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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가덕도(加德島) 나들이 (가덕도 등대) '

가덕도 대항
▲  가덕도 대항포구

가덕도 새바지 돌섬

가덕도등대

▲  대항새바지 앞바다에 뜬 돌섬

▲  가덕도 등대


여름의 제국(帝國)이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던 7월 한복판에 부산 가덕도를 찾았다. 이 섬은
일찍이 2007년 2월에 들어간 적이 있다. 섬 남쪽 끝에 자리한 가덕등대를 목표로 섬에 들어
갔으나 결국 등대를 목전에 둔 외양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등대를 가려면 소정의 절차
를 밟아야 되는데, 그만 그걸 몰랐던 것이다.

그때의 아쉬움을 간직하며 한풀이를 노리던 중, 7월 중순에 부산(釜山)의 형님 내외와 같이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실수가 없도록 가기 2주 전에 부산지방해양항만청에 문의를 하니 방
문날을 기준으로 7일 전까지 방문자의 나이와 주소 등을 적어서 팩스로 보내라고 그런다.
그래서 그들의 요구에 얌전히 응하며 인적사항을 한글 문서로 작성하여 팩스로 보내고 연락
을 취하니 절차는 다 끝났으니 그날 신분증을 가지고 오라고 그런다.

그리고 1주 뒤, 설레는 마음을 다독거리며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내렸다. 허나 부산에 발을
들이자 여름의 제국이 굵은 비폭탄을 투하하며 천하를 유린한다. 내일은 비가 더 온다고 하
던데 이러다가 또 못가는 것은 아닌지 슬슬 걱정이 치솟는다. 어쨌든 광안동 형님집에 들어
가 족발에 곡차(穀茶)를 넉넉히 겯드리며 간만에 회포를 풀고 밤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몇시간 뒤, 등대로 가는 그날의 서광(曙光)이 창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아침부터 비
는 부산 땅을 아프게 때려댄다. 급히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을 해보니 오후부터 비
가 좀 멎는다고 나왔다. 허나 구라청으로 악명이 높은 기상청이라 그다지 신뢰는 가지 않았
고, 그저 우리의 길을 막으려드는 비구름에 원망이 섞인 한숨만 나올 뿐이다.

빗줄기가 멎기를 기다리며 슬슬 지쳐가던 중, 11시가 되자 빗줄기가 상당히 가늘어졌다. 그
때를 이용해 형님 내외를 설득해 급히 집을 나서 1001번 급행좌석버스(해운대,좌동↔동아대
)를 타고 하단으로 갔다. 이때쯤 되니 비는 완전히 멎었으나 바람이 좀 분다.
하단에서 가덕도가는 버스를 기다렸으나 좀처럼 오질 않자 형님이 서둘러 택시를 잡아 낙동
강하구둑과 신호대교를 건너 녹산공단을 가로질러 가덕도 선창에서 내린다. 택시요금은 2만
원 넘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난다.

선창은 가덕도 제일 북쪽에 자리한 포구로 이 섬의 오랜 관문이다. 2009년까지 가덕도와 한
반도를 이어주던 배가 절찬리에 운행했으나, 신항만확장으로 섬이 한반도의 일원이 되자 정
기 여객선은 강제 퇴장하고 말았다.


♠  가덕도 입문

가덕도에 들어서긴 했지만 선창에서 등대까지는 꽤 먼 거리이다. (섬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임)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는 매우 난이도가 높아 택시 정류장에서 바퀴를 접고 쉬고 있는 택시를 흔
들어 깨워 등대로 간다.

택시를 타고 선창과 천성 사이에 험한 고개를 여럿 넘어 가덕도 가운데인 천성에 이른다. 섬이
한반도와 거의 연륙되고 2009년 여름 이후 외지 수레의 출입을 허용하면서 수레의 왕래가 많아
짐에 따라 길도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허나 급커브 구간과 천길낭떠러지 등 험한 구간이
상당수 존재한다.

천성에서 거가대교 동쪽을 지나 다시 고개 몇개나 넘으니 가덕도 남쪽의 중심인 대항에 이른다.
대항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2007년과 비슷했다. 대항에서 다시 각박한 고개를 넘어 선창 출발
30분 만에 가덕도 최남쪽 마을인 외양포에 이른다. 택시비는 2만원이 넘게 나왔는데, 정말로 그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멀고 험준한 거리를 달려왔다. 아마 m요금으로 했으면 3만원은 넘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능숙하게 수레를 몰아 우리를 데려다 준 운전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수레에
서 내린다.

