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봉산 둘러보기
▲ 용비교에서 바라본 중랑천(中浪川)과 응봉교 |
용비교 밑을 흐르는 중랑천은 경기도 동두천과 양주, 의정부, 서울 동북부 지역의 물을 모두 모아 한강으로 보내는 긴 하천이다. 우리 동네 도봉동(道峰洞)을 지나는 하천이기도 한데 이 곳이 한강과 만나는 지점이라 폭이 왠만한 강 못지 않게 넓다.
중랑천 좌/우 옆구리에는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닦여져 있는데, 그의 우측(서쪽)에는 경의중앙 선 복선 철로가 있어 경의중앙선 전철(문산~용산~청량리~용문,지평)과 경춘선 ITX-청춘열차( 용산~춘천), 강릉선 고속전철(서울~강릉,동해)까지 수시로 지나간다. 그러다보니 종종 그들이 버벅대는 모습을 보인다. 선로는 겨우 2개인데 지나는 열차 종류는 허벌나게 많기 때문이다. (관광열차와 화물열차도 적지 않게 지나다님) 그런 경의중앙선 바로 뒤에 펼쳐진 뫼가 바로 응봉산으로 한강을 향해 우람하고 잘생긴 암벽 을 아낌없이 내밀고 있다. 개나리가 한참일 때는 벼랑을 빼고 거의 노란 천하가 되지만 개나 리의 기운이 70% 이상 빠진 때에 왔기 때문에 녹색 비율이 더 높다. |
▲ 응봉산과 그 밑도리를 지나는 경의중앙선 전철 바위들이 우럭우럭한 모습으로 포진해 있어 산의 경치를 크게 돋군다. 바위가 마치 사람이 서 있는 모습과 비슷하여 한강, 중랑천과 맞닿은 산 남쪽을 입석포(立石浦)라 불렀다.
▲ 응봉산과 경의중앙선, 중랑천 3박자가 어우러진 현장 오직 용비교에서만 그 매력을 누릴 수 있다. 거기에 전철이나 각종 열차가 때맞추어 지나가면 더욱 금상첨화가 된다. 하여 이곳은 그런 풍경을 담으려는 사진쟁이들의 출사 장소로 명성이 자자하다.
▲ 용비교 서쪽에서 응봉산으로 인도하는 남쪽 계단길 응봉산의 각박한 남쪽 벼랑을 극복하며 닦여진 길로 이쪽은 약간의 개나리와 하얀 벚꽃, 연분홍 진달래들이 봄의 향연을 이어가고 있다.
▲ 응봉산 능선으로 인도하는 남쪽 계단길 (윗쪽에서 바라본 모습) 지그재그로 이어진 계단길을 오르면 바로 서쪽 능선이다.
▲ 남쪽 계단길에서 바라본 용비교(왼쪽 다리)와 서울숲
▲ 응봉산 서쪽 능선길 ① 능선길 주변의 수풀은 거의 개나리이다. 개나리가 적지 않게 주저앉은 시기에 와서 실감은 덜하지만 개나리가 한참일 때는 완전 노란 개나리길이다.
▲ 응봉산 서쪽 능선길 ②
▲ 응봉산 서쪽 능선길 ③ 정상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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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던 개나리들이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상 주변 은 개나리들이 아직 정정함을 과시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그래봐야 김옥균(金玉均)의 3일천 하처럼 고작 며칠 연장에 불과하다. 이래서 인생이나 세상만사가 참 부질없는 모양이다. |
▲ 응봉산 서쪽 능선길 ④
▲ 응봉산 서쪽 능선에서 바라본 나지막한 천하 ① 서울숲과 용비교(바로 밑의 다리), 중랑천, 한강, 성수대교, 청담동과 압구정동 지역
▲ 응봉산 서쪽 능선에서 바라본 나지막한 천하 ② 한강과 중랑천 하류, 동호대교, 옥수동, 한남동, 압구정동, 신사동 지역
▲ 응봉산 정상을 지키고 있는 응봉산정(鷹峯山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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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의 나지막한 꼭대기에는 단아하게 생긴 2층짜리 응봉산정이 자리해 있다. 근래에 응봉 산을 꾸미면서 달아놓은 것으로 그 주위로 너른 공터가 있는데 바로 여기가 응봉산 개나리축 제의 중심지로 공연과 먹거리 장터, 전시회 등이 열린다. 이곳에 올라서면 바로 밑에 서울숲과 한강, 중랑천을 비롯하여 성동구, 광진구, 아차산 산줄 기, 옥수동, 한남동, 한강 너머로 강남구와 서초구 지역이 흔쾌히 시야에 들어온다. 허나 봄 마다 찾아오는 중공산 미세먼지의 역한 내습으로 시야가 적지 않게 꺾여 보이는 것은 평소에 2/3 이하에 불과하다. |
▲ 옆에서 바라본 응봉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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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응봉)은 성동구(城東區)의 한복판이자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곳에 급하게 솟은 해발 94m(95m)의 조촐한 뫼이다. 산의 이름인 응봉(鷹峯)은 매봉우리란 뜻으로 조선 때 제왕과 왕족들이 매사냥을 즐겼던 곳이 다. 1395년에 응봉 기슭에 매를 기르는 관청인 응방(鷹坊)을 설치해 필요한 매를 충당했으며, 태조와 태종, 세종, 성종까지 여기서 자주 매사냥을 즐겨 꿩과 토끼 등을 사냥했다. 매사냥을 벌였던 곳이라 자연히 응봉, 응봉산, 매봉산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산의 모양새가 마 치 매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응봉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 전해온다.
