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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석굴암, 만월암


' 부처님오신날 도봉산 산사 나들이 '
(석굴암, 만월암)

도봉산 석굴암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  도봉산 석굴암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도봉산 천축사와 만장봉 만월암 석불좌상

▲  천축사와 만장봉

▲  만월암 석불좌상

 


올해도 변함없이 즐거운 부처님오신날(석가탄신일, 사월초파일)이 다가왔다. 그날만 되면
마치 불고기가 불을 만난듯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서울 장안을 중심으로 절 나들이를
벌이고 있는데, 그렇게 하기를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절은 평소에도 나들이와 답사 등으로 많이 찾는 편인데, 서울에 전하는 늙은 절(100년 이
상 묵은 절;)은 모두 가보았고, 문화유산을 간직한 서울의 현대 사찰도 어지간한 곳은 다
발자국을 찍었다. 그럼에도 그날만큼은 서울 밖으로 나가기가 귀찮아 어지간하면 서울 안
에서 모든 것을 처리한다. 그러다 보니 갔던 곳을 또 우려먹고 복습을 하고 있다.

이번 초파일에 어느 절을 갈까 즐거운 고민을 하다가 우리 동네(도봉구)의 듬직한 뒷산인
도봉산(道峯山, 739.5m)을 찾기로 했다. 뒷산치고는 무지하게 큰 도봉산은 도봉구(道峰區
)와 경기도 의정부시(議政府市)의 대표 지붕이자 서울의 북쪽 지붕으로 내 즐겨찾기 뫼의
일원이다. 하지만 아랫도리 위주로 돌아다니다 보니 정작 윗도리는 별로 가지를 않는다.
하늘과 가까운 그의 윗도리에는 원통사(圓通寺, ☞ 관련글 보기)와 천축사(天竺寺, ☞
련글 보기), 만월암, 석굴암 등의 오래된 절이 깃들여져 있는데, 천축사와 만월암에 크게
갈증이 생겨났다. 마침 그들을 본 지도 여러 해가 지나고 해서 이번 초파일 메뉴로 흔쾌
히 삼았는데, 그들과 함께 미답처(未踏處)로 남아있던 석굴암도 같이 챙겨보기로 했다.

드디어 고대하던 초파일 오전 11시, 방학동(放鶴洞) 집을 나서 도봉산의 품을 찾았다. 집
에서 무지 가까운 곳이라 그렇게 부담도 없고, 흥겨운 초파일 분위기와 맛있는 절밥 생각
에 발걸음이 아주 가벼웠는데, 도봉산은 등산, 봄나들이, 초파일 수요까지 뒤범벅이 되어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천축사는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음)


♠  도봉산 석굴암(石窟庵)

▲  만월암과 석굴암으로 인도하는 산길 (도봉대피소~석굴3거리 구간)

도봉산 종점(141, 142번 종점)에서 도봉산을 향해 8분 정도 가면 광륜사(光輪寺)가 마중을 나
온다. 그곳은 원래 통과하려고 했으나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초파일로
잔뜩 신이 난 그곳에 잠시 발을 들였다. 그곳을 추가로 본다고 해서 일정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며, 이미 여러 번 인연을 지은 곳이다.
그 절에서 생수와 떡(백설기)을 챙기며 잠시 쉬었다가 도봉산 윗도리로 길을 재촉했다. (광륜
사는 사진에 담지 않았음)


▲  인절미바위

도봉계곡 하류와 도봉서원(道峰書院)터, 도봉대피소를 거쳐 석굴3거리로 가던 중 '인절미바위
'란 특이하게 생긴 바위가 잠깐 보고 가라며 발길을 붙잡는다. 이 산길은 여러 번을 오갔지만
이 바위는 이번에 처음 만나는데, 그의 피부에는 인절미나 갑옷 조각처럼 생긴 주름선들이 촘
촘히 깃들여져 있어 눈길을 끈다. 이는 대자연 형님의 작품 활동의 하나인 박리(剝離)현상 때
문이라고 한다.

암석들은 낮에는 햇빛으로 뜨겁게 가열되고, 밤에는 냉각되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 허나
열전도율이 낮기 때문에 가열의 효과는 암석 피부에 집중된다. 그렇게 가열과 팽창을 반복하
면서 일정한 한계를 넘으면 압력에 의해 암석 피부가 벗겨지니 그게 박리현상이다. 바로 그
현상 때문에 이 바위가 인절미를 잔뜩 늘어트린 듯한 괴상한 모양새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현상은 끝난 것이 아닌 굼벵이 속도로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러니 대자연의 작품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바위에 인공(人工)을 가하지 않기 바란다.