가덕도의 남쪽 조그만 어촌인 외양포는 가구수가 적어 여전히 한적하다. 섬을 향한 수레의 행렬
도 대부분 대항이나 천성에서 바퀴를 접을 뿐, 이곳까지 들어온 수레는 별로 없어, 5대 정도가
포구에 쉬고 있을 뿐이다. 그럼 여기서 잠시 가덕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 넘어가자.

★ 가덕도(加德島)는 어떤 곳인가?
가덕도는 부산에서 가장 큰 섬으로 면적은 21.07㎢(연륙되기 이전), 해안선 길이는 36㎞ 정도이
다. 1989년까지 경남 의창군(義昌郡)에 속하여 천가면(天加面)으로 있다가 부산이 한참 서쪽과
북쪽으로 몸집을 불려가던 1989년 부산 강서구에 편입되어 천가동(행정동명)이 되었다.
 
약 1,400세대에 3,000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대항과 외양포에서 조개더미가 발견되고 두
문에서는 고인돌이 발견되어 선사시대부터 이미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
기까지 이렇다할 사적(事蹟)은 없으며, 1544년 가덕진(加德鎭)과 천성만호진(天城萬戶鎭)을 설
치하여 첨사(僉使)를 파견했다.
임진왜란 시절에는 왜군이 머물렀으며 왜정(倭政) 때는 왜군들이 외양포에 군사시설을 만들고,
해안 곳곳에 동굴을 파서 진지(陣地) 및 관측소로 사용했다. 1936년에는 성북마을 주민들이 항
일친목단체를 결성했으나 왜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섬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해안선은 동쪽과 남쪽은 대체로 단조로우나 서쪽은 만(灣)과
곶이 연이어 있으며, 한반도와 맞닿은 북쪽 해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파른 해안절벽이다. 섬
전체는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에서 연대봉(459m)이 단연 높다.

가덕도의 둥지를 튼 마을은 성북동을 제외하고 모두 해안가에 있다. 마을 대부분은 섬의 북쪽에
몰려 있는데, 성북과 선창, 외눌, 내눌, 정거, 율리, 장항 등이 있다. 섬 중간에는 섬에서 2번
째 큰 마을인 천성이 있고, 천성 북쪽에는 왜정 때 금괴를 실은 배가 침몰했다는 이야기가 서린
두문마을이 있다. 그리고 섬 남쪽에는 대항과 외양포 등 2개의 마을이 있으며, 대항과 섬의 중
간인 천성과는 거리도 멀고 고개도 여러 개 넘어야 된다. 그래서 섬이 육지와 이어지기 전에는
배로 교류를 했다. 

섬 사람들은 주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농업쪽은 주로 보리, 양파, 마늘 등을 재배하
며, 어업은 섬 연안에서 굴 양식을 벌이고 있다. 섬 주변으로 숭어, 대구, 청어가 많이 잡히며,
미역과 홍합, 조개류도 아낌없이 나온다. 근래에는 숙박업이나 낚시도구 대여 등으로 수입을 올
린다.

가덕도는 부산/창원권의 당일치기 나들이 코스로 인기가 높다. 이곳에 서린 명소와 문화유적으
로는 가덕도등대와 연대봉(연대봉 봉수대)을 비롯해 천성진성(天城鎭城), 척화비, 두문마을 고
인돌, 천성고개에 있는 국군묘지, 성북왜성, 대항새바지 몽돌해변, 동백자생군락지 등이 있으며,
등산은 연대봉(煙臺峰)만 가능하다.

2009년 한반도와 가덕도를 잇는 다리가 개통되면서 무늬만 섬이 되었고, 2011년 녹산에서 가덕
도를 가로질러 거제도(巨濟島)로 이어지는 세계 최대의 거가대교가 놓여 더욱 한반도와 끈끈하
게 붙게 되었다. 게다가 부산신항만이 용원을 포함해 가덕도 북단과 서단 일부까지 몸집을 불려
나가 예전과 같은 고적한 섬의 신세는 많이 벗어났으나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이던 가덕도에 사
람과 수레, 개발의 칼질이 파도처럼 밀려와 여기저기를 들쑤셨다. 그래서 신항만과 맞닿은 북쪽
은 신항만과 도로 공사로 예전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부디 단점을 최소화 하고 장점을 극대화
하여 가덕도를 잘 가다듬었으면 좋겠다.

