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산 동쪽 자락에 둥지를 튼 조그만 산사, 독성도량을 칭하고 있는 삼성암(三聖庵, 삼성사)
![](http://3.bp.blogspot.com/-trF4yxw1IbI/Vfw0spsNzVI/AAAAAAAAJFc/p01GtL64rNY/s640/DSCN0085.JPG) ▲ 삼성암 외경 |
삼성암은 빨래골 상류 숲속에 묻힌 조그만 산사로 1872년에 고상진(高商鎭) 거사가 창건했다 고 전한다. 원래 삼성암 자리에는 천태굴이란 조그만 굴이 있었는데, 북한산(삼각산)에 숨겨 진 기도처로 많은 승려가 수도를 했다고 전한다. (천태굴이란 이름은 삼성암이 독성도량을 칭 한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임)
19세기 후반, 서울에 살던 박선묵은 16세에 불교에 귀의했다. 그는 1870년 봄, 고상진, 유성 종 등 7명과 이곳 천태굴에 들어와 3일 동안 독성기도를 올리고 돌아오다가 '이곳의 지세가 절을 지으면 딱 좋은 터요!' 절을 지을 것을 제안, 2년 동안 준비하여 1872년 봄, 여러 칸의 건물을 짓고 작은 절이란 뜻에 '소난야(小蘭若)'라 하였다. 이후 주변 산지를 조금씩 매입했 고 1881년에 독성각을 장만해 절 이름을 삼성암으로 갈면서 본격적으로 독성도량을 칭했다.
1936년 봄, 한동운(韓東雲)이 신도 김용태의 지원으로 칠성각을 다시 짓고, 돌다리와 계단을 닦았으며, 요사를 수리하고 기와를 바꾸는 등 절의 규모가 한층 커졌다. 허나 1942년 7월 폭 우의 희롱에 잔뜩 흥분한 뒷산이 산사태를 일으켜 절을 덮치면서 그만 폐허가 되고 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계사 주지 박회경(朴會鏡)이 중창의 뜻을 밝혔고, 삼성암 승려 박중현 (보광당), 김성섭 등과 함께 쓰러진 절을 일으켜 세웠다. 이때 김용태가 목재를 지원했고, 인 근의 여러 절이 흔쾌히 도움을 주어 1943년 3월 대방 등 12칸을 세웠으며, 그 기념으로 승려 김태흡(金泰洽)이 '화계사삼성암중건기'를 지었다. 그리고 그해 7월 독성각을 다시 세웠다. 현재의 가람은 1961년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본공당, 세민(世敏), 현종(만월당) 등이 계속해 서 규모를 불렸다. 세민은 주지가 되자 대웅전을 고치고 범종루를 지었으며, 현종이 그 마무 리를 지어 지금의 삼성암을 이루게 되었다. 근래에 '사(寺)'로 격을 높였으나 여전히 삼성암 으로 많이 불린다.
삼성암은 초창기부터 독성도량을 칭했다. 그래서 중부 지역의 이름난 독성 기도도량을 자처하 고 있고 그 명성을 누리고 있는데, 독성이 머무는 곳으로 알려져 독성기도를 하러 많은 이들 이 온다. 아직 절의 내력도 짧고 문화유산도 빈약하니 독성도량을 내세워 절의 존재를 천하에 홍보하는 것이다. 나 역시 삼성암의 이름 3자만 아련히 듣고 있었을 뿐, 관심도 보이지 않다 가 그런데로 묵은 절임을 알고 뒤늦게 살짝 찾아온 것이다.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해 독성각, 명부전, 칠성각, 요사 등 8~9동 정도의 건물이 있 으며, 겉보기와 달리 건물도 제법 있고, 면적도 넓다. 소장 문화유산은 아직 없으나 1908년에 조성된 산신탱과 철원(鐵原) 심원사에서 넘어온 조그만 아미타불, 그리고 상궁윤씨의 헌답기 념비 등이 절의 100년 내력을 살짝 귀뜀해준다.
