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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만인산 (만인산자연휴양림)



' 대전의 남쪽 지붕, 만인산 나들이 (만인산 자연휴양림) '

만인산 분수연못
▲  만인산 분수연못

금산 태조대왕태실

만인산휴양림

▲  태조대왕태실

▲  만인산휴양림 숲길

 



 

봄이 겨울 제국의 오랜 압정(壓政)에 지친 생명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던 3월의 마지막
날, 대전의 남쪽 지붕인 만인산을 찾았다.
만인산은 장태산(長泰山), 계족산(鷄足山)과 더불어 대전 지역의 이름난 뫼이나 일찌감
치 관심을 두어 인연을 지었던 장태산과 계족산과 달리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러
다가 그곳이 좋다는 풍문을 전해듣고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자 400여 리의 먼 길을
떠났다.

아침 일찍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편으로 대전으로 내려가 대전역에서 대전 501번(비래동
↔마전)을 타고 40여 분을 달려 대전과 금산(錦山) 경계인 추부터널 앞 만인산휴양림에
서 두 발을 내렸다. 버스는 외마디 부릉소리를 만인산에 남기며 칠흑과 같은 터널 속으
로 유유히 사라져 갔고, 나는 만인산의 품으로 길을 재촉했다.



 

♠  만인산(萬仞山) 입문

▲  대전과 충남 금산의 경계를 가르는 추부터널
<터널 뒤쪽 산줄기는 만인산 남쪽 능선(태봉재)>


만인산을 지나는 2차선 도로는 옛 대전~금산 17번 국도이다. 우회도로(금산로)가 생기기 이전
에는 두 지역을 왕래하는 차량들로 꽤나 번잡했으나 지금은 우회도로에게 국도의 자격과 기능
을 대부분 넘기고 '산내로'란 시내 외곽 도로로 조용히 살아간다. 차량 통행도 많이 줄어 다
소 한가한 신세가 되긴 했으나 만인산과 중부대, 상소동과 하소동 지역이 이 도로에 크게 의
존하고 있고 특히 주말에는 만인산 등산/나들이 수요로 왕년의 위엄을 다시금 뽐낸다.

만인산휴양림 정류장에서 만인산의 품으로 들어가는 길은 만인산휴게소로 접근하는 것과 만인
산푸른학습원으로 가는 길, 2갈래가 있다. 어느 길로 가든 취향에 따라 움직이면 되며(만인산
정상이 목적이면 만인산휴게소로 가면 됨) 나는 푸른학습원 쪽으로 접근하여 만인산을 크게 1
바퀴 돌기로 했다.


▲  만인산 푸른학습원으로 인도하는 잘빠진 언덕길

그리 각박하지 않은 오르막길을 10분 오르니 만인산 푸른학습원이 산뜻한 모습으로 마중을 한
다. 이곳은 만인산휴양림을 수식하는 편의시설로 1993년부터 터를 닦아 1997년 8월 26일에 문
을 열었다.
이후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시설물을 손질하고 시스템을 변경했으며, 자연학습전시실과 목공
체험실, 운동장, 천문대.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개인, 단체 숙박 가능)를 갖추고 있다.
여기서 길은 크게 3갈래로 갈리는데, 동쪽 산길을 오르면 정기봉(580m)이 서남쪽에 잘 닦여진
길은 만인산 남쪽 능선과 태조대왕태실, 남쪽에 가파른 산길은 만인산 남쪽 능선과 정기봉 능
선으로 이어진다. 특히 대전에서 야심차게 닦은 대전둘레산길 2구간(금동고개~만인산휴게소,
13.1km)과 3구간(만인산휴게소~삼괴동 덕산마을, 12.5km)이 만인산휴게소에서 기지개를 켜 학
습원 앞을 지나 각자의 갈 길로 흘러간다. 그럼 여기서 만인산과 만인산휴양림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  만인산 푸른학습원 직전 숲길

▲  만인산 푸른학습원

만인산 품에 포근히 둥지를 튼 만인산휴양림(자연휴양림)은 1990년에 문을 열었다. (1989년부
터 휴양림을 닦음) 장태산자연휴양림(☞ 관련글 보러가기), 국립대전숲체원과 더불어 대전에
있는 3개의 자연휴양림 중 하나로 구역 면적은 183만㎡, 조성 비용은 103억(푸른학습원 건립
비용 포함)이 들었으며, 휴양림 범위는 서쪽과 남쪽은 대전천발원지까지, 동쪽은 푸른학습원,
북쪽은 분수연못에 이른다. (대전광역시 만인산푸른학습원에서 관리하고 있음)

