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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보문산 (복전암, 보문산 마애여래좌상, 보문산성)


' 대전 보문산 겨울 나들이 '

보문산성에서 바라본 대전시내

▲  보문산성에서 바라본 대전 시내

시루봉에서 바라본 보문산성 보문산 보문사지

▲  시루봉에서 바라본 보문산성

▲  보문사지

 


차디찬 겨울 제국(帝國)의 한복판인 1월의 어느 평화로운 날, 대전 도심의 오랜 뒷동산인
보문산을 찾았다.
보문산(寶文山)은 10여 년 전에 복전암과 보문산 마애여래좌상을 찾은 인연이 있는데, 그
곳에 깃든 보문산성과 보문사터에 크게 목마름이 생겨나 그들을 미답처(未踏處)에서 지울
겸, 보문산 마애여래좌상의 안부도 확인할 겸해서 겸사겸사 대전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대전(大田)까지 총알처럼 달려가 보문산 동북쪽 밑인 석
교동(동명중학교 정류장)에서 보문산 더듬기를 시작했다.


♠  보문산 동북쪽 자락에 안긴 비구니 산사
복전암(福田庵)

▲  복전암 사천왕문(四天王門)

동명중학교 정류장 서쪽에서 복전암으로 인도하는 골목길(부사로)을 7~8분 들어가면 신일여고
정문과 복전암 일주문(一柱門)이 나란히 마중을 나온다. 빽빽하게 우거진 석교동 주택가는 일
주문 북쪽에서 마무리가 되고 여기서부터 보문산의 푸른 숲이 펼쳐지는데, 조금 각박한 오르
막길을 3분 정도 오르면 복전암이 사천왕문을 내밀며 모습을 드러낸다.

▲  사천왕 식구들 ▲
지국천왕(持國天王)과 증장천왕(增長天王), 광목천왕(廣目天王), 다문천왕(多聞天王)


동쪽을 바라보고 선 사천왕문은 맞배지붕 문으로 석가모니의 경호원인 사천왕의 거처이다. 보
통 사천왕상하면 우람하고 위엄 돋는 모습이 주류를 이루나 이곳은 비구니 절이라 그럴까? 덩
치도 작고 너무 얌전하게들 보여 그야말로 여성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절에
볼일이 있어 찾아온 영 좋지 못한 기운들이 저들에게 쫄기는커녕 만만하게 보고 덤빌 것 같은
쓸데없는 걱정까지 들 정도이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3층 규모의 보제루가 나타
나 정면 시야를 막아선다. 동쪽을 굽어보는 그
는 경내에서 가장 큰 집으로 예불 공간과 강당
(講堂), 선방(禪房)을 지니고 있으며, 3층은
명부전(冥府殿)으로 쓰인다.
그럼 여기서 복전암의 내력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  복전암 보제루(普濟樓)

보문산 동북쪽 자락에는 비구니 절인 복전암이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절 윗쪽에 있는 보
문산 마애여래좌상 밑에 신묘사(神妙寺)란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조선 초에 마애불 윗쪽에
있던 커다란 바위가 갑자기 신묘사를 쾅~ 덮쳐 그 절을 세상에서 지워버렸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학조대사(學祖大師)는 보문산을 찾아 옛 신묘사 자리 아래인 현재 복전암 자
리에 절을 짓고 신묘암(神妙庵)이라 하니 그것이 복전암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는 관세음보살상을 이곳의 중심 존재로 삼았다고 하는데, 학조의 신묘암 창건설을 밝혀줄
만한 기록이나 유물은 전혀 없으며, 관세음보살상 뱃속에서 나온 복장문(腹臟文)에는 1669년
에 창건되었다고 나와있으나 그 복장문 또한 남아있지 않다. 하여 이곳에 구체적인 등장 시기
는 보문산 산신도 모르는 실정이다. 허나 보문산 마애여래좌상과 관련하여 이어져 오던 작은
절임은 분명해 보인다.

