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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안적사, 앵림산, 장산 초가을 나들이


' 부산 안적사, 장산 초가을 나들이 '

앵림산 남쪽 장산로

▲  앵림산 남쪽 장산로

장산습지와 앵림산 장산 양운폭포

▲  장산습지와 앵림산

▲  양운폭포

 


여름 제국이 드디어 저물고 가을의 기운이 나날이 솟구치던 9월의 끝 무렵, 동남권의 중
심 도시인 부산(釜山)을 찾았다.
천하 제일의 항구도시이자 해양관광도시로 위엄을 날리고 있는 부산은 어린 시절부터 꾸
준히 인연을 지었던 곳으로 지금까지 무려 100회 이상을 오갔다. 허나 그렇게 오갔음에
도 그런 나를 비웃듯, 미답처(未踏處)들이 적지 않아 나를 참지 못하게 하는데, 이번에
찾은 안적사도 그중의 하나이다. 그동안 부산은 철도 등 육상 교통으로 주로 접근을 했
으나 이번에는 창공으로 방향을 돌려 하늘길을 이용했다.

둥근 햇님이 출근하기가 무섭게 방학동 집을 나서 시내버스로 1시간 40분을 달려 김포국
제공항에 도착했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7시대에 부산으로 가는 에어부산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비행기는 만석의 기쁨을 누리며 활주로를 10분 정도 방황하다가 하늘로 힘차
게 솟구친다.
그렇게 푸른 하늘 속을 40분 남짓 비행하다가 가덕도와 남해바다, 부산시내가 밑에 보이
면서 180도 방향을 틀어 서서히 하강, 김포공항 출발 50여 분 만에 김해국제공항에 도착
했다. (비행시간 30여 분, 양쪽 공항의 활주로 방황시간 20분 내외)

부산까지 비행기로 간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일요일과 평일 아침을 중심으로 고속열차보
다 저렴한 표(3~5만원)들이 많이 쏟아진다. 특히 1~2만원대 표도 가끔씩 고개를 들어 나
는 그것을 잡아 일반열차보다 적은 가격으로 아주 빠르게 부산으로 넘어갔다.

아침 일찍 김해국제공항에 이르니 시간을 덤으로 얻은 즐거운 기분이다. 공항을 나와 부
산시내버스 307번(송정↔김해공항)을 타고 낙동강과 만덕터널을 넘어 동래역(1,4호선)으
로 이동, 여기서 부산4호선을 타고 4호선의 동쪽 종점인 안평역에서 두 발을 내렸다. 안
평역은 반송에서 기장으로 넘어가는 길목으로 여기서부터 안적사와 앵림산, 장산 나들이
가 시작된다.


▲  안적사로 인도하는 안평로 숲길


♠  앵림산 안적사를 찾아서

▲  오르막이 꾸준히 이어지는 안평로
안적사로 인도하는 안평로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경사는 거의 완만하다.
게다가 숲도 삼삼하고 그늘 구간이 많아 시원한 산바람이 수시로
끈적거리는 땀과 더위를 털어준다.


안평역에서 안적사까지는 남쪽으로 이어진 안평로를 따라 50~60분 정도 걸어가야 된다. 절까
지 포장길이 닦여져 있으나 그곳으로 이어지는 대중교통은 없으며, 길 초반에 3차선 길이 잠
깐 있을 뿐, 그곳을 지나면 1차선 크기의 임도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그 길을 ⅔ 정도 지나면 고개가 나오는데, 그곳을 지나면 잠시 내리막길이 나타나 숨을 돌리
게 한다. 허나 그 기쁨도 잠시, 이내 내리에서 올라온 내리길과 합쳐지면서 각박한 오르막길
이 안적사까지 이어진다.


▲  안적사로 인도하는 안평로 ① (안적사 방향)

▲  안적사로 인도하는 안평로 ② (안적사 방향)

▲  안적사로 이어지는 내리길 ①

▲  안적사로 이어지는 내리길 ②

안평로 고개를 넘으면 동쪽(내리)에서 온 내리길과 합쳐진다. 여기서부터 내리길이란 이름으
로 안적사까지 이어지는데, 이 구간은 숲에 묻힌 각박한 오르막길로 6~7분 정도 낑낑 오르면
동그란 모습의 원통문이 나온다. (원통문은 굳이 지나가지 않아도 됨) 그 앞을 지나 숲에 묻
힌 긴 계단길을 오르면 그 길의 끝에 일주문이 활짝 열린 모습으로 마중을 나온다.