★ 가덕도 축제의 축제들
① 숭어들이 축제 - 가덕도에는 그곳 특유의 숭어잡이 방법이 전해오고 있다. 바로 160여 년의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 육수장망 어로법으로 숭어들이라고 한다. 이 숭어들이를 지역 축제로
키워 2002년부터 매년 4월마다 대항에서 숭어들이 축제를 연다. 여기서 '육수장망 어로법'은 2
대의 동력선이 6대의 무동력선을 적당한 곳으로 끌고 가서 동력선은 되돌아오고 무동력선만 그
곳에서 조용히 숭어를 기다렸다가 덮치는 방식이다.
♠ 축제 관련 정보는  ☞ 이곳을 클릭한다
♠ 축제 문의 - 강서구청 해양수산과 051-970-4484(4481~4485)
* 숭어들이 축제 외에도 매년 10~11월에 연대봉에서 봉수대제가 열린다.


♠  가덕도 남쪽의 조그만 어촌 ~ 외양포

외양포는 가덕도 제일 남쪽에 들어앉은 아주 작은 외딴 어촌이다. (대항동에 속해 있음) 마을의
동쪽에는 국수봉(269m)이란 산이 마을의 든든한 후광(後光)이 되어주고 있고, 마을 앞에는 천연
물감의 쪽빛 남해바다가 펼쳐져 있다. 바다를 제외하면 완전 첩첩산중으로 육로를 통해 다른 마
을로 이동하기가 무지 힘들어 예전에는 바닷길로 다른 마을과 한반도로 나갔다. 지금은 육지에
서 수레들이 자유롭게 들어와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대중교통으로 갈 경우에는 천성에서 여객선
(1일 4회)을 타거나 택시 또는 도보로 들어와야 된다.

지금은 평화로운 어촌이지만 100년 전에는 왜군의 군사령부가 있던 왜군의 군사기지였다. 1905
년 5월 7일 러일전쟁을 앞두고 가덕도에 상륙한 왜군은 외양포 주민을 모조리 내쫓고 군사기지
를 만들었다. 그것이 조선반도에 만든 왜국의 첫 기지였다.
마을 뒷산에는 당시 왜군이 만든 포진지와 방공호, 창고, 대공서취라이트 설치자리, 발전기설치
자리, 군사령부발상지 비석 등이 부끄러운 듯, 숨어있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여실히 대변해 주
며, 왜군 막사(幕舍)를 주민들이 개조하여 주거지로 쓰고 있다. 또한 포구 서남쪽 해안 끝쪽에
선사시대(先史時代) 조개더미의 흔적이 있어, 그 시절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아련히 귀뜀
해준다.
해방 이후 가덕도등대에 우리 해군이 주둔하면서 마을 일대가 국유지 및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였고 가옥의 개축이나 신축허가가 거의 어려운 실정에 놓였다. 그러다보니 조금은 낙후된 모
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외양포는 어항(漁港)이 조성된 대항과 천성, 선창과 달리 거의 자갈밭으로 이루어진 천연의 항
구로 포구 동남쪽에 세워진 조그만 방파제가 나루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잔잔히 밀려오는 바다
파도와 해변에 누워있는 자갈돌과의 끊임없는 속삭임만이 들릴 뿐, 적막하기만 하다.

해변에는 자갈과 몽돌 외에도 인간들이 무책임하게 내버린 온갖 쓰레기들이 옥의 티처럼 수북하
여 눈길을 찌푸리게 한다. 쓰레기만 없다면 정말로 아름다운 해변일텐데, 만물의 영장을 자칭하
며 자연에게 온갖 몹쓸 짓만 골라서 하는 인간의 하나로 고개를 못들 정도로 미안함이 가득하다.


▲  외양포 포구
시커먼 먹구름이 당장이라도 비폭탄을 투하할 기세로 천하를 응시한다.
바다 건너로 보이는 곳은 가덕도와 이어진 거제도이다.

▲  외양포 방파제

▲  외양포를 지켜보는 국수봉

마을 뒷동산인 국수봉의 동쪽 자락에는 부산 지방기념물 36호로 지정된 동백나무자생지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에는 동백나무가 심심찮게 눈에 띄며, 자생지를 알리는 문화재 안내문이 멀
뚱히 서 있다. 동백은 친(親) 겨울 파의 성향을 지닌 나무로 겨울에 그 전성기를 누리는데, 나
뭇잎 사이로 붉은 동백꽃이 고개를 살짝 내밀며 바다내음을 맡는다.

현재 동백나무 자생지와 국수봉은 군작전지역으로 일반인출입금지이다. 자생지는 국수봉 동쪽
해안가에 있는데, 배를 타야 자생지의 겉부분을 구경할 수 있으며, 안으로 배를 댈 수도 없다.
그래서 안내문을 이곳에 세운 것이다. 
 
