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왕산 서쪽 자락에 소리없이 안긴 조촐한 산사(山寺), 오래된 지방문화재 2점을 간직한 인왕산 환희사(歡喜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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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영원한 우백호(右白虎)인 인왕산(338m)은 바위로 이루어진 각박한 경사의 암산(巖山)이 다. 시내에서 보면 산이 대개 협소해 보이지만 그의 품으로 들어가보면 생각 외로 넓어 놀라게 된다. 겉과 달리 속은 깊고 넓은 것이다.
인왕산에서 가장 경사가 각박하고 건물 지을 자리도 없을 것 같은 서쪽 자락에 조그만 비구니 절인 환희사가 조용히 안겨져 있다. 너무 없는 듯 자리해 있어 이곳의 존재를 안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나도 그만큼 등잔 밑이 어두웠다.
이 절은 20세기 중반에 지어진 현대 사찰로 정보의 바다로 자부심이 대단한 인터넷 세계에서도 그곳에 대한 정보는 좀처럼 걸려들지 않았다. 하여 누가 언제 창건하고 무슨 과정을 거쳤는지 는 절에 가서 묻지 않는 이상은 알 길이 없다. 그만큼 법등(法燈)의 역사와 인지도의 끈이 매 우 낮은 것이다. 절이 있기 전에는 부근에 무당이 굿을 하거나 사람들이 수행을 하는 석굴이 있었다고 하며 그 인근에 터를 닦고 환희사를 세워 지금은 인왕산의 주요 사찰로 성장했다.
나는 오래된 절을 무척 좋아하는지라 소장 문화유산이 있거나 성북동 길상사(吉祥寺) 같은 경 우를 제외한 80년도 안된 절에는 거의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환희사에 주목을 하고 초파 일에 이렇게 찾은 것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불상이 무려 2점이나 있기 때문으로 그들의 존재 가 나를 이곳으로 소환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곳이나 인왕산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 며, 20세기 중반 어느 때에 외지에서 모두 업어온 것이다. 역사가 짧고 딱히 내세울 것이 없는 환희사에서는 이들 불상을 후광(後光)으로 삼아야 장차 절을 꾸리기가 수월하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용화전, 요사로 쓰이는 건물 3동이 전부로 그 흔한 삼성각(三聖閣), 일주문 (一柱門)도 아직 갖추지 못했다. 경내는 작은 편으로 건물 3동에 딱 걸맞는 크기라 두 눈에 쏙 넣고 봐도 부담이 없다. 경내 북쪽과 동쪽, 남쪽은 경사가 급하며, 서쪽으로 속세로 내려가는 길이 닦여져 있다. 절 주변은 속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목이 울창해 산사의 기운을 더해주 며 남쪽에 조촐하게 계곡이 흘러간다. 이곳은 비구니 사찰이라 경내가 꽤 정갈하고 아기자기하다. 여인들의 공간이다보니 이쁘게 꾸 며진 것이다. 경내 곳곳에는 그들의 손맛이 담긴 온갖 귀여운 인형과 장식물이 놓여 있고, 뜨 락은 산뜻하여 먼지 하나 앉을 틈이 없다. 게다가 찬불가나 불교 관련 음악이 아닌 클래식 같 은 잔잔한 음악을 주로 틀어놓아 색다른 기분을 건넨다. 또한 다른 현대 사찰과 달리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이 별로 없어 평일이나 주말 낮에 오면 종종 차 1잔 얻어마실 수 있으며, 편안한 기분으로 절을 둘러보거나, 쉼터에서 쉬거나, 예불을 보거 나 사진 출사를 하게끔 배려해 주는 착한 절이다. 지방문화재 불상 때문에 외지인에 대한 신경 이 다소 예민할텐데도 말이다. 허나 그렇게라도 해야 간접적으로나마 절의 존재를 조금씩 알릴 수 있다. 인지도가 누적이 되야 사람이 찾아오고 그에 따른 수입도 생기기 때문이다. 다만 18시 이후에는 초파일 등의 경우가 아니면 대문을 걸어잠구며, 18시까지는 밖으로 나가줘 야 된다. (비구니가 대문을 닫으니 나가라고 함) 연약한 비구니들의 공간이고 문화유산을 지키 고자 그렇게 하는 모양이니 그거 외에는 딱히 문제될 것은 없다.
절 밑에는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장에서 대문을 지나 오르막을 오르면 요사(寮舍)이다. 이 건 물은 경내를 가리며 자리해 있는데, 그 흔한 기와집이 아닌 일반 주택으로 되어있어 겉으로 보 면 절집이 아닌 별장이나 전원주택 같은 분위기이다. 경내를 두른 연등이 아니었다면 누가 이 곳을 절로 생각이나 했을까? 그런 상식 밖에 요사를 지나면 뜨락이 나오면서 그보다 한층 높은 곳에 법당(法堂)인 대웅전이, 그보다 1단계 더 높은 곳에 용화전이 나오니 이들은 다행히 기와 집이라 나름 절집의 분위기를 풍긴다.