▲  명부전으로 쓰이는 보제루 3층 부분
(대웅전에서 바라본 모습)

 ▲  석가여래와 그의 일생을 머금은
그림이 봉안된 영산전(靈山殿)


이후 오랫동안 적당한 내력이 전해오지 않다가 1943년에 중건했으며, 비구니 경순(본명 이상
월)이 주지승으로 들어와 1954년에 중창했다. 이때 박고봉 승려를 조실(祖室)로 삼아 원통선
원(圓通禪院)을 지어 비구니 선원을 운영했으며, 1962년 선학원에 등록되었다.
경순은 복이 넘치는 밭이란 뜻의 복전암(복전선원)으로 이름을 갈았는데, 조그만 암자 수준이
던 이곳을 크게 불려 30여 명의 비구니가 머무는 절로 성장시켰다. 특히 비구니들만 머무는
절 부분에서는 최대급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1985년 원통선원을 제외한 모든 건물을 부시고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 일주문 등을 새로 지
었으며, 1989년 대전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정갈하고 아늑한 경내에는 대웅전과 보제루, 영산전, 선화당, 사천왕문 등 7~8동 정도의 건물
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17세기에 조성된 목조대세지보살좌상(대전 유형문화유산)
있고, 경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보문산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그 외에는 오래된 볼거리는 없
으며, 건물도 모두 근래 것이라 고색의 내음은 맡기가 힘들다.
경내에 있는 목조대세지보살좌상은 거의 공개를 하지 않는 편으로 그곳 비구니에게 친견 여부
를 문의했으나 신변 문제로 친견이 어렵다고 그런다. 대신 보문산 마애여래좌상과 근래 마련
된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윗쪽 산자락에 있으니 그들을 꼭 보고 가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 복전암 소재지 : 대전광역시 중구 석교동 207-7 (부사로 70, ☎ 042-271-3344)


▲  복전암의 법당(法堂)인 대웅전(大雄殿)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문 창살에는
12지신상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새겨져 있어 눈길을 잡아 맨다.

▲  보제루 3층에서 바라본 사천왕문(바로 밑)과 대전 중구, 동구 지역

▲  복전암 남쪽 산길에서 바라본 석교동과 중구, 동구 지역

복전암을 오랜만에 둘러보고 절을 나와 보문산성으로 인도하는 산길로 들어섰다. 복전암은 경
내 주위로 담장을 둘러 속세와의 경계를 명확히 긋고 있는데, 경내 동쪽과 동남쪽에 바깥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솔내음이 그윽한 산길을 6~7분 정도 오르니 잘 빠진 1차선 크기의 비포장 길이 나타난다. 그
는 예전에는 없던 길로 보문산 둘레길인가 싶어 살펴보니 대전시가 보문산 산림 관리와 산불
방지, 숲가꾸기, 휴식공간과 둘레길 조성을 위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야심차게 닦은 보문
산 행복숲길이다. 즉 보문산 둘레길인 것이다.
이 길은 기존에 있던 8.25km의 길과 대사동에서 무수동까지 12개 마을을 잇는 14.43km의 임도
를 만들어 연결시킨 것으로 총 길이는 22.68km에 이른다. 보문산 주위를 도는 순환형 비포장
길로 1.5차선 정도의 폭을 지녔으며, 마치 깊은 산골에 숨겨진 숨겨진 산악도로를 거니는 기
분이다. 나는 보문산 마애여래좌상과 보문산성을 위해 여기서는 잠깐 지나쳤지만 그들을 모두
보고 행복숲길을 통해 보문사지와 오월드 종점으로 이동했다.