외양포까지 힘들게 들어온 수레와 외지인은 외양포에서 그 길을 멈춘다. 길이 외양포에서 끝나
는 것도 아니며, 마을에서 남쪽으로 오르막길이 있는데, 그 길은 아무도 가질 않는다. 가는 사
람이라고 해봐야 군인 정도, 그 길의 끝에는 해군 부대가 있는데, 그 안에 바로 우리의 목적지
인 가덕도 등대가 담겨져 있다.
인적이 없는 오르막길을 10분 오르면 초소(편의상 '중간 초소'로 표시)가 나오는데, 거기서 검
문을 받고 들어간다. 다시 20분 가까이 발품을 팔면 그 산길의 끝에 가덕도 등대가 있다. 2007
년 등대를 못본 한을 이제서야 푼다는 기대에 가는 길이 정말 신이 난다.


▲  외양포에서 가덕도등대 가는 길 (외양포~중간 초소 구간)

외양포에서 중간 초소까지는 1차선 크기의 길이 잘 닦여져 있다. 길을 에워싼 숲은 또다른 바다
를 이루고 있는데, 정말 강원도의 울창한 수해(樹海)를 보는 듯 하다. 거기에 지금은 여름 제국
의 전성기이니 숲의 푸르름과 우거짐은 한참 절정의 수준이다. 게다가 외양포 주변은 군사보호
구역으로 속인(俗人)의 출입이 오랫동안 통제되었다. 그러다보니 원시림처럼 울창함을 자랑하게
된 것이다.
숲에는 여러 새들이 노래를 부르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숲을 잔잔히 어루만진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는 숲에는 나무와 여러 수풀이 거미줄처럼 가득해 차마 들어가기가 겁난다. 괜히
들어갔다가 왠지 모를 자연의 덫에 빠져 영원히 못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삼삼하게 우거진 숲
에 오히려 겁이 난 것이다.

숲길을 10분 정도 오르니 중간 초소가 나타난다. 초소에 있던 군인이 무슨 일로 왔냐고 묻길래
답을 하니 신분증을 요청한다. 그래서 신분증을 보이니 군인은 부대에 연락을 취해 등대 답사
예약자 임을 확인하고는 들어가라고 그런다.


▲  중간초소에서 등대로 가는 길 (1)

▲  중간초소에서 등대로 가는 길 (2)

▲  삼해대장군(三海大將軍) 목장승
군부대를 3분 정도 앞둔 곳에 몸통에 삼해대장군이라 자신의 성격을 새긴
장승이 있다. 삼해(三海)는 우리나라를 에워싼 동해와 서해, 남해로 우리의
바다를 지키는 해군의 의지가 담긴 장승이다.


중간초소를 지나면 숲은 더욱 무성의 극치를 이루고 등대로 가는 길은 비포장 흙길로 변해 버린
다. 등대 가는 길도 이거 밖에는 없으니 우리에게는 꿩 대신 닭을 고를 권리는 없다. 오전까지
내린 폭우로 길 곳곳에 빗물이 고여 자연 지뢰를 형성하고 있었다. 길의 상태는 다소 우울하지
만 인적이 전혀 없는 숲길을 거닐고 있으니 우리가 이 길을 완전히 전세를 낸 것 같다. 길을 둘
러싼 숲은 삼삼하여 인상을 찌푸린 하늘을 가리고 있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무더위를
말끔히 털어간다. 녹음(綠陰)이 가득한 숲길은 운치가 가득하고 아름다운 그림 같은 산책로이다.
인적이 너무 없어 길에서 무슨 짓을 해도 누구도 모를 그 길, 다음에 그 짜릿함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염원해본다.

중간 초소에서 등대까지 10분 정도면 갈 줄 알았더만 제법 상당한 거리다. 길에는 오로지 나무
밖에 없으니 한편으로는 너무 식상하다. 바다도 숲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15분 정도를
걸으니 그제서야 등대의 모습이 저만치 보이고 10분을 더 걸으니 등대를 품은 해군부대의 정문
이 나타난다. 정문 초소에서 신분증 검사를 거치고 1명만 신분증을 맡기고 안으로 들어선다.


♠  가덕도등대(加德島燈臺) 둘러보기

▲  뭉개구름을 향해 솟은 가덕도등대

군부대로 들어서니 군인 관사(官舍)가 나타난다. 관사에서 등대의 모습이 진하게 보여 관사 난
간에서 사진 여러 장을 찍었다. 여기서 2분 정도를 가면 군인들이 식사 및 여가생활을 하는 큰
건물이 있다. 그 건물의 양 옆구리를 지나쳐 해송(海松)이 가득한 길을 2분 오르면 드디어 가덕
도등대이다. 등대를 보는 순간 얼마나 감개가 무량하던지 그 순간의 벅찬 감동을 어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다. 드디어 예전의 한을 보기 좋게 풀고 내가 등대 앞에 이렇게 서 있는 것이다.

