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응도당에 걸린 돈암서원 현판의 위엄응도당은 돈암서원의 상징 같은 존재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집이다. 돈암서원에서 가장 큰 건물로 강당 역할을 했는데, 돈암서원의 건물 배치와 규모는 사계 김장생이 쓴 '의례'와 '주자대전'을 고증해 강경에 있는 죽림서원의 법도를 따라 지었다. 건물 내부는 모두 마루를 깔았고, 옆면에는 비바람을 막는 풍판을 달았는데, 풍판 밑에는 눈썹지붕을 두었다. 처마의 암막새 기와에 '숭정육년계유이월일서원'이란 글이 있어 1633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우리나라 서원 건축물에서 가장 큰 건물로 두고두고 추앙을 받고 있다. 그로 인해 서원 건물 중 별도로 국가 보물의 큰 지위를 누리고 있다. (돈암서원은 국가 사적의 지위를 누리고 있음) 2. 확대해서 바라본 돈암서..

1. 논산 돈암서원을 찾아서 (돈암서원 입구)논산시 연산면 임리 1번 국도 남쪽에 자리한 돈암서원은 충남에 대표급 서원이다. 서원은 이름 있는 명사의 사당 및 유생과 후학들의 교육 공간으로 일종의 지역 고급 사립학교로 보면 될 것이다. (교육은 거의 유학과 성리학만 취급했음) 돈암서원은 1634년에 연산 출신인 사계 김장생을 봉안하고 그의 학문을 계승하고자 지역 유생들이 세운 것으로 1658년에 신독재 김집, 1688년에 동춘당 송준길, 그리고 1695년에 우암 송시열을 차례로 봉안했다.1660년 조정으로부터 사액을 받아 나라의 공인 서원이 되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슬 시퍼런 서원 정리 사업 때도 살아남았다. 그때 살아남은 서원은 전국에 47곳인데, 이들이 진정한 조선 서원의 끝판왕 같은 존재들이다. ..

1. 계룡 사계고택 문간채(대문채)호남선 계룡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사계고택은 조선 중기에 활동했던 사계 김장생(1548~1631)이 말년을 보냈던 곳이다.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사상과 학문을 이어받아 예학의 최고봉을 이룬 유학자로 1602년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연산에 내려와 바로 이곳에 은농재를 짓고 말년을 보냈다. 그 시절 계룡시 지역은 연산 고을 관할이었다.그는 여기서 서적 저술과 제자 양성에 주력했으며, 그의 8번째 아들인 김규(1606~1677)가 이곳을 물려받아 그의 자손들이 대대로 살아왔다. 계룡시와 충남에 대표적인 조선 중기 한옥으로 안채와 사랑채, 안사랑채, 곳간채, 광채, 문간채, 행랑채 등을 지니고 있는데, 후손들이 이곳을 각별히 애지중지하여 원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