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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영은사


' 한겨울 산사 나들이, 삼척 영은사 '
삼척 영은사 대웅보전
▲  영은사 대웅보전
 


묵은 해가 저물고 새해가 막 열리던 겨울의 차디찬 한복판에 강원도 삼척(三陟)을 찾았다.
삼척 남쪽인 울진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 후배를 보고자 오래간만에 그곳으로 출동한 것
인데, 아직은 어두운 이른 아침에 도봉동(道峰洞) 집을 나서 동서울터미널로 이동하여 삼
척으로 가는 고속버스에 나를 실었다.
나를 담은 고속버스는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대관령을 넘고 동해고속도로를 지나 3시간 40
분 만에 삼척고속터미널에 이르렀는데, 후배가 일찌감치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 타지에서 친한 이를 보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그의 차를 이용해 삼척 투어를 조금
벌이고 울진으로 넘어가기로 했는데, 근덕면 산골에 숨겨진 영은사란 절이 예전부터 목이
말라서 그곳을 첫 메뉴로 정했다. 삼척고속터미널에서 그곳까지는 24km,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가다가 궁촌리에서 국도를 잠시 버리고 산골로 인도하는 궁촌길로 들어가면 그
길의 끝에 영은사가 자리해 있다.


▲  겨울에 잠긴 추천
한오봉과 천봉에서 발원한 추천은 영은사와 궁촌리를 지나 동해바다로 흘러간다.


♠  궁방산 산골에 묻힌 고즈넉한 늙은 산사, 삼척 영은사(靈隱寺)

▲  영은사 일주문(一柱門)

영은사 경내까지 차량 접근이 가능하나 청정하기 이를 데 없는 이곳의 산골내음을 1분이라도
더 누리고 싶은 생각에 일주문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걷기로 했다. 여기서 절까지는 500m 거리
로 맞배지붕을 지닌 일주문이 반갑게 마중을 나온다.

일주문에는 '태백산(太白山) 영은사' 현판이 걸려있어 이곳의 정체를 알려주고 있는데, 재밌
는 것은 여기서 40km 떨어진 태백산을 가져와 '태백산 영은사'를 칭하고 있는 것이다. 백두대
간 태백산맥이 이곳을 지나가나 정작 태백산 산줄기는 여기까지 미치지 않으며 엄밀히 따지면
궁방산(宮房山) 동쪽 자락이라 '궁방산 영은사'를 칭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허나 산의 인지
도와 위엄이 무지하게 떨어지다 보니 자리를 내준 궁방산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한참이나 떨어
진 태백산을 칭하는 것이다.


▲  영은사 경내로 인도하는 다리
저 다리를 건너 오르막길을 오르면 그 길의 끝에 영은사가 있다.

▲  영은사 금련루(金蓮樓)
경내를 가리고 있는 금련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누각이다.
2층에 범종과 법고, 목어, 운판 등의 사물이 있어 범종루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  영은사 설선당(設禪堂)
대웅전 뜨락 우측에 자리한 팔작지붕 집으로 요사(寮舍)와 종무소의 역할을 한다.


나를 이곳으로 부른 영은사는 궁방산 동쪽 자락 궁촌리 산골에 깊히 깃든 산사(山寺)로 오대
산 월정사(月精寺)의 말사(末寺)이다. 신라 말기인 892년에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해 궁
방사<또는 운망사(雲望寺)>라 했다고 전하는데, 관련 기록과 유물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믿거나 말거나 창건설화에 따르면 약사삼불(藥師三佛)인 백,중,계 3형제가 멀리 서역에서 돌
배를 타고 동해바다에 이르렀는데, 제일 맏이는 흑연화(黑蓮花)를 들고 동해 삼화사(三和寺)
로 오니 그곳을 흑연대(黑蓮臺)라 했고, 둘째는 청련(靑蓮)을 들고 지상사(지향사)에 오니 이
를 청연대(靑蓮臺)라 했으며, 막내는 금련(金蓮)을 들고 영은사로 오니 이를 금연대(金蓮臺)
라 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삼화사를 세운 승려의 제자가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창건 이후 오랫동안 사적(事蹟)이 전하지 않다가 1567년(또는 1585년)에 사명대사(四溟大師)
가 현재 위치로 절을 옮겼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1641년에 벽봉(碧峰)이 중건
하여 영은사로 이름을 갈았다.
1805년 산불로 팔상전을 제외한 건물 10여 동이 싹 소실되자 서곡화상(西谷和尙)이 삼척부사
심공저(沈公著)의 지원으로 1806년까지 중건했으며, 1810년에 석가삼존상을 봉안하고 1855년
에 서암이 괘불(掛佛)을 조성했다. 그리고 1864년에 심검당을 지었으며 이후로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른다.

조촐한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보전을 비롯해 팔상전, 심검당, 설선당, 삼성각, 요사채 등 7~8
동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대웅보전과 팔상전 등의 지방문화재와 1855년에 조
성된 괘불, 1770년에 세워진 월파당선사부도 등의 승탑(부도탑) 3기, 사적비(1830년) 등이 있
다.