등대는 3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가운데에 납작한 하얀 건물이 예전 가덕도등대이고,
남쪽에 높이 솟은 등대가 지금의 가덕도등대이다. 등대 북쪽은 등대 숙소이다. 이곳 등대는 가
덕도 최남단이자 부산의 최남단으로 삼면이 바다이다. 바다 건너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제
주도 제외)인 거제도(巨濟島)가 백령도(白翎島)에서 황해도 장연군(長淵郡)이나 옹진군(甕津郡)
땅을 보듯 가까이에 보인다.


▲  옛 가덕도등대 (가덕도항로표지관리소) - 부산 지방유형문화재 50호

부산 최남단에서 바닷길을 밝히는 가덕도등대는 대한제국(大韓帝國) 후반인 1909년 12월에 세워
졌다. 대한제국 시절에 세워진 41개의 등대 가운데 하나로 건립 배경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왜군
의 요구로 군사적인 목적으로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등대의 건평은 105.6㎡, 높이는 9.2m로
그 당시 등대 가운데 제법 큰 규모를 자랑했다. 건물 중앙에 8각형의 등탑(燈塔)이 솟아 있는데,
등탑의 점등실(點燈室)은 철제지붕과 유리로 되어있다. 건물의 건물의 기초와 기단부(基壇部)는
콘크리트로 되어있으며, 벽돌을 쌓아 만들어 외벽을 하얀색으로 칠했다.

등대 출입구에는 진입계단의 폭에 맞춰 목재를 이용한 돌출형 경사 현관을 설치했다. 상부 현판
에는 조선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 문양이 새겨져 눈길을 끈다. 지붕은 목조 트러스로 하여 네모
형식을 취했다. 위쪽 난간벽은 벽돌로 쌓았으며, 버팀벽의 윗부분을 높게 올려서 고딕식 첨탑과
비슷하다. 정면 현관의 캐노피 지붕은 고딕건축의 첨탑식 지붕에 우리나라 전통건축 양식의 주
두(柱頭)와 접시받침이 있는 기둥을 세웠다.

부산에서 근대 서양 건축의 양식과 건축재료, 의장수법 등이 최초로 사용된 역사가 깊은 건물로
그 시절에 지어진 등대 대부분이 원형을 많이 잃었지만 이곳만은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그 가치가 높다. 원래 부산이 아닌 경남 창원(의창) 땅이라 경남 지방기념물이었으나 부산의 그
늘로 들어오면서 2003년 9월 부산지방문화재로 변경되었다. 또한 국토해양부에서 영구보존시설
로 지정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옛 등대 남쪽에는 날렵한 몸매의 하얀 등대탑이 있는데, 이는 2002년에 세웠다. 높이가 40.5m로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높으며, 옛 등대와 함께 주변 바다를 밝혀준다. 새 등대의 탄생으로 그의
선배인 옛 등대는 바닷길을 밝히는 기능을 제외하고 모든 기능을 새 등대에게 넘겼으며, 전시와
관람용으로 한가로운 여생을 보낸다. 새 등대는 8각 콘크리트로 등질은 섬백광 12초 1섬광(FIW1
2s)이다.


▲  목재 트러스 지붕 위에 솟은 가덕도등대의 등탑
등탑 점등실에는 주변 바다를 밝히는 렌즈가 있으며, 여전히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등탑은 문화재 보존과 국가시설 보호를 위해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  하얀 피부를 간직한 가덕도등대의 외형과 등탑

등대는 보통 속세(俗世)와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홀로 서 있다. 어떤 유인등대는 1~2명만 머물
며 등대를 지키기도 한다. 이곳 역시 속세와 먼 거리를 두고 있지만 군부대 안에 있어서 사람
구경은 쉬운 편이다. 예전 울산에서 울기등대(蔚氣燈臺)를 가까이서 보긴 했지만 안에는 들어가
지 못했으니 실질적인 등대 관람은 이번이 처음이다.

   ◀  등대 앞 풀밭에 다져진 등대 타임캡슐
우리나라에 등대가 처음 발을 들인 것은 1903년
이다. 그 200주년이 되는 2103년에 타임캡슐을
개봉한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나는 이 세상에
완전히 없거나 다른 존재로 살고 있을 것이다.

▲  등대 내부로 들어가는 문
등대 내부는 외부와 마찬가지로 온통
하얀색이다.

▲  등탑으로 오르는 협소한 계단
계단은 출입금지로 함부로 오르는 일이
없도록 한다.


