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영암 내동리 쌍무덤 (2호분)영암군 서북부에 자리한 시종면 중심지 북쪽(시종면 내동리교차로)에 내동리 쌍무덤이라 불리는 늙은 무덤 유적이 있다. 시종면 내동리교차로 북서쪽 언덕배기에 자리한 내동리 쌍무덤은 4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역 사람들은 이들을 풍수지리적으로 '매화낙지'라 불렀다. 이는 매화꽃이 떨어지는 자리란 의미이다. 쌍무덤 식구 중 남쪽에 자리한 1호분(장축 56m, 너비 23m, 높이 5~8m)과 북쪽의 2호분(밑지름 35m, 높이 10m)은 봉토가 거의 붙어 있어 하나의 무덤처럼 보이는데, 그로 인해 쌍무덤(쌍분)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1호분은 타원형으로 보이기도 하고, 북쪽에 약간 낮은 평탄부가 있어서 전방후원형의 일종으로 보기도 하며, 2호분은 방형과 원형이 섞여있는 모양..
' 부여 늦겨울 나들이 ' ▲ 금성산 성화대에서 바라본 부여읍내 ▲ 궁남지와 포룡정 ▲ 국립부여박물관 석조여래입상 천하의 바다를 주름잡으며 거대한 해양대국을 일구었던 백제(百濟), 바다 건너 왜열도를 속방으로 거느리고 중원대륙(서토)의 수많은 해안 지역(요서에서 오월까지)을 점령해 다 스렸으며, 5세기 후반에는 산 동반도(山東半島)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북위(北魏)와 자웅을 겨루어 그들의 수십만 기병 을 묵사발로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수백 년 동안 동아시아를 주름잡던 백제는 660년 7월, 신라(新羅)~당(唐) 연합군 의 공격과 나라의 내부 분열로 허무하게 그 막을 내리고 만다. 충남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도읍(都邑)으로 여겨지는 곳으로 그때는 사비성(泗沘城)이라 불렸다. 백제 26번째 군주인 성왕(聖王..
' 서울 백제 유적의 성지, 송파구 나들이 ' (석촌동고분군, 방이동고분군) ▲ 석촌동고분군 제4호분 ▲ 석촌동고분군 제5호분 ▲ 방이동고분군 제7,8,9,10호분 서울 동남부에 자리한 송파(松坡)는 장대한 해양대국을 일구었던 백제(百濟)의 도읍인 위 례성(慰禮城)의 변두리로 여겨지는 곳이다. 백제는 고구려(高句麗)의 위대한 시조인 동명 성왕(東明聖王, 추모성왕)의 3번째 아들, 온조(溫祚)가 어머니인 소서노(召西奴)와 졸본( 卒本) 세력을 이끌고 내려와 세웠다고 전한다. 그들은 한강(漢江) 이북 서울 어딘가에 도읍을 세우고 위례성이라 하였는데, 주변 세력의 침공이 잦고 자리가 영 좋지 못해서 한강 남쪽에 또 다른 위례성을 만들어 도읍으로 삼았 다. 그래서 이전 위례성을 하북위례성(河北慰禮城), 이후를 ..
' 수도권 고구려 유적의 성지, 아차산 나들이 (아차산성) ' ▲ 아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 아차산5보루 ▲ 아차산성 아차산은 해발 287m(또는 285m)로 용마산과 망우산을 거느린 큰 산줄기이다. 서울 강북의 동남쪽 벽으로 서울 광진구와 중랑구, 경기도 구리시의 경 계를 이루고 있으며, 예전에는 중랑구 봉화산(烽火山)까지 아차산의 영역이었다. 아차산은 음은 같지만 한자 표기만 해도 무려 4개(阿嵯, 峨嵯, 阿且. 峩嵯)씩이나 되는데, 삼국시대에는 아차(阿且), 아단(阿旦)이라 불렸으며, 고려 때 이르러 지금 널리 쓰이는 ' 아차(峨嵯)'란 이름이 나타난다. ('峩嵯'도 이때 나타남) 아단(旦)이란 이름은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세우고 이름을 단(旦)으로 고치자 제 왕의 이름을 피하는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