이 휴양림은 숲을 전혀 말아먹지 않고 숲과 계곡 물길을 있는 그대로 이용하여 닦았으며, 가
족휴양지구, 청소년지구, 피크닉지구, 푸른학습지구 등으로 나눠 조성했다. 편의시설로는 푸
른학습원과 만인산휴게소, 학습농장, 모험놀이시설 등이 있고, 그 외에 분수연못과 대전둘레
산길 2, 3코스 등 여러 산길을 지니고 있다. 청정함을 자랑하는 계곡은 만인산 서쪽 자락에서
분수연못으로 흘러가며, 활엽수(闊葉樹)가 삼삼한 숲을 이루어 휴양림 및 산림욕장으로 아주
바람직한 조건을 갖추었다.

휴양림을 안고 있는 만인산(538m)은 대전 남쪽 끝에 자리한 산으로 대전과 금산의 경계를 이
루고 있다. 산 이름은 '높고 깊은 산'이란 뜻으로 수많은 골짜기가 모여 산을 이루었다는 뜻
에서 그리 불렸다는 설도 덧붙여 전하며, 산봉우리가 마치 만발한 연꽃을 닮았다고 하여 명당
(明堂) 자리로 명성이 자자했다. 하여 태조 이성계도 이곳에 탐을 내어 자신의 원초적 흔적(
태실)을 이곳에 맡겼는데, 그로 인해 태실산(胎室山), 태봉산(胎峰山)이란 별칭도 가지고 있
으며, 금산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태봉재(태봉고개)라 불렀다.

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들어앉아 전라도에서 올라온 봉화를 받아 서울로 전했으며, 봉수레미골
은 대전천(大田川)의 발원지로 그 대전천에서 대전이란 지명이 유래하였다. (1872년에 제작된
지도에 '산내면 대전리'란 지명이 등장함) 흔히 대전의 옛 이름인 한밭을 왜정(倭政) 때 대전
으로 바꾼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이전부터 대전이란 지명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봄에는 진달래와 산벚꽃이 산을 곱게 수식하며, 5월의 신록이 볼만하다. 늦가을 풍경도 일품
이며, 겨울의 설경(雪景) 또한 아름다우나 나는 본의 아니게 그들을 모두 피해 와서 그 아름
다운 풍경을 누릴 수가 없었다.
대전둘레산길 2코스와 3코스가 만인산의 신세를 지며, 태조대왕태실과 봉수대터 등의 문화유
산과 만인산휴양림, 만인루, 분수연못 등의 조촐한 명소가 있다. 또한 아름다운 숲길이 거미
줄처럼 펼쳐져 있어 걷는 길이 지루하지 않으며, 만인산휴게소에서 정상까지는 넉넉잡아 40분
정도 걸린다.

* 만인산휴양림 소재지 : 대전광역시 동구 하소동 산47일대 (☎ 042-270-8651,8660)
* 만인산휴양림과 푸른학습원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  푸른학습원에서 만인산 남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산길

푸른학습원에서 각박하게 펼쳐진 남쪽 산길을 조금 오르면 만인산~정기봉 능선이다. 여기서
동쪽(왼쪽)으로 가면 정기봉과 대전둘레산길 3구간이며, 서쪽(오른쪽)은 만인산과 태조대왕태
실, 대전둘레산길 2구간으로 이어진다. 나는 만인산이 목적이라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  푸른학습원 남쪽 능선에 닦여진 각박한 전망대

능선 갈림길에서 서쪽으로 가면 전망대라 불리는 존재가 마중을 한다. 전망대라고 해서 나무
로 잘 지어진 조망대나 오르기 쉽게 다져진 그런 전망대가 아닌 군사훈련이나 극기훈련용(모
험놀이시설)으로 지어진 것으로 거의 90도의 뻣뻣한 철사다리를 힘겹게 올라가야 된다. 비록
생긴 것이 저 모양이라 그렇지 하늘을 향해 솟아있어 전망대로서의 흠은 거의 없다. 다만 그
를 둘러싼 나무들이 모두 키다리라 그의 조망을 크게 훔치고 있어 보이는 범위는 매우 적다.