▲  석굴3거리로 마중을 나온 석굴암 표석

석굴3거리에 이르면 갈림길이 나타나 길 선택을 요구한다. 여기서 직진하면 만월암과 포대능
선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 가면 석굴암과 신선대로 빠지는데, 우선 석굴암부터 보고자 서쪽
길로 진입했다.
여기서부터 경사가 제법 각박해져 적지 않게 숨을 차게 하는데, 이는 만월암 방향도 마찬가지
이다. 그만큼 그들은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접근하기 힘든 높은 곳에 자리해 있다.


▲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로 각박하게 펼쳐진 석굴암 방향 산길

▲  석굴암입구에서 석굴암으로 인도하는 계단길
여기서 북쪽 벼랑으로 난 계단길을 오르면 석굴암이다.

▲  오색연등이 길을 안내하는 석굴암 계단길 ①
석굴암을 가려면 무조건 이 계단길을 올라가야 된다. 경내 밑까지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산길의 연속이라 긴장의 끈을 절대로 놓으면 안된다.

▲  오색연등이 길을 안내하는 석굴암 계단길 ②

▲  석굴암 석굴법당과 석굴암 바위글씨 (옆에 있는 기와집은 종무소)

도봉산 3대 봉우리(자운봉, 선인봉, 만장봉)의 일원인 만장봉(萬丈峯, 718m) 밑 460m 고지에
석굴암이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만장봉은 높고 높은 봉우리를 뜻하는데, 순도 100%의 크
고 견고한 화강암 봉우리로 암벽을 타는 사람들 외에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하늘의
감옥 같은 위엄 돋는 봉우리이다.

도봉산 종점에서 석굴암까지는 1시간 20~30분 정도 올라가야 되는데, 석굴암하면 흔히 경주(
慶州) 석굴암을 많이들 생각한다. 그래서 그냥 석굴암에 갔다고 하면 다들 의심할 여지도 없
이 경주에 갔냐고 묻는다. 하지만 석굴암은 이름 그대로 석굴(石窟)에 닦은 절로 그 이름을
지닌 절과 암자가 천하에 꽤 있다. 천하 제일의 대도시인 서울만 해도 도봉산과 인왕산(仁王
山)에 석굴암이 전하며, 도봉산 서쪽인 오봉산(五峯山) 밑에도 석굴암이 있다.

이곳 석굴암은 조계종(曹溪宗) 소속의 암자로 673년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했다고 전한
다. 하지만 도봉산 산신도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로 확실한 것은 없다. 다만 절 주변에서 고
려 중/후기 것으로 보이는 청자 대접과 조각, 조선 초기 백자와 분청사기의 파편이 나와서 적
어도 고려 중기 이후에 아주 작게 법등(法燈)을 켠 것으로 여겨진다.
19세기 이후에는 북한산성(北漢山城)을 보조하는 병영(兵營) 사찰의 기능을 담당했으며, 이곳
주변에 가마터를 만들어 기와와 그릇을 생산했다. 절 주변에서 '순치(順治) 6년'(1649년) 명
문이 새겨진 기와가 나와서 1649년에 절을 중창한 것으로 보이며, 6번 절이 망하고, 6번 중창
했다고 전하나 이 역시 믿거나 말거나이다.

1935년 석굴암 화주였던 승려 강응담(姜應潭)이 불교 신자인 거사 김병용(金秉龍)의 시주와
도움으로 건물을 증축했는데, 김병용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관세음탱화 1본을 절에 흔쾌히 기
증했다. 이후 여러 번의 손질을 거쳐 지금에 이른다.