절이 작고 조촐하여 정말 5분이면 다 보고도 남음이 있으나 지방문화재 불상 때문에 머무는 시 간은 조금 길어진다. 작년에도 인왕산 정상을 찍고 홍제동으로 넘어오면서 이곳을 들린 적이 있는데, 그때는 용화전에 담긴 석불입상을 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갈 기회를 노리다가 이번 초파일에 인연을 지은 것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인왕 산을 넘어서 왔다. 그들 불상이 아니었다면 굳이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이 절 의 존재를 길이길이 몰랐을 지도 모른다. 그들 덕분에 이렇게 정갈한 비구니 사찰을 알게 되니 나로써는 고마울 따름이다.
절에 들어서니 오후 행사가 막 끝난 터라 경내가 꽤 부산하다. 뜨락 서쪽과 정자에는 가족 단 위 신도와 산꾼, 노공들이 모여 앉아 있었고, 10~20대로 이루어진 행사 요원(학생 신도들)들은 행사 뒷처리와 먹거리를 파느라 바쁘다. 이곳 이전에 갔던 봉국사와 옥천암은 먹을거리를 무상 으로 제공했는데, 이곳은 그런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공양이나 떡은 꿈도 못꾼다. 게다 가 판매 가격도 속세만큼이나 야박하니 아무래도 초파일 특수를 노려 재정을 채우려는 모양이 다. 부처와 관음보살의 뜻에 따라 중생을 위해야 될 절이 지나치게 돈에 집착하는 것도 썩 좋 은 것은 아니다. |
▲ 대문 주변에 자리한 5층석탑 이 석탑은 왜정 때(또는 1950~60년대)에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모르겠으며, 2층 지붕돌과 3,4,5층 몸돌에는 고색의 때가 약간 피어있다.
▲ 연등이 춤을 추는 대웅전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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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뜨락에는 잔디가 곱게 입혀져 있다. 뜨락 북쪽에는 석불입상을 세우고 서쪽에는 7층석 탑을 세웠는데, 그 주위에 아기자기한 장식물이 널려 있어 사진기를 흥분하게 만든다. |
▲ 환희사 요사 - 승려들의 생활공간으로 종무소(宗務所)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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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자한 표정으로 남쪽을 바라보는 석불입상과 관불(灌佛)의식의 현장 |
▲ 날씬한 몸매의 7층석탑 대문 앞 5층석탑과 조금 비슷한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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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고 귀여운 청개구리상 |
▲ 돌 위에 얹혀진 인형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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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쁘게 치장된 뜨락 화단 |
▲ 오리 솟대(왼쪽)와 인형의 만남 |
▲ 환희사 대웅전(大雄殿)
▲ 환희사 목불좌상(아미타불좌상) - 서울 지방유형문화재 2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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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절 규모에 걸맞게 조촐한 모습이다. 불단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목불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그 좌우에는 아주 작은 관음보살과 법륜(法輪 )이란 동그란 바퀴를 두광(頭光)으로 두른 지장보살이 자리해 소위 아미타3존불을 이룬다. 그들 뒤에는 색채가 고운 아미타후불탱이 든든하게 걸려있고, 좌우 벽에는 신중탱(神衆幀), 산 신탱(山神幀), 독성탱(獨聖幀), 칠성탱(七星幀) 등의 탱화가 빼곡히 자리하여 삼성각의 역할도 도맡고 있다.
불단에 앉아 넉넉하고 포근한 미소를 보이고 있는 목불좌상, 그는 원래 연천(漣川)에 있던 심 원사(心源寺)에서 넘어온 것이다. 심원사는 연천 지역에서 꽤 명성이 높았던 절로 6.25 때 파 괴되자 그곳에 있던 숱한 불상들이 고향을 잃고 외지로 흩어졌다. 이 목불좌상도 그중 하나로 환희사에서 어떻게 수습하여 이곳의 중심 불상으로 삼았다. 이 불상은 서방정토(西方淨土)의 주인인 아미타불(阿彌陀佛)로 17세기 중반 전후에 조성된 것 으로 여겨지며, 덩치는 작은 편이나 그를 협시(夾侍)하는 좌우 불상이 그보다 훨씬 작아 여기 서만큼은 제법 커보인다. 그의 검은 머리칼은 꼽슬인 나발(螺髮)로 그 사이에 무견정상(無見頂相)이 솟아있으며, 두 눈 은 명상에 잠긴 듯 포근히 감겨 있다. 눈썹 사이에 푸른 백호가 찍혀있고. 작은 코는 오똑 솟 아있으며, 조그만 입술에는 미소가 넉넉히 드리워져 있다. 코와 입 사이에는 수염이 나있고, 볼살은 별로 없는 작고 갸름한 얼굴로 작은 얼굴을 선호하는 젊은 현대인들에게 부러움을 받는 다. 볼살이 절제되어 있으니 볼살이 많은 불상이나 포대화상(布袋和尙)보다는 더 미남으로 보 인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그어져 있고, 두 손은 복잡하다는 아미타9품인(阿彌陀九品印)의 하 나를 취해 결가부좌(結跏趺坐)로 앉아있다.