▲  복전암 윗쪽을 지나는 보문산 행복숲길 (보문사지 방향)

▲  복전암 석조약사여래좌상

보문산 행복숲길 바로 윗쪽에 복전암에서 새로 장만한 석조약사여래좌상의 공간이 있다, 이곳
은 복전암에서 보문산 마애여래좌상으로 가는 길목으로 복전암 비구니가 보고 가라고 추천을
해서 잠시 들렸다.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하얀 피부를 지닌 그는 근래 조성된 것으로 그의 필수품인 약합을 소
중히 쥐어든 두 손을 다리 위에 모으고 지그시 명상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대좌(臺座) 주변
에는 절과 중생들이 갖다놓은 조그만 금동불과 동자상, 관세음보살상 등이 그를 의지하며 자
리해 있어 마치 단란한 가족 같은 모습이며, 지금은 집도 없이 노천식으로 있지만 나중에 보
호각 같은 것을 씌울 듯 싶다.

약사여래좌상 주변에는 보문산이 베푼 샘터가 있는데, 졸고 있는 바가지를 깨워 물을 한가득
담아 목구멍에 부으니 갈증과 답답한 마음이 싹 해소되는 기분이다.

▲  석조약사여래좌상 옆 샘터

▲  석조약사여래좌상 주변에서 바라본
대전 시내와 계족산


▲  보문산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 대전 유형문화유산

보문산 행복숲길에서 보문산성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에 담긴 보문산 마애여래좌
상이 마중을 나온다.
보문산성 동북쪽 밑 숲속에 숨겨진 그는 대전 시내를 등진 채,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복전
암에서 보문산성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해 있으나 길이 좀 복잡하여 초행 때는 복전암 비구니
에게 길을 문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높이 6m, 폭 6m 정도의 큰 바위 남쪽 면에 살짝 깃든 그는 높이 3.2m, 얼굴 높이 0.8m의 마애
불로 고려 말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대전 지역의 유일한 늙은 마애불로 복전암과 그 전
신이라는 신묘암에서 오랫동안 관리를 했으며, 신묘사를 덮친 큰 바위가 마애불 머리에 있었
다고 전해져 자신을 지켜준 절에 약은 물론 병까지 주는 심술을 보였다.

발바닥을 위로 하며 결가부좌(結跏趺坐)로 앉은 그는 상투 모양의 머리를 지니고 있는데, 두
눈을 가늘게 내려뜨고 있으며, 양 어깨를 감싼 옷에는 옷주름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다. 오
른손은 가슴 앞에 대고 왼손은 배 위에 얹었으나 마멸이 심해 손 모양을 자세히 헤아리기 어
렵다. 광배(光背)와 바깥 윤곽은 선각(線刻)으로 처리되었으며, 내부는 정으로 쪼아서 광배의
윤곽을 뚜렷하게 했다.
거의 700년 이상 묵었으나 건강 상태는 양호하며, 중생들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지, 얼
굴 표정은 좀 경직되어 있다. 표정만 밝았다면 더 좋았을텐데 석공이 그리 조각한 것을 어찌
하겠는가? 어쩌면 마애불 공사를 빨리 끝내라며 독촉하던 사람의 인상 쓴 얼굴을 모델로 했을
지도 모르겠다.
마애불 앞에는 조촐하게 예불 공간이 닦여져 있을 뿐, 딱히 시설은 없다.

* 보문산 마애여래좌상 소재지 : 대전광역시 중구 석교동 산17-1


▲  마애여래좌상의 얼굴과 나발 스타일의 머리


♠  보문산 동쪽 정상부에 높이 들어앉은 보문산성(寶文山城)
- 대전 지방기념물

▲  성 안쪽에서 바라본 북문터(서문터)
북문은 보문산성의 정문 역할을 하고 있다.