▲  석굴법당 석조석가여래상

▲  만월보전 내부

만장봉 밑 각박한 벼랑에 걸터앉은 경내에는 법당인 만월보전을 비롯해 오백나한전, 범종각,
요사, 석굴법당 등 4~5동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서울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천룡도(天龍圖)가 전한다. 이 탱화는 1745년에 해청(海淸)이 조성한 것으로 경내에서 가장
늙은 존재인데, 다른 곳에서 넘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허나 아쉽게도 그를 공개하지 않아서
친견하지는 못했다.
그 외에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조성된 산신도와 주변에서 발견된 고려 후기 청자 대접과
순치6년명 기와 등도 있었으나 석굴암 주지인 정재가 이들을 2003년 10월에 서울역사박물관에
흔쾌히 기증했다. 그래서 석굴암에서 누릴 수 있는 고색의 기운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된다.
경내를 이루는 건물과 석굴은 모두 근래 손질된 것이며, 소장문화유산 또한 비공개(천룡도)
또는 서울역사박물관에 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동쪽과 동남쪽이 확 트여있어 일품 조망을 자랑하며, 초파일 인심이 아주 후한
곳이다.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食後景)이란 크고 아름다운 의미에 따라 절에 들어서자마자
공양밥을 찾았는데, 보살 아줌마들의 배려로 공양간에 발을 들였다.
이곳 공양간은 방이라 거추장스러운 신발을 벗고 들어가 승려와 신도들과 같은 밥상을 썼는데
, 나물과 채소 반찬이 무려 10여 가지, 떡은 7~8가지, 국은 1가지가 나왔다. 이는 내가 먹어
본 절 공양밥 중 단연 1위이다. 그야말로 속세에 산채정식과 같은 수준이다. 떡 또한 뷔페집
과 떡집을 제외하고 이렇게 다양하게 먹어본 적이 없다.
그 외에 녹차와 믹스커피도 있으며, 주지승은 초파일 선물로 나를 비롯한 절을 찾은 사람들에
게 부적 목걸이를 주었다. 이곳 공양밥을 사진에 담아야 했지만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나온
그들을 섭취하느라 바쁜 통에 사진에 담지는 못했다. (평일과 휴일에 가면 컵라면과 공양밥을
제공함, 단 절의 사정으로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음)

* 석굴암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29-1 (☎ 02-954-8517)


▲  석굴법당 위에 깃든 검은 피부의 석굴암 바위글씨와 그 위로
장대하게 펼쳐진 만장봉의 위엄

▲  석굴법당 내부

바위 아랫도리에 있는 석굴법당은 석굴암의 이름값을 하는 곳이다. 옛날부터 있던 석굴로 근
래 내부를 손질하여 석굴법당으로 삼았다.
이곳에는 하얀 피부의 석조석가여래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석굴 속이라 시원하다. 그리고 석
굴 위쪽 바위에는 '石窟庵' 바위글씨가 진하게 깃들여져 있어 이곳의 정체를 속세에 알린다.


▲  석굴암에서 바라본 천하

석굴암은 가히 국보급 조망을 자랑한다. 여기서는 도봉산의 너른 산주름과 도봉구 지역을 비
롯해 노원구, 강북구, 성북구, 중랑구, 동대문구, 광진구, 수락산, 불암산, 봉화산, 아차산(
峨嵯山) 산줄기, 그리고 구리와 남양주, 하남의 산하까지 흔쾌히 시야에 잡힌다.


▲  만월보전(滿月寶殿)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이곳의 법당인 만월보전이 있다. 돌로 벽을 다진 기와돌집
으로 금동 피부의 약사여래상을 중심으로 한 약사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독성탱과 산신탱
도 들어있어 삼성각(三聖閣)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그리고 집 뒤로 보이는 커다란 하얀 돌덩
어리는 석굴암에게 집과 그늘을 베푼 만장봉이다.


▲  만월보전 약사여래삼존상
만월보전의 주인장인 약사여래상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에
대동하며 여기까지 올라온 중생들을 반겨준다.

▲  만월보전 독성탱
천태산(天台山)에서 몸을 일으킨 나반존자<那畔尊者, 독성(獨聖)>를
중심으로 동자와 산, 소나무 등이 담겨져 있다.

▲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과 장독대 무리들

경내에서 가장 북쪽 구석에 근래 장만한 오백나한전이 있다. 석가여래와 그의 열성제자인 오
백나한의 공간으로 만월보전처럼 동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데, 건물 주변으로 고추장, 된
장 등의 음식 재료들을 머금은 장독대들이 가득해 은근히 침을 고이게 한다.