▲  등대 사람들의 시장기를 해결해주던 등대 부엌

등대 사람들이 밥을 지어먹던 곳으로 아궁이에 걸린 솥이 밥연기를 모락모락 올리던 옛 시절을
회상하며 우수에 젖어있다. 부엌 옆에는 세수와 목욕을 하는 공간이 있고, 북쪽 칸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으나 변기를 막은 상태이다.


▲  등대 직원의 숙소
마네킹으로 재현된 옛 등대직원이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는다.
속세와 멀리 떨어진 등대에서 딱히 할 것이 없으니 독서나 작문으로
무료한 시간을 달랬을 것이다.

▲  등대 북쪽 방 - 등대체험교실에 참여한 이들의 교육공간으로 쓰인다.

              ◀  새 가덕도등대
옛 등대 남쪽에는 2002년에 만든 새 등대가 날렵
한 맵시로 허공을 찌른다. 높이 40.5m로 우리나
라에서 2번째로 높은 등대이며, 피부가 온통 하
얗다. 렌즈가 있는 등대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조망(眺望)이 제
법 일품이다. 허나 바람이 제법 매서우므로 자
칫 날아갈 수가 있으니 조심하기 바란다.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은 빙글빙글 형태로 계단
의 높이가 낮다. 10번을 돌면서 올라야 비로소
꼭대기에 이른다. 빙글 형태의 계단은 은근히 어
지러워 아래를 보기가 아찔하다. 처음으로 오르
는 등대, 그저 호기심을 가득 앞세워 계단을 오
른다. 중간에 등대 사무실이나 기계실 등으로 가
는 문이 있으며, 점등실이 있는 꼭대기에서 높이
가 낮은 문을 열면 바로 바깥이다. 허나 바람이
무척 매섭고 바닥이 미끄러워 겁이 나서 나가진
않았다.


▲  등대 꼭대기로 오르는 빙글빙글 계단
보기만 해도 눈이 어지럽다.

▲  등대 꼭대기에 있는 렌즈
두툼하게 생긴 렌즈의 위엄에 주변 바닷길은 언제나 든든하다.
등질은 섬백광 12초 1섬광(FIW12s)이다.

▲  바다 너머로 보이는 저 땅은?
사진 왼쪽으로 길쭉한 땅은 거제도이다. 그 앞에 그의 부속도서인 저도와
중죽도, 범여섬 등이 보인다.

▲  가덕도 등대 서북쪽 해안

중간초소에서 등대 사이에 서쪽 해안에는 해안절애(海岸絶崖)가 발달되어 있다. 억겁의 세월을
두고 남해바다가 빚은 대작품으로 아쉽게도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출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태고의 모습을 여실히 간직하고 있으며, 보존상태가 매우 좋아 다양한 동식물이 의지
하는 자연의 공간이다. 인간이 감히 저곳에 발을 들였다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
그만큼 숲이 깊고 사람의 발길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무릅쓰고라도 사람의 손길이 없는 저 해
안에 내려가 바닷물에 발을 담구고 싶은 욕심이 굴뚝 같다.


▲  등대 서남쪽으로 거제도의 중심지인 장승포(長承浦)와
옥포만(玉浦灣)이 보인다.

▲  등대 서쪽으로 보이는 거제도 장목면 지역
바다 건너의 거제도에는 뭉개구름이 가득하다. 구름이 잔뜩 일고 천둥이 요란하게
대지를 쪼아대던 천지가 창조된 날이 다시 재현되는 것일까?

▲  등대 동쪽 해안 (1)
서쪽해안과 마찬가지로 해안절애가 가득하다. 까마득한 저 바다 너머에는 가덕도를
거느린 부산 시내가 있다.

▲  등대 동쪽 해안 (2)
이렇게 보니 지구가 정말 둥글긴 둥근 모양이다. 저 수평선 너머로는 무엇이 있을까?

예전의 한을 보기좋게 풀며 등대에 머문 시간은 대략 1시간이다. 대자연이 빚은 등대 주변 풍경
과 바다가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그것을 사진에 담다보니 많은 시간을 바다로 흘러 보낸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임시 등대지기가 되어 며칠 동안 머물고 싶다. 허나 우리가 있어야 될 곳은 등대
가 아닌 아비규환의 속세이다. 바다의 해조음(海潮音)과 바람의 소리만이 적막을 살며시 깨뜨리
는 등대와 아쉬운 작별을 고하며 속세로 나온다.