그는 중부지방 목불상(木佛像)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어 2006년 9월 서울 지방유형문화 재의 지위를 얻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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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우측의 불화들 (영산회상도, 신중탱, 독성탱 등) |
▲ 대웅전 옆에 자리한 용화전 |
▲ 환희사 석불입상 - 서울 지방유형문화재 2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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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좌측에는 용화전이 자리해 있다.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있는데 그 안에는 지 방문화재로 지정된 석불입상이 봉안되어 있다. 그의 예전 명칭은 판석부조불입상(板石浮彫佛立 像)으로 발음하기도 참 어렵다.
이 석불은 두꺼운 판석(板石)에 새긴 입상(立像)으로 마애불(磨崖佛)과도 다소 비슷하다. 고려 석불의 형식을 계승하고 있다고 하며, 조선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앞서 목 불좌상과는 달리 신체 비례와 조형감이 많이 떨어진다. 그 역시 다른 곳에서 가져왔으며, 고향 이 어디고 정체가 무엇인지는 자료가 없어서 모르겠다. 여기서는 막연히 미륵불(彌勒佛)로 심 심치 않은 대접을 받고 있다.
판석 위에 새겨진 석불은 보는 시각에 따라 고색의 기운도 별로 느껴지지 않아 근래 것으로 착 각하기도 쉽다. 얼굴은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에 죄다 씻겨가거나 눈과 코, 입의 위치만 확 인할 수 있는 정도이며, 머리에는 무견정상이 두툼하게 솟아있다. 머리 뒤에는 꽃무늬가 새겨진 동그란 두광이 그를 밝혀주며, 몸에는 양 어깨를 가린 법의(法衣 )가 입혀져 있다. 가슴 밑은 얼굴처럼 닳은 부분이 많고, 몸 뒤에는 신광(身光)이 묘사되어 있 다. 석불입상 옆에는 조그만 귀여운 석상이 있는데, 서로 피부가 비슷해 같은 셋트임을 느끼게 한다. 정체는 알 수 없으나 부처의 열성제자인 나한(羅漢)이 아닐까 살짝 점쳐본다. |
▲ 대웅전과 관음전 사이에 자리한 관음보살상 지나치게 큰 정병(政柄)을 두 손에 쥐어들며 명상에 잠겨있다. 저 병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그를 졸라서 1잔 받아보고 싶다.
▲ 환희사의 조그만 극락, 대웅전 우측 정자 쉼터 누구든 신발을 벗고 들어가 쉴 수 있는 쉼터로 간식도 먹을 수 있게끔 조그만 탁자도 닦여져 있다.
▲ 정자에 걸린 현판과 음악을 흘려보내는 조그만 스피커의 위엄~~
▲ 정자 뒷쪽 풍경 그림 같은 산책로가 수풀 사이로 나 있으나 그 길이는 인생처럼 짧다.
▲ 정자에서 바라본 경내 뜨락
▲ 환희사를 뒤로하고 다시 속세로 컴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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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 특수로 간만에 북새통을 이룬 환희사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빈 공간이 늘어간다. 음료 수도 거진 팔았는지 이내 장사도 접고 행사를 돕고 정리하던 앳된 여인네들도 일부만 남았다. 손바닥만한 이곳에서 목적한 2개의 불상을 질리도록 보고 정자 쉼터에서 지친 두 다리를 쉬고 16시에 그곳을 뒤로하며 속세로 길을 향했다. 시내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다소 각박한데, 길 옆에는 인왕산에 몇 안되는 조그만 계곡이 온 전한 모습을 보이며 흘러간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물이 풍부해 밤이면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 빨래를 하며 수다를 떨던 곳으로 이 골짜기를 '큰절골', 남쪽 청련사 부근 계곡을 '작은절골' 이라 불렀다. 그러니 이 계곡은 큰절골이라 부르면 되나 요즘에는 '환희사계곡'으로도 불린다. 절까지 길을 닦느라 계곡 북쪽이 좀 깎이거나 콘크리트에 묻힌 옥의 티가 상당하지만 계곡이 맑은지 동네 아이들이 냇물을 뒤집으며 수중 동물을 탄압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환희사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인왕산을 건방지게 가리고 선 인왕산현대아파트와 홍제원현대 아파트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길은 진정을 되찾으며, 5분 정도 더 가면 마을버스 정류장이 나 온다. 여기서 마을버스를 타면 의주로와 홍제역으로 바로 이어지는데, 마을버스를 탈 것도 없 이 5분 더 발품을 팔면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인 의주로가 알아서 모습을 비춘다.
이렇게 하여 인왕산을 겯드린 환희사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 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
▲ 하얀 암반을 미끄럼타고 내려오는 환희사계곡(큰절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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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환희사 찾아가기 (2016년 5월 기준) * 지하철 3호선 홍제역 3번 출구를 나와서 180도 뒤로 돌아가면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다. 거기 서 서대문구 마을버스 13번을 타고 인왕산현대아파트117동 종점에서 내려 도보 10분 * 지하철 3호선 무악재역(1번 출구)에서 도보 20분 (인왕아파트교차로에서 우회전) * 환희사는 보통 18시까지 개방한다. 그 이후는 들어가지 못한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2동 산1-1 (☎ 02-735-86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