▲  오백나한전 석가삼존상과 오백나한상

금동 피부를 지닌 석가삼존상과 가지각색의 모습을 지닌 오백나한상(500명의 나한상)이 가득
들어앉아 정면에 나타난 나를 바라본다. 그들의 폭풍 시선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나도 모르
게 쑥쓰러움이 일어날 정도였는데, 석굴암의 유일한 문화유산인 천룡도가 이곳에 있을까 싶어
서 열심히 눈동자를 굴려봤지만 역시나 없었다.
물론 석굴암 승려에게 천룡도를 문의하면 되겠지만 절에서 공개하지 않는 그를 요청하는 것도
좀 그렇다. 인연이 없음에도 억지로 맺는 것도 도리는 아니다.


▲  석굴암에서 바라본 다락능선

다락능선은 서울에서 제일 북쪽 끝을 잡고 있는 능선이다. (서울의 최북단 능선) 바위 능선을
적지 않게 지니고 있으며, 능선길이 다소 각박하고 위험요소들이 많지만 조망도 일품이고, 길
도 나름 재미있어서 찾는 수요가 많다. 이 능선의 끝에서는 도봉산의 지붕길인 포대능선과 와
이계곡과 만난다.


▲  오백나한전 주변에서 바라본 천하
도봉구와 노원구, 강북구를 서울 동북부 지역과 불암산, 아차산 산줄기,
남양주, 하남 지역 등

▲  곱게 치장된 관불(灌佛)의식의 현장 (오백나한전 주변)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금동 피부의 아기부처가 거의 1년 만에 외출을 나왔다.
꽃으로 치장된 관불대 앞에 수박과 참외, 사과 등 온갖 과일들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으며, 그 앞에 예불 공간이 있다.

▲  잠시나마 정이 든 석굴암을 뒤로 하며
(석굴암으로 오르는 계단길)


♠  도봉산 만월암(滿月庵)

▲  만월암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만장봉(718m)의 위엄

석굴암을 기분 좋게 둘러보고 다음 메뉴인 만월암으로 움직였다. 만월암은 석굴암에서 북쪽으
로 300m 정도 떨어져 있으나 바로 가는 길이 없어서 일단 석굴3거리로 쭉 내려와서 다시 포대
능선으로 인도하는 산길을 20여 분을 올라가야 된다. 만월암으로 가는 산길 또한 석굴암 이상
으로 각박한 경사를 자랑하며, 도봉산 3대 봉우리의 하나인 만장봉이 이곳을 굽어본다.


▲  만월암 산길에서 바라본 천하

만월암 산길은 좌우(동/서)는 높은 산주름으로 막혀있고 오로지 동남쪽만 확 트여 있다. 하여
여기서는 도봉구를 비롯해 강북구, 노원구, 중랑구, 광진구, 동대문구, 성북구, 수락산, 불암
산, 아차산 산줄기, 구리와 남양주, 하남의 산하까지 흔쾌히 두 망막에 들어온다. 힘들게 올
라온 보상을 일품 조망으로 어느 정도 보상을 받는 셈이다.


▲  큰 바위 밑에 깃든 만월암 밑에 이르다

만월암은 도봉산의 대표 지붕인 자운봉(紫雲峰, 739.5m)과 포대능선 동쪽 밑 500m 고지에 숨
겨진 외로운 석굴 암자이다.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북쪽 끝에 자리한 절이자 다락능선과 함께
서울의 최북단을 장식하고 있는데, 신라 문무왕(文武王) 시절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
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기록과 유물은 없는 실정이다.

이곳의 지형은 커다란 바위가 자연산 지붕을 이루고 있고 2개의 바위가 양쪽에서 그를 받치는
기둥 역할을 하며, 그 사이로 조촐하게 공간이 생겨 조그만 자연산 동굴을 이루고 있다. 지금
이야 산길과 이정표가 잘 닦여져 있지만 옛날에는 찾기가 무지 힘들 정도로 외진 곳이다. 그
러다 보니 조용히 참선에 임하기에는 아주 그만인 곳이라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부터
보덕굴(普德窟)이라 불리는 참선 석굴도량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런 것을 보면 애당초 절이나 암자는 없었고, 그냥 참선을 위한 동굴이 전부였음을 알 수 있
다. 또한 도봉산에는 천축사와 망월사(望月寺), 원통사, 도봉사(道峰寺) 등의 고찰이 많아서
승려들의 수행 장소로도 널리 쓰였을 것이다.