* 영은사 소재지 :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924 (궁촌길1162, ☎ 033-574-9300)


▲  대웅보전 옆구리에 자리한 5층석탑
근래 장만한 탑으로 영은사의 유일한 돌탑이다. 아직은 나이가 어려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탱탱한 피부를 자랑한다.

▲  영은사 대웅보전(大雄寶殿) - 강원도 유형문화유산

영은사의 법당인 대웅보전(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동해바다가 있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1805년 산불로 쓰러진 것을 서곡화상이 삼척부사 심공저의 지원을 받
아 중수했는데, 장대석(長臺石)을 3겹으로 다진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두고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측면 벽 상부에는 풍판(風板)을 둔 2고주 5량 구조이다.
기둥은 민흘림으로 전,후 기둥은 평주(平柱)이고, 측면과 가운데의 네 기둥은 고주이며, 건물
내부 가운데에 2개의 고주가 대들보를 받치고 있다. 공포는 내삼출목, 외이출목의 다포(多包)
형식으로 기둥 사이에 2개씩 간포를 마련하여 도리를 받치고 있으며, 정면의 살미는 쇠서이고
후면은 운공, 내부는 연봉형이다. 문의 형식은 가운데 칸은 3분합 빗살문이며, 양쪽 협칸은 2
분합 빗살문으로 우측 면에 외여닫이 문을 두었다.

내부 불단에는 1810년에 조성된 석가삼존상이 있으며, 1810~1811년에 그려진 후불탱과 신중탱
등 늙은 탱화가 여럿 있었으나 1990년대 초에 대부분 도난을 당했다.


▲  대웅전 석가삼존상과 후불탱
금동 피부를 지닌 석가삼존상은 1810년에 조성된 것으로 그들 뒤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후불탱이 있었으나 그만 도난을 당하여 새 후불탱이
그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  대웅보전 감로도(甘露圖)

▲  대웅보전 지장보살상과 지장탱


▲  온갖 문양이 깃든 대웅보전 천정

▲  앙증맞은 꽃무늬로 가득한 대웅보전 우물천정

영은사에 왔다면 이곳의 보물창고라 할 수 있는 대웅보전 내부는 꼭 둘러보기 바란다. 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것만 살피지 말고 고개를 90도 들어 윗쪽도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꽃무늬와
다양한 그림, 문양이 깃든 천정이 속세에서 오염되고 상처받은 두 안구를 제대로 어루만져 줄
것이다.


▲  똥배 지존 포대화상의 위엄
불교에서 성인급 대접을 받고 있는 포대화상의 똥배는 인기 만점의
매력덩어리이다. 그의 배를 어루만지면 아들을 얻거나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  영은사 팔상전(八相殿) - 강원도 유형문화유산

팔상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석가여래상과 그의 일생을 정리한 8개의 그
림인 팔상도(八相圖)를 지니고 있다. 절의 대부분이 화마(火魔)의 덧없는 먹이가 되었던 1805
년 화재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명력 강한 건물로 그로 인해 경내에서 가장 늙은 집이 되었
는데, 처음 지어진 시기는 딱히 전하지 않으나 벽봉이 절을 중건했던 1641년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에는 1760년에 조성된 팔상도가 있었으나 1980년 전후로 도난을 당해 사라졌으며, 새 팔
상도를 마련해 사라진 그들의 자리를 채우고 있다. 영은사는 1980~90년대에 팔상도 등 늙은
탱화 상당수를 나쁜 손에게 털리고 이를 되찾지 못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팔상전 현판의 위엄

▲  새로 제작된 팔상도의 일부


▲  영은사 삼성각(三聖閣)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산신과 독성, 칠성의 공간이다.

▲  칠성(七星) 식구들을 가득 머금은 칠성탱

▲  영은사 심검당(尋劍堂)
대웅전 뜨락 좌측에 자리한 팔작지붕 건물로 경내에서 가장 큰 집이다.
1864년에 지어진 것으로 여러 번 중수를 거쳤으며, 요사와 선방의
역할을 하고 있다.

▲  심검당에 걸린 '태백산 영은사' 현판의 위엄
조선 후기 서화가이자 이 땅 최초의 사진작가인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이
이곳을 방문하여 남긴 것이다. 마치 고대(古代)의 옛 글씨 같은 모습으로
글자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다.

▲  심검당 현판의 위엄

이렇게 하여 영은사 관람은 마무리가 되었다. 1855년에 조성된 괘불도 있으나 괘불이란 존재
는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 등 일부 특별한 날에만 볼 수 있는 비싼 존재라 평소에는 그를
없는 셈치고 절을 둘러본다. 만약 석가탄신일이 아닌 날에 괘불을 만났다면 무조건 로또나 토
토 등의 복권을 사기 바란다. 그만큼 그를 만나기가 하늘에 별을 따는 것 이상이나 어렵다.

괘불 외에 조선 후기 승탑과 사적비도 있는데, 이들은 경내 북쪽 숲에 있다. 일주문에서 경내
로 인도하는 길 서쪽으로 승탑들은 길에서도 보이는데, 길에서 그곳까지는 약 100m 거리이다.
가까이로 접근해 그들을 봐야 도리겠으나 귀차니즘 발동으로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영
은사를 떠났다.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으며, 한겨울 영은사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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