▲  동그란 돌문으로 이루어진
원통문(圓通門)

▲  안적사 경내로 이어지는 계단길
(원통문~일주문 구간)

◀  나무들 사이로 고개를 내민 안적사
일주문(一柱門)
일주문은 이곳의 정문으로 그를 지나면
맞배지붕 천왕문이 바로 나타나
중생들을 검문한다.

         ▶  안적사 천왕문(天王門)
안적사 경내를 가리며 일주문의 뒷통수를 바라
보고 있는 천왕문은 부처의 경호원인 사천왕(
四天王)의 공간이다. 그를 지나면 비로소 안적
사 경내 중심에 이른다.

▲  각자의 연장을 쥐어들며 절을 찾은 중생과 온갖 기운들을 ▲
검문하는 천왕문 사천왕상


♠  앵림산 자락에 깃든 고즈넉한 산사
기장 안적사(安寂寺)

▲  안적사 경내 - 대웅전과 부처의 진신사리를 머금은 3층석탑

앵림산(鶯林山, 491m) 북쪽 자락에 포근히 깃든 안적사는 기장군(機張郡) 지역에서 장안사(長
安寺, ☞ 관련글 보기) 다음으로 유서가 깊은 고찰(古刹)이다. 이곳은 661년에 원효대사(元曉
大師)가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다음과 같은 믿거나 말거나 창건설화가 한 토막 전해온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義湘大師)는 수도를 위해 천하의 명산을 돌아다니다가 어느덧 앵림산에
이르렀다. 그들이 앵림산 자락을 지나니 숲속에서 갑자기 꾀꼬리들이 날라와 그들 어깨와 팔
에 마구 안기며 노닥거렸는데, 이곳이 상서로운 곳임을 격하게 느끼고 현재 안적사 자리에 절
을 세우니 그것이 안적사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후 그들은 똑같은 시간에 수도를 시작하여 누구든 먼저 오도(悟道)하게 되면 만나자고 했다
. 하여 각자 거리를 조금 두고 토굴을 지어 정진에 들어갔고, 의상은 어느덧 성불(成佛)에 단
계에 들어섰다. 이에 감동을 먹은 천녀(天女)가 매일처럼 의상을 찾아와 천공(天供)을 올렸는
데, 이에 크게 우쭐해진 의상은 자랑도 할 겸, 원효를 불러 천녀가 준 천공을 같이 먹고자 했
다. 허나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천녀가 제시간에 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토굴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제서야 천녀가 천공을 가지고 나타났다. 의상
은 열받아서 오늘은 왜 늦게 출근했냐며 따지자 천녀 왈
'이곳 주위로 화광(火光)이 가득해서 들어올 수가 없었다' 하는 것이다.

그 말에 의상은 깨달았다. 원효가 의상의 교만한 마음을 단죄하고자 금강삼매화(金剛三昧火)
를 부렸던 것이다. 하여 원효의 도력이 자신보다 높음을 깨닫고 교만을 부리지 않고 그를 사
형(師兄)으로 받들었으며, 이곳에 수선실을 넓혀 큰 가람을 닦아 금강삼매론경등일심법계(金
剛三昧論經等一心法界)의 진리를 후학에 지도했다고 한다.

▲  팔작지붕을 지닌 종무소(宗務所)

▲  안적사 보주원(寶珠院)

꾀꼬리들이 원효와 의상의 길을 막았다고 해서 산 이름을 앵림산이라 했으며, 여기서 수도하
여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에 올라 적멸상(寂滅相)을 통관했다고 해서 절 이름을 안적사라
했다고 한다.
이렇듯 원효와의 인연이 각별한 절임을 격하게 내세우고 있으나 절이 세워졌다는 661년 당시
원효는 고구려(高句麗)를 공격했다가 크게 털린 당나라군에게 군량 수송을 하던 김유신(金庾
信)을 따라 머나먼 고구려 땅으로 가고 있었다. (신라의 중심지인 양자강 하류 강남에서 고구
려의 중심지인 하북성까지는 거리가 한참임) 게다가 661년과 7세기 창건설을 입증할 기록과
유물도 전혀 없으며, 심지어 창건 이후 16세기까지 적당한 사적(事績)도 없어 창건시기에 심
히 회의감을 들게 한다. 하여 절이 우후죽순 들어섰던 신라 말이나 고려 때 살짝 창건된 것으
로 여겨진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범어사(梵魚寺) 승려인 묘전(妙全)이 중건했다고 하며, 1873
년 11월 15일 경허(慶虛)와 해령(海嶺)이 대웅전과 수선실 등을 중수했다.
1974년 경남 전통사찰 47호로 지정되었으며, 1991년 3월 남곡덕명(南谷德明)이 화주(化主) 안
치운과 김우석, 하종수 등 1,000여 신도의 시주에 힘입어 대웅전과 삼성각, 수선실, 요사채,
종무소 등을 중건하고 사천왕과 범종, 여러 후불탱화, 지장탱화 등을 장만해 지금에 이른다.