현재 만월암이 생긴 것은 만월보전에 봉안된 석불좌상을 통해 17~18세기 정도로 보인다. 불상
은 1784년에 개금되었다는 명문이 있어 적어도 1700년대(빠르면 1600년대)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절이란 불상이 있어야 영업이 되니 17~18세기에 조촐하게 암자로 태어났음을 가늠
케 해주며, 암자의 이름인 만월(滿月)은 석불좌상이 약사여래불이라 그를 상징하는 뜻에서 지
어진 이름이다. (신라 중기 창건설은 그냥 뽀송뽀송한 거품임)

불상을 봉안하고 번듯한 암자로 거듭났지만 따로 건물을 짓지 않고 그냥 동굴을 법당으로 다
듬어 사용했으며, 1940년에 여여거사(如如居士) 서광전(徐光前)이 집을 짓고 중창을 벌였다.
그러다가 2002년 혜공이 만월보전을 지었고, 2004년에 산신각을 지어 지금에 이른다.

경내에는 석굴 자리에 지은 만월보전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산신각 등 건물 2동이 전부
이다. 만월보전은 법당과 요사의 역할을 겸하는데, 서쪽 칸은 법당, 동쪽 칸은 요사(寮舍)와
종무소로 쓰이며, 건물의 크기는 작고 투박하다. 아무래도 궁벽한 곳이라 불사가 어려워서 그
렇다.
바위 위쪽에 자리를 마련해 산신각을 만들었으며, 나중에 여건이 된다면 이 주변을 밀어서 건
물을 심을 계획이라고 한다. 절을 넓히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하려면 멀쩡한 숲을 밀어야 된
다. 내 바램이지만 만월암은 지금의 모습이 딱 그만이다. 그냥 소박한 석굴도량으로 속세 곁
에 남았으면 좋겠다.

* 만월암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31 (도봉산길 92-4)


▲  만월암의 모든 것, 만월보전(滿月寶殿)

이렇게 작은 암자이건만 다행히 소장문화유산이 하나 있어 절을 길거리에 나앉게 만들지는 않
는다. 바로 만월보전의 주인인 석불좌상이다. 만월암은 이번이 2번째 인연인데, 바로 그를 보
고자 이곳을 찾았다. 즉 석불좌상이 나를 이곳으로 부른 것이다.

절에는 승려 1명이 머물고 있는데, 이곳은 도봉계곡에서 포대능선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라 산
꾼들이 많이 지나간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 많이 쉬었다 가는 편인데, 절에서는 따뜻한 믹스
커피나 티백차, 과자, 떡 등을 제공해 인심을 쏠쏠히 보이고 있다.

큰 바위 밑에 자리한 만월보전은 만월암의 법당이자 그 자체와 같은 존재로 예전 석굴 자리이
다. 2002년에 혜공이 지은 건물로 한정된 자리를 활용하다 보니 정면 4칸, 측면 1칸의 'ㄱ'자
모습이 되었으며, 서쪽 칸은 법당, 동쪽 칸은 요사로 쓰인다. 요사에는 만월선방(滿月禪房)이
란 현판이 걸려 있으며, 법당과 요사를 바로 이어주는 문은 없고, 툇마루를 통해 이동하면 된
다.
건물 안에는 약사여래인 석불좌상을 비롯하여 관세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 1969년에 만든 석
가모니후불탱화와 신중탱, 사천왕탱, 산신탱이 들어있어 내부를 화려하게 수식한다.


▲  만월암 석불좌상 - 서울 유형문화유산

만월보전 불단에 봉안된 석불좌상은 만월암에서 가장 늙은 보물이자 소중한 밥줄이다. 포근한
인상을 지으며 속세를 굽어보는 그는 피부부터 옷에 이르기까지 온통 하얀색으로 이루어져 있
는데, 원래는 금동불이었으나 근래 호분(胡粉)을 씌우면서 졸지에 백불(白佛)이 되어버렸다.

그의 왼손에는 빨간 피부의 약합이 들려져 있어 그가 약사여래임을 알려주고 있으며, 약합 안
에는 중생의 갖은 병을 치유하는 약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 약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본인부터
흔쾌히 치료해주면 좋으련만 약합의 뚜껑은 좀처럼 열릴 줄을 모른다.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의 두 귀는 중생의 소망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으려는 것인지 어깨까지 축 늘어졌다. 코는
오목하고 눈은 지그시 떴는데, 눈동자가 진하며, 입술은 립스틱을 바른 듯, 매우 붉다. 불상
이 지나치게 하얗다 보니 더 진하게 보이는 것이다.