저 위로 올라가서 잠시 머물까도 했으나 오르기가 좀 각박해 보이고 굳이 이 나이에 저길 꼭
올라가야 되나 싶어 그 밑 의자에 얌전히 앉아 속세에서 가져온 간식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먹어서일까 모든 것이 다 꿀맛 같으니 대자연 형님이 나도 모르게 간식
에 꿀을 발라준 모양이다.


▲  태봉고개 (마전, 태조대왕태실 방향)

행동식 섭취를 마치고 서쪽으로 내려가니 바로 태봉고개(태봉재)가 나온다. 이곳은 대전과 금
산을 이어주던 옛 고개로 추부터널이 생기기 전까지는 사람과 차량이 이 고개의 신세를 졌다.
하지만 고개 밑도리에 땅굴이 뚫리면서 매우 한가한 신세가 되었고, 지금은 만인산을 찾은 산
꾼과 나들이꾼들이 고개의 심심함을 달래준다.

고개 정상 양쪽에는 바위 벼랑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으며, 고개 하늘에는 극기훈련용 구름다
리가 아슬아슬하게 놓여져 있다. 그리고 저 고갯길을 넘으면 바로 왼쪽(동쪽)에 만인산의 오
랜 명물인 태조대왕태실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  만인산 거닐기 (태조대왕태실, 만인산 정상)

▲  태조대왕태실(太祖大王胎室) - 충남 지방유형문화재 131호

만인산 태봉고개를 기준으로 북쪽은 대전, 남쪽은 충남 금산 땅으로 바로 경계선 남쪽에 태조
의 태실과 태실비가 있다. 바로 그 태실을 보고자 잠시 대전 땅을 벗어났다. (그래봐야 100m
도 되지 않음)
함경도와 두만강(豆滿江) 이북 지역의 너른 땅을 관리했던 지역 세력가 출신의 이성계가 그의
고향이나 서울 부근이 아닌 머나먼 금산 땅에 태실을 둔 점이 꽤 흥미로운데, 그렇다면 왜 그
의 태실이 엉뚱하다 여겨지는 이곳에 박혀있는 것일까?

이성계(李成桂)의 태실은 원래 함경도 함흥(咸興)의 함흥본궁(本宮) 용연(龍淵)에 있었다. 함
흥본궁은 이성계가 그의 조상들이 살던 집터에 새로 지은 집으로 4대 조상들의 신주를 봉안했
던 조선 왕실의 주요 성역이다.
조선이 갓 들어선 시절, 부동산에 눈썰미가 있던 어떤 시인이 만인산을 둘러보았는데, 산세가
깊고 첩첩한 산봉우리는 연꽃이 만발한 것 같으며, 99산의 물이 하나로 모여드는 지형이라 하
여 격하게 찬양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무학대사(無學大師)는 크게 호기심이 일어
직접 찾아가 확인을 해보니 아주 대단한 터였다. 하여 태조에게 건의하여 1393년 차디찬 삭풍
(朔風)이 맴도는 함흥에서 이곳<그때는 전라도 진동현(珍同縣)>으로 옮기고 태실비를 세웠다.
그때 권중화(權仲和)가 태실증고사(胎室證考使) 겸 봉안사(奉安使)가 되어 그 임무를 수행했
으며, 태실이 봉안되자 진동현은 지진주사(知珍州事)로 승격되었다.

조선 왕실의 성역으로 나라의 관리와 통제가 매우 엄격했으며 옥계부사(玉溪府使)를 두어 관
리했다. 또한 부근에 비례리(備禮里)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는 거기서부터 예를 갖추어 태실에
참배했다고 해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만큼 태조 태실에 각별한 공을 들인 것이다.
숙종(肅宗) 시절에 지역 백성들이 태실 주변에서 경작을 하고 벌목한 일을 제외하면 딱히 별
일은 없었으나 1910년 이후 왜정(倭政)은 망국(亡國) 시조의 태실을 욕보이고자 1928년에 태
실을 부시고 태항아리를 창덕궁으로 빼돌렸으며, 태실 주변은 민간에 팔아먹었다. 그나마 남
아있던 태실비와 태실도 개념없는 땅 주인이 죄다 부셔버렸고, 태실 자리에는 자기 선조의 무
덤을 쓰면서 제자리까지 강제로 잃게 된다.

