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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양 송포 백송

일산에서 교하지구로 넘어가는 길목인 덕이동에 송포 백송이라 불리는 늙은 백송이 있다. 여기서 

포는 지역 이름으로 지금은 고양시 덕이동으로 살고 있지만 고양군 시절에는 송포면 덕이리였다. 

래서 송포 백송이란 간판을 지니게 되었다.

백송은 소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나무껍질이 하얀 피부로 변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호랑이가 담

배 맛을 알기 이전부터 백골송, 백송이라 불렸는데, 하얀 빛이 진할수록 집안과 가문이 잘된다는 이

야기가 있다.

 

백송의 고향은 북경이다. 북경은 고구려 평양성 및 고려 평양성이 있던 곳으로 고려 말까지 우리 영

역에 있었다. 백송의 개체수는 옛날부터 그리 많지는 않았다고 하며, 이 땅에 전하는 늙은 백송은 조

선 때 명나라와 청나라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그마저도 태반이 죽고 지금은 서울 수송동 백송(조계사

에 있음), 재동 백송, 고양송포 백송, 이천 백송, 예산 백송만 겨우 살아남았다. (예산 백송을 제외하

고 모두 친견했음) 이들은 모두 국가 천연기념물의 큰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창경궁과 경남 밀양에

는 백송의 씨앗을 추출해 어린 백송을 기르고 있다. 그래서 백송이 씨가 마르는 것은 겨우 면했다. 백

송의 고향인 북경을 비롯해 중원대륙에서는 백송이 이미 전멸한 상태라 사실상 이 땅에서만 살아남았

다.

 

송포 백송은 높이 11.5m, 나무둘레 2.39m로 가지가 마치 부챗살처럼 퍼져 있어 역삼각형처럼 보인다.

비록 벡송이긴 하지만 하얀 피부의 농도는 얇은 편이다.

이 나무는 조선 세종 때 최수원 장군이 심은 것으로 그는 김종서가 길림성과 북만주 지역을 토벌하여

닦은 6진(두만강 유역이 아님)에서 근무했다. 거기서 백송을 얻어 고향으로 오면서 심었다고 전한다.

그러니 나이는 600년 남짓 되었다.

참고로 6진과 함께 중요하게 언급되는 4군은 최윤덕과 이천이 닦은 것으로 4군(압록강 유역이 아님)의

위치는 요동 안쪽과 요녕성이다. 6진 지역은 조선 중기 이후까지 유지를 했으나 4군은 금방 상실하였는

데, 얼마나 일찍 잃었는지 4군의 정확한 위치 조차 잊어먹었다고 한다. 그것이 우리 역사의 대표 흑역사

인 조선의 한계이다.

 

송포 백송은 파릇파릇했던 10대 시절에 인연을 지은 적이 있는데, 그로부터 30년이 지나서야 다시 인연

을 짓는다. 백송은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은 없어보이며, 그때 백송 주변은 완전 시골이었으나 그새 빌

라와 공장, 여러 건물들이 많이 닦여졌다. 송포 백송은 오랜 세월 고양 일산 지역의 명물로 '송포 백송'이

란 버스 정류장도 있다. (서울 707번과 9707번, 고양 66번, 파주 20번, 70번, 150번이 경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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