예전 석굴 석벽에 '乾隆四十九年六月日佛像改金施...'이란 명문이 있어서 건륭(乾隆) 49년 6
월, 즉 1784년에 시주를 받아 개금했음을 알려준다. 불상의 조성 시기는 개금시기 이전이 확
실하며 불상의 양식까지 고려한다면 최대 1600년대까지 가능하다. 하여 참선용 석굴에서 암자
로 태어난 시기도 불상이 조성된 그 시기가 아닐까 여겨진다. 

불상의 높이는 78cm로 좌우에는 근래 마련된 하얀 피부의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두
어 약사여래삼존상을 이룬다. 단정한 체구와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통견의(通肩衣)에 보이는
옷 주름 표현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드러나 도봉산 서울 구역에 있는 불교문화유산
중 가장 먼저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얻었다. (1999년에 지정됨) 그리고 그들 뒤로 1969년에 조
성된 석가모니후불탱이 든든하게 걸려있다.


▲  만월암에서 바라본 천하
무성한 숲 사이로 도봉구와 노원구를 비롯한 서울 동북부 지역과
아차산 산줄기 등이 두 망막에 맺힌다.

▲  만월보전 허공에 뜬 큰 바위
마치 하늘이 저만큼이나 내려앉은 모습으로 만월보전은 그의
그늘에 포근히 들어있다.

▲  위쪽에서 바라본 만월보전 지붕
만월보전에서 산신각과 포대능선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이 계단길은 큰 바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데,
바위 사이 구간은 거의 석굴 같은 모습이다.
 

만월암 바위 위쪽이 조망 맛집이다. 앞서보다 조망의 질감이 더 우수해졌는데, 동남쪽으로 도
봉구와 노원구, 수락산, 불암산, 중랑구, 성북구, 동대문구, 광진구, 아차산 산줄기, 그리고
구리와 남양주, 하남의 산하까지 거침없이 두 망막에 들어온다. (보이는 범위는 앞서 석굴암,
만월암 경내와 거의 비슷함)


▲  만월암 산신각(山神閣)

만월보전 바위 위쪽 산자락에 산신각이 홀로 자리해 있다. 만월보전에서 여기까지는 걸어서 2
분 거리로 제법 떨어져 있어 거의 별개의 공간처럼 다가온다.
경사를 이용해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집을 지은 것으로 건물 외벽은 갑옷처럼 돌로 둘렀고, 목
조 지붕에는 동기와를 올렸다. 2004년에 혜공이 지었으며, 내부에는 같은 해에 조성된 산신탱
이 들어있다.


▲  만월암 바위 위쪽에서 바라본 천하

만월암 바위 위쪽과 산신각 주변이 조망 맛집이다. 앞서보다 조망의 질감이 더 우수해졌는데,
동남쪽으로 도봉구와 노원구, 수락산, 불암산, 중랑구, 성북구, 동대문구, 광진구, 아차산 산
줄기, 그리고 구리와 남양주, 하남의 산하까지 거침없이 두 망막에 들어온다. (보이는 범위는
앞서 석굴암, 만월암 경내와 거의 비슷함)


▲  만월암으로 인도하는 나무데크 계단길 (만월보전에서 바라본 모습)
만월암은 거의 벼랑 수준의 산길을 올라가야 된다. 그야말로
하늘의 감옥 같은 곳.

▲  만월암에서 도봉계곡으로 내려가는 산길 (만월암 표석)

만월암을 오랜만에 복습하고 다음 메뉴인 천축사로 이동했다. 여기서 천축사를 가려면 도봉대
피소까지 쑥 내려갔다가 거기서 마당바위, 신선대 방향으로 15분 정도를 쑥 올라가야 된다.
오늘은 도봉산을 오르락 내리락을 여러 번씩이나 도돌이표처럼 반복한다. 몸이 좀 지치긴 하
지만 오늘의 메뉴들이 모두 도봉산 윗도리에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
을 파야지 어쩌겠는가.

본글은 분량상 여기서 끝. 천축사 부분은 별도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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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서울 도봉구 도봉동 산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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