이후 테실 석재들이 주변에 이리저리 흩어져 굴욕의 시간을 보내다가 1993년 금산군청과 주민
들이 수습해 원래 위치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지금 자리에 복원했다. 허나 없어진 석재가 적
지 않아 새 돌을 많이 투입하다보니 헌돌과 새돌이 다소 어색한 조화를 보인다.

▲  서쪽에서 바라본 태실과 태실비

▲  동쪽에서 바라본 태실과 태실비

이성계의 최초의 흔적이 담겼을 태실은 8각형 구조로 윗도리는 원래 것이나 밑도리는 남아있
는 석재가 없어 새로 붙였다. 그리고 태실 주위로 난간을 둘렀는데, 이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태실비는 바닥에 네모난 바닥돌을 깔고 그 위에 해태를 닮은 귀부(龜趺)를 둔 다음 이곳의 정
체를 밝히는 빗돌을 세웠다. 그리고 그 위로 교룡(蛟龍, 이무기)이 여의주(如意珠)를 두고 다
투는 모습을 새긴 이수(螭首)로 마무리를 지었다.
빗돌 앞면에는 한자로 '태조대왕태실'이라 쓰여 있으며, 뒷면에는 '강희(康熙) 28년(1689년)
3월 29일'에 중건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빗돌 역시 여러 조각으로 아작 나서 쓰러진 것
을 다시 이어붙여 일으켜 세웠다.

만인산은 태조의 태실을 품게 되면서 태봉산, 태실산이란 별칭을 지니게 되었으며, 태실 옆을
지나는 고개는 태봉재(태봉고개)가 되었다. 또한 태가 묻힌 능선은 쌍봉낙타(雙峯駱駝)형으로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태봉산의 북풍을 막아주고 햇빛 또한 잘 들어 명당자리로 격하게 추앙
을 받고 있다.

* 태조대왕태실 소재지 :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 산1-86


▲  태조대왕태실비
귀부가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서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보통은 정면을 바라보기
마련인데 왜 서쪽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쪽에 참한 여인네라도
있는 것일까?

▲  태조대왕태실에서 바라본 좁은 천하 - 금산 중부대학교 주변

▲  만인산 자연학습체험로 ①

만인산의 유일한 지정문화재인 태조대왕태실을 둘러보고 다시 대전 땅으로 들어와 만인산 남
쪽 능선을 거닐었다. 봄이 겨울 제국을 몰아내고 천하를 해방시켰지만 산록의 나무들은 아직
도 흐릿한 모습들이다. 마치 독재에 오랫동안 쇠뇌당한 민중들처럼 말이다.

능선길을 좀 거닐다가 북쪽길로 내려가니 잘 닦여진 숲길이 나온다. 이 길은 자연학습체험로(
0.7km)로 푸른학습원 운동장에서 대전천발원지 직전까지 이어지는데 오르락과 내리락이 거의
없는 그야말로 편안한 길이다.


▲  굽이굽이 흘러가는 만인산 자연학습체험로 ②

▲  만인산 자연학습체험로 ③
앞에서 아른거리는 노란색 존재는 산수유이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만난 봄꽃들;

▲  만인산 자연학습체험로 ④

▲  수목(樹木) 속을 비집으며 ~~ 만인산 남쪽 능선길

자연학습체험로가 끝나는 지점(대전천발원지)에서 다시 비좁은 남쪽 능선길로 향했다. 만인산
정상까지는 자연학습체험로 같은 편한 길은 커녕 무조건 각박한 능선길의 신세를 져야 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금세 오를 것 같지만 그래도 500m가 넘는 뫼인지라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대전천 발원지에서 20~30분 정도 걸림)
허나 자존심을 곱게 접고 묵묵히 산길을 걷다보면 보이지 않던 만인산 정상이 흔쾌히 그 모습
을 드러낸다.