조촐한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해 삼성각과 수선실, 천왕문, 요사 등 10동 정도의 건물이 있
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1919년에 그려진 지장시왕도(
부산 문화유산자료)와 1874년에 조성
된 아미타극락회상도(
부산 문화유산자료), 석조석가여래삼존상 등 지방문화재 3점이 있다.
그리고 이곳의 새로운 명물로 대웅전 뜨락에 세워진 3층석탑이 있다. 그는 파리도 능히 미끄
러질 정도로 매끄러운 하얀 피부를 지닌 잘생긴 석탑으로 부처의 진신사리 3과를 머금고 있는
데, 그 사리는 왜열도에 살던 재일교포 신수일이 소장했던 것으로 1,000여 년 전에 조성된 인
도 불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전한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를 찾아 한라산 관음사(觀音寺) 승려인 향운에게 그것을 증정했고,
향운은 안적사 사리보탑 불사에 동참하여 사리 3과를 흔쾌히 기증하면서 안적사도 부처의 진
신사리를 보유하게 되었다.

비록 고색의 내음은 싹 말라버렸으나 앵림산의 첩첩한 산주름 속에 푹 묻혀있고, 속세와도 멀
리 거리를 두고 있어 산사의 내음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 안적사 소재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내리 692 (내리길461-16, ☎ 051-543-9408)


▲  안적사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시원스런 팔작지붕 집으로 이곳의 중심 건물(법당)이다. 동해
바다가 있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경내에서 가장 늙은 보물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한 석
가여래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  대웅전 석조석가여래삼존상 - 부산 문화유산자료

대웅전 불단에 자리한 석가여래삼존상은 돌로 만들어 산뜻하게 도금을 입힌 것으로 1654년에
나흠이 조성했다. 이들은 긴 신체 비례와 높은 무릎과 신체에 밀착된 뭉뚝한 손, 물결 모양을
이루는 두꺼운 끝단과 간결하면서도 평면적인 옷주름 등이 특징으로 조선 후기 불석제 불상
연구와 조각승 계파인 현진, 청헌계를 잇는 나흠의 불상 양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1919
년 완호와 시찬이 개금하면서 현재 모습으로 변형되었으며, 그들 허공에는 붉은 피부의 닫집
이 장엄하게 달려있다.

◀  안적사 삼성각(三聖閣)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칠성(치성광여래)과 산신, 독성
(나반존자)의 공간이다.

▲  독성(獨聖) 식구를 머금은 독성탱

▲  칠성(七星) 식구를 머금은 칠성탱

▲  산신(山神) 식구가 그려진 산신탱

▲  윤필과 원효, 의상의 진영(眞影)

삼성각에는 필수 요소인 산신탱과 칠성탱, 독성탱 외에 안적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비록 설화에는 나오지 않으나 그들과 친했다는 윤필(潤筆)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승려의 진영은 보통 조사전(祖師殿) 같은 특별한 건물에 담기 마련이나 안적사는 그런 건물을
마련하지 못해서 삼성각에 두어 삼성 식구들과 한솥밥을 먹게 했다.
원효와 의상이 과연 이곳을 거쳐갔을지는 100% 의문이나 그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스타급
승려라 천하에 많은 절에서 앞다투어 그들을 창건주로 내세우고 있고, 이렇게 1,000년이 넘도
록 두고두고 대접을 받는다. 그러니 세상에 크게 이름을 남길려면 저들 정도는 되어야 된다.


