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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통사에서 우이암(관음봉)으로 인도하는 산길

원통사가 우이암(관음봉) 바로 밑이긴 하나 이전보다 더 각박해진 산길을 10여 분을 더 올라가야 된

다. 지도상의 거리는 200m 정도라 금방 이를 듯 싶었으나 체감거리는 거의 1km가 넘어 벌써부터 땀

육수를 제대로 배출했다.

우이암 그늘이라 그런지 올라가는 길목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유난히도 많았다. 하나같이 생겨먹은 것

들이 예사롭지가 않아 몇몇 바위는 세상이 달아준 이름도 있을 법도 한데 사람들의 귀차니즘 때문인

지 다들 이름표가 없다. 허나 그것이 무슨 대수랴?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일이지 바위들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2. 우이암(관음봉) 밑도리에서 바라본 우이암의 위엄

우이암(관음봉) 남쪽 밑도리에서 고개가 부러질 정도로 올려다 본 우이암의 모습이다. 우이암은 크고

견고한 바위 봉우리로 그야말로 하늘의 감옥 같은 곳이다.

 

3. 우이암능선에서 바라본 천하

도봉산의 첩첩한 남쪽 산주름 너머로 도봉구와 강북구, 노원구, 성북구, 중랑구, 동대문구, 광진구, 성

동구, 아차산 산줄기, 송파구 등이 흔쾌히 시야에 들어온다. 앞서 원통사보다 해발 100여m 높은 곳이

라 조망의 품질도 그만큼 좋아졌다.

 

4. 서쪽에서 바라본 우이암(관음봉)

도봉산의 남쪽 끝 봉우리인 우이암(해발 542m)은 아주 잘생기고 위엄도 대단한 순 100% 바위 봉우

리이다. 대자연 형님이 억겁의 세월을 두고 빚은 대작품으로 약 2억 년 전인 중생대 쥐라기 중엽 시절

에 일어났던 대보조산운동(大寶造山運動)으로 도봉산 산줄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바람과 비 등이

계속 산을 깎고 다듬으면서 산 정상부는 화강암이 노출된 채 바위산이 되었고, 그것이 지금에 도봉산

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여 도봉산은 자연히 서울 근교의 대표적인 화강암 바위 산으로 자운봉, 선인봉, 만장봉, 신선대, 칼

바위 등 걸출한 바위와 암봉(岩峰)이 즐비하며, 우이암(관음봉)도 바로 그중의 하나로 대자연이 신과

동물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자리만 축내는 인간들의 손길을 꺼렸는지 완전히 난공불락의 요새로 지어

놓았다. 허나 그렇게 단단하게 만들었음에도 하늘과 가까워지고 싶은, 봉우리를 정복하고 싶은 인간

의 어쩔 수 없는 본능 앞에 결국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5. 우이암능선에서 바라본 도봉산 중심부 (북쪽 방향)

도봉산의 지붕을 이루고 있는 자운봉(도봉산의 중심 봉우리, 739.5m), 만장봉, 선인봉, 신선대를 비

롯해 보문능선, 다락능선, 의정부시, 수락산 등이 두 망막에 들어온다.

 

6. 우이암능선에서 만난 자연산 돌문 (우이암, 관음봉 방향)

 

7. 우이암능선 북쪽 부분에서 바라본 우이암(관음봉)의 위엄

봉우리 자체가 거의 수직 절벽으로 아무나 범할 수 없는 천험의 요새이며, 내려가는 것 또한 까마득한

그야말로 하늘의 감옥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나 올라갈 수는 없고 장비를 갖춘 암벽꾼에게만 제한적

으로 길을 내주고 있다. 특히 암벽 타기에 최적화된 곳이라 암벽꾼들로 늘 부산하며, 전국 암벽 등반

대회가 열렸던 암벽 등반의 성지이기도 하다. 대자연이 인간의 접근을 막고자 만든 바위 봉우리가 졸

지에 암벽 등반을 위해 내려준 선물의 모양새가 되버린 것이다.

 

지금은 소의 귀를 닮았다는 뜻에서 아무렇지 않게 우이암이라 불리고 있지만 원래 이름은 관음봉이다.

관세음보살이 부처를 향해 기도하는 모습과 비슷해 그런 이름을 지니게 되었는데, 사모관대(紗帽冠

帶)를 쓰고 있는 모습과도 비슷하여 '사모봉'이란 별칭도 가지고 있다.

도봉산에는 호랑이와 코끼리, 두꺼비, 코뿔소, 학 등 다양한 동물의 형상을 지닌 바위들이 많은데 이

들이 관음봉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부터 도봉산

제일의 관음성지(觀音聖地)로 조촐히 추앙을 받았다. 아마도 원통사에 있던 석굴(현재 나한전)에서

수행하던 승려나 도봉산 승려들이 발견하여 성지로 격하게 추켜세웠을 것이다. 바위 자체가 아주 휼

륭한 관음성지이니 그 후광(後光)을 놓치지 않고자 바위 밑 적당한 곳에 원통사가 둥지를 틀고 관음

도량을 칭하고 있다.

 

8. 서울을 바라보고 있는 우이암(관음봉)

조금 밋밋해 보이면서도 순백의 아름다움이 묻어난 이 봉우리에도 왜정(倭政)의 추악한 잔재가 서려

있다. 왜정은 관음봉의 위엄을 욕보이고자 소의 귀를 닮았다는 뜻의 우이암으로 강제로 이름을 갈아

버린 것이다. (우이동, 우이시장에서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바꾸었다고도 함)

아무리 봐도 소의 귀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왜정은 왜 그리 눈이 삐딱한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 이름

은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과 사람의 망각 속에 완전히 굳어져 버렸고, 관음봉이란 이름은 흐릿한

기억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원통사와 불교 단체, 뜻있는 이들이 원래 이름으로 다시 갈아야 된다며

천하에 호소하고 있어 차차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9. 확대해서 바라본 우이암(관음봉)

마치 투구를 쓴 사람이 비스듬히 서서 서울을 바라보는 모습 같다. 보면 볼수록 기묘한 우이암(관음봉)

 

10. 우이암능선에서 바라본 보문능선

보문능선은 도봉계곡 남쪽에서 우이암능선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보문능선이란 이름은 원통사에

예전 이름인 보문사에서 따왔음) 그런 능선 너머로 도봉동과 방학동, 상계동, 수락산, 불암산, 의정부

(장암동, 호원동, 민락지구) 지역이 두 망막에 들어온다.

 

우이암 서울 도봉구 도봉동 산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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