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동묘 성공문에서 바라본 화양서원 경내 가파른 계단 밑으로 보이는 맞배지붕 문은 만동묘의 외삼문인 추양문이다. (왼쪽은 존사청과 풍천재, 오른쪽은 증반청) 2. 만동묘 내부 만동묘는 화양서원의 일원으로 서원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송시열의 유언으로 1704년에 세운 명나 나 신종, 의종의 사당으로 황색 단 위에 그것들의 위패를 봉안했다. 보통 서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그 서원에서 중심적으 로 띄워주는 존재의 사당이 있기 마련인데, 여기는 엉뚱하게도 명 신종, 의종의 사당을 두어 망해버린 명에 대한 꼴사나운 꼴통 사대주의를 징그럽게 보였다. 3. 만동묘 앞 석주 지역 유생과 조선 조정이 얼마나 만동묘를 애지중지했는지 키가 큰 석주까지 닦아놓아 이곳의 분위기를 더욱 엄숙하게 돋 ..
1. 화양계곡 만동묘 화양계곡(화양구곡) 제4곡인 금사담 주변에 만동묘와 화양서원 묘정비가 있다. 17세기 문인이자 성리학의 대표급 인물로 쓸데없이 큰 이름을 지닌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화양계곡 경치에 퐁당퐁당 반해 이곳에 별서를 짓고 팔자좋게 머문 인연이 있는데, 그는 조정에 출사를 했다가 그만두고 이곳에 오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고 전한다. 그는 왕세자 책봉 문제로 숙종에게 상소를 했다가 제주도로 귀양을 갔고, 심문을 받고자 상경하는 중에 정읍에서 숙종이 내린 사약을 먹고 82세의 나이로 강제 사망했다. 그는 골로 가기 전, 자신의 열성제자였던 수암 권상하에게 이미 망해버린 명나라 신종과 의종의 사당을 지을 것을 요구했다. 하여 권상하와 그 떨거지들은 아름다운 화양계곡에 명에 대한 꼴통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