
1968년 7월 3일이다. 그 이후 50여 년이 무심하게 흘렀으니 약 280~290년 정도로 보면 된다.
무한리필로 쏟아지는 세월을 든든한 양분으로 삼아 높이 13m, 둘레 2.24m의 어엿하고 기품 넘
치는 나무로 성장했는데, 그의 생김새가 속리산(俗離山)에 있는 정2품송(正二品松)과 좀 비슷
하여 그리 낯설지는 않은 모습이다.

서울에서 100년 이상 묵은 나무 중, 소나무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보호수나 문화재로 지정
된 것은 이곳과 여기서 가까운 석파정(石坡亭) 소나무 정도이다. 그중에서도 평창동 소나무가
나이가 제일 많아 서울에서 가장 늙은 소나무라 봐도 무리는 없다.
이 나무를 누가 심었고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전해오는 것은 없지만 백사실로 가는 길목에 자
리해 있어 그곳을 찾거나 백사실에 머물던 사람이 심은 것이 아닐까 싶다.


▲  서쪽에서 바라본 평창동 소나무의 위엄

하늘에 대한 경외심 때문일까? 곧게 자라나지 못하고 40도 정도 고개를 숙였다.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이 나무 역시 나이를 먹으면서 그렇게 고개를 꺾은 모양이다. 그만큼 숙성될
수록 겸손을 차리라는 대자연 형님의 심오한 뜻이 담긴 것은 아닐까 싶다. 자연물은 그 뜻을
받들고 잘 지키는데, 동물과 신(神)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자리나 축내며 온갖 민폐를 아끼지
않는 인간들은 왜 단순한 그것을 지키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인간은 신이 아닌 늘 애매한 존
재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고개를 수그린 소나무의 자태가 곧게 서있는 모습보다는 기품과 운치가 더 진해
보이는 것 같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사람보다는 자신을 낮추며 겸손을
보이는 사람이 더 값어치가 있어 보인다.
평창동 소나무를 끝으로 한여름 북악산 북쪽 자락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평창동 소나무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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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20년 8월 15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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