마애여래좌상에서 조금은 각박한 산길을 10여 분 오르면 나올 것 같지 않던 보문산성이 드디
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보문산(해발 406m) 동쪽 정상부에 둘러진 보문산성은 삼국시대(6~7세기로 여겨짐) 때 닦여진
둘레 300m의 테뫼식 산성이다. 산성은 대부분 자연 지형에 맞추어 적심석(積心石, 돌을 쌓을
때 안쪽에 심을 박아 쌓는 돌)을 쌓았으나 동북쪽 급경사면 벼랑에는 따로 성돌을 닦지 않았
다. 적심에서 성벽까지의 최장 수평 거리는 5.4m 정도이며, 성밖의 기저(基底)에는 너비 30~
80cm 정도의 구획에 납작한 돌을 깔았는데, 이는 성벽 위로 넘쳐 흐르는 수량으로 인해 기초
부분이 망가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여겨진다.
동남쪽 성벽은 45m 길이의 협축(夾築)을 다졌는데, 너비는 5.7m이며, 성 내외벽의 지반 차이
는 1.3m로 동남쪽 성벽 바깥에는 일종의 해자를 닦아 방어력을 높였다.

보문산성에서 가장 성벽이 잘 남아있는 서남쪽 성벽은 16단의 층수에 3.42m의 높이를 드러내
고 있으며, 문터는 서문터와 남문터가 있는데, 서문터는 북문터로 보기도 한다. (본글에서는
북문터로 표기함)
북문터 성벽은 암반 위에 내외협축으로 축조되었는데, 북쪽 성벽의 상부 너비는 7.5m이며 남
쪽 성벽의 기저부 너비는 6.9m, 상부 너비 6.2m, 높이는 1.8m 정도이다. 북문터의 너비는 넓
은 곳이 5.5m, 좁은 곳이 4.5m로 고려 때 1.4m로 축소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옹성(甕城)
구조로 지어졌는데, 문을 들어서면 높이 1.1m의 암벽이 앞에 나타나며, 북쪽 성벽의 내벽이
이 암벽과 연결되어 있다. (문터 외벽에서 암벽까지 약 8.6m)
남문터는 너비 5.8m로 동남쪽 성벽의 협축 성벽이 끝나는 지점에 있다. 협축 부분의 끝인 문
터의 동벽은 암반을 50㎝ 정도 파내고 기초석을 놓았으며, 3단까지는 수직으로 쌓고 4단부터
는 물려 쌓았다.
남문터 동쪽 성벽의 상부 너비는 6.6m이며, 남문은 개거식(開渠式) 평문(平門)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성 안에서는 장대(將臺)터 외에는 딱히 건물터과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선조문(線條文)
이 새겨진 와편(瓦片)과 어골문(魚骨文)이 새겨진 고려시대 와편, 그리고 동쪽 성벽 밑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흔적과 민무늬토기, 덧띠무늬토기 등이 나와 옛조선(고조선)이 천하에 크
게 웅거했던 청동기시대에 주거지로 쓰였음을 알려준다.
1990년 3월 대전시에서 발굴조사를 벌였으며, 1991년 산성을 복원하여 그해 12월에 마무리를
지었다. 북문과 남문터는 성문을 복원하지 않고 공간으로 남겨두었으며, 장대터가 있던 산성
꼭대기에는 장대루를 높이 세웠는데, 여기서 바라보는 조망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여
기서는 대전 도심을 비롯하여 대전의 남부와 서남부 일부를 제외한 상당수 지역이 흔쾌히 시
야에 잡히며, 멀리 계룡산(鷄龍山)까지 두 눈에 들어온다.

대전 시내 전경(全景)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여기서 바라보는 야경(夜景) 또한 일품
이니 대전의 전경과 야경을 사진에 담고 싶다면 보문산성을 꼭 찾기 바란다. 보문산 정상보다
는 보문산성이 훨씬 조망의 질이 좋다.

* 보문산성 소재지 : 대전광역시 중구 대사동 산3-71


▲  차곡차곡 다져진 서쪽 성곽

산성 성곽이 복원되긴 했으나 성곽을 이루는 성돌이 고르지 못하고 거칠며 여장이나 난간 등
의 안전시설이 전혀 없어 넘어지거나 추락 등의 위험이 있다. 그러니 성곽길을 거닐 때는 각
별히 주의를 해야 뒷탈이 없을 것이다.


