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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흥천사 연화대감로도
왜정 말기인 1939년에 그려진 감로도이다. 그 시절 생활모습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 같은 전쟁 장면까지 그려져 있어 기존

의 감로도와는 많이 다르다.

 

 

2. 도량신도

도량을 장엄하고 삼보의 도량을 지키는 신장을 그린 그림이다. 도량신은 화엄경 략찬게에 등장하는 화엄신 중 하나로 도량

의 더러움을 단죄한다고 한다.

도량신은 화면 상단의 삼곡병럼 각이 진 흰색을 배경으로 하여 정면을 향해 앉아있다. 도량신 뒤쪽 좌우에는 산개와 당번

을 든 동자가 있으며, 정면 좌우에는 2명의 신장이 칼과 원형의 지물을 들고 중앙을 향해 서있다. 도량신은 단령의 붉은 관

복에 가슴과 허리에는 각각 각대를 차고 정면을 향해 앉아있는데, 세필로 얼굴의 입체감과 수염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점과
눈과 눈썹을 과장되게 치켜세운 모습, 가슴 아래까지 길게 늘어진 더부룩한 수염, 단령의 관복 좌우 어깨에 문양이 새겨진

모습, 정면을 응시하면서 앉아있는 모습은 석지 채용신(1850~1941)이 그린 관성제군도를 연상케 한다. 붉은 색의 의복에는

주름을 표현한 먹선을 따라 바림질로 채색하고 입체감을 표현했다.

향우측 신장 앙발의 귀졸 모습으로 이마에 검은 띠를 둘렀고, 오른손은 허리춤에 대고 왼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둥근 지물을

들고 맨발로 서있다. 향좌측의 신장 역시 앙발의 귀졸 모습으로 머리에는 청색의 두건을 쓰고 두 다리를 약간 벌린 채 오른

손에 긴 칼을 들고 당당하게 서있다. 도량신의 섬세하면서도 사실적인 안면 묘사는 좌우 신장의 얼굴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 불화는 대허와 학허가 조성햇다. 수화승 대허는 19세기 중/후반 경상도와 서울 경기 일대에서 활동하던 대허당 체훈으로
그는 특별한 사승관계 없이 당대 이름난 여러 화승과 교류하며 다양한 기법을 습득했으며, 1870년대 이후에는 경기도 일대
에서 주로 활동했다. 1885년에는 축연과 함께 흥천사 극락보전의 극락구품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3. 대웅전 우물천정과 천정에 그려진 그림들

 

4. 흥천사의 보물창고이자 미술관인 대웅전 내부

 

 

 

5. 흥천사 대웅전 불단 (목조보살좌상, 목조여래좌상,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아미타불도, 닫집)

 

6. 흥천사의 법당인 극락보전

 

7. 흥천사 대방에 걸린 만세루 현판의 위엄

1926년에 악질 친일파 송병준의 아들인 송종헌이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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