도심과 무척이나 가깝지만 숲속에 짙게 감싸여 있어 첩첩한 산주름 속에 묻힌 기분이며, 사람 들의 발길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서 고적한 산사의 멋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바람에 잠을 깬 풍경물고기의 풍경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정도로 말이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1동 산164-5 (인수봉로23길 235 ☎ 02-988-9300, 1996) * 삼성암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흔쾌히 클릭한다. |
![](http://3.bp.blogspot.com/-IR1EsSzasz0/Vfw0XH7DhII/AAAAAAAAJFM/uxNfpK_cp-c/s640/DSCN0082.JPG) ▲ 청기와를 눌러쓴 삼성암 명부전(冥府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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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열린 정문을 들어서 온갖 봄꽃이 미소 짓는 오르막 길을 오르면 청기와를 지닌 2층 명부 전이 나온다. 2층이긴 하지만 1층은 종무소(宗務所) 등으로 쓰이고 있어 2층이 진짜 명부전인 데, 원래 이름은 지장전(地藏殿)이었다. 그 뒷쪽에는 요사, 선방(禪房) 등이 자리해 있고, 옆 에는 범종각이 있다. |
![](http://3.bp.blogspot.com/-1wTaQIXP6Vw/Vfw0W1ske8I/AAAAAAAAJFI/fiyT9zC5OXs/s640/DSCN0083.JPG) ▲ 범종을 비롯한 사물(四物)의 보금자리, 범종각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범종과 법고, 목어, 운판 등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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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4.bp.blogspot.com/-JPRvswqaPJc/Vfw0tSBV8lI/AAAAAAAAJFk/v2vpBoOsSwM/s640/DSCN0084.JPG) |
![](https://t1.daumcdn.net/cfile/blog/2226D14855FC39DC0E) |
▲ 북한산의 넉넉한 마음이 담긴 샘터 |
▲ 대웅전 맞은편에 자리한 영월각(소법당) |
![](http://2.bp.blogspot.com/-3Msc-GkjUJQ/Vf2myFQstcI/AAAAAAAAJHc/o2mOrkSHdOU/s640/DSCN0145.JPG) ▲ 탐스럽게 익은 불두화(佛頭花)의 위엄
![](http://1.bp.blogspot.com/-PAZlIyE3_KE/Vfw1RyneWKI/AAAAAAAAJGU/4jnojcm_2Pk/s640/DSCN0095.JPG) ▲ 대웅전 옆구리에 자리한 관세음보살상 약간은 통통해 보이는 관세음보살 누님이 어진 표정으로 정병(政柄)을 쥐어들며 중생들을 맞이한다.
![](http://1.bp.blogspot.com/-I1y2_4W5xVI/Vf2mwKTuiII/AAAAAAAAJHM/MvYq5gUIPTo/s640/DSCN0142.JPG) ▲ 청기와로 단장된 대웅전(大雄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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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에서 1단 더 오르면 법당(法堂)인 대웅전이 나온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 물로 머리에 푸른 청기와를 입혀 고급지게 꾸몄으며, 내부에는 아미타3존불과 철원 심원사(深 源寺)에서 넘어온 조그만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다. 이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그곳 천불전(千佛殿)에 봉안된 천불(千 佛)의 하나였으나 6.25전쟁으로 심원사가 파괴되자 승려들이 부랴부랴 그것을 챙기고 이곳으 로 넘어왔고, 그 불상을 아미타불로 삼아 대웅전의 중심 불상으로 삼은 것이다. 현재 서울에 는 심원사에서 넘어왔다는 불상과 보살상이 여럿 있어 심원사가 왕년에 대단했음을 보여준다. 허나 그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온 나는 그만 대웅전 내부를 살피지 않고 지나쳤다. 모두 근래 에 조성된 따끈따끈한 불상과 불화만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웅전은 20세기 중반에 지어진 것으로 동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남쪽에는 삼성암의 자랑 인 독성각이 있고, 북쪽에는 칠성각과 관세음보살상, 헌답기념비 등이 있다. |
![](http://2.bp.blogspot.com/-5rffVRuAtMk/Vf2msb3Dg0I/AAAAAAAAJGw/2UdNvrEvniI/s640/DSCN0137.JPG) ▲ 오색 연등이 하늘을 가린 대웅전 뜨락 곧 다가올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일찌감치 오색 연등으로 대웅전 뜨락을 곱게 수놓았다. 하늘을 훔친 연등의 위엄으로 대웅전 머리는 가려져 마치 자욱한 하얀 안개로 산 윗부분이 가려진 것 같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2435204855FC39D804) ▲ 바위 위에 자리한 '상궁 청신녀(淸信女) 윤씨 실상행(實相行) 헌답기념비(獻畓紀念碑)' 약간 검은 피부로 이루어진 조그만 비석으로 구한말에 상궁 윤씨가 전답을 시주한 것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그 전답은 삼성암의 살을 찌우는데 크게 보탬이 되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2114FF4855FC39B71D) ▲ 산신각의 역할도 겸하고 있는 칠성각(七星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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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좌측 안쪽에는 칠성각이 자리해 있다. 산신(山神)과 칠성의 보금자리로 '칠성각' 현판 외에 주원영 거사가 쓴 '영모각(靈母閣)' 현판도 내밀고 있는데, 여기서 '영모(靈母)'는 산신 할매의 다른 표현 같다.