▲  안적사 꽃무릇길

안적사 경내를 둘러보고 북쪽으로 나오니 꽃무
릇길이 나타난다. 경내 중심부에서 요사(寮舍)
가 있는 경내 서북쪽 구석을 이어주는 길로 길
양쪽으로 붉은 피부를 드러낸 꽃무릇(상사화)
이 화사하게 피어나 9월 감성을 크게 돋군다.
꽃무릇은 8~9월에 피는 꽃으로 꽃과 잎이 따로
피어나 서로가 만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상사화(相思花)란 별칭도 지니고 있다.

     ◀
  탐스럽게 피어난 꽃무릇(상사화)


▲  안적사에서 앵림산 주능선으로 이어지는 산길

안적사 이후로는 딱히 정처(定處)를 정하지 않아서 넘쳐나는 시간을 조금 줄일 겸, 일단 앵림
산 서북쪽 너머에 있는 반송동(盤松洞)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하여 안적사 북쪽 산길로 들어
섰는데, 그 길을 10여 분 오르면 앵림산 주능선에 이른다.

▲  앵림산 주능선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앵림산의 첩첩한 북쪽 산주름

▲  앵림산 주능선 갈림길에서 만난 돌탑


해발 320m대에 앵림산 주능선으로 올라서니 돌탑이 닦여진 갈림길이 나타나 길 선택을 요구한
다. 처음에는 반송동으로 넘어가려고 했으나 장산(萇山) 방향으로 이어지는 남쪽 숲길의 유혹
을 참기가 힘들어 남쪽 길로 일단 변덕을 부렸다.
여기서 서남쪽으로 가면 앵림산 정상부와 장산습지로 이어지나 그리 땡기지 않았으며, 북쪽은
반송동과 안평역, 고촌역으로 이어진다.


▲  앵림산 동남쪽 산길 (구곡산, 장산 방향)

앵림산 동남쪽 산길은 울창한 수목에 감싸인 숲길로 구곡산 장산로까지 느긋한 경사를 보이며
펼쳐진다. 처음에는 중간에서 내려갈 생각을 하였으나 딱히 내려가는 길도 없었고, 숲길도 너
무 싱그럽고 편안하여 숲길에 완전히 취해버렸다.


▲  앵림산 동남쪽 산길에서 만난 돌탑들
이들은 앵림산 수식용으로 근래에 다져진 돌탑들이다. 햇살도 들어오기 힘든
숲 그늘에 돌탑 여러 기가 묻혀있어 소도(蘇塗) 같은 신성한 공간에
들어선 듯한 묘한 기분을 선사한다.

▲  푸른 숲내음 속에 잠시 나를 숨기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게끔
하지만 나를 찾는 이가 없다는 것이 함정. (앵림산 동남쪽 산길)

▲  앵림산 동남쪽 산길에서 만난 고마운 약수터

앵림산이 베푼 맑은 물이 졸졸졸 나와 나그네의 목마름을 해소해 준다. 깊은 산골에서 약수터
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소중한 존재로 졸고 있는 바가지를 깨워 한가득 담아 들이키니 갈증
은 물론 몸속의 체증까지 싹 내려앉은 기분이다.


♠  해운대의 오랜 뒷산, 장산 (장산습지, 장산너덜, 양운폭포)

▲  구곡산 서쪽 장산로

앵림산 동남쪽 산길을 30여 분 가니 1차선 크기의 포장길이 마중을 한다. 앵림산에 이런 길이
있었나 싶어서 살펴보니 글쎄 구곡산 주변과 장산 북쪽 자락을 지나는 '장산로'란 임도였다.
'안적사에서 장산까지 이렇게 가까웠나??'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지며 마치 비밀의 지름길이
나 축지법을 당한 듯,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서쪽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이곳
은 꿈속이 아닌 분명 해운대(海雲臺)의 뒷산인 장산(634m)이 맞다.