▲  보문산성의 지붕인 장대루(將臺樓)

보문산성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는 장대루라 불리는 2층 누각이 높이 자리해 있다. 이
곳은 보문산성을 관리, 지휘했던 장대 자리로 복원된 석축(石築) 위에 누각을 세워 장대루라
했다. 대전 시내에서 보문산을 바라보면 산 위에 높이 떠 있는 한옥 건물이 보일 것인데, 그
한옥이 바로 장대루이다.

이곳에 올라서면 이 땅의 6번째 대도시인 대전
도심과 시내 상당수가 바라보여 국보급 조망을
흔쾌히 보여준다.
시내에서 높이 보이던 그 장대루를 바로 앞에
서 만나고, 또한 그의 속살까지 들어가 천하를
굽어보니 신선들이 찾는다는 천상 세계의 누각
에 들어선 듯, 즐거운 기분이 마구 든다. 뫼를
오르는 재미 중의 하나는 바로 천하를 내려다
보는 조망 맛이다.

▲  서쪽에서 바라본 장대루


▲  장대루에서 바라본 천하 ① 대전 도심부와 대덕구, 계족산(鷄足山)

▲  장대루에서 바라본 천하 ② 서구와 유성구 지역, 멀리 계룡산까지

▲  장대루에서 바라본 천하 ③ 서구, 유성구, 대덕구, 중구, 동구 지역
이곳 조망은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이곳의 일품 조망에 속세에서
오염되고 상처받은 안구와 마음이 싹 정화되는 기분이며, 산 밑의
세상이 마치 내 세상인양 즐거운 마음까지 솟아난다.

▲  장대루에서 바라본 천하 ④
옥계동과 대성동, 판암동, 식장산(596.7m)

▲  장대루에서 바라본 보문산성 내부
왼쪽에 누워있는 표석은 1991년 12월 28일에 세워진 보문산성 복원비이다.

▲  보문산성 동남쪽 성곽

▲  급한 경사를 보이는 남쪽 성곽 (남문터 동쪽)

 ◀  남쪽을 향해 입을 벌린 남문터
이곳에 있던 성문은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사라지고 아련하게 터만 전하고 있다.


▲  유연하게 'S' 곡선을 그리며 흘러가는 서쪽 성곽

보문산성을 1바퀴 둘러보고 이곳의 일품 조망까지 배불리 누리니 어느새 1시간이 훌쩍 가버렸
다. 마음 같아서는 시간 도둑인 이곳의 조망을 더 누리고 싶지만 내가 있어야 될 곳은 이곳이
아니며, 길도 아직 한참이다. 하여 보문산성을 뒤로 하며 보문산의 지붕인 시루봉으로 이동했
다. 그곳까지는 능선길을 따라 20분 내외로 이동하면 되며, 시루봉 직전과 일부 구간을 제외
하면 경사는 거의 완만하다.
기왕 보문산성까지 왔으니 보문산 정상은 찍고 가야 나중에 명부(冥府, 저승)에 가서도 꾸중
을 듣지 않을 것이다. 또한 보문사지를 가려면 정상을 찍고 가는 것이 빠르다.


♠  보문산 시루봉과 보문사지

▲  시루봉 정상에 닦여진 보문정(寶文亭)

대전에 대표적인 뫼이자 듬직한 남쪽 지붕인 보문산은 해발 457.6m의 뫼로 그 정상 봉우리는
시루봉이다. 보물이 묻혀있다고 하여 보물산이라 불리다가 보문산으로 바뀌었다고 전하며, 나
무꾼이 죽어가는 물고기를 구제하여 받은 '은혜를 갚은 보물 주머니'에서 비롯되었다는 전설
도 덧붙여 전하고 있다.