▲  서서히 흥분을 보이는 만인산 남쪽 능선길

▲  대전의 남쪽 지붕, 만인산 정상을 향하여 ~~~

▲  드디어 도착한 만인산(538m) 정상 (만인산 봉수대터)

만인산 정상은 대전 남부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이다. 사방이 모두 트여있어 조망도 그런
데로 괜찮은 편이라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부터 이곳에 봉수대(烽燧臺)를 두었다.
봉수대는 돌을 이용해 절구통 모양으로 닦았는데, 전라도에서 날라온 봉화를 받아 북쪽(서울
)으로 넘겼으며, 만인산 동쪽 정기봉에도 봉수대를 두어 경상도의 봉화를 전달했다. 평소에는
불을 때워 연기로 신호를 보냈으나 비나 눈이 올 때는 봉수지기가 다음 봉수대까지 뛰어가 소
식을 전했다.

그렇게 바쁘게 살던 봉수대는 1894년 이후 봉수제도가 폐지되면서 더 이상 연기를 피우지 못
했고 장대한 세월의 거친 격류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하나둘 사라져 갔다. 만인산 봉수대와
정기봉 봉수대 역시 그 험난한 과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녹아내려 터만 아련하게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살짝 속삭여준다.


▲  만인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①
만인산 서쪽 자락을 비롯해 멀리 장태산의 뒷통수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  만인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②
금산 마전(추부면) 지역과 중부대학교(바로 밑에 보이는 건물들)


대전은 대구(大邱)와 비슷하게 산에 둘러싸인 분지형 지형으로 동북쪽과 동쪽, 남쪽, 서쪽에
높은 뫼들이 가득 포진해 있다. 특히 만인산과 장태산이 있는 남쪽은 산들이 첩첩히 주름진
산악지대로 만인산이 아무리 높다 한들 주변이 온통 산 투성이라 보이는 범위는 높이에 그리
시원치 못하다. 대전 시내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보이는 범위는 북쪽으로 하소동, 서쪽으로 장태산, 동쪽은 정기봉, 남쪽은 금산 추부면(마전)
북부 정도이다.



 

♠  만인산 마무리

▲  정상에서 만인루로 내려가는 가파른 산길

정상에서 첩첩히 주름진 좁은 천하를 굽어보며 10분 가량 머물다가 동쪽 산길로 내려갔다. 여
기서 길은 3갈래로 갈리는데, 동쪽 길은 만인루와 만인산휴게소, 남쪽 길은 아까 올라왔던 남
쪽 능선, 북서쪽은 대전둘레산길 2구간으로 먹티재와 하소동, 금동으로 이어진다.


▲  동쪽 산길로 내려가면서 바라본 금산 마전(추부면)과 중부대

▲  동쪽 산길로 내려가면서 바라본 정기봉(580m)

▲  만인루로 인도하는 계단길 (만인루 입구)

동쪽 산길을 조금 내려가면 만인루 입구에 이른다. 여기서 길은 3갈래로 갈려 나그네로 하여
금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드는데 계단길로 직진하면 만인루, 남쪽의 가파른 산길을 내려
가면 대전천발원지, 잘 닦여진 북쪽 길로 내려가면 사방댐이다.
우선 봉우리 위에 지어진 만인루를 보고자 누렇게 뜬 낙엽들이 어수선하게 깔린 계단길을 올
랐다.


▲  만인산의 새로운 장식물, 만인루(萬仞樓)

만인루는 2층으로 이루어진 팔작지붕 누각으로 정상 동쪽 440m 고지에 자리하고 있다. 지붕은
목조 와가(瓦家)로 닦고 나머지는 철근콘크리트로 다진 것으로 서울 신영동(新營洞)에 있는
세검정(洗劍亭)을 모델로 하여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조금 낯이 익은 모습이다.
대전시가 2001년 5월 10일에 짓기 시작해 그해 11월 30일 완성을 보았으며, 사업비는 1.35억
원이다. 만인산을 수식하는 존재이자 이곳의 새로운 명물로 누각에 올라서면 서쪽으로 만인산
정상, 동쪽은 정기봉, 남쪽은 마전 지역이 시야에 들어오며, 옛날 스타일로 작성된 '만인루
창건기'가 윗쪽에 걸려있으나 글씨가 너무 깨알 같아서 읽기가 힘들다.