▲  구곡산 서쪽 장산로에서 바라본 천하 (북쪽 방향)
첩첩히 둘러진 앵림산 산줄기와 구치머리(236.7m), 감딤산(308.5m),
양달산(286m), 산성산(369.2m), 기장읍내, 동해바다 등

▲  구곡산 서쪽 장산로에서 바라본 동해바다와 동부산관광단지 주변

▲  구곡산 서쪽 장산로 (동남쪽 방향)

▲  달달하게 우거진 장산로 숲길 (장산습지 동쪽)

▲  장산습지 (장산습지 생태경관보전지역)

장산 동북쪽 구석이자 앵림산 남쪽 450m 고지에 장산습지가 포근히 깃들여져 있다. 장산로 옆
에 자리한 이곳은 부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악습지로 멸종위기종인 자주땅귀개와 께묵, 끈
끈이주걱, 이삭귀개, 꽃창포 등 희귀식물 5종과 우리나라 고유종 가운데 멸종위기종으로 특별
관리중인 '설앵초', 그리고 1급수 청정지역에만 산다는 '산골조개'가 대놓고 살고 있어 보존
가치가 상당히 높은 곳이다.
하여 이곳을 지키고자 부산시에서 2017년 8월 9일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으며, 지정 면
적은 36,538㎡이다. 습지 주변으로 탐방로를 냈으며, 습지 남쪽에는 장산억새밭이 자리해 있
어 가을에는 장관을 이룬다.

* 장산습지 소재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 산51-188


▲  대자연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장산습지

▲  덥수룩하게 자라난 장산습지

▲  장산습지 탐방로 ①


▲  장산습지 탐방로 ②

▲  장산억새밭

장산습지와 장산억새밭은 남북으로 서로 붙어있다. 억새밭은 습지의 도움에 힘입어 이렇게 크
게 몸집을 불린 것인데, 비록 부산 억새밭의 성지로 크게 추앙을 받는 승학산(乘鶴山)만은 못
해도 나름 상큼한 풍경을 그러낸다.


▲  수풀에 묻힌 장산습지
습지는 억새를 비롯한 여러 수풀에 묻혀있어 겉으로 보면 단순히 잡초가
무성한 곳으로 보이기 쉽다. 허나 수풀에 가려졌을 뿐, 그 밑에는
물이 고인 습지가 깃들여져 있다.

▲  장산습지와 억새밭 사이를 지나는 탐방로

▲  장산에서 바라본 해운대 일대와 해운대 앞바다

▲  장산에서 만난 기묘한 바위 (모정원~장산너덜 구간)
마치 사람이나 괴물이 비스듬히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 같다. 그에게
주어진 이름은 없으나 생김새가 예사롭지가 않아서 왕년에는
산악신앙의 대상물로 바쁘게 살았을듯싶다.

▲  장산너덜 (장산돌밭)

장산억새밭에서 남쪽으로 25분 정도 내려가면 장산너덜이라 불리는 거대한 돌밭이 모습을 비
춘다. 이곳은 애국지사 강근호(姜槿虎, 1898~1960)선생 추모비와 모정원(母情苑) 서남쪽으로
장산 동쪽 자락에는 크고 견고한 돌들이 크게 무리를 지어 있는 돌너덜(돌밭)이 여럿 전하고
있다. (애국지사 강근호선생 추모비와 모정원 관련 내용은 ☞ 이곳을 참조)

이들 돌밭은 대자연 형님이 오랜 세월을 두고 빚은 것으로 숲 사이로 이런 큰 돌밭이 있다는 
것이 참 신기롭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지금은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백악기(白堊紀) 후기 시절, 장산은 무시무시했던 화산(火山)이
었다고 한다. 그때 화산 활동으로 분출된 화산재와 용암 등의 화쇄류(火碎流)가 장산 곳곳에
쌓여 장산의 살과 피부가 되었다.
돌너덜은 테일러스, 애추, 돌서렁, 암괴류 등 다양한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암석이 물과 바
람 등에 의한 물리적 풍화작용을 오랜 세월 받으면서 암석의 틈(절리)을 따라 서서히 깨진다.
그리고 산 경사면을 따라 산사태처럼 아래로 무너져 내리면서 돌너덜이 생겨난다. 장산너덜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생겨났다. 그 외에 지진과 화산 분출 등으로 진동이 일어나거나 빙하기와
같은 추운 기후에 동결쐐기작용 등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  속세를 향해 물결을 치듯 펼쳐진 장산너덜의 위엄
장산의 푸른 숲 너머로 해운대신시가지와 해운대가 두 망막에 들어온다.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장산너덜은 긴 축이 2~10m, 짧은 축은 1~6m로 매우 큰 편에 속하며, 돌
너덜의 전체 면적은 43만㎡에 이른다. 이들 장산너덜은 부산국가지질공원의 일원으로 보호되
고 있으며, 돌너덜은 접근이 통제되어 있어 허가된 곳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
그것이 사람과 돌너덜 서로에게 좋다.