대전의 주요 도시자연공원으로 녹음(綠陰)이 짙어 대전8경의 하나로 찬양을 받고 있으며, 20
여 개가 넘는 약수터가 도처에 자리해 나그네의 목을 축여준다. 명소로는 보문산성과 복전암,
마애여래좌상, 보문사지 등의 오랜 명소와 사정공원과 보문산 행복숲길, 오월드 등이 있으며,
둘레길과 산길이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어 산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시루봉 정상에는 나무로 닦여진 전망대와 팔각(八角) 정자인 보문정이 있다. 이곳은 보문산에
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이나 조망은 보문산성보다 조금은 떨어진다. 그래서 대전의 전경을
보고 싶다면 보문산성이 갑(甲)이나 그 보문산성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고자 한다면 시루봉을
찾으면 된다.


▲  시루봉에서 바라본 대전 시내 (유성구, 중구, 동구)

▲  시루봉에서 바라본 대전 도심부와 계족산

▲  시루봉에서 바라본 보문산성 (보문산 동쪽 정상)
방금 전까지 나는 저곳을 배회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시루봉에 있으니
마치 순간이동을 당한 기분이다.

▲  확대해서 바라본 보문산성

▲  보문사지(普文寺址) - 대전 지방기념물

시루봉에서 서남쪽으로 10분 정도 내려가면 앞서 복전암 윗쪽에서 봤던 보문산 행복숲길과 만
난다. 그 길로 들어서 동쪽으로 아주 조금 가다가 보문사터를 알리는 이정표의 안내로 남쪽으
로 내려가면 대머리처럼 황량한 모습의 보문사터가 모습을 비춘다.

보문산 서남쪽 구석에 숨겨진 보문사터는 대전에 거의 흔치 않은 절터 유적이다. 예전에는 길
이 복잡해 찾기가 어려웠으나 보문산 행복숲길의 등장으로 접근성이 좋아져 이렇게 쉽게 찾게
되었다. 행복숲길 바로 밑에 절터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둥지를 틀었던 보문사는 소리소문도 없이 살짝 나타났다 사라진 탓에 언제쯤 창건되고
망했는지는 보문산 산신도 모르는 실정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
書) 등에 기록에 등장하며, 조선 후기에 작성된 도산서원지(陶山書院誌)에 보문사는 계룡산
동학사(東鶴寺), 식장산 고산사(高山寺), 율사(여긴 어디지?) 등과 함께 승군(僧軍) 800명을
낼 수 있는 큰 절로 나와있고, 서원을 닦을 때 보문사 승려를 동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리고 출토 유물 중 '강희(康熙)16년'이 새겨진 암막새 기와가 있어 1677년에 중창한 것으로
보인다.

절터의 규모는 동서 약 70m, 남북 약 50m, 면적은 약 4,100㎡ 정도로 크게 3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5개 정도의 건물터와 석조, 높이 90cm 정도의 키 작은 괘불지주(掛佛支柱), 세수대,
맷돌 등이 있다. (괘불지주는 확인하지 못했음)
절터 아랫단에는 길이 10여m, 높이 1m에 축대가 닦여져 있으며, 정면 6칸, 측면 2칸의 건물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건물터는 파괴가 심해 확인이 어려우며, 법당터로 여겨지는 곳
에는 신라와 고려 토기들이 많이 나와 신라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절터 일대에서는
조선시대 기와조각과 도자기 파편이 많이 나오고 있으며, 조선 후기에 자연재해나 불교 탄압
등으로 콩 볶듯 망한 것으로 여겨진다.