▲  만인루에서 바라본 금산 마전(추부면) 지역

▲  만인루에서 바라본 정기봉(왼쪽 봉우리)과 만인산 푸른학습원
(가운데 부분), 그리고 만인산 남쪽 능선(오른쪽 산줄기)

▲  만인루 입구에서 사방댐으로
내려가는 너른 숲길

▲  만인루 입구에서 대전천발원지로
내려가는 각박한 내리막길


만인루를 둘러보고 다시 입구로 내려와 남쪽인 대전천발원지로 내려갔다. 그 길이 얼마나 각
박한 수준이던지 내려가니까 망정이지 만약 이 길로 올라왔더라면 숨이 제대로 찼을 것이다.
만인산에서 가장 흥분한 산길로 앞서 정상으로 가는 길보다 더 가파르며, 그 길을 내려가면
대전천발원지에 이른다.


▲  대전천발원지 방향 산길

▲  대전천발원지(봉수레미골)

앞서 잠깐 스쳐 지나갔던 대전천발원지는 만인산 정상 동쪽 골짜기로 이 일대를 봉수레미골이
라 부른다. 만인산에서 달맞이 행사나 큰 제향(祭享)이 있을 때 정상을 향해 봉화를 올리던
골짜기라 하여 '봉수내미골'이라 했는데 그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봉수레미골로 살짝 바뀌었다
고 한다. 내용이야 어쨌든 만인산 봉수대와 관련된 이름은 분명하다.
봉수레미골은 대전천으로 간판을 바꾸어 대전시내를 굽이쳐 금강으로 흘러가며 그 대전천에서
대전이란 이름이 시작되었다. 그러니 이곳은 대전의 조촐한 성역과 같은 현장이다.

▲  가늘게 흘러가는 봉수레미골

▲  봉수레미골 숲길

▲  봉수레미골에 설치된 모험놀이시설
(외나무다리 타기)

▲  분수가 용솟음치는 분수연못


▲  만인산의 아름다운 거울, 분수연못

봉수레미골 상류에서 내려온 시냇물은 만인산휴게소 옆에 닦여진 분수연못에 모여 종점이 없
는 대장정을 준비한다. 이 연못은 만인산이 베푼 냇물을 십시일반 모아둔 것으로 거의 호수에
버금가는 규모라 연못이란 말을 무색케 한다. 차라리 '분수호수'나 '만인산호수'란 이름이 더
적당해 보인다.
산 속에 숨겨진 그림 같은 호수로 봄맞이에 들뜬 나무와 꽃들이 그를 거울로 삼아 겨울로 초
췌해진 자신의 매뭇새를 다듬느라 여념들이 없다. 지나가는 구름과 햇님, 달님도 잠깐씩 길을
멈추어 호수를 굽어보며 빗질을 한다.
호수 주위로 산책로를 닦아놓았으며 조촐하게 분수를 깔아놓아 나른한 봄 오후를 깨운다. 여
기서 1차 정모를 한 만인산 냇물은 다시 밑으로 흘러가 사방댐에서 2차 정모를 하며, 거기서
부터 큰 세상을 향한 끝없는 여정이 시작된다.


▲  만인산의 화려한 율동, 분수연못 분수의 위엄 ①
분수 뒷쪽에 보이는 건물이 만인산휴게소이다.

▲  만인산의 화려한 율동, 분수연못 분수의 위엄 ②

▲  하트를 중심으로 펼쳐진 분수연못 포토존

분수연못을 1바퀴 둘러보고 바로 동쪽에 자리한 만인산휴게소로 이동했다. 이 휴게소는 1990
년도에 민간자본으로 지어진 만인산휴양림의 거의 유일한 편의시설로 지상 2층, 반지하 1층
규모이다.
휴게소 앞에는 봉수레미골의 물을 붙잡아 연못을 닦았는데, 휴게소와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
도록 조성하여 이 땅의 휴게소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고 휼륭한 건축물로 찬양을 받기도 했다.
만인산 자락 복판에 있고, 대전과 금산을 이어주는 도로(산내로)변에 자리해 있어 접근성도
좋으며, 식당과 커피집, 편의점 등이 휴게소를 이루고 있다. 특히 호떡(봉이호떡)이 유명해
이곳에 들린 사람들은 거의 호떡 하나씩 사먹기 마련이다.
마침 출출하기도 하여 나도 흔쾌히 호떡 줄에 동참했는데, 평일이라 대기줄이 적어 금방 손에
쥘 수 있었다. 맛은 시내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일반적인 호떡보다 조금 달달하다고 해야 될
까? 호떡 크기는 그런데로 적당해 보이며, 가격은 1개당 1,000원(지금은 1,200원이라고 함)이
나 받는다. 그렇게 만인산의 명물 비슷하게 되어 매일 소고기 회식을 할 정도로 장사가 잘되
니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휴게소 주변에는 의자와 탁자가 여럿 놓여져 휴게소에서 먹거리를 구입하거나 속세에서 가져
온 음식과 간식을 먹는 사람들로 가득하며, 연못이 바라보이는 곳에는 전망데크를 깔았다. 그
리고 여기서 '만인산 숲속의 탐방로'란 간판을 내건 고가도로 식의 탐방로가 시작되는데, 그
길은 산내로 허공을 가로질러 도로 동쪽 임도로 연결된다.
요즘 이런 식의 탐방로가 자연휴양림에 많이 닦여져 있어 탐방에는 좋을 지 모르나 은근히 경
관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탐방로의 폭이 좁고 난간도 그리 높지 않아 자칫 추락 등의 사
고 위험도 적지 않다. 특히 고소공포증이 있거나 심신이 부실한 노약자, 음주자는 출입을 자
제하여 하나 뿐인 목숨을 아끼기 바란다.