▲  장산 천제단(天祭壇) - 부산 민속문화유산

장산너덜에서 서쪽 산길을 10분 정도 가니 장산 천제단이 마중을 한다. 장산 동쪽 자락에 자
리한 천제단은 옛 조선(고조선)이 천하를 크게 지배하던 2,300년 전에 해운대구 일대에 있었
다는 장산국(萇山國)의 제단으로 전해진다.
신선바위에 3개에 선돌을 세우고 천신(天神)과 지신(地神), 산신(山神)의 상징물로 삼았는데,
풍년과 세력의 번영을 기원했으며, 1년에 2회(1월과 6월)씩 제를 올렸다고 한다. 1월 제사는
풍년과 사람의 운명을 담당하는 제신에 대한 제사였고, 6월 제사는 풍년에 감사하고 온갖 잡
귀를 몰아내어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형태였다.

장산국이 사라진 이후에도 지역 사람들의 제단으로 살았으며, 근래 정비했다. 제단 윗쪽에는
돌너덜이 주름선을 보이며 펼쳐져 있는데, 장산에서 조금 외진 곳이라 찾는 이는 별로 없다.
나도 안적사 관람 때까지 생각치도 못했던 장산 산자락까지 넘어와 장산습지와 장산억새밭,
모정원, 그리고 장산 천제단 등 내 정보에는 전혀 없던 장산의 숨겨진 명소를 여럿 발견하여
장산에 대한 경험치를 높이고 안적사 이후의 여로(旅路)도 배부르게 채웠다.


▲  양운폭포(養雲瀑布)

장산 천제단에서 장산산림욕장, 대천공원으로 이어지는 동남쪽 산길을 내려가면 장산계곡 중
류에 걸린 양운폭포가 힘찬 물소리로 마중을 한다.
양운폭포는 높이 9m에 잘생긴 폭포로 10여 년 전에 인연을 지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장산폭
포라 불렸고, 폭포 앞까지 접근이 가능했다. 허나 그 사이 폭포는 제 이름을 찾았고, 장산너
덜과 함께 부산국가지질공원의 일원이 되었으며, 폭포 보호 및 물놀이 사고 방지를 위해 주변
에 금줄까지 둘러 폭포 접근을 막고 있다.

이곳은 부산에 몇 없는 자연산 폭포로 폭포수가 바위에 부딪쳐 생긴 물보라가 마치 구름처럼
피어나는 듯 보여서 양운폭포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폭포 밑에는 장산과 앵림산이 베푼 물
이 모인 둘레 15m 정도의 소(沼, 못)가 있으며, 청아한 빛깔을 드러내고 있는데, 소의 모습이
마치 가마솥처럼 생겨서 가마소라 불리기도 한다.

옛날의 소(못)의 수심을 재고자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 넣었으나 바닥에 닿지 않았다고 하며,
하늘나라 선녀 누님들이 내려와 놀던 곳이란 전설도 전한다. 물론 선녀도 없고, 명주실이 닿
지 않을 정도로 깊이를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빼어난 경승지에 수심이 깊은 곳이란 소
리이다.
비록 예전처럼 폭포와 소(못) 앞까지 접근을 하지 못하나 적당히 거리를 두고 이렇게 바라보
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한때는 피서의 성지로 추앙을 받았으나 금지된 폭포가 되면서 폭포사
이후 장산계곡 하류가 피서의 성지로 바쁘게 산다.

이렇게 양운폭포와 간만에 인연을 짓고 폭포사(瀑布寺)와 장산산림욕장, 대천공원을 거쳐 해
운대신시가지로 내려갔다.
안평역(4호선)에서 안평로, 안적사, 앵림산, 장산로, 장산습지, 모정원, 장산너덜, 장산 천제
단, 양운폭포, 장산산림욕장을 거쳐 해운대신시가지 장산역(2호선)까지 15km 이상을 5시간 가
까이 이동했으며, 앵림산과 장산 등 해운대구의 대표 지붕을 남북으로 가로질렀다. 안적사 이
후 여로를 넉넉하게 채운 셈이다.

양운폭포 이후는 딱히 사진에 담은 것도 없고 특별히 다룰 부분도 없어서 본글에서는 통과하
며, 9월 끝 무렵에 찾은 안적사와 앵림산, 장산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양운폭포 소재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산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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