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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동묘 성공문에서 바라본 화양서원 경내
가파른 계단 밑으로 보이는 맞배지붕 문은 만동묘의 외삼문인 추양문이다. (왼쪽은 존사청과 풍천재, 오른쪽은 증반청)

 

 

2. 만동묘 내부

만동묘는 화양서원의 일원으로 서원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송시열의 유언으로 1704년에 세운 명나
신종, 의종의 사당으로 황색 단 위에 그것들의 위패를 봉안했다. 보통 서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그 서원에서 중심적으

로 띄워주는 존재의 사당이 있기 마련인데, 여기는 엉뚱하게도 명 신종, 의종의 사당을 두어 망해버린 명에 대한 꼴사나운
꼴통 사
대주의를 징그럽게 보였다.

 

3. 만동묘 앞 석주
지역 유생과 조선 조정이 얼마나 만동묘를 애지중지했는지 키가 큰 석주까지 닦아놓아 이곳의 분위기를 더욱 엄숙하게
구었다.

 

4. 금사담

금사담은 화양계곡(화양9곡)의 제4곡으로 화양9곡 식구 중 가장 빼어난 곳으로 찬양을 받는다. 계곡에는 암반과 바위들이
즐비하며 물놀이에 좋게 모래밭까지 갖추고 있어 천연 풀장을 이룬다. 계곡 건너 벼랑에는 암서재란 정자가 있는데 그곳은
송시열이 화양동에 은거할 때 지은 별장이다.
금사담이란 이름은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물 속에 잠긴 모래가 마치 금가루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운영담과 함께 피서
의 성지로 바쁘게 살고 있다.

 

 

 

5.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금사담의 고운 풍경


6. 금사담 암서재
암서재는 노송이 울창한 층암벼랑 위에 닦여진 팔작지붕 정자이다. 송시열이 별장으로 지어 팔자좋게 머물던 곳으로 그는

여기서

'시냇가에 바위 벽이 열리어 / 그 사이에 집 1간을 지었네 / 고요히 앉아 성인의 교훈 받들어 / 한치라도 더위잡고 올라 보

려네' 시를 읊었다고 전한다.

현재 건물은 19세기에 이후에 지어진 것이며, 저곳으로 가려면 계곡을 건너가야 되는데, 건너가는 길도 마땅치 않고, 암서

재는 관람이 통제되어 있어 무리해서 접근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계곡 건너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는 것이 좋다.

 

 

 

7. 확대해서 바라본 암서재

 

 

 

8. 잘생긴 금사담 주변 바위와 벼랑들


9. 금사담 벼랑에 새겨진 '충효절의' 바위글씨
명나라에 대한 꼴통 사대주의가 심했던 송시열은 명태조와 명나라 제왕 친필 성애자이기도 했다. 그는 청나라로 가는 사신

들을 괴롭혀 그들의 글씨를 수집했는데, 그렇게 얻은 친필 글씨를 암서재와 가까운 환장사(현 채운사)에 보관을 했으며, 그

글씨를 따서 화양계곡 바위 곳곳에 지저분하게 글씨를 새겼다.
충효절의는 명태조 주원장의 어필로 신하와 유생들이 지켜야 될 덕목을 4자로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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