▲  외양포 마을 못미쳐에 세워진 돌탑(성황당)

가덕도 등대를 둘러보고 다시 외양포로 나왔다. 외양포에서 잠시 한가로운 바닷가의 풍경을 마
음껏 사진에 담았다. 외양포에서 등대까지 40분 가까운 거리인데 그걸 왔다갔다하니 다들 피곤
한 눈치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고,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불어 그리 덥지는 않았다. 맑은 날
에 왔더라면 제국의 강렬한 햇빛에 녹아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외양포 마을 뒤쪽에 있는 왜정 시절 군사시설을 보고자 했으나 숲에 깊숙히 묻혀 들어가는 것도
여의치가 않았고 이를 알리는 이정표도 없었다. 그래서 그곳은 포기하고 바로 대항으로 넘어가
기로 했다. 대항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로 해발 70m의 고개를 넘어야 된다. 정말 우공이산(寓
公移山)에 나오는 우공(寓公)처럼 삽 하나 들고 산을 파서 옮겨버리고 싶을 정도로 높은 고갯길
로 바다의 색깔을 비롯한 모든 것이 잠시 아득해 보인다. 
고개를 넘으니 과연 나올까 싶었던 대항마을이 그림같은 풍경으로 저만치나 가까워 보이자 우리
는 그야말로 신이 났다.


♠  바다낚시로 유명한 가덕도 대항마을과 새바지

가덕도 남쪽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대항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어촌이다. 동서의 폭이 볼록한
가덕도는 유독 대항에서 그 폭이 팍 좁아져 600m 이내로 홀쭉해진다. 그래서 가덕도에서 유일하
게 동/서 양쪽 해안을 지닌 마을로 큰목, 한목이라 불리기도 한다.

대항은 선사시대 조개더미가 발견된 이력이 있고, 마을 뒷산에는 이곳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는
성황당(城隍堂)과 수백 년 묵은 나무들이 마을을 굽어보고 있어, 마을의 상당한 내력을 대변해
준다. 또한 왜정 때 만든 군사시설이 수줍은 듯 숨어 있어 외양포처럼 아픔의 현장도 함께 간직
하고 있다. 마을 앞바다에는 바다를 향해 돌진한 방파제가 있고, 방파제 주변으로 어선들이 몸
을 기대며 휴식을 취한다. 방파제 끝에는 하얀 피부의 등대가 배들의 어두운 길을 비춰준다.

가덕도가 한반도의 일원이 되기 전에는 이곳과 한반도를 이어주던 나룻배가 왕래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바깥 세상과 이어주던 통로로 지금은 육지의 수레가 마음껏 들락거리면서 여객선의 필
요성은 거의 사라졌다. (지금은 천성~대항~외양포 구간만 운행) 예전에는 바람과 파도소리만이
들릴 정도로 고요한 곳이었는데, 나룻배가 들어올 시간이 되면 마을은 잠시나마 활력을 되찾았
지. 배가 들어와 사람을 태우고, 내리고 그렇게 떠나가면 마을은 파도소리가 미안해 할 정도로 
다시 고요함에 빠져들었던 곳이다.  

매년 4월에는 대항 방파제와 해변을 중심으로 200년 전통의 숭어들이 축제가 열린다. 주요 행사
는 군악대연주와 한마음 걷기대회, 맨손숭어잡기 등이 있으며, 수산물직거래장터와 먹거리장터,
페이스페인팅, 투호, 가덕등대 관람 등의 부대행사가 열린다.


▲  대항 앞바다와 방파제
방파제 너머로 보이는 산은 성토봉(174m)으로 그 서쪽에 해금강
(海金剛)을
닮은 해안 절벽, 천수대가 있다.

▲  가덕도의 몸매가 제일 가늘어진 곳에 둥지를 튼 대항마을
가덕도에서 유일하게 동쪽과 서쪽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마을 동쪽에 바로 새바지해변이 있다.

▲  대항 앞바다

가덕도 등대의 후예가 방파제 끝에 솟아나 배들의 안전을 지켜주며, 바다 위로 갈매기들이 날개
를 힘껏 펼치며 공중비행을 하고 있다. 방파제 안쪽 바다는 푸른색 물감의 바깥 바다와 달리 온
갖 쓰레기들로 물의 색깔이 민망할 정도로 뿌옇다.


▲  새바지포구와 방파제

▲  외양포처럼 작고 아담한 새바지

대항포구에서 동쪽으로 10분 정도 가면 새바지가 나온다. 가덕도의 동쪽 바다가 수평선 가득히
보이고, 새바지 남쪽에는 시원스레 펼쳐진 몽돌해변이 바다와 진한 스킨쉽을 즐기고 있다.
새바지는 외양포처럼 아주 조촐한 마을로 대항에 속해 있어 대항새바지라 부르기도 한다. 해변
에는 자갈밭이 곱게 깔려져 있고, 길다란 방파제가 앞바다를 감싸며 어선을 지킨다. 방파제 끝
에는 하얀 피부의 조그만 등대가 배의 밤눈을 밝히며, 왜정 말기에 연합군에 저항하고자 왜군들
이 판 동굴이 바닷가에 아련한 상처처럼 남아있다.


