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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악산의 품으로 (남현동 우림루미아트아파트 기점)
이번 관악산 나들이는 남현동 우림루미아트아파트에서 시작했다. 우림루미아트아파트와 남현한일유앤아이아파트(아파트
이름도 참 길고 난해하다;;) 사이로 관악산으로 인도하는 길이 있는데 그 길로 들어서면 효민공 이경직 묘역이 금세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그들을 보고자 이 코스로 길을 잡았다.
2. 화사한 꽃문이 마중을 하다.
저 꽃문을 들어서면 늦가을의 향연이 한참인 관악산의 품이 펼쳐진다. (조금만 들어가면 효민공 이경직 묘역이 나옴)
3. 늦가을에 잠긴 관악산 숲길 (효민공 이경직묘역 주변)
4. 효민공 이경직묘역 앞 숲길
오른쪽 철책 너머가 바로 효민공 이경직 묘역이다. 묘역 앞 숲길에는 쉼터 등이 닦여져 있는데, 이곳에서는 고려청자와 고
려백자의 파편 등이 발견되어 고려, 조선 때 주거 생활지가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5. 효민공 이경직 묘역
관음사 북쪽 산자락에 자리한 이경직 묘역은 조선 중기 인물인 이유간, 이경직, 이장영 3대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이들은
전주이씨 덕천군파(덕천군은 조선 2대 군주인 정종의 아들) 함풍군의 후손으로 여기서 가까운 흑석동과 사당동에도 그들
일가의 묘역이 있다.
묘역 가장 위쪽에는 이유간(1550~1634)의 묘가 있다. 이유간은 덕천군의 5세손이자 이수광의 아들로 이경직의 부친이며,
자는 강중이다. 1591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절친했던 오성 이항복의 추천으로 관직에 나가 서산현감, 돈녕부도정을 지냈
으며, 1634년 벼슬을 그만두고 이듬해인 1634년 84세로 사망했다.
그의 묘는 부인과 같이 묻힌 합장묘로 무덤 앞에 묘표(묘비)와 상석, 혼유석이 있고, 문인석 1쌍과 망주석 1쌍이 무덤을 지
킨다. 묘표에는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적혀있으나 뒷면은 마멸이 심해 판독이 어렵다.
이유간 묘 밑에는 이경직(1577~1640)의 묘가 있다. 이경직은 자는 상고, 호는 석문으로 이항복과 김장생 문하에서 수학
했으며, 1601년 사마시에 붙고, 1606년 증광시 별과에 급제했다.
1617년 회답사의 종사관으로 왜열도에 갔으며, 1624년 이괄의 난이 터지자 전라도절도사로 반란군을 진압해 그 공
으로 가선대부에 올라 수원부사가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는 후금 사신과 교섭해 화의를 이루어냈으며, 병자
호란(1636~1637) 때는 인조를 호종해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1640년 강화유수로 있다가 63세로 병사하니 조정은 그에게 좌의정을 추증했으며, 효민공이란 시호를 내렸다.
무덤은 쌍분으로 부인 보성오씨와 같이 묻혔으며, 옆 봉분은 후처인 고성이씨의 무덤이다.
이경직 묘 밑에는 이경직의 아들인 이장영의 묘가 있다.
6. 철책 너머로 바라본 효민공 이경직 묘역
이경직 묘역은 철책과 담장으로 꽁꽁 둘러져 있어 내부 접근이 어렵다. 묘역 북쪽에 문이 있기는 하나 늘 잠겨있어 묘역 답
사를 원한다면 후손들에게 연락을 하면 되지만 어차피 철책 너머로 보일 것은 거의 보이니 굳이 들어가거나 넘어갈 필요는
없다.
7. 효민공 이경직 신도비
1668년에 세워진 것으로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신을 세우고, 지붕돌로 간단히 마무리를 지었다. 김류가 비문을 짓고, 이경
직의 3째 아들 이정영이 글씨를 썼으며, 비석 보호를 위해 맞배지붕 비각을 씌웠다.
8. 효민공 이경직묘역 앞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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