* 보문사터 소재지 : 대전광역시 중구 무수동 174


▲  서쪽에서 바라본 보문사터

▲  동쪽에서 바라본 보문사터

진정한 절터 유적의 매력을 던져주고 있는 보문사터, 바로 얼마 전까지 발굴조사를 받았던 터
라 절터가 다소 어수선하고 헝클어진 모습이다. 발굴조사로 출입을 통제한다는 안내문과 금줄
이 둘러져 있었으나 지키는 이도 없고, 조사 또한 끝나 고요함에 잠긴 절터 속에 내 발자국을
남겨보았다.
이곳에 자리했던 보문사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 한때 승군을 많이 낼 수 있을 정도로 잘
나갔으며 1677년에 중창한 것으로 여겨지니 그 시절 사찰 건축 양식에 맞게 상상의 나래를 펼
쳐보자. 그것이 보문사터가 이곳을 찾은 나그네에게 주는 숙제이다.


▲  보문사터 서쪽 석조(石槽)
보문사지에는 2개의 석조가 전하고 있다. 이 석조는 그의 성격을 망각한 채,
엉뚱하게도 대자연이 집어넣은 흙을 가득 머금고 있어 절이 절대로 곱게
파괴되지 않았음을 살짝 알려주고 있다. (다른 석조는 동쪽에 있음)

▲  보문사터 동쪽 부분
높이가 낮은 이곳에는 요사나 선방 등이 있었을 것이다.

▲  보문사터 석조 - 대전 문화유산자료

절터 동쪽 부분에는 상태가 좋은 석조가 누워있다. 그는 절 옆구리를 흐르는 계곡 물을 모아
식수 등으로 쓰던 화강암 석조로 밑바닥을 평평하게 다듬고 물이 빠지는 구멍을 내었으며, 석
조 윗도리에는 넘치는 물이 알아서 빠져나가도록 여수구(餘水口)를 주전자 꼭지 모양으로 만
들어 물의 순환을 도왔다. 고려 때 것으로 보이며, 서쪽 석조와 달리 건강도 양호하고 아주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석조 안에는 물은커녕 먼지만 가득해 물을 가득 머금던 왕년의 시절을 그리워한다.

▲  석조 앞부분과 여수구

▲  절터 남쪽 부분

▲  맷돌로 보이는 견고한 돌덩어리

▲  석조에서 바라본 공허한 절터


▲  겨울에 묻힌 보문산 행복숲길 (보문사터 주변)

보문사지는 첩첩한 산주름 속에 푹 묻혀있다 보니 일찍 땅꺼미가 몰려온다. 이런 외딴 산골에
서 동이 지면 좋을 것이 별로 없어 산 그늘에 완전히 가려진 절터를 뒤로 하며, 보문산 행복
숲길로 나왔다.
보문산 행복숲길은 경사도 느긋하고 비포장 둘레길에 숲 또한 울창하여 걷는 맛이 참으로 좋
다. 길 이름 그대로 행복감이 느껴지는 착한 둘레길이다. 그 길을 여러 굽이를 돌아 윗사정3
거리(오월드 종점)까지 이동했다.


▲  보문산 행복숲길을 거닐다 ①


▲  보문산 행복숲길을 거닐다 ②

▲  보문산 행복숲길 오월드 종점 부근

마음 같아서는 행복숲길을 더 거닐고 싶었으나 장거리 행군으로 몸도 많이 지쳤고, 햇님 퇴근
시간까지 맞물렸다. 하여 더 이상의 욕심을 버리고 오월드(윗사정3거리) 종점에서 흔쾌히 마
무리를 지으며 시내버스를 타고 나의 제자리로 먼 길을 재촉했다.

이번 보문산 나들이는 석교동에서 시작하여 복전암, 마애여래좌상, 보문산성, 시루봉, 보문사
지를 거쳐 오월드 종점까지 그야말로 보문산을 동에서 서로 제대로 가로질렀다. 보문산행복숲
길이란 존재까지 새로 익혔고, 보문사터와 보문산성의 일품 조망까지 누리는 등, 과식 수준으
로 많은 곳을 봤더니 가히 배가 부를 지경이다.

이렇게 하여 보문산 겨울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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