▲  몽돌의 조그만 제국 ~ 새바지 몽돌해변
바다의 파도가 살포시 몽돌밭을 어루만지며 서로의 오랜 정을 확인하고 있다.

▲  바다에 심어진 바위섬 - 하늘나라에서 취급 부주의로
떨어뜨린 정원 장식물은 아닐까?

저 아래 바다까지 내려가고 싶었지만 일행들의 비협조로 마을과 해변이 바라보이는 언덕에서 이
렇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음에 또 이곳에 올 인연이 생긴다면 저 아래까지 내려가보고
싶다.

새바지에서 30분 정도를 머물고 다시 대항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섬을 등지고 육지로 돌아가야
될 시간인 것이다. 대항에서 어떻게 나가야 될지 서로가 의논을 하다가 마음 편하게 택시를 타
기로 하고 택시를 소환했다. 우리는 그가 올 때까지 가게 앞 평상에 앉아 음료수를 섭취하며 불
만에 잠긴 두 다리를 쉬게 했다.

20분 정도 지나자 소환한 택시가 나타났다. 그것을 타고 선창 종점에서 내려 시내로 나가는 58
번 시내버스를 타고 잠시나마 정붙인 가덕도와 작별을 고한다. 이리하여 가덕도 나들이는 소정
의 성과를 거두며 대단원의 마침표를 찍는다. 섬에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하늘의 보우로 여름
제국의 방해 공작은 없었다.

※ 가덕도 등대 찾아가기 (2012년 7월 기준)

* 부산지하철 1호선 하단역(3,4,5,6번 출구)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부산시내버스 58번(30~40분
  간격) 이용 / 지하철 2/3호선 덕천역(5,12번 출구), 3호선 구포역(1번 출구), 김해공항에서
  1009번 급행좌석버스 이용 → 선창 종점 하차
* 선창 종점 남쪽 3거리에서 강서구마을버스 1번(약 1시간 간격)을 타고 천성 하차
* 1호선 부산역(5번 출구), 남포역(1번 출구), 신평역(4번 출구)에서 520번 시내버스(1시간 간
  격)를 타고 가덕천성동 하차 → 바다가 보이는 서쪽으로 내려가면 바로 천성이다.
* 천성에서 대항을 경유하여 외양포로 가는 여객선이 1일 4회 떠난다. (천성발 7:30, 9:30, 13
  시, 16시 / 외양포발 7:45, 9:45, 13:45, 16:45 / 시간표 문의 진영해운사 ☎ 010-3867-6972)
* 뱃시간이 맞지 않으면 무조건 택시를 타거나 걸어가야 된다. 천성에서 외양포까지는 도보 1시
  간 30분 정도 걸리며, 외양포에서 가덕등대까지 도보 40분
* 승용차로 가는 경우 (등대가 있는 군부대까지 들어갈 수 있음)
① 부산 하단 → 신호대교 → 녹산산업대로 직진 → 10번 교차로에서 좌회전 → 가덕대교(거가
   대로) → 천성나들목을 나와서 천성 방면 → 천성 → 대항(새바지)/외양포 → 가덕도등대

★ 가덕도 등대 관람정보 (부산지방해양항만청 ☎ 051-609-6801)
* 등대 관람은 방문 1주 전까지 부산지방해양항만청에 연락을 취해 허락을 받아야 되며, 방문자
  의 주소, 나이 등을 적어 팩스로 보내야 된다. (자세한 건 해양항만청에 문의)
* 가덕도등대를 1박2일 등대체험 숙소로 개방하고 있다. 사용 1달 전 1일부터 8일 사이에 부산
  지방해양항만청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 부산지방해양항만청 홈페이지
* 개방되는 숙소는 52㎡의 1실로 신청자 포함 8명까지만 받으며, 등대에서 개인행동 및 군부대
  출입을 금한다. 또한 밤시간(겨울 18시~6시, 하계 20시~5시)에는 숙소 건물 이탈 금지
* 매년 여름에 초등학생을 등대해양학교를 운영한다. 이 기간에는 개인적인 등대체험 신청은 받
  지 않는다. 자세한 건 해양항만청 홈페이지를 참조한다.
* 가덕도 등대 소재지 -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항동 산13-2 (☎ 051-971-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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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12년 7월 13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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