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지장사 청련암 남지장사 동쪽에 자리한 청련암은 남지장사의 부속 암자이다. 684년에 양개조사가 왕명으로 남지장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지었다고 전하는데, 관련 유물과 기록이 부실한 실정이다. 임진왜란 시절에 사명대사가 지휘하는 승병들이 훈련장으로 사용했으나 왜군의 공격으로 소실되었으며, 이후 1653년부터 1714년까지 여러 차례 중건했다. 허나 180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08년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경내는 乙 모양의 법당을 중심으로 삼성각과 창고 등 여러 채의 조그만 건물을 지니고 있으며, 법당이 청련암의 전부라 할 수 있는데, 대청과 많은 방을 지니고 있어 법당 및 생활공간의 역할을 했다. 건물 가운데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법당을 두 고 앞뒤로 툇마루를 두었는데, 이는 승려의 생..
1. 녹동서원 향양문(외삼문) 달성군 우록리 산골에 묻힌 녹동서원은 모하당 김충선(1571~1642)을 배향한 서원이다. 김충선은 왜열도 사람으로 왜식 이름은 사야가인데 사야익의 아들로 7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조부는 사야옥국, 증조부는 사야옥이다. 고향은 와카 야마로 혼인하여 부인이 있었다. 전국시대에 이리저리 끌려나디며 싸우다가 풍신수길(도요토미히데요시)에 의해 왜열도가 어느 정도 통일이 되자 전쟁은 끝났구나 싶었으나 왠걸, 쥐약 먹은 풍신수길이 조선과 명을 공격한다고 난리를 쳐 1592년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가토기 요마사) 휘하의 우선봉장으로 출병하게 되었다. 전쟁에 염증이 나고 평소 조선을 동경했던 사야가는 조선 땅에 들어오자마자 휘하 병력 3000명을 이끌고 경상도 병마절 도사인 박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