중랑천과 한강과 맞닿은 산 남쪽은 각박한 벼랑으로 우럭우럭하게 생긴 암벽들이 많으며 그들 이 마치 사람이 서 있는 모습처럼 보여 산 밑의 포구(浦口)를 입석포(선돌개)라 불렀다. 뒤에 는 응봉이, 앞에는 강이 흐르는 빼어난 경치로 많은 시인묵객들을 홀렸으며,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이라 물고기도 잘 잡혀 낚시터로도 이름이 높았다. 월산대군(月山大君, 성종의 형)과 서거정(徐居正), 성임(成任) 등 조선 초에 이름있는 문인들 들이 서울(한양)의 아름다운 풍경 10곳을 선정하여 한도십영(漢都十詠)이라 칭하고 그에 관한 시를 남기며 격하게 찬양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입석조어(立石釣魚, 입석포에서의 낚 시)'이다.
응봉산은 남쪽과 동쪽은 한강과 중랑천으로 막혀 경사가 급하고 서쪽은 옥수역 동쪽 달맞이봉 과 이어져 있으며, 북쪽은 대현산, 금호산, 남산까지 산줄기가 이어져있다. 비록 개발의 칼질 로 중간중간 키다리 아파트와 주택가가 마구 들어서 서로 끊어진 듯 보이지만 엄연히 이어져 있으며, 서울숲에서 응봉산을 거쳐 남산까지 이들을 모두 엮은 도보길이 닦이면서 도시와 산, 숲을 아우른 서울 도심 속의 환상적인 지붕길로 각광을 받고 있다. (단 대현산공원~응봉공원 구간은 부득이 번잡한 도로와 시내를 지나가야 됨)
응봉산에 안겨있던 옛 명소로는 관리들의 학습 장려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동호독서당(東湖讀 書堂)이 서쪽 자락에 있었고, 양반사대부들이 지은 황화정, 유하정 등의 정자가 있었으며, 옥 수역 부근에는 얼음을 보관하던 국립 얼음창고인 동빙고(東氷庫)가 있었다. 또한 산 남쪽에는 앞서 언급했던 입석포가 있었다. (입석포를 제외하고 모두 세월이 잡아가고 없음)
허나 개발이 요란하게 칼춤을 추던 20세기를 거치면서 그렇게나 잘생기고 착했던 응봉산은 영 좋지 못한 모습으로 강제 성형수술을 강요 받게 된다. 응봉동(鷹峯洞)과 금호동 지역에 격하 게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산의 북쪽과 동쪽, 서쪽이 난도질을 당했고, 대현산과 이어지던 북쪽 은 독서당로가 닦이면서 완전 절벽 수준으로 칼질을 당했다.
나는 중학교 시절(1990년대 초반), 여기서 가까운 금호1가에서 여러 해를 살았었다. 그때 응 봉산은 동네 우범지대로 이미지가 별로 좋지 못했지. 하여 가까이 살았음에도 그곳은 쳐다보 지도 않았다. 그만큼 20세기 말, 응봉산의 이미지는 참으로 우울했던 것이다. 게다가 산이 나날이 허약해지면서 모래흙이 자꾸 흘러내리자 그 대책으로 20만 그루의 개나리 를 심었는데 그 개나리가 무럭무럭 자라나 개발의 칼질에 녹초가 다 된 응봉산을 되살려주었 고 그것이 글쎄 전화위복이 되어 도심 속 개나리동산으로 격하게 추앙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성동구는 1997년부터 응봉산 개나리축제를 벌여 이제는 서울의 주요 봄꽃 축제로 자리 를 잡게 되었으며, 금호동에 살 적에 단 1번도 오지 않았던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하였다. 사람 은 옷이 날개이듯, 산은 꽃이 날개인 모양이다. |
▲ 응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① 성수동과 화양동, 송정동 지역, 아차산~용마산 산줄기
▲ 응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② 차량들로 늘 버벅거리는 용비교와 서울숲, 성수대교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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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은 매년 1월 1일 성동구청 주최로 해돋이행사가 열린다. 동쪽과 서쪽이 뻥 뚫려있어 일 출과 일몰을 모두 지켜볼 수 있으며, 개나리가 크게 위엄을 부리는 3월 말~4월 초에는 '응봉 산 개나리축제'가 열려 상춘객들로 완전 시장통을 이룬다. (축제가 열리는 토,일요일에는 개 나리보다 사람이 더 많을 정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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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③ 옛 저자도를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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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사진의 가운데 부분 한강(서울숲과 동호대교 사이)에는 저자도(楮子島)란 섬이 있었다. 그 는 한강의 주요 경승지의 일원으로 종이 제작에 쓰이는 닥나무가 많이 자랐던 곳이다. (섬의 이름인 저자는 닥나무를 뜻함) 그렇게 착했던 저자도는 1970년대 강남 개발과 압구정동 아파트 조성에 필요한 흙을 충당하고 자 무식하게 폭파되어 인간의 시야와 지도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그렇게 영원히 없어진 듯 보 였던 저자도는 대자연의 위대한 힘으로 조금씩 살아나 아주 작지만 섬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하여 몇십 년 또는 10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면 지도에 다시 그를 표시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 응봉산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동구 응봉동, 금호4가동 |
▲ 응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④ 굉음을 울리며 응봉산 밑도리를 지나는 경의중앙선 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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