▲  만인산 숲속의 탐방로(숲속자연탐방로) 동쪽 종점

만인산 숲속의 탐방로는 그런 위험성 때문에 이용시간에 제한을 두고 있다. 3~6월과 9~11월은
9~18시까지 통행할 수 있으며, 7~8월은 9~19시까지, 12~2월은 9~17시이다. (이용시간은 변동
될 수 있음) 그 외에 시간과 눈, 비, 태풍이 엄습할 시에는 문을 닫아건다. 그러니 억지로 들
어가지 말자.
탐방로의 길이는 200m, 높이는 6~10m이며, 만인산휴게소와 산내로 동쪽 임도(숲길)를 이어준
다.


▲  호젓하게 펼쳐진 산내로 동쪽 임도

산내로 동쪽 임도는 푸른학습원 밑 숲속의 교실에서 만인산공원 정류장까지 이어지는 0.95km
의 달달한 비포장 숲길이다. 길 서쪽은 산내로와 접한 벼랑이며, 동쪽 역시 하늘로 솟은 깎아
지른 벼랑이라 만약 이런 곳에서 적의 매복 공격에 걸리면 꼼짝없이 털리기 좋다. 허나 이곳
에서 그럴 일은 1도 없으므로 마음 편히 임도를 거닐며 자연을 즐기면 된다.


▲  산내로 동쪽 임도 ①
왼쪽 낭떠러지 밑에 대전~금산을 이어주는 '산내로'가 있다.

▲  산내로 동쪽 임도 ②
직선으로 가면 재미가 없으므로 종종 굴곡의 미(美)도 보여준다.

▲  산내로 동쪽 임도 ③

만인산에서 만난 숲길 중, 산내로 동쪽 임도가 가장 마음에 든다. 아무래도 나의 정처없는 마
음이 그 길에 퐁당퐁당 빠진 모양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 길을 집으로 훔쳐와 혼자서만 누리
고 싶지만 내가 조물주도 아니고 고위 권력자도 아니니 그건 어림도 없다. 사진으로 두고두고
보거나 다음에 다시 인연을 지어 찾아와야겠다.

동쪽 임도는 서쪽 산내로와 마치 하늘과 땅처럼 높이를 두고 펼쳐지다가 서서히 그 간격이 줄
면서 만인산공원 정류장에서 완전히 같아지게 된다. 이곳은 만인산휴양림과는 관련이 없는 곳
으로 분위기를 내세운 커피집이 하나 있으며, 만인산의 사실상 북쪽 끝이나 다름이 없다. 여
기서 북쪽으로는 산길이 없으며(산내로 도로만 있음) 남쪽 길 건너에 분수연못에서 내려온 물
을 다시 붙잡은 사방댐이 있고, 거기서 분수연못과 만인루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만인산공원 정류장에서 3시간에 걸친 만인산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만인산의 알짜
배기를 고루도루 겯드려 제대로 1바퀴 둘러보았는데, 이렇게 좋은 곳을 왜 이제서야 인연을
지었는지 만인산을 낮게 봤던 나의 안목이 정말 쓰레기였음을 통감한다. 만약 다음에도 이곳
과 인연이 닿는다면 만인산 동쪽에 있는 정기봉도 꼭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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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1년 11월 29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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