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완연대

회연서원 북쪽에 완연대란 이름을 가진 바위 벼랑이 있다. 그 벼랑에 완연대 바위글씨가 살짝 깃들여

져 있는데, 벼랑 밑으로 대가천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으며, 벼랑 주위로 수목이 가득해 상큼한 경관을

그려낸다. 그리고 완연대 윗도리에는 무휼구곡의 제1곡으로 찬양을 받는 봉비암이 있다.

 

2. 벼랑에 희미하게 깃든 완연대(翫淵臺) 바위글씨

완연대의 '완'은 가지고 놀다, 기뻐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연못을 가지고 놀다. 연못에 기뻐하다는 의

미가 된다. 완연대 바위글씨 주변에는 한강 정구가 지은 '회연우음(檜淵偶吟)' 시가 새겨져 있는데, 나

는 확인하지 못했다.

회연우음(회연에서 우연히 읊다) 시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가천 고을 나에게 깊은 인연이 있거니

저 좋은 한강에다 회연까지 얻었다

흰 돌이며 맑은 시내 종일토록 즐기니

세간의 무슨 일이 이내 마음 스며들까

 

3. 완연대에서 바라본 대가천과 양정교 (남쪽 방향)

 

4. 주름진 피부를 보이며 직각 벼랑을 이루고 있는 완연대

 

5. 봉비암

완연대를 품고 있는 회연서원 북쪽 언덕에는 무흘국곡의 제1곡인 봉비암이 있다. 봉비암은 앞서 완연

대와 함께 회연서원을 수식하는 경승지로 믿거나 말거나 전설에 따르면 마을에 부호가 이곳 봉우리에

대를 닦고 기생을 불러 경치를 즐겼는데, 어느 날 봉비라는 기생이 춤을 추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바

로 아래 대가천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이곳을 봉비연, 봉비암이라 불렀고, 봉비연은 이후 '회연'으로 이름이 갈렸다고 한다. 그

회연에서 한강 정구가 세운 회연초당, 정구를 봉안한 회연서원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봉비암에는 미수 허목이 1681년에 썼다는 봉비암 바위글씨가 있었으나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깨지

고 사라졌으며, 근래 표석을 세우고 봉비암 3자를 새겼다.

 

6. 봉비암에서 바라본 대가천과 수성리 지역 (북쪽 방향)

 

7. 근래 마련된 봉비암 표석의 뒷면

 

8. 양정교에서 바라본 완연대와 봉비암, 그리고 대가천

 

9. 대가천 건너에서 바라본 완연대과 봉비암

완연대와 봉비암이 크고 견고한 바위 봉우리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