칠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그 역시 청기와를 지니고 있는데, 19세기 말 에 지어진 것으로 1936년에 수리한 것을 근래에 산뜻하게 청기와를 입혔다. 건물 바로 뒷쪽에는 벼랑이 바짝 붙어있어 산사태에 다소 취약해 보이는데, 1984년 여름 장마 의 희롱으로 산사태가 일어나 적지 않은 흙과 물이 거세게 칠성각을 향해 밀려왔다. 붕괴 직 전에 놓였으나 뿌리채 뽑혀 떠내려오던 소나무 1그루가 마치 문어가 감싸듯 그 줄기와 뿌리가 칠성각을 감싸 무너지지 않게 지켜준 이변이 발생했다. 우연인지 칠성/산신의 가호인지는 모 르겠으나 어쨌든 산신각은 위기를 모면했고, 절에서는 그 소나무를 치우고 3일 동안 산신 기 도를 올렸다. |
![](https://t1.daumcdn.net/cfile/blog/2234204855FC39CE05) ▲ 등장 인물이 많은 칠성탱 (왜정 때 그려짐)
![](https://t1.daumcdn.net/cfile/blog/2107824855FC39C629) ▲ 산신 가족의 단란함이 엿보이는 산신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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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이 느껴지는 산신탱은 1908년 석옹 철유(石翁 喆裕)가 출초(出草, 초안을 그림)하고 두흠 (斗欽)과 윤오(允旿) 등이 참여해 구산동 수국사(守國寺)에서 그린 것으로 나중에 삼성암으로 넘어왔다. 붉은 옷을 입고 하얀 수염을 휘날리는 산신은 호랑이에 기대 앉아있는데, 꼬랑지를 살랑살랑 거리는 호랑이가 고양이처럼 귀엽기만 하다. 산신의 왼손에는 잘생긴 부채가 있고, 그들 뒤에 는 그의 활동무대인 산이 그려져 있다. 심원사에서 넘어온 아미타불을 제외하면 경내에서 가 장 늙은 보물로 아직 그 흔한 지정문화재 등급은 얻지 못했다. |
![](https://t1.daumcdn.net/cfile/blog/2377873E55FC422202) ▲ 벼랑 위에 자리한 독성각(獨聖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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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우측 벼랑 위에는 삼성암의 얼굴이자 후광(後光)인 독성각이 걸려 있다. 보통 절에서 산신각이나 산신이 봉안된 삼성각(三聖閣)이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마련이나 삼성각 은 독성도량답게 독성<나반존자(那畔尊者)>의 거처인 독성각을 가장 하늘 가까이에 두어 매우 애지중지하고 있다.
독성각은 정면과 측면이 1칸 밖에 안되는 조그만 팔작지붕 건물로 그 역시 청기와를 쓰고 있 다. 1881년에 처음 지어졌다고 전하며, 1942년 산사태로 무너진 것을 이듬해 7월에 다시 지었 다. 현재 건물은 근래 손질된 것으로 지형적인 탓에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정면에 유리창을 내어 비록 좁지만 경내를 굽어볼 수 있게 했다. 들어앉은 위치가 경사가 각박하고 자리가 협 소해 지그재그로 돌계단을 내었는데, 비록 그 거리는 짧으나 계단이 우중층하니 주의가 좀 필 요하다. |
![](https://t1.daumcdn.net/cfile/blog/25757C3E55FC424504) ▲ 독성각에서 바라본 대웅전 옆구리
![](https://t1.daumcdn.net/cfile/blog/22558E4055FC424D2A) ▲ 목각으로 이루어진 독성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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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각에는 나무로 조각되어 곱게 채색을 입힌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그림 가운데에 두광( 頭光)을 갖춘 독성 할배가 앉아있고, 그 옆에 동자가 서 있으며, 독성 좌우에는 늙은 큰 소나 무가 있고, 뒷쪽에는 독성의 활동 무대인 천태산(天台山)이 주름진 선을 이루고 있다.
독성각이 19세기 후반부터 있던 것으로 보아 그와 연배가 비슷한 독성탱이 있었을 것이나 지 금 독성탱은 20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고색의 기운은 여물지 못했다. 삼성암은 독성을 주 인으로 삼아 독성도량을 칭하고 있으며, 중부 지방 제일의 독성 도량을 자처하고 있지만 역시 나 아는 사람만 찾을 뿐이다. 나도 이곳에 오기 얼마 전에야 겨우 그 사실을 접했다.
독성탱 앞에는 중생들의 소망이 담긴 조그만 원등(願燈)이 무리를 지어 모여 장관을 이루는데, 이들이 강인한 협동심으로 몸을 불사르며 독성각 내부를 환히 밝힌다. |
![](https://t1.daumcdn.net/cfile/blog/224CC64055FC425431) ▲ 마치 자수를 놓은 듯, 꽃잎과 새 등이 그려진 독성각 우물천정
![](http://2.bp.blogspot.com/-_36t3EUVYoY/Vf2m01IB8LI/AAAAAAAAJHo/pnmXYvTTca4/s640/DSCN0147.JPG) ▲ 삼성암을 